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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정 - 흔들리지 않고 고요히 나를 지키다
정민 지음 / 김영사 / 2020년 2월
평점 :

습정(習靜)은 고요함을 익힌다는 뜻입니다.
고전학자 정민 교수의 다섯 번째 책, <습정>은 <일침>, <조심>, <석복>,
<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에 이은 책입니다.
100편의 글을 '마음의 소식, 공부의 자세, 세간의 시비, 성쇠와 흥망'으로 나눴습니다.
한 편 한 편마다 마음에 새길 지혜라 모두 알려주고 싶지만
그중에 제 마음에 많이 와닿은 네 글자를 몇 편 소개하겠습니다.

한불방과(閒不放過 - 쓸모는 평소의 온축에서 나온다)는
일 없다고 빈둥거리면 정작 바빠야 할 때 할 일이 없게 됩니다.
남이 안 본다고 슬쩍 속이면 대명천지 밝은 데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사람은 한가하고 고요할 때 더 열심히 살고, 남이 안 볼 때 더 노력하며,
젊을 때 더 갈고닦아야 합니다. 일 없을 때 일 안 하면 일 있을 때 일을 할 수가 없지요.
사람의 쓸모는 평소의 온축(蘊蓄)에서 나옵니다.
그렇다면 평소의 몸가짐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드러내는 대신 감추고, 얄팍해지지 말고 더 깊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 좋다는 소리를 듣기보다 내실을 지녀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니는 것이 낫답니다.
유천입농(由淺入濃 - 깊이는 여러 차례의 붓질이 쌓여야 생긴다)는
그림을 그릴 때 여러 차례의 붓질을 해야 합니다.
일필휘지로 그린 그림에는 그늘이 없지요. 사람의 교유도 다르지 않습니다.
명나라 사람 왕달은 <필주>에서 벗 사귀는 도리로 이 말을 설명했습니다.
군자의 사귐은 담담하기가 물과 같고, 소인의 사귐은 농밀하기가 단술과 같습니다.
물은 비록 담백하나 오래되어도 그 맛이 길에 가고,
단술은 비록 진해도 오래되면 원망이 일어납니다.
차곡차곡 쌓아 켜를 앉힌 것이라야 깊이가 생겨 오래갑니다.
그림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습니다.

삼년지애(三年之艾 - 7년 묵은 병에 3년 묵은 쑥 찾기)는 묵은 병을 낫게 하려면
3년 묵은 약쑥이 필요한데, 처음 아팠을 때 약쑥을 뜯어 마련해두었더라면
3년 뒤에는 그 약쑥을 먹어 병을 치료할 수 있었겠죠.
하지만 당장에 먹을 해묵은 약쑥이 없다고, 바깥에서 3년 묵은 약쑥만 찾아다니느라
7년이 지나도록 쑥은 못 찾고 병만 깊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즉, 평소에 공부를 해야지 시험에 닥쳐서 걱정을 하면 무슨 소용이며,
어떡하지 어떡하지 발만 동동 구르면서 그에 맞는 준비는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병은 중한데 약쑥이 없습니다. 단번에, 준비 없이는 안 되죠.
이제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바로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이입도원(移入桃源 - 무심코 하는 한마디에 그 사람이 보인다)은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 사람의 말입니다.
무심코 하는 말에 그 사람의 값과 무게가 드러나죠.
위치가 있는 사람은 더더욱 언행을 삼가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내키는 대로 말하고, 생각 없이 얘기하면 자신이 욕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속한 조직까지 망신스럽게 됩니다.
물경소사(勿輕小事 - 일의 성패가 사소한 데서 갈린다)는
작은 일을 건성으로 하면서 큰일을 촘촘히 살필 수 없습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안 샐리가 없지요.
개인의 일일 때는 문제가 없지만 나랏일이면 그 피해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작은 일을 가볍게 보지 말아야 합니다.
작은 틈이 배를 가라앉힙니다.
작은 물건을 우습게 보아서도 안 됩니다.
작은 벌레가 독을 품고 있습니다.
소인을 그저 보아 넘겨서도 안 됩니다.
소인이 나라를 해칩니다.
"그 정도는 봐줘야지, 뭐 별일이 있겠어?"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면
때가 이미 늦었습니다.
<습정>은 저마다 자기 할 말만 하기 바쁜 요즘에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어찌 돌아갈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는 지금, 침묵이 주는 힘,
고요함이 빚어내는 힘을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습정>에서 자신과의 시간을 가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