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 다치바나 식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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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는 다치바나 다카시가 [나는 이러한 책을 읽어 왔다(청어람 미디어, 2001)에서 밝히는 다치바나식 독서론은 독특하다. 정독하고, 통독해야 한다는 기존 통념과는 달리 그는 많이 읽고, 빨리 읽고, 대충 훓어본다. 서평을 '비평형'과 '소개형'으로 나누고 자신은 후자라고 말하는 것과 그의 독서법도 일맥상통한다. 말하자면 그에게 책이란 정보의 집합체이다. 여기서는 그 책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정보를 빨리 뽑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고전에 대한 세간의 존경어린 시선에도 부정적이다. 고전, 특히 문학작품의 경우는 현실에 더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많아 읽지 않는다고 말하고 과거의 지의 총체는 고전보다도 최신 보고서 속에 확대되고 집적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칼비노의 고전에 대한 정의 중 "고전이란 사람들로부터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실제로 그 책을 읽었을 때 더욱 독창적이고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 창의적인 것들을 발견하게 해 주는 책이다."([왜 고전을 읽는가])를 떠올려 볼 때 하나의 개념에 대해 이렇게 상이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하기까지 한다.

다치바나의 주장이 기존 통념을 뒤없는 참신한 발상이긴 하나 그의 생각을 그대로 따르기는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다치바나의 말대로 문학 작품을 사건 위주로 볼 때 그러한 사건 사고는 세상에 널려있다. [보봐리 부인]은 불륜드라마이고 [여자의 일생]은 신파로 가득한 인생극장이며 [로리타]는 아동성애자의 범죄극이다. 그러나 이 작품들이 특별한 것은 작가가 그 '특수한' 사건에서 인류의 근본적 문제들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위대한 철학과 문학은 늘 특수성에서 보편성을 이끌어 낸다. 푸코의 [감시와 처벌]은 범죄와 감옥을 소재로 한다. 이 정도는 '범죄백과'식의 르포집에서 더 잘 다룰 것이다. 그러나 푸코는 이 감시와 처벌 제도의 근원을 찾아 내려가면서 어떻게 권력이 인간을 훈육시키고 관리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은 늘 미국 남부의 한 작은 마을, 그중 한 가족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 마을과 가족에 한정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몰락한 가치체계를 붙든채 함께 매몰되어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현대사회의 인간 정신이 얼마나 피폐해졌는지를 고발한다. 과연 이러한 독서가 다치바나의 독서법으로 가능할까?

결국 독서법도 개인의 취향일 뿐, 정답은 없다. 책 전체를 아우르는 총체적인 의미를 탐구하느냐, 아니면 책을 유용한 정보를 뽑아내는 수단으로 삼느냐를 선택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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