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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없다의 방구석 영화관 - 영화를, 고상함 따위 1도 없이 세상을, 적당히 삐딱하게 바라보는
거의없다(백재욱) 지음 / 왼쪽주머니 / 2020년 5월
평점 :

제가 요즘 꼭 챙겨 보는 TV 프로그램은 바로 "방구석 1열"입니다.
영화소개 영상을 보며 낯익는 목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거의없다'라는 영화 유튜버라고 하길래,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거의없다 씨는 고등학생인 아들이 추천해 준 유튜버로
저도 구독해서 가끔씩 영상을 시청하곤 합니다.
그래서 귀에 익은 그분의 음성이 TV 프로그램에 나와 더욱 반가웠습니다.
그런 그가 쓴 <거의없다의 방구석 영화관>.
또 어떤 내용의 영화가 나올까 기대가 됩니다.

<거의없다의 방구석 영화관>은 총 19편의 영화를 9장에 걸쳐 소개합니다.
대멸종을 다루는 스펙터클한 영화 한 편쯤은 보셨겠죠.
이런 유의 영화는 아포칼립스라고 하는데, 대재앙이 벌어지는 내용을 다룹니다.
포스트아포칼립스라는 장르는 대재앙이 벌어져서
인류가 멸망한 이후를 보여줍니다.
즉 전 인류 공통 악몽의 다음 단계이자,
그 악몽보다 더 끔찍한 일을 다루는 영화입니다.
이 장르를 잘 다룬 작품은 바로 "나는 전설이다"로 소설이 원작이며
영화로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소설과 결말을 바꿔서 그 작품성이 심하게 떨어지니
꼭 소설을 읽으라고 강력 추천합니다.
"폭스캐처"란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데,
이 영화는 끝까지 보고 나서 의문이 남는 영화입니다.
스포츠를 다룬 영화지만 감동적인 스포츠 드라마가 아닌,
인간이 결핍으로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차갑고 무거운 시선으로 관찰하는 영화죠.
하지만 이 영화가 선사하는 긴장감과 울림은 큽니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성조기, 총, 스스로 골든이글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주인공.
이 모든 것은 그냥 영화에 나오는 게 아닙니다.
모든 소재와 대화는 의미가 있습니다.
감독은 주인공을 통해, 사람에게 총질하고 감옥에서 썩다가
죽은 또라이를 통해, 미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과연 미국만 문제가 있는 걸까요? 한국도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주입받는 성실함, 자기 몸을 돌보지 않는 꾸준함,
눈앞에 있는 자그마한 만족과 즐거움을 포기할 줄 아는 인내심.
과연 이런 게 개인의 행복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 걸까요?
사다리의 위 칸으로 올라가는 길이 예전보다 몇 배는 힘들어진
이 시대에 말입니다.
내가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첫 번째 방법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저도 보았던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을
함께 조명합니다.
처음 영화는 20대 불꽃같은 사랑을 그렸고,
다음 영화는 9년이 지나 30대 각자의 자리에서 재회해 둘이서
함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을 그렸으며,
마지막 영화는 중년부부로 환상은 깨지고
현실만 남은 아줌마 아저씨를 그렸습니다.
처음 영화를 담은 다른 로맨스 영화는 많습니다.
하지만 그다음 이야기를 담은 영화들은 거의 없지요.
그래서 이 영화는 더욱 소중합니다.
사랑이라고 하면 영화, 책에서 본 아름다운 것만 떠올릴 때,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은
사랑은 세월로 증명함을 알려줍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힘겨운 삶을 살던 여주인공이
권투의 재능을 발휘해 챔피언 전까지 올랐습니다.
챔피언인 상대가 계속 밀리다가 공이 올린 다음
뒤에서 후려치는 반칙을 범합니다.
그 바람에 앞으로 쓰러지다가 모서리에 목을 찍혀 척추가 손상되어
남은 평생을 목 아래로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 환자가 되어버립니다.
실패도 이렇게 끔찍한 실패가 없을 정도로, 운이 없어도
이렇게까지 없기도 힘들 정도의 불운으로 그녀는 실패합니다.
그녀의 가족은 그동안 그녀가 벌어다 준 돈으로 놀고먹기만 하다가
부상 소식을 듣고, 모든 재산을 가족에게 넘긴다는 유서에 사인하라고 합니다.
그녀는 당장 꺼지라고 말하죠. 묵묵히 듣고 있던 트레이너가 말합니다.
'너의 승리다, 애야.'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영화로 "삶의 성공과 실패는
그대가 들어 올린 트로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을 꺾고 일궈낸 승리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그대의 인생의 성패는, 그대라는 인간의 가치는,
지금까지 그대가 지나온 삶에 찍혀 있는 그대의 발자국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그 발자국이 정정당당하고 곧게 찍혀 있다면,
사랑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했다면,
그 길 중간에 그대가 쓰러졌다고 해서 그대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당신의 삶이 100만 달러짜리였으므로."를 전하고 있습니다.
저도 감독에게, 저자에게 동감합니다.
빛나는 순간이 극히 짧았어도, 아니 단 한 번도 빛나지 못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삶의 가치는 삶으로 결정되는 것이죠. 그 삶이 이뤄낸 성과가 아니라.
<거의없다의 방구석 영화관>에 소개한 영화 중에 본 영화도 반 이상인데,
이런 영화를 요렇게 생각한 저자의 해석에 감탄했습니다.
단순히 영화 줄거리와 감상에 그치는 영화 이야기가 아니라,
영화를 제대로 읽을 줄 아는 거의없다 씨의 영화 이야기,
<거의없다의 방구석 영화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