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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의 문화사 - 매너라는 형식 뒤에 숨겨진 짧고 유쾌한 역사
아리 투루넨.마르쿠스 파르타넨 지음, 이지윤 옮김 / 지식너머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2015년에 개봉해 흥행이 되었던 영화 <킹스맨>, 아시죠?
그 영화에서 나온 "Manners makes man." (포스터에 나온 영어 문구는 고대 영어랍니다.)
영화를 못 본 분은 있어도 이 대사 못 들은 사람은 없다죠.
예로부터 신사의 나라, 매너의 나라라고 일컬어지는 영국,
그래서인지 왠지 영국 사람들은 예의 바를 것 같은데요.
매너라는 게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아시나요? <매너의 문화사>에서 그 역사를 알려줍니다.

사진에 있는 독일 백과사전들은 유럽이
다섯 개의 대륙보다 더 중요하고 더 문명화된 대륙이라고 치켜세웁니다.
그러나 유럽 밖에서는 이러한 세계관이 의심의 대상이었죠.
중국 역사가 지유는 유럽인들의 시각에서 중국은 아시아에 속한다는데,
그렇다면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는 어디인지 묻습니다.
그의 눈에 유럽은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 달린 반도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지유의 주장은 상당히 논리적입니다.
누구도 유럽의 경계가 어디인지 확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유럽에 산다"라고 할 때, 과연 '우리'가 어디에 있다는 뜻인지
정확히 알 수 있을까요? 혹은
'유럽적이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정의함으로써 유럽을 정의하는 것은 아닐까요?
계몽시대 유럽의 철학자들은 유럽이 아닌 다른 지역의 사람들은
모두 야만적이고 문명화되지 못하였으며 거칠다고 주장했어요.
모든 사회가 규정하는 '인간' 개념의 의미는,
잠재적으로나 노골적으로나 자신이 속한 무리의 일원에게 한정됩니다.
인간에게 외부인은 종류가 다른 인간이자 문명화되지 못한,
때로는 거칠고 야만적이기까지 한 대상이며,
이 모든 성질은 '매너가 없다'라는 한마디로 요약합니다.
이미 중세부터 서로 다른 민족 간이나 한민족의 후손들 사이에서
그들 고유의 풍습과 '다른' 풍습을 분명하게 구별하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적절하게' 행동하고 공동체가 수용할 수 있는 예절 규칙을 따르는 일이
항상 중요하게 여겨졌지요.
하지만 같은 문화권 안에서도 사회계층에 따라 매너가 뜻하는 바가 달았어요.
유럽의 귀족 계급은 다른 계급이나 일반 농부들로부터 자신들이 돋보이기 위한 용도로
세련된 매너를 발달시켰습니다.
오늘날의 사회가 예전에 비해 더 '민주적'이라고 하지만,
17세기 선구자 역할을 했던 프랑스 왕실이
지금은 소셜미디어로 변해 매너라는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매너의 문화사>는 몸가짐과 보디랭귀지, 인사법, 식사예절, 자연 욕구와 분비물,
눈물과 웃음, 공격성, 성생활, 디지털 중세 시대로 매너의 역사를 알려줍니다.
아는 사람이 시야에 들어오면 자동으로 오른쪽 손을 들어 아는 체를 하는데,
이 습관은 원래 로마 군인들로부터입니다.
그들은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오른손을 들었죠.
악수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면서 손에 칼이나 비슷한 무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 것입니다.
악수가 인사법의 기능을 갖게 된 것은 19세기 유럽에서부터입니다.
이전까지는 오랫동안 우호관계를 확인하는 상징적 제스처로 활용됐습니다.
모자를 벗어드는 인사법은 중세 기사들의 풍습에서 비롯됐는데,
그들은 군주나 친구들 앞에서 적대적 의도가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투구를 벗어들었어요.
기사들에게 맨머리를 드러낸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다는 뜻이었습니다.
예의범절과 인사법은 위험사회에서 폭력성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책이었습니다.
이러한 규칙들은 모두가 친구 아니면 적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어느 편에 속하는지를 행동과 몸짓을 통해 정확하게 나타내야만 했지요.
중세와 근대의 일반인들은 신호가 오면 그 자리에서 용변을 해결했습니다.
변기나 보조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창문을 통해 길에다가 바로 노폐물을 버렸어요.
일반인들은 용변을 보도록 정해진 장소가 흔치 않았고 그마저도 공동으로 사용했습니다.
당시는 하수도가 없어서 유럽 도시의 거리에는 어디나 똥이 넘쳐흘렀습니다.
18세기 에든버러의 행인들은 반드시 모자를 써야 했어요.
어느 집이나 하루에 한 번은 창문을 열고 길에다 요강을 비웠기 때문입니다.
변소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사적인 공간은 아니었어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역할을 했습니다.
19세기에 하수도망이 깔리기 시작한 때부터 위생 관념이 생겨났습니다.

인터넷은 문화 간 가교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인터넷 세계의 예절 지도서인 '네티켓'은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공격적 행위들을 제어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도 처음엔 사람들을 서로 연결해주고
새로운 친구 관계를 맺는 데 기여했어요.
하지만 지금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나르시시스트들의 자화자찬과
악플러들의 장황한 험담은 중세의 통제되지 못한 행실이
가상세계에서 다시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직접 사람과 마주치고 소통하는 기회가 사라지면서
정중하게 행동하는 법과 공격적 감정을 통제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기술은 진보되었지만 매너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매너의 문화사>는 소개한 악수, 모자 외에도 더 많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매너라는 것이 동물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인지 증명하고자 시작되었으며,
귀족계급이 일반 서민과는 다르다는 것을 뽐내기 위해 견고해지고,
우리나라의 제사문화와도 맥을 같이 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일상생활에서 흔히 하는 인사법, 식사예절, 자연 욕구들이
예전엔 그 의미가 달랐다니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흥미로운 매너의 역사를 읽으며 시대마다 '통하는' 태도와 보디랭귀지가 다른 것처럼
지금도 처음 의미와 다른 매너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있었어요.
<매너의 문화사>로 이제껏 알고 있던 매너를 제대로 알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