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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자본,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ㅣ 주니어 클래식 11
강신준 지음 / 사계절 / 2012년 5월
평점 :
강신준 교수 강독회에 다녀왔다. “마르크스의 자본,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출판에 맞추어 열린 행사이다. 주니어 용으로 자본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진 책이라고 하나 강의를 옮겨놓은 듯한 구어체의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담고있는 내용은 결코 녹록치 않다. [자본]자체가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책인 것은 사실이라 아무리 쉽게 풀어놓는다 해도 한계가 있는 듯 하다. 다행히도 저자의 강의를 같이 들은 것이 책 내용을 따라가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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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책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저자의 집필 의도라고 한다. 강신준 교수 역시 “왜 맑스가 자본을 썼는가”를 화두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어떤 책이든, 텍스트는 당시의 시대적 사회적 상황을 담고 있다. 맑스 역시 1800년대 중반 유럽을 휩쓸었던 노동자 혁명의 발발과 처참한 실패를 목도하면서 의문을 품게 된다.
- 혁명은 왜 발발했으며 왜 실패했는가?
- 성공한 부르주아 혁명(프랑스 대혁명)과 노동자 혁명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혁명의 발발]
혁명이 일어난 것은 결국 불합리성 때문이다. 생산과 소비 사이에 교환이 끼어들어 두 가지자 분리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등가 교환의 법칙이 깨지면서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시간으로 만들어낸 가치를 온전히 돌려받지 못하고 이 잉여가치가 자본가에게 이전되면서 불일치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노동자들이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상황이 발생한다. 여기에서 강신준 교수가 가장 강조하는 것이 “교환”이다. 저자는 바로 이 교환의 개입으로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는 체제가 자본주의라고 본다. “교환”을 달리 말한다면 오늘날의 “유통업”일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 주는 3차 산업이 비대해지면서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실물경제보다 금융(돈의 교환)과 유통업(물질의 교환)이 주를 이루는 기형적인 사회가 되어 버렸다. 상행위는 중간 전달자일 쭌 실지로는 아무 것도 생산해내지 못한다.
[혁명의 실패]
그렇다면 1848년의 노동자 혁명은 이전의 부르주아 혁명과는 무엇이 달랐기에 실패한 것일까? 강신준 교수는 혁명이 성공하려면 혁명가들의 의지 뿐만이 아니라 필연적 요소가 반드시 갖추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의 “필연”은 자연법칙, 즉 과학이다. 말하자면, 혁명 당시 노동자들은 분노에 차 있었고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지도 있었지만 그 방법을 몰랐다. 그들은 왜 자신들이 일을 해도 가난한지, 어떤 속임수가 자신들을 옭아매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혁명의 실패에 낙담한 마르크스는 런던 도서관에 아예 돗자리를 깔고 그 윤리-자본주의를 움직이는 원리, 노동자들을 평생 노동자에 묶어두는 원리-를 발견해내는 데 매진한다. 그 결과로 그가 찾아낸 해답이 이것이었다. 가치(상품가격)은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생산과 소비가 교환의 개입에 의해 분리되면서 그 가치 중 일부(잉여가치)가 노동하지 않는 자본가에게 이전된다는 것, 그러므로 생산에 사회적 성격을 도입하여 생산과 소비를 일치시킴으로써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
여기서 강신준 교수가 모순을 해소할 방법으로 제시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관계의 변화라고 보는 강 교수는 자본주의에서 또다른 체제로 이행하려면 연대, 협력이 개입하여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연대는 민주주의에 의해 이루어진다. 강 교수가 굳이 혁명이 아닌 개혁을 통해서도 자본주의의 극복이 가능하다고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남는 의문점들]
그러나 맑스의 시대가 지금과 다르고 [자본]에 담긴 도식들도 이론으로 보면 그럴 듯 해도 막상 현실로 끌고오면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다.
- 오늘날 가격이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되는가?
- 생산직보다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관리직, 사무직, 서비스직 노동자들은 어떻게 가치를 생산하고 어떻게 보상받아야 하는가?
- 과거에 자본가들은 노동시간을 늘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으나 오늘날엔 오히려 노동시간을 줄이고 입금을 지급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일자리를 얻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현재의 노동시장에 맑스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노동이 배제되고 있다. 가치 창출이 노동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게 된다면 노동자들은 자신의 존재 의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사실 이 의문점 중 대부분은 내 사고방식이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에 굳어져 버려 다른 사회, 다른 생산양식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자본]은 그래서 어렵다. 기존의 사고방식을 ‘거꾸로 뒤집어 놓아야’ 비로소 그 비옥한 사유 속으로 첫 발을 내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강의를 들으며 새로웠던 점은 내 생애 최초로 정통 맑시스트를 만났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책의 두께도 그 속에 담겨진 사상도 육중하게만 느껴지는 [자본]의 완역가, 초로의 노교수를 상상한 내 예상과는 달리 이제 환갑이라는 강신준 교수는 젊었고, 밝았고, 마치 신세대처럼 생기가 돌았다. 강의 내내 이른바 신좌파, 포스트 모더니즘즘 계열의 책만 수박 겉핧기로 접해본 내게는 낯설고 시대 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필연, 과학등의 단어가 쏟아질 때마다 당혹스러우면서도 짜릿함이 느껴졌다. (이것이 ‘정통’의 힘이던가!) 강신준 교수를 정통 맑시스트라고 한 데에는 저자가 [자본]을 과학이라 칭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강의 중에 인상적이었던 말은 맑시스트들은 must(해야하는 것)가 아니라 can(할 수 있는 것)만 이야기한다는 것이었다. 시중에 떠도는 그 수많은 담론과 대안들에 저자는 유물론자로서 큰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것은 결국 당위성을 가진 학문으로서의 이야기일 뿐이고 변화의 주체는 이론가가 아닌 노동자여야 하며 그래서 대안도 노동조합을 강화해 경제적 결정권을 노동자에게 이전하는 것이고(정치적으로 투표권이 확대되어 민주주의가 이루어졌듯이) 이러한 개혁이 계속된다면 세상을 뒤엎는 혁명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사회 체제로의 이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강신준 교수는 북유럽의 사민주의를 굉장히 높이 평가했는데(물론 이 유럽국가의 탄탄한 경제가 제3세계를 착취함으로써 가능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강신준 교수의 이론이 주로 유럽사회의 발전과정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이미 이러한 사회제도는 자본부의와는 다른 체제로 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또하나 의외였던 견해는 공동체적 협동조합에 대한 것이었다. 오늘날 생태주의자들은 덜 생산하고 덜 소비하는 것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는 대안 중 하나로 제시한다. 그러나 저자는 “자본주의보다 생산력이 낮은 체제는 대안이 될 수 없다.”(변증법적 논리에 따르면 발전과정은 결코 뒤로 가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현대 사상가들에게 호되게 비판받는 변증법적 논리를 기반으로 이론을 전개해나가는 점이 신선했다. 그러나 이 견해는 역사적으로 오류로 판단된 자본주의가 최고로 발전된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가능하다는 맑스의 주장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변증법적 유물론에 충실한 강신준 교수의 견해 중 어떤 면에서는 탈 맑스적인 대안이 나오고 또 어떤 면은 정통 맑시즘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오직 주류경제학에 대한 이론만 배워 왔고 그래서 현 제체에 모순이 발생해도 다른 체제를 상상하지를 못한다. 어쩌면 아직 사고가 굳지 않은 어린 학생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성인보다 더 빨리 더 잘 이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머리에 쥐가 나는 기성세대에게도 새로운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