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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평전 - 지울 수 없는 얼굴, 꿈을 남기고 간 대통령
김삼웅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자선전을 비롯한 그에 대한 수많은 책이 나왔다. 그리고 3주기를 맞아 또 한권의 책 [노무현 평전](책보세,2012)가 나왔다. 저자는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 신채호,김구,장준하,김대중,리영희등의 평전을 집필한 김상웅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대기가 각종 매체를 통해 어느정도 세상에 알려져 있는 만큼 또다른 평전이 나올 이유가 있는가 하는 반문을 제기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저자 역시 이러한 문제제기를 인식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이 평전을 집필한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는 여전히 사회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에 의해 고인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국가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까지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변방인'이었던 인간 노무현을 재조명하기 위해서이다.
노무현은 한국 현대 정치사에 있어 독특한 인물이다. 고졸 학력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해 안정된 변호사 생활을 하던 중 35세의 늦은 나이에 사회문제에 눈을 뜨고 시민운동에 뛰어들게 된 이력도 그렇지만 정계에 입문한 뒤에도 그는 늘 튀는 행동으로 주목받고 주류에 의해 배척당하던 '변방인'이었다. 정치 공학, 정치적 제스춰 등의 말이 의미하듯이 대부분의 한국 정치인들이 본심과는 다른 일정한 패턴에 맞추어 말하고 행동했던 것에 반해 노무현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늘 직설적이었고 상황에 따른 유불리를 따지지 않은 채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선택을 함으로써 모두를 당황시키고는 했다. 국회의원이었을 때도 낙선 후 정치 낭인이었을 때도 국민은 그를 사랑했고 차세대 정치인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았지만 여든 야든 기존 정치권은 학벌도 낮고 돈과 조직이 없는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노무현은 같은 당 내에서도 늘 무시당하는 비주류였고 그런 그가 민주당의 대권주자를 거쳐 대통령이 된 것은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운 드라마였다.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바람'으로 탄생한 최초의 '시민' 대통령" 바로 노무현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비극은 그 이후에 시작되었다. 저자 김상웅은 노무현 대통령의 개혁들이 안팎의 권위주의와 기득권의 반발에 의해 좌초된 데 아쉬움을 표한다. 나아가 FTA나 비정규직 확대, 이라크전 파병등의 실정에 대해서는 비판하기도 한다.
정치인은 의도가 아닌 결과로 평가받는 것이고 인간 노무현에 대한 호오가 정치인 노무현의 실책까지 덮을 수는 없는 일이다. 어쩌면 노무현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거나, 너무 빨리 대통령이 된 것이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민도 깊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었다고 믿었는데, 돌아보니 원래 있던 그대로 돌아가 있었다.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사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 다른 데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대통령은 진보를 이루는 데 적절한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것일까?" ([운명이다] P332 재인용)
참여정부의 실패와 그 이후 MB정권 집권으로 인한 민주주의 후퇴의 모든 책임을 노무현 개인에게 지우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대통령 노무현, 인간 노무현의 생애를 돌아보면 한 개인으로서의 비극이 아닌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질곡이 보인다. 한국 정치사의 심각한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도출시킨다는 점에서 노무현은 한국 사회의 '문제적 개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적 개인'이란 미학자 루카치가 원래 근대 소설의 주인공 유형을 일컫는데 사용한 용어로 '시대와의 불화'를 통해 그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 주는 인물을 말하며 그는 그 시대를 포용하여 더 좋은 전망을 열도록 애쓴다.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아직도 뜨거운 감자로 다루어지는 것은 노무현의 실패가 곧 진보의 실패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이 인정하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노무현과 참여정보는 진보진영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실상으로는 참여정부는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맹공을 당했다. 갈피를 못 잡은 것이 참여정부의 실책이라 해도 이는 또한 한국사회의 보수/진보라는 개념이 얼마나 불명확한 개념이며 현실과 동떨어진 것인지를 보여준다. 또한 진보/보수를 떠나 고졸의 노무현은 학벌 위주의 한국 사회에서 결코 주류가 될 수 없는 인물이었고그의 탈권위적인 말투와 행동은 가부장적인 권위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한국사회에서 대통령답지 않는 경박한 인물이라는 뭇매를 맞았다. "새시대의 맏형"이 되고 싶었으나 "구시대의 막내"에 불과했다는 그의 한탄대로 노무현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으로 인한 사회적 파장은 구시대(근대)와 새시대(현대)가 혼재되어 있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저자 김상웅은 노무현을 "정치적 소수파로서 우리 사회의 뒤틀린 권력구조 안에서 정치보복성 토끼몰이에 갇혀 죽을 수 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패배자"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김구, 장준하와 같은 "위대한 패배자"였다고 평가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노무현과 참여정부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함은 그의 명예회복을 위해서가 아니다. 한국사회의 모순점과 그 모순을 딛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장 잘 제시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노무현이라는 인물과 참여정부 5년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로베스피에르, 괴벨스 등의 "문제적 인간" 시리즈를 펴낸 출판사 [교양인]은 그 기획의도에서 "좋은 평전은 저자가 인물의 심리를 날카롭게 드러내 보여주면서도 객관성을 잃지 말아야 하고, 그럼으로써 독자가 인물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떤 인물도 인간이 아닌 무엇으로 비쳐서는 안된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인다. 김상웅의 [노무현 평전] 역시 "객관적인 관찰과 심리 분석을 토대로 이루어진 주관적 평가"(교양인 기획의도 인용)에 최대한 충실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고인의 비극적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 죽음을 조장한 이들에 대한 분노가 표출되어 감정적으로 흐르는 부분도 다소 있으나 저자는 '인간 노무현'의 어린 시절부터 마지막 순간까지의 심리 상태와 외부 상황에 대해 사실적으로 꼼꼼히 기술해 낸다.
'대통령 노무현'을 넘어 '인간 노무현'을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혹은 시중에 나와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저서들이 너무 단편적이거나 주관적이라고 느낀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