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990년대 구소련의 몰락과 함께 냉전 시대가 끝나면서 이제 탈이념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목소리가 세상을 뒤덮었다. 이후 이념에 대해서는 폭력적인 논쟁도 생산적인 논의도 멈춰버린 채 자취를 감추었고 자신의 역사적․사회적․정치적 사상 내지 소신을 밝히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촌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2012년, 바로 지금 한국 사회에는 난데없이 종북주의, 국가관, 사상 검증등의 이념적 단어들이 난무하며 모두의 머리 속을 들여다 보겠다는 식의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탈이념화했다던 시대에서 돌연 몇십년전 사상의 자유가 차단당하던 군사독재 시대로 회귀해버린 것 같은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단지 이례적인 일시적 반동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치열한 논쟁을 통해 미흡하게나마 사회적 합의점을 도출해냈어야 함에도 세계정세의 급변 속에 묻어버렸던 중요한 문제들이 한 시대를 돌아 다시 습격해 온 것일까?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누가 국가를 다스려야 하는가? 국가의 도덕적 이상은 무엇인가? 어떤 방법으로 그 이상에 다가설 수 있는가? 대한민국을 더 훌룡한 국가로 만들려면 국민은 각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정치를 통해 이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은 어떤 자세로 일해야 하는가?”

2011년에 출간된 이 책의 서문에 등장하는 이러한 질문들이 출간 당시보다 지금 현재 더 시의적절해 보이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마치 1년여 후에 우리의 국가관을 검증해야 할 상황이 벌어지리라는 듯이, 그리고 그것이 철지난 노래가 아닌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치러야 할 숙제라는 듯 정치 비평가이자 현실 정치인인고 지금 정치 논쟁의 한가운데 서 있는 이들 중 한 사람인 저자 유시민은 이렇게 묻고 자신의 대답을 들려준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지금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는 데 나름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저자는 “국가”에 대한 책을 내겠다고 공언해왔고 그 결과물이 이 책이다. 저자는 먼저 국가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을 세가지로 분류한다.

첫째, 합법적 폭력을 행사하여 국민의 공포심을 기반으로 성립하는 〈국가주의적 국가론〉, 둘째 국가를 공공재 공급원으로 규정하며 개인의 자유를 최우선의 가치로 두는 〈자유주의 국가론〉, 그리고 국가를 지배계급의 피지배계급에 대한 억압 수단으로 보고 계급투쟁을 통해 국가를 폐기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이다.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위력을 떨치고 있는〈국가주의적 국가론〉에 대항하여 〈자유주의 국가론〉을 대안으로 제시하나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이 담고 있는 “한 사람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사회”의 꿈도 포기하지 않는다.

이 “좌절된 인류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혁명과 개량, 두 가지가 제시되는데 이는 양자택일해야 하는 대립자라기 보다는 단계적 차이이다. 모든 점진적 개혁을 시도하고 이 개혁의 길이 봉쇄된 곳에서 사회혁명의 길이 열릴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현실적 혁명의 길이 요원해 보이는 지금 “정치 무용론”과 “정치적 냉소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셈이다.

 

“애국심은 고귀한 감정인가”라는 도발적인 질문과 정치인의 책임윤리에 대해 논하는 장은 매일같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애국가 논란〉을 왜 저자가 문제를 제기하며 공론화시키려 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애국심이 “내가 속한 국가를 사랑하는 감정인 동시에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국가를 배척하는 감정”이라 인정하면서도 저자는 일반인이 아닌 정치인은 한 개인으로서의 윤리의식뿐 아니라 “의도하지 않은 결과까지도 책임져야 하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즉 ‘국가라는 하나의 공동체에 함께 귀속되어 훌룡한 삶을 영위하고 공동의 선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라는 ’참되고 올바른 애국심‘을 주장한 르낭의 말을 인용하며 “정당과 정치인들은 국민들 속에서 이 의지를 북돋울 책무가 있다”는 구절을 보면 애국가 제창에 대한 저자의 문제제기가 돌발 발언이 아니라 ‘정치인의 책임’에 대해 오랜 세월 숙고해 온 데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저자의 가장 큰 장점은 지식인으로서의 학문적 교양과 정치인으로서의 현실 감각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유시민의 저서들은 전문적인 정치사회 비평서로서 손색없을 뿐 아니라 일반 대중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실용서로도 읽힐 수 있다.

더구나 이 〈국가란 무엇인가〉는 국가론의 여러 개념들, 사회혁명과 개량, 보수와 진보, 정치인의 자질이란 결코 녹록치 않은 주제들을 동서고금의 학자들이 남긴 다양한 견해들을 망라하며 다루면서도 읽다 보면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에 적용시킬 수 있는 부분들이 매우 많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이를테면 법치주의라는 미명 하에 공권력의 남용이 자행되고 있는 지금 저자가 한국 사회에 횡행하는 ‘법치주의’의 개념이 오독되었음을 지적하는 “법치주의는 통치받은 자가 아니라 통치자를 구속한다.…법치주의에서 일탈하는 권력은 정당성을 상실한다. 정당성을 잃은 국가권력에 대해서는 복종할 의미가 없다”와 같은 구절은 저절로 무릎을 치게 만든다.

또한 “진보는 현재 자신의 사유습성과 생활양식을 객관적으로 보고 그것과 환경의 변화 사이의 불일치나 부조화를 직시할 것을 요구한다. 생각이 막히고 닫히는 순간, 기존의 사유습성에 갇히는 순간, 그 사람은 진보와 멀어진다”며 “진보적 이념도 보수적 본능과 결합하면 경직된 교조가 된다”는 경고는 오늘날 진보주의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지적이다.

 

저명한 사회학자인 송두율 교수는 경계인으로서의 삶이 인정받지 못하고 좌/우의 어느 한 쪽만을 선택해야 하는 한국 사회의 폭력적 현실에 절망감을 표한 적이 있다. 스스로를 “진보 자유주의자”라고 말하는 저자도 진보/보수의 양 진영에서 날아오는 공격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유도 평등도 그 어떤 숭고하다고 말해지는 가치도 “절대화되어 다른 가치를 종속시키거나 무시해서는 안 되며” “어떤 하나의 가치를 절대화하여 다른 가치를 종속시키는 순간, 국가는 단일가치가 지배하는 전체주의로 흐를 수” 있고 “전체주의는 필연적으로 국가의 정의를 파괴”한다는 저자의 호소가 주는 울림은 결코 작지 않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모든 텍스트가 “경전”이 아닌 “무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만 한 불신의 시대에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세우고 모든 종류의 위험에서 시민을 보호하며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게 행동하는 국가”가 훌룡한 국가라고 믿으며 그 길을 모색하고 있는 저자의 탐색이 역시 같은 꿈을 꾸는 이들의 길을 밝히는 작은 반딧불 중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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