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식기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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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일본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 문화구상학부를 졸업한 저자는 2009년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로 제22회 소설 스바루 신인상을 수상하며 데뷔했습니다. 2013년 "누구"로 제148회 나오키상을 수상하며 최연소 남성 나오키상 수상 작가로 기록됐고, 2014년 "세계지도의 초안"으로 제29회 쓰보타 조지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2021년에 출간한 "정욕"은 제34회 시바타 렌자부로상을 수상했으며 영화화되기도 했습니다. 그 외 저서로 "죽을 이유를 찾아 살아간다", "다시 한번 태어나다", "꿈의 무대, 부도칸", "시간을 달리는 여유" 등이 있습니다. 그럼, 또 한 번의 문제작 <생식기>를 보겠습니다.



화자 '나'가 관찰하는 다쓰야 쇼세이는 32살 남성 회사원으로, 철들 무렵에 동성애를 자연스럽게 자각했습니다. 어릴 때의 쇼세이는 주위 남자의 말투와 행동을 관찰하고 자신에게서 배어 나오는 여성 같은 분위기를 없애려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공동체에서의 생존율이 떨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그는 가전 회사의 총무부 총무과에서 일하며 독신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고 자신의 성 정체성을 철저히 숨긴 채 살아갑니다. 일본에는 국교가 없지만 그냥 그런 분위기로 정해지는 공동체의 규칙이 있습니다. 공동체의 목표를 촉진하는 것이 선이며, 반대로 공동체의 목표를 저해하는 것을 악으로 판단합니다. 공동체의 목표는 균형, 유지, 확대, 발전, 성장을 대부분 지향하기에, 동성애는 공동체의 축소를 의미하므로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추방된다고 생각하고 이해한 쇼세이는 그 규칙에 얌전히 따랐습니다. 그래서 공동체 감각이라는 커다란 매트를 다 같이 옮길 때, 그 매트가 무엇이든 어찌 되는 상관없고, 그 진로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자기 마음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하고, 판단, 결단, 선택, 선도를 담당하는 위치에 서지 않으며 그저 손을 얹기는 하나 절대 힘을 주지 않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체계화된 '온전함'을 획득한 쇼세이를 계속 관찰하는 화자 '나'는 누구인지, 쇼세이는 온전함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자세한 이야기는 <생식기>에서 확인하세요.




<생식기>는 제목부터, 전개방법까지 특이함을 넘어 특별함을 줍니다. 생식(生殖)은 생물이 자기와 닮은 개체를 만들어 종족을 유지하는 현상을 말하며, 흔히 유성생식과 무성생식으로 나뉜다고 교과서에서 배울 때 등장하는 그 단어입니다. 이 책은 32살 독신 남성 다쓰야 쇼세이를 집요하게 관찰하는 화자 '나'의 기록(記)입니다. 남들과 다른 성 정체성을 가진 쇼세이가 어릴 때부터 그 다름을 어떻게 인식하고 이해하고 행동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일본과 한국은 법으로 규정되지 않지만 누구나 인식하고 따르는 공동체의 규칙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공동체의 규칙이 너무나 확고해서 그 틀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사회적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지금은 '다양성'이란 말로 규칙도 엄격하지 않고 대놓고 질타하진 않지만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입방아에 오르는 것은 여전합니다. 결국 정도의 차이일 뿐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화자가 설명하고 생각하는 것을 읽다 보면 이런 것들이 목숨이 위태롭지 않는 지금의 환경에서 인간 특유의 지능과 사고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렇게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공동체의 규칙', 혹은 '그냥 그런 분위기'에 얽매이다 보니 모두가 어느 쪽으로든 갈 수 없고,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은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몸과 정신에 병이 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욕"이후 또 한 번 생각의 틀을 깬 <생식기>의 여운을 느끼며, 저자의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틀을 깰 것인지 기대됩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다.
그것은 살아가는 세계가 다르다는 뜻입니다.
(중략)
인간의 경우, 같은 종의 개체라도
어떤 [온전함]을 쌓아 왔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사는군요.
p. 2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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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사판정위원회
방지언.방유정 지음 / 선비와맑음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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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healing_seojae 서평단 책입니다.



대중가요 작사가로 데뷔한 방지언 저자는 이후 주간지 칼럼니스트와 SBS 드라마국 기획 작가를 거쳐 청강대 만화웹툰스쿨 초빙교수로 활동했습니다. 현재 드라마 제작사에서 드라마 편성 준비 중입니다. 웹드라마 '옐로우'로 데뷔한 방유정 저자는 여러 편의 웹드라마와 JTBC 드라마를 집필했습니다. 현재 드라마 제작사에서 드라마 편성 준비 중입니다. 그럼, 드라마작가 자매가 쓴 <뇌사판정위원회>를 보겠습니다.



명진의료원 신경외과 부과장 차상혁는 뇌종양센터를 이끌고 있으며 연간 200회 이상의 뇌 수술을 집도합니다. 특히 두개저 수술에 있어서는 세계적 권위자로 명성이 자자합니다. 완벽주의자 그는 언제나 화제의 중심이었고, 병원 이사장 이준모의 외동딸 이한나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부원장이자 신경외과 과장 오기태는 차상혁 교수의 스승이자 은인이며, 그를 유일하게 긴장시키는 인물입니다. 한 달 뒤 경기도의 신도시에 신설된 공공의료병원 원장에 취임하기로 예정된 오기태는 차상혁과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오기태가 차상혁에게 더 이상 자신을 실망시키지 말고 자수하라며 3년 전 김미연 환자의 EEG 기록지를 보여줍니다. 그날 응급실에서 집중치료실로 옮겨간 김미연과 이미연, 공교롭게도 비슷한 나이, 비슷한 이름을 가진 환자들이었습니다. 차상혁은 고난도의 수술 두 건을 연달아 하고 자신의 연구실에서 비몽사몽간에 이미연 환자에게 갈 뇌사 진단을 김미연 환자에게 내렸습니다. 몇 시간 뒤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렸을 때 이미 뇌사판정위원회에서 뇌사 판정을 내린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실수를 바로잡지 않았고 담당 간호사를 불러 회유하고 위협해 입을 막았고, 환자 관련 자료도 모두 폐기했습니다. 그랬는데 3년이 지난 오늘, 스승의 손에 증거자료가 있습니다. 오기태는 자수하지 않으면 자신이 신고하겠다고 일갈하고 식당을 나섰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의 차를 차상혁이 맹렬한 속도로 들이박았습니다. 오기태는 심각한 뇌 손상을 입었고, 차상혁은 문제의 파일과 블랙박스를 챙기고 떠납니다. 오기태는 한참 뒤에 발견되어 명진의료원 응급실에 도착했고, 차상혁은 그동안 알리바이를 조작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신경의가 수술했으나 오기태는 뇌사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제 뇌사판정위원회가 열립니다.

뇌사판정위원회의 위원으로 참석한 차상혁과 다른 위원들의 이야기는 <뇌사판정위원회>에서 확인하세요.




어떤 경쟁에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이기고야 마는 승부사, 빈틈없는 논리와 매혹적인 카리스마로 상대방의 심리를 거리낌 없이 조종하는 권력가 신경외과 부과장 차상혁은 과장 오기태가 자신의 의료과실 증거를 내밀며 자수하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하자 그를 차로 세게 박습니다. 오기태는 수술을 받지만 뇌사 상태가 되고, 뇌사판정위원회가 열립니다. 위원장으로 병원장 심정섭, 산부인 과장 한주희, 법무법인 가람의 대표 번호사 장승수, 신경외과 중환자실 병동 수간호사 이하얀, 입원한 미카일 신부를 대신해 한남동성당 보좌신부 안드레아, 신경외과 전문의로 차상혁까지 6명이 위원들입니다. 뇌사판정위원회는 전문의 2명 이상과 비의료인 위원 1명 이상을 포함하여 재적 위원의 과반수가 출석한 상태에서 출석 위원 전원의 만장일치 찬성이 있을 경우에만 뇌사가 인정됩니다. 따라서 한두 명 빠져도 위원회는 성립될 수 있지만, 단 한 표라도 반대표가 나오면 뇌사 판정은 무효가 되고, 대상 환자는 자동으로 연명 치료로 전환되게 됩니다. 만장일치로 뇌사 판정을 마무리 짓고, 자신의 죄악에서 벗어나려고 상혁은 여러 일을 벌입니다.

<뇌사판정위원회>는 2월 11일 오전부터 2월 15일 오전까지, 며칠간의 일을 긴박하게 전개합니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편의 드라마 혹은 영화가 떠올랐고, 저자의 드라마작가의 이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생명을 다루는 병원이 마냥 고귀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간호사들, 의사들, 병원장, 이사장 사이에서 벌어지는 권력 구도와 이권 싸움이 이렇게 치열한지 몰랐습니다. 그들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정당하게, 혹은 정당하지 않게 싸우고 있었고, 양심과 이익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우리 모습이 투영됩니다. 한 번 눈감아주면 그다음은 어렵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한 번을 직면하기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 한 번이 생명과 맞닿아 있는 병원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단순히 사건을 쫓는 소설이 아니라 사명과 양심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인간 본질을 파헤치는 소설입니다.



반칙은 반칙으로, 불법은 불법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딱 한 번 반칙과 불법에 발을 디디면
딱 그만큼 윤리의 저울추도 기울게 된다.
딱 한 번은 두 번, 세 번으로 이어지고
급기야 어둠의 흙탕물에 흠뻑 젖고 말 것이다.
p.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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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 단편선 소담 클래식 6
에드거 앨런 포 지음, 임병윤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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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년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난 저자는 공부도 잘하고 운동과 글쓰기에도 소질이 있는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된 저자는 주벽과 모난 성격으로 불행을 불러오는 인물이었고 평생 알코올 중독과 빈곤에 시달렸습니다. 1826년 도박과 술에 빠져 대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집안에서도 쫓겨납니다. 1833년 단편소설 "유리병에 남긴 편지"가 공모전에 당선되어 상금을 받자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어셔가의 몰락", "모르그 가의 살인", "적사병의 가면", "검은 고양이" 등을 집필합니다. 1847년 아내 버지니아가 24살의 나이로 사망하자 그녀를 그리워하며 '애너벨 리'라는 명시를 남깁니다. 1849년 40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럼, 저자의 단편을 모은 <포 단편선>을 보겠습니다.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무척 온순하고 정이 많은 아이여서 동물을 좋아했고 키웠답니다. 아내도 자신과 성격이 비슷해 동물들을 사들여 집에서 키웠답니다. 그중 고양이는 온몸이 새까맣고 놀랄 정도로 영리했고 플루토(염라대왕)이라 지었습니다. 고양이와 친하게 지냈지만 무절제한 폭음으로 인해 침울해지고, 난폭해졌고, 아내에까지 폭력을 휘둘렀답니다. 만취하고 돌아온 날 플루토를 붙잡아 한쪽 눈알을 도려내었고, 다음날 후회했지만 술을 자제할 수 없었답니다. 그러다 고양이 목에 올가미를 걸어 나뭇가지에 매달았고, 그날 밤 집에 불이 나서 전 재산이 불에 사라졌답니다. 불타 없어진 집터에서 자신의 침대 머리 쪽에 있던 벽 한쪽만 남아 있었는데, 흰 벽에 조각을 해놓은 것처럼 밧줄을 목에 맨 고양이 형상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화자는 파리에 머무는 동안 C. 오귀스트 뒤팽이라는 인물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몽마르트 거리의 후미진 곳에 있는 도서관에서 같은 책을 찾다가 인연이 되어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함께 지내는 어느 날, 신문 저녁 판에서 모르그 가의 살인 기사가 실렸습니다. 새벽 세 시경 끔찍한 비명 소리에 잠에서 깨어 주민들과 경관 두 명이 비명이 들린 건물로 문을 따고 들어갔습니다. 이때 비명이 잠시 그쳤지만, 사람들이 2층으로 달려 올라갈 때 다시 싸우는 듯한 거친 목소리가 두세 차례 들렸으나 2층에 이르렀을 때 건물이 조용해졌습니다. 사람들이 4층 잠긴 방에 문을 부수고 들어가자 방 안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에 사는 레스파네 양은 좁은 굴뚝 안에 죽어있었고, 레스파네 부인은 건물 뒤편에 있는 돌로 포장된 뜰에 무참히 찢긴 채 죽어 있었습니다. 경찰은 조사 중이지만 미궁에 빠졌습니다.

소개한 '검은 고양이', '모르그 가의 살인' 외에도 다른 이야기는 <포 단편선>에서 확인하세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는 1845년에 발표된 소설입니다. 자신의 욕구와 분노를 참아내지 못하고 결국 살인을 저지른 사람의 독백을 읽다 보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어떻게 몰락하며 파멸에 이르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알코올에 중독되면서 점점 폭력성과 광기로 잠식당해 동물을 학대해도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지내는 모습을 읽노라면 이러다 더 큰일이 나겠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다 결국 살인을 저지르고 자신이 범인임을 모르는 어리석은 경찰을 비웃기까지 합니다. 그의 소름 돋는 독백이 너무나 현실감 있게 느껴져서 20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읽어도 미스터리 소설로 손색이 없습니다. 1인칭 관찰자 시점인 주인공과 명석한 판단력과 추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이 등장하는 콤비도 지금의 독자들에겐 익숙하다 못해 지루하기 그지없습니다. 추리소설의 클리세인 두 명의 조합도 바로 에드거 앨런 포가 쓴 단편소설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이 인물들이 등장했기에 셜록 홈스도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현재 접하는 모든 미스터리 캐릭터, 무대, 사건 등은 저자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의 일곱 개의 단편을 <포 단편선>에서 확인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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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로 놀지 마 어른들아
구라치 준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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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



1962년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태어나 니혼대학교 예술학부 연극학과를 졸업한 저자는 1994년 '네코마루 선배 시리즈'의 첫 번째인 "일요일 밤에는 나가고 싶지 않아"를 통해 소설가로 데뷔했습니다. 1997년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으로 제50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장편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2001년 "항아리 속의 천국"으로 제1회 본격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럼, 저자의 데뷔 30주년을 맞아 선보인 작품 <시체로 놀지 마 어른들아>를 보겠습니다.



J 대학 소프트테니스 동아리 회원들과 지인들은 N 현에 있는 작은 산 정상에 세워진 세미나 하우스 건물 앞 광장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데 사람처럼 생겼지만 사람이 아닌 존재인 좀비가 그들을 공격했습니다. 순식간에 3명이 당했고, 남은 사람들은 건물 안으로 피신했습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제멋대로인 동아리 회장 가몬, 실질적인 리더인 아오야마, 덩치가 작은 오타쿠 오카다, 온화하고 친절한 성격으로 중재자 역할을 하는 오가와라, 성격이 강한 미인 기노, 소심한 여자 의대상 나이토와 가몬이 초대한 우메모토와 다네가시마가 생존자입니다. 사방을 둘러싼 좀비 떼 때문에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없으며 통화권 이탈 구역이라 휴대폰으로 외부와 연락을 주고받을 수도 없습니다. 1층 문과 창문의 문단속을 단단히 하고 2층에서 각자 잠을 자기로 했습니다. 다음 날 가몬이 방에서 좀비에게 물어 뜯긴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좀비가 어떻게 2층까지 올라온 것인지 의문스럽습니다.

도쿄 도의회에서 높은 재범률을 방지하고자 참회하는 상담소인 '위법 행위 등 각종 문제 상담소'를 마련합니다. 경찰에 넘기지 않고 조언도 하지 않으며 그저 이야기를 들어줄 뿐입니다. 제2본청사 뒤 조립식 건물을 설치했고 인터넷에 홍보도 했습니다. 상담원은 2인 1조이며, 2주 동안 임시 파견 근무하는 시청 공무원 미야타와 유명 사찰의 주지 스님 대신 오게 된 젊은 수행승 만넨입니다. 일주일이 되어가던 일요일에 정장을 입은 젊은 남자가 찾아와 자신이 사람을 죽였을지도 모른다고 털어놓습니다. 그 이후로 또 다른 젊은 남자 2명이 찾아와 비슷하지만 디테일이 살짝 다른 이야기를 말합니다. 도대체 이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소개한 이야기의 나머지와 다른 두 가지 이야기는, <시체로 놀지 마 어른들아>에서 확인하세요.




본격 미스터리란 '본래의 격식'의 줄임말이고 본격 미스터리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추리 소설 속 전형적인 모습을 말합니다. 즉 퀴즈북 같은 수수께끼 풀이를 중요시했던 소설 장르의 초기 고전의 본래의 격식을 따르는 소설이며, 사건이 있고 범인이 있으며, 범인에 의한 트릭이 있고 이를 명탐정 캐릭터가 등장해 해결하는 구조입니다. 본격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시체로 놀지 마 어른들아>는 신선한 소재 때문에 흥미 있게 느낄 것입니다. 좀비에게 물려 사망한 시체의 비밀을 푸는 '본격 오브 더 리빙 데드', 자신이 사람을 죽였을지도 모른다며 찾아온 세 명의 상담자의 '당황한 세 명의 범인 후보', 40년 전 죽은 자가 산 자를 죽인 듯 보이는 동반 자살 사건의 진상을 추리하는 '그것을 동반 자살이라고 불어야 하는가', 산속 강가에서 두 팔만 여성의 것으로 바꿔 끼워진 남성 시체의 진상을 밝히는 '시체로 놀지 마 어른들아'까지 네 개의 단편에서 선보인 시체들은 어떻게 죽게 되었나를 맞히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각 단편에 등장한 명탐정은 너무나 손쉽게 풀어버립니다. 무슨 초능력 같아 보이는 명탐정의 추리에 주변 사람들을 비롯한 독자는 어떻게 알아냈는지가 더 궁금해집니다. 명탐정이 풀어내는 논리정연함에, 처음엔 말도 안 되는 것 같아도 듣다 보면 그럴싸하게 느껴지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마지막에 명탐정의 실체까지, 저자는 그냥 이야기를 끝내는 법이 없습니다. 신선하다 못해 파격적인 소재로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한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며, 저자의 다른 작품도 읽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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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장의 유령
아야사카 미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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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일본 야마가타현에서 태어난 저자는 와세다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하고 발표한 "미성년 의식"이 후지미 영 미스터리에서 준입선해 데뷔했습니다. "해바라기를 꺾다"는 제74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장편 및 연작 단편집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작품입니다. 그럼, 저자의 <피안장의 유령>을 보겠습니다.



기지마 전기의 차기 후계자 기지마 렌에게서 초대장이 옵니다. 쇼와 시대 초기에 증조할아버지가 첩실의 집으로 지었다는 '피안장'을 조사해 달라고 합니다. 가을 피안 시기가 되면 산장 주변 일대에 피안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다들 그렇게 부르는 그곳은 사연이 많은 산장이랍니다. 기지마 그룹의 친인척을 비롯해 여러 사람이 옛날에 그곳에서 불의의 죽음을 맞거나 행방불명되었답니다. 경찰도 수사를 했으나 특별한 점을 찾지 못했답니다. 피안화가 피는 계절에만 그곳에서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 발생하는데, 피안장을 철거하기 전에 3일 동안 조사해달라고 합니다. 조사팀으로 염동력자 가미시로 사라, 자동서기 능력자 하야카와 아키라, 예지 능력자 우에다 시게키, 사이코메트러 하타노 미즈키, 정신감응 능력자 우에하라 도시코, 일렉트로키네시스 고즈카 나기의 능력자와 사라의 소꿉친구인 야마모토 히나타, 후계자 렌의 사촌 형인 미즈야 가즈히사, 조사를 돕기 위해 아르바이트 중인 엔도 유토까지 총 10명입니다.

피안장에 도착하면서부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기이하게 죽은 살인사건도 벌어집니다. 거기다 스마트폰은 통화가 안 되고, 문과 창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이들을 가둔 피안장의 의도는 무엇인지, 살인을 저지른 범인은 누구인지, 자세한 이야기는 <피안장의 유령>에서 확인하세요.




표지를 장식하고 제목에도 있는 '피안화'는 일본에서 불리는 이름이며, 한국에서는 '꽃무릇' 또는 '석산'으로 알려져 있는 수선화과의 가을꽃입니다. 이 꽃은 책에서도 언급되었듯이 8월 중순에 붉은 꽃이 줄기 끝에 모여 피며, 꽃이 진 후 잎이 돋아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불교에서 '저승'을 상징하는 '피안(彼岸)'에서 유래했으며, 독성이 있어 무덤 주변에 심어 시체를 보호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피안장의 유령>을 읽으며 붉은색 피안화가 잔뜩 피어있고 바람에 한들한들 흔들리는 표지의 모습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아름다운 장면이 상상되기에 현혹되기 쉽고 너무나 아름다워 꺼림칙한 기분마저 듭니다. 불의의 죽음을 맞거나 행방불명된다는 '피안장'에 초대된 6명의 능력자와 저택의 주인과 사촌, 조수, 그리고 이 책의 화자인 히나타까지 이들은 이상한 일들을 겪게 됩니다. 울려 퍼지는 천둥, 갑작스러운 정전. 기이하게도 온몸의 피가 없는 시체, 추락사한 사람의 스마트폰에 남겨진 저택의 전화번호, 와인을 마시고 쓰러진 저택의 주인까지, 예전에 일어났던 피안장의 저주가 다시 반복되는 걸까요. 저택을 방문하는 순간,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말입니다. 미스터리와 초자연적인 현상이 함께 일어나 사람의 소행인지, 저주에서 비롯된 것인지 헷갈리는 가운데, 미스터리를 풀리고, 생각지도 못한 반전을 보여줍니다. 피안화는 꽃과 잎이 영원히 만나지 못해 이별과 죽음을 뜻하기도 한다는데, 책을 다 읽고 보니 제목에서 책의 결말을 암시하는 것 같아 한편으론 슬픕니다. 하지만 만나지 못해도 서로를 생각하고 행복을 빌어주기에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그녀들 앞에 행복만 가득하길 바라며, 초능력자와 미스터리를 절묘하게 엮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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