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시대정신이 되다 - 낯선 세계를 상상하고 현실의 답을 찾는 문학의 힘 서가명강 시리즈 27
이동신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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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후 텍사스 A&M 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현대 미국 소설, SF 문학, 고딕 소설 등을 가르치며, 포스트휴머니즘이라는 틀에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최근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과 함께 '인간-동물 연구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인간-동물 관계의 성격과 문제점을 논의하며 좀 더 윤리적이고 실천적인 관계를 모색하고 있는 저자의 <SF, 시대정신이 되다>를 보겠습니다.



흔히 새롭고 낯선 것을 다루는 상상력 가득한 장르로 SF 혹은 판타지라 부르며 이 둘을 혼동합니다. 하지만 SF와 판타지는 다릅니다. 이들을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은 '인지적 낯섦'과 '노붐'으로 이 두 가지는 SF 장르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입니다. 작가의 경험적 환경이라는 것은 인지의 측면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환경은 이미 이해하고 있는 익숙한 환경입니다. 그런데 그것의 대안이 되는 상상의 틀은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지만 낯선 것입니다. 판타지에서는 용이 등장해도 이상할 것 없다며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SF에서는 용이 등장하면 의심하고 물어봐야만 합니다. 과연 용인지, 어떻게 나타났는지, 그것이 존재함으로써 현실 세계는 어떻게 변하는지 등을 따져 물어야 합니다. '노붐'은 새로운 것이지만 그저 새롭고 신기한 정도가 아니라, 그 새로운 것 하나 때문에 우리의 세계관과 우주관이 다 바뀔 정도로 강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의미입니다. SF는 이 둘을 충족시키기 위해 신의 영역으로 불리는 시간에 돈을 던집니다. 그렇게 시간을 뒤틀고, 공간화하고, 영생을 꿈꾸기도 하며 인간의 상상력을 무한히 자극합니다.


'현실 도피'는 SF라는 장르가 성장하고 자리를 잡게 만든 결정적 특징입니다. 이 특징은 SF 장르에서 새로운 공간에 대한 다양한 시도와 탐구로 이어집니다. 대표적으로 '우주'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탐험을 떠나며 스페이스 오페라가 탄생합니다. 윌슨 터커는 당시 대중들에게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스페이스 오페라의 주요 특징을 우주선, 재미있는 모험 이야기, 정형적인 플롯과 평범함의 세 가지로 규정했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우주선과 외계인 외에 반복되는 것은 외계 행성입니다. 지구를 배경으로 한 여행기에 등장하는 낯선 곳은 여전히 지구라는 환경에 얽매여 있기에 새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지구에서도 판타지가 아닌 방식으로 매우 낯선 환경을 그릴 방법이 있는데 종말 이후의 세계,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상을 그리는 것입니다. 또한 판타지처럼 모든 것이 가능하면서도 동시에 판타지가 아니라 SF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사이버스페이스'도 있습니다. 사이버스페이스는 다른 공간을 탐색하는 게 아니라는 관점에서 스페이스 오페라의 성장이 주춤하게 만들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이버스페이스가 더 다채로워지고, 더 흥미로워지며, 더 새로워지려면 지구를 넘어 우주로의 여행을 더 많이 하고 그 여행으로 얻을 수 있는 무언가를 사이버스페이스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간 SF는 잡지에 연재되면서 황금시대를 맞습니다. 독자와 작가가 모두 성장하는 시기로, 유명한 작가들이 이때 대거 등장합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황금시대는 쇠락하고 SF의 주 매체가 잡지에서 책으로 전환되며 저자와 독자 모두에게서 변화가 시작됩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SF 작가들은 심오한 철학과 신랄한 비판을 이야기에 담아내려 하고, 대중적 장르에서 좀 더 심각한 장르로 변모합니다. 작품이 복잡해지고 주제의식이 강해지며 문해력을 요구하자 독자층에도 변화가 나타납니다. SF는 이제 전 세계의 장르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성이라는 말로는 포섭될 수 없는 무한히 넓은 장르로 진화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가 무엇을 쓰고, 무엇을 읽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 그리고 왜 읽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좀 더 진중하게 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SF는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과 성취를 자양분으로 해서 성장한 장르입니다. 태생적으로 SF는 과학기술로 무엇이 가능한지, 향후 무슨 일이 얼어날지를 때로는 긍정적으로 때로는 비판적으로 상상해왔습니다. SF를 유치한 장르 혹은 재미로 읽고 보는 장르라고 무시해왔지만 SF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그 이상이 보입니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해온 장르로서,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SF 장르를 읽는 독자들은 공상의 세계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공상의 세계를 잇는 노력을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상상과 비판을 동시에 수행하는 능동적 독자가 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 독자가 많아진다면 더 좋은 SF 작품이 탄생될 것입니다. 그리고 좀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도 생길 것입니다.




네이버카페 이벤트에 당첨되어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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