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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 17명의 대표 인문학자가 꾸려낸 새로운 삶의 프레임
백성호 지음, 권혁재 사진 / 판미동 / 2014년 8월
평점 :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문학자 17명을 인터뷰한 책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판미동.2014). 천문학부터 철학, 심리학, 역사, 문학, 종교 그리고 기생충학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의 석학들이 말하는 행복은 무엇일까.
유학자 한형조 교수의 행복론은 식상하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하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배움으로 행복에 이른다고 한다. 심리학자인 이나미 교수는 융의 이론을 답습할 뿐이고, 미학의 진중권 교수는 자기계발서에나 나올 법한 평범한 행복론을 말한다.
이렇듯 인문학과 밀접한 학문을 하는 석학들의 행복에 대한 접근은 관성적이라 할 만큼 실망스럽다. 오히려 과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의 이야기는 주목해서 들어볼 만하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번역한 천문학자 홍승수 교수는 우주의 근원과 인간의 관계를 신비롭게 설명한다.
공부를 하다가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천문학 지식이 있습니다. 내 몸을 구성하는 물질을 원자적 수준으로 내려가서 분석해 본 겁니다. 놀랍게도 수소와 일부 헬륨만 빼고는 모두가 결국 태양이 아닌 다른 별의 내부에서 만들어졌더라구요. -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86쪽
우리는 수많은 별의 죽음에서 왔다. 별이 죽으면서 남긴 원소들과 지구 상의 생명체의 구성 성분이 똑같다는 것은 우리가 바로 별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과 우주의 합일을 주장하는 동양철학과 다르지 않다. 노교수는 행복 이전의 근원적인 질문을 한다.
뇌과학자인 김대식 교수의 인터뷰는 보다 충격적이다. 우리 눈앞에 펼쳐진 세계는 일종의 전기적 신호이다. 다시 말해 실체가 없는 것들로 본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세계의 실체나 인간의 자아가 없다는 말로 통한다. 이 또한 동양의 사상과 다르지 않다. 뇌과학자의 관점에서의 행복론을 들어보자.
나의 예측과 세상의 데이터를 일치시키려는 노력, 다시 말해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을 때 불만스러울 수도 있어요. 외부에서 주어진 불일치를 치유하는 것은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입장입니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만든 불일치는 극복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행복한 겁니다. 그 과정 자체가요. - 58쪽
철학과 심리학 등 기존 인문학 바탕의 행복론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사전적으로 인문학은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탐구하는 학문이며 자연과학과 대립되는 영역이다. 하지만 행복론과 무관한 듯한 과학의 인문학적 접근이 더 새롭고 충격적이다. 과학을 탐구하는 학자들의 인문학적 연구 참여가 보다 활발해야 인문학이 보다 풍성해지지 않을까. 최재천 교수를 비롯한 과학자들이 인문학적 글쓰기를 시도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