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느 멋진 도망 - 까미난떼, 끝인 줄 알았던 순간 다시 걷기 시작하다
나상천 지음 / 오리지널스 / 2026년 4월
평점 :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속해 있는 곳에서도 늘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고, 가정에서도 모든 것들을 결정하고 이끌어야 하는 그런 위치가 되었다. 이런 순간이 오기를 기다려왔지만, 막상 이런 위치가 되니 모든 것이 부담스럽고, 아직 마음은 세월만 지나고 나이만 먹었지, 어릴 때 가졌던 생각과 마음 그대로인데 말이다.
그래서 요즘 눈여겨 보고 있는 곳은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책 어느멋진 도망은 바로 그러한 산티아고를 향한 도상에 서 있는 4명에 대한 소설이다.
처음에는 제목 때문에 가벼운 청춘 여행 소설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집어들고 읽으면 읽을수록 그냥 여행에 대한 소설이 아니라, 무너진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인생들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모습이 생각보다 너무 현실적이라 굉장히 몰입하며 읽었다.
특히 길 위를 함께 걷게 되는 네 명의 인물들이 안고 있던 생각과 여행을 하게 된 동기가 굉장히 마음을 울렸다.
성공만 바라보며 달리다가 정작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셰프 킴스...
서른이라는 현실 앞에서 영화감독의 꿈이 흔들리는 로저...
수십 번의 낙방 속에서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는 가수 지망생 도로시...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 못 할 비밀을 안고 도망치듯 길을 떠난 대학생 준상까지.
이들은 모두 다른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이상하게 그 모습들이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통해 나를 발견했다.
읽으면서 좋았던 건 작가가 이 인물들을 억지로 멋있게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여전히 불안하고, 누군가는 쉽게 상처받고, 누군가는 자꾸 흔들린다. 그런데 그래서 더 진짜 사람냄새가 구수했다. 꿈을 이야기하지만 현실 앞에서 무너지고, 괜찮은 척하지만 속으로는 조용히 버티고 있는 모습들이 꼭 우리 주변 사람들 같았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며 오래 생각하게 된 건 “도망”이라는 단어다.
우리는 보통 도망친다고 하면 패배나 포기를 먼저 떠올린다. 그런데 소설 속 인물들은 그저 현실을 피하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잠시 멈추는 이들이었다.
책을 읽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게 필요한 건 무조건 끝까지 버티는 힘 보다는 때로는 잠시 멈춰 숨을 고를 용기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래서인지 책을 덮고 나서 괜히 창밖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바쁘게 살아오면서 나는 얼마나 내 마음을 돌아보았던가...
그리고 이들보다 과연 잘 살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아마 한동안은 이 책의 잔상이 오래 남을 것 같다.
혹시 마음이 지치거나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게 느껴질 때, 이 책을 권해 마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