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 Dear 그림책
숀 탠 지음, 이지원 옮김 / 사계절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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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K. 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의 서문에 '로저 젤라즈니'는 우리에게 딕이란 소설가를 이렇게 소개한다. 암울하고 무거운 세계를 잘 다루고 있지만, 우리가 딕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에게는 적절한 형용사로 표현할 수 없는 종류의 유머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단순히 디스토피아 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 복잡하다. 인물들은 절대 죽어 있지 않고 생생하게 소설 속에 살아 숨 쉰다. 그가 로봇인지? 안드로이드인지? 아님 인간인지 우리는 의심하고 종종 그 의심은 두렵기까지 하다. 거기에 굉장히 유머러스하다. 이게 딕의 장점이다.

‘숀 탠’의 이야기와 그림은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로테스크하기도 하고 너무 귀여울 때도 있다. 사랑스럽기도 하고 어둡고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느 땐 너무 따뜻하게 느껴지고 또 차갑게 느껴진다. <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의 첫 장에서 우리는 그것을 발견한다.



<물소> 일러스트의 일부 P.7
첫 번째 이야기, 방향만 오직 발을 들어 가리켜주는 들소의 그림을 보면 두려워해야 할지 귀여워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다. 이런 대상은 '숀 탠'의 그림에 넘쳐난다. 
여기서 ‘숀 탠’의 책을 이야기하면서 별 관련이 없는 딕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숀 탠’도 이렇게 복잡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운 좋게 동시대에 이런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할아버지의 결혼식 이야기> 일러스트의 일부 P.42-43
6번째 이야기 할아버지의 결혼식 이야기의 틈직한 일러스트를 꼼꼼하게 살펴보면 무서워해야 할지 귀여워해야 할지 판단하기 애매한 그림들이 숨어있다.  



<할아버지의 결혼식 이야기> 일러스트의 일부 P.47
마찬가지로 이 귀여운 팽귄들도 그렇다. (팽귄인지 그냥 새인지는 모르겠으나..) 



<빨간나무> 일러스트의 일부  


이런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을 우리는 전작 <빨간나무>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러나 ‘숀 탠’의 이야기와 그림이 단순하게 이런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 전부라면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을 것이다. ‘숀 탠’의 이야기는 좀 낡은 감이 없진 않지만 놀랍게도 결말에 가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그건 되게 생뚱맞게도 너무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빨간나무> 일러스트의 일부
<빨간나무>의 마지막 장을 펼쳐보고 마음이 따뜻해진적이 있었던 분은 이 말을 잘 이해할것 같다. 이런 감정은 <도착>에서도 느낄수 있고 <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에서도 느낄수 있다. 



<에릭> 일러스트 일부 P.18-19

두 번째 이야기 <에릭>을 읽어 본 사람이면 이 마지막 장면의 일부가 얼마나 놀랍고 아름다운 장면인지 알 수 있을 거다. 이렇게 우리가 ‘숀 탠’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의 이야기가 단순하지 않고 복잡한 감정을 전달해서기 때문이다.



15편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몇 개만 소개하자면 <에릭>은 꼭 <도착>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멀리서 온 비><나만의 애완동물 만들기>뜯어 붙이기 기법?을 사용했다. 특히 <멀리서 온 비>는 이야기가 맘에 무척 든다. <이름 없는 축일>은 굉장히 강렬한 느낌이다. 그림조차도 마치 판화처럼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우리의 원정>은 파스텔로 그린 것처럼 예쁘고 기묘한 이야기다. <어디에도 없다>도 개인적으로 아주 마음에 드는 이야기다. 아래 일부를 스캔한 것을 보면 다양한 그림이 실려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을 거다


<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을 첨 서점에서 봤을 때, 동화책 코너의 신간 가판대에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그 자리가 너무 생뚱맞아 보였다. 애들도 그리고 애들 엄마들도 이 동화책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을 것 같다. 차라리 이 책은 미술 신간이나 아니면 소설 신간에 쌓아놓는다고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번 신작에서 텍스트도 꽤 많은 편이고 다양한 기법으로 그린 그림도 구경할 수 있다. 그걸 리뷰에서 전부 소개할 수 없는 게 아쉬울 뿐이다.


<멀리서 온 비> 일러스트 일부 P.31 


<우리의 원정> 일러스트 일부 P.90-91  


<이름 없는 축일> 일러스트의 일부 P.72-73 
 

내가 감히 ‘숀 탠’의 단점을 이야기한다면. 단점이라기보단 싫어하는 점이라면 지나치게 교훈적이라는데 있다. <빨간나무>와는 다르게 <잃어버린 것>에서는 그런 점이 좀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도착>에서 이야기 자체는 놀라운 건 아니었지만 그림 자체가 너무 굉장했기 때문에 그 문제는 덮어 두기 되었다. 이번 <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에서도 몇몇 에피소드는 지나치게 교훈적, 혹은 훈계적?이라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많은 다른 이야기들은 <빨간나무>봤을 때처럼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번 작품을 통해 ‘숀 탠’은 그림으로써 뿐만 아니라 글로 써도 흠잡을 때 없는 작가라는 걸 스스로 증명해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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