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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평점 :
'필름2.0'과 '프리미어', 'GQ'에서 기자로 일한 저자는 에세이 "버티는 삶에 관하여", "나의 친애하는 적", 소설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60~80년대 한국 공포영화를 다룬 "망령의 기억"을 썼습니다. 그럼, <살고 싶다는 농담>을 보겠습니다.
악성림프종 진단을 받고 병동 무균실에 입원하고 다시 일반 병동으로 옮겨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병실을 쓰게 된 저자는 남을 불편하게 만드는 환자와 자신에게 털모자를 준 간호사 한 분에 대해 썼습니다. 그땐 병원에서 주는 건가 하고 별 감흥 없이 고맙다고 말하고 넙죽 받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죽고 싶은 마음에서 다시 살고 싶은 마음으로 바뀐 그 밤을 경험한 후에 털모자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왜 제때에 제대로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지 후회가 된답니다. 세상을 살면서 감사함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후회한 적은 참 많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론이 아니라 결심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결론에 사로잡혀 있으면 정말 중요한 것들이 사소해집니다. 결론에 매달려 있으면 속과 결이 복잡한 현실을 억지로 단순하게 조작해서 자기 결론에 끼워 맞추게 됩니다. 이와 같은 생각은 삶을 망칩니다. 거창한 결론이 삶을 망친다면 사소한 결심들은 동기가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사소한 결심들을 잘 지켜내어 성과가 쌓이면 삶을 꾸려나가는 중요한 아이디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론이 아니라 결심입니다. 인간이라면 노력하지 않아도 알아서 작동한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고장 날 때, 얼마나 무기력해지고 비참한 기분이 들까요. 이런 기분은 직접 당하지 않고선 논할 바가 없지만 자살 기도를 했으나 밤새 정신없이 힘들어하다 보니 살아 있었다는 작가, 이제 살기로 결정했고 그래서 전처럼 절망적이지 않답니다.
억울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살다 보면 크고 작은 배신과 실패를 직면하게 될 일이 생깁니다. 이에 대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비슷한 일이 한두 번 반복되다 보면 평상시에도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됩니다. 피폐한 마음을 가진 자들의 안식처는 자조와 비관입니다. 자신은 피해자라는 생각 안에 안도하며 머물게 됩니다. 그런 자신을 구하기 위한 자력구제의 수단으로 무엇을 선택하든 자신은 늘 옳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평가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자신과 주변을 파괴합니다. 인간은 그렇게 타락합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자신을 향한 평가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키고 그걸 해냅니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합니다.
평가에 잠식되어서는 안 됩니다. 평가와 스스로를 분리시켜야 합니다. 마음에 평정심을 회복하고 객관성을 유지합니다. 언젠가 반드시 우리의 노력을 알아보고 고맙다고 말할 사람이 나타날 것입니다. 끊임없이 가다듬고 정진하고 버틴다면 반드시 그날이 옵니다. 피해의식과 결별하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기로 결심합시다. 무엇보다 등 떠밀려 아무런 선택권이 없었다는 듯이 살아가는 게 아닌 자기 의지에 따라 살기로 결정하고 당장 지금 이 순간부터 자신의 시간을 살아내라는 것, 오직 이것만이 우리 삶에 균형과 평온을 가져올 것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우린 항암투병을 한다는 말을 주위나 미디어에서 접한 적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임을 조금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아픈 것은 아니기에 그 아픔과 힘듦을 100% 이해할 순 없습니다. 차라리 죽고 싶다는 말이 절실히 와닿을 만큼, 딱 그렇게 아프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그전까지 있는지도 몰랐던 내 몸의 부분들이 고장 나서 작동하질 않는다면 얼마나 무기력하고 비참해질까요. 차라리 정신이라도 흐릿하다면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을 겁니다. <살고 싶다는 농담>은 그런 것들을 다 겪고 다시 살고 있는 허지웅 씨의 이야기입니다. 우린 손쉽게 잊고 삽니다. 그때의 아픔과 힘듦을. 그때 얻은 경험과 교훈을 잊고 삽니다. 머리론 알지만 행동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말할 수 있어도 자신에게 적용하기 점점 어려워집니다. 바닥에서 깨달았던 것들을 까먹는 것입니다. 그렇게 삶은 계속되고 우리는 실수를 반복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뇌고 적고 상기시키며 후회하며 살아가는 것 또한 인간이라서 그럴 겁니다. 그러니 우리 살아봅시다.
내 힘으로 온전히 서서 달리고 있었던
그 최초의 감각을 떠올려봅시다.
도움을 받는다는 것과 마침내 혼자 중심을 잡는다는 것.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우리는 그렇게 오래전에 배웠습니다.
그리고 평생에 걸쳐, 반복합니다. (p. 5)
아마 행복이라는 건
삶을 통해 스스로에게 증명해나가는 어떤 것일 테다. (p. 14)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