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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밝혀졌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엮음 / 민음사 / 2009년 3월
평점 :
조너선 샤프란 포어(이름부터가 소설가의 포스가 마구 느껴지지 않는가!)를 운좋게 만난다면 이 책에 대해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이 소설의 소재는 단순히 본다면 우크라이나에서 독일군에 의해 또한 우크라이나인들의 방조에 의해 몰살당한 유태인들의 이야기, 즉 홀로코스트이다. 그러나 조너선은 이 중심사건에 앞서 자기 가문의 신비롭고 기이한, 비극적인 역사를 풀어놓는다. 강에서 솟아오늘 5대조 브로드에서 죽은 팔을 가졌던 할아버지 샤프란의 이야기까지. 첫번째 질문은 이에 대한 것으로 왜 유대인의 비극인 홀로코스트를 이야기하는데 몇백가지 슬픔을 '발명(혹은 발견?)'하고 평생 사랑을 찾아 헤매지만 결국 실현하지 못하는 가문의 시조 브로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여기에서 포어의 다른 작품이 떠오르는데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은 911에 대한 이야기로 홀로코스트나 911이나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여 있는 섣불리 다루기 민감한 사건이다. 이슬람을 박해했던 미국이 공격의 대상이 된 911이나 최근 팔레스타인 몰살 작전을 피고 있는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는 감정적으로 본다면 "꼴좋다"라는 극단적인 발언까지 나올 수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를 올바르게 다루려면 특정한 국가나 민족의 사건으로 특수화, 개별화시키기보다는 전인류 차원에서 일박적이고 원칙적인 시선으로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포어가 자기 민족의 비극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한 집안의 사적인 가계도를 끌어들인 것은 오히려 이러한 의도가 아닐까. 같은 유대인이면서도 마을에서 차별받고 버림받았던 브로드 일가의 비극적인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홀로코스트는 도리어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일반화된다. 조너선의 할아버지를 구해줬다는 어거스틴은 끝내 미지의 존재로 남고 도리어 동료 유태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알렉스의 할아버지의 진실이 밝혀지며 소설이 끝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포어는 '쉰들러'같은 인도적이나 안이한 해결책으로 비극을 거짓 위로하기를 원치 않는다. 결국 모든 이들은 "나쁜 시대에 태어난 좋은 사람"인 가해자이며 피해자이다. 우리 모두는 홀로코스트에서도, 이라크전에서도, 911에서도, 팔레스타인의 참극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알렉스의 할아버지는 "나쁜 사람은 자기가 한 짓을 후회하지 않는 이"라며 자기의 죄를 괴로워하면서도 변명하려 한다. 우리는 그에 비해 양심에 충실한가?
두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포어, 당신은 왜 이렇게 늘 책을 어렵게 쓰나요? 설마 쉽게 쓰는 방법을 모르는 건 아니겠죠?" 소설은 조너선과 알렉스라는 두 명의 화자에 의해 세가지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는 식으로 진행된다. 알렉스가 화자로 나오는 대장정, 조너선의 가문의 역사, 그리고 알렉스가 조너선에게 보내는 편지인 세 부분인데 일견 복잡하면서도 서로 다른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긴장감이 고조시켰다가 이완시키며 속도감이 붙는다. 그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성격의 화자가 다른 분위기의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데 독자를 능수능란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포어는 작가들 중에서도 굳이 분류하자면 대단한 이야기꾼임이 분명하다. 알렉스는 "책은 조너선이 더 많이 쓰겠지만 진정한 작가는 자신"이라고 장담하는데 포어는 이 책이 단순히 소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학과 작가에 대한 근본적인 틀에 대해서까지 언급하고자 하는 듯 하다. 자신의 소설이 문학작품을 넘어선 메타문학이길 원하는 작가의 야심일까?
무거운 주제와 복잡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마법처럼 한 번 손에 닿으면 쉽게 놓을 수가 없다. 지하철에서 읽다 보면 내려야 할 역을 마구 지나치는 불상사를 누구처럼 겪을 수도 있으니 주의하라고 당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