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의 인문학 서재 - 곁다리 인문학자 로쟈의 저공비행
이현우 지음 / 산책자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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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직히 "로쟈"에 대해 잘 모른다. 유명한 그의 블로그에도 들어가 본 적이 없고 알라딘에 실린 그의 서평을 많이 참고하는 것이 고작이다. 내가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물론 그의 글이 논리정연하고 신뢰가 가는 글이기도 했지만 러시아 문화에 대한 나의 막연한 호감에 그의 "러시아론"이 많은 이론적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척박한 환경과 잔혹한 짜르 체제에서 "바보 이반"으로 대표되는 굴욕적인 인내를 힘으로 삶을 이어가는 러시아 민중들에 대한 이야기에 상당히 감동받기도 했었다. (사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니진스키다. 니진스키에 대한 사유나 자료가 거의 전무하다시피한 현실에서 니진스키의 일기를 중요한 텍스트로 다루는 로쟈의 글에 내가 왜 눈물나게 고마왔는지!) 그럼에도 인터넷을 잘 하지않는 내 생활습관 때문에 온라인에 그의 글을 탐독한다는 것이 어려웠는데 활자로 된 책으로 나온 것이 반갑기 그지없다. '곁다리 인문학자의 저공비행'이라고 겸손한 부제를 붙여봤자 로쟈에 대해 아는 이들은 그의 글이 습자지같은 지식을 가진 독자에게는 고공비행을 넘어 곡예비행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예상했지만 결과는 생각보다 참담하다. 철학은 그렇다 쳐도 문학이나 영화는 조심스레 기대를 갖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고난 느낌은 OTL. 내 공부가 부족한 탓이니 누굴 탓하겠는가. 


"우리가 거부해야 하는것은 테러리즘 자체를 일종의 초월적 선험성으로 고양시키는 논리다. 그것은 테러리즘의 거부를 초월적 선험성으로 고양시키는 논리가 위선적인 만큼이나 저열한 논리다."
철학관련 부부은 이미 지젝, 데리다, 니체, 벤야민이라는 누가 더 난해할지 둘째가라면 서러울 철학가들의 이름 앞에 옷깃을 여미고 다소곳이 패스. 그래도 대중적이면서 난해한, 옆에 있어도 다가가기 힘든 지젝의 최근의 국지전(이라크, 팔레스타인등)에 대한 일갈을 들은 것으로 보람을 느낀다.

"러시아에는 얼마만큼의 자유가 필요한가"
이 책에서 어찌보면 가장 도발적이고 가장 생각하게 하는 장이다.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우경화가 일어나고 있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 앞에 과연 우리가 자유를 욕망하고 있는가, 욕망한다면 어떤 종류의 자유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다 보면 끝없는 비관론에 어쩔 수 없이 빠지게 된다. 콘찰로프스키라는 러시아 영화감독의 인터뷰에 대한 글인데 콘찰로프스키는 러시아 대중이 원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안전이라고 일갈한다. 춥고 배고픔의 극한이었던 '나로드'의 역사에 자유는 빵 한조각보다 못한 사치였을 것이다. "브나로드 운동"의 참담한 실패도 이를 이해하지 못했던 운동가들의 순진성에서 비롯된 비극이었다. 그리고 자본주의형 인간은 끊임없이 배가 고프다. 자본주의가 생산하는 것은 풍요가 아닌 결핍이다. 그럼으로써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획일적인 물질적 생산에만 집착하게 만든다. 결국 인간성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인류는 아직도 라이히가 던진 "왜 인간은 억압을 욕망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가끔 보면 책에 대한 탐욕을 버리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무리 먹어도 허기를 느끼는 저주를 받아 자기 자신까지 먹어버린 사내처럼 책을 먹어치운다. 내가 보기에 로쟈도 그들 중 하나다. 더구나 로쟈는 먹어치운 책을 소화시켜 또다른 텍스트를 생산함으로써 역시 책에 굶주린 이들을 유인한다. 유명세를 탄 로쟈의 블로그는 책에 환장한 이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행복에 젖어있는 거미줄같다. 로쟈의 비행을 결국 따라가지 못해 맑은 창공에서 수중낙하해 버렸지만 그래도 나역시 행복하다. 바램이 있다면 다음에는 블로그에 실린 글들의 모음집이 아닌 하나의 주제를 일관성을 가지고 더 깊이있게 다룬 책들도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블로그를 통해서도 독자들을 접할 수 있지만 그래도 굳이 책장을 채우고 흐뭇해하는 책벌레들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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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 피렌체편 - 김태권의 미술지식만화
김태권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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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를 좋아하는데다 '십자군 이야기'를 그려 충격과 감동을 안겨준 김태권 작가의 신작이라니 굿~ 한장한장 넘어가는 것을 아까워하며 읽었다. 요즘 미술계에 붐이 일면서 온갖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역시 미술사도 작가의 관점에 따라 선택해야 후회가 없다. 김태권 작가의 경우 역사, 철학, 경제등 두루두루 참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고 감탄하게 되는데 이제 예술 쪽으로도 진출한 듯. 어느 예술을 다루든 마찬가지겠지만 작품 소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당시 역사와 사회도 함께 다루며 이야기하듯 풀어나가는 솜씨가 장난이 아니다. 학교 교재로 이런걸 쓴다면 공부할 맛 날텐데 캬~ 신준형 교수의 추천사에서 '지식만화'라는 말을 쓰던데 이런 작품이 많이 좀 나왔으면 좋겠다. 나같은 일자무식도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개인적으로는 다비드상 얼굴보고 놀랐음. 솔직히 늘 사진으로는 전체적인 실루엣밖에 못 봐서 저런 얼굴일지는 상상도 못 했다. 피에타도 참 좋아하는 작품이었는데 미켈안젤로 급 호감.. 다음편엔 라파엘로가 등장할 것 같던데 급 기대된다. 블라디미르의 성모도 좋아하는 그림인데 작가님 러시아 미술사를 다뤄볼 생각은 혹 없으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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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밝혀졌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엮음 / 민음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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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샤프란 포어(이름부터가 소설가의 포스가 마구 느껴지지 않는가!)를 운좋게 만난다면 이 책에 대해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이 소설의 소재는 단순히 본다면 우크라이나에서 독일군에 의해 또한 우크라이나인들의 방조에 의해 몰살당한 유태인들의 이야기, 즉 홀로코스트이다. 그러나 조너선은 이 중심사건에 앞서 자기 가문의 신비롭고 기이한, 비극적인 역사를 풀어놓는다. 강에서 솟아오늘 5대조 브로드에서 죽은 팔을 가졌던 할아버지 샤프란의 이야기까지. 첫번째 질문은 이에 대한 것으로 왜 유대인의 비극인 홀로코스트를 이야기하는데 몇백가지 슬픔을 '발명(혹은 발견?)'하고 평생 사랑을 찾아 헤매지만 결국 실현하지 못하는 가문의 시조 브로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여기에서 포어의 다른 작품이 떠오르는데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은 911에 대한 이야기로 홀로코스트나 911이나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여 있는 섣불리 다루기 민감한 사건이다. 이슬람을 박해했던 미국이 공격의 대상이 된 911이나 최근 팔레스타인 몰살 작전을 피고 있는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는 감정적으로 본다면 "꼴좋다"라는 극단적인 발언까지 나올 수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를 올바르게 다루려면 특정한 국가나 민족의 사건으로 특수화, 개별화시키기보다는 전인류 차원에서 일박적이고 원칙적인 시선으로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포어가 자기 민족의 비극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한 집안의 사적인 가계도를 끌어들인 것은 오히려 이러한 의도가 아닐까. 같은 유대인이면서도 마을에서 차별받고 버림받았던 브로드 일가의 비극적인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홀로코스트는 도리어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일반화된다. 조너선의 할아버지를 구해줬다는 어거스틴은 끝내 미지의 존재로 남고 도리어 동료 유태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알렉스의 할아버지의 진실이 밝혀지며 소설이 끝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포어는 '쉰들러'같은 인도적이나 안이한 해결책으로 비극을 거짓 위로하기를 원치 않는다. 결국 모든 이들은 "나쁜 시대에 태어난 좋은 사람"인 가해자이며 피해자이다. 우리 모두는 홀로코스트에서도, 이라크전에서도, 911에서도, 팔레스타인의 참극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알렉스의 할아버지는 "나쁜 사람은 자기가 한 짓을 후회하지 않는 이"라며 자기의 죄를 괴로워하면서도 변명하려 한다. 우리는 그에 비해 양심에 충실한가? 

두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포어, 당신은 왜 이렇게 늘 책을 어렵게 쓰나요? 설마 쉽게 쓰는 방법을 모르는 건 아니겠죠?" 소설은 조너선과 알렉스라는 두 명의 화자에 의해 세가지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는 식으로 진행된다. 알렉스가 화자로 나오는 대장정, 조너선의 가문의 역사, 그리고 알렉스가 조너선에게 보내는 편지인 세 부분인데 일견 복잡하면서도 서로 다른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긴장감이 고조시켰다가 이완시키며 속도감이 붙는다. 그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성격의 화자가 다른 분위기의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데 독자를 능수능란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포어는 작가들 중에서도 굳이 분류하자면 대단한 이야기꾼임이 분명하다. 알렉스는 "책은 조너선이 더 많이 쓰겠지만 진정한 작가는 자신"이라고 장담하는데 포어는 이 책이 단순히 소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학과 작가에 대한 근본적인 틀에 대해서까지 언급하고자 하는 듯 하다. 자신의 소설이 문학작품을 넘어선 메타문학이길 원하는 작가의 야심일까? 

무거운 주제와 복잡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마법처럼 한 번 손에 닿으면 쉽게 놓을 수가 없다. 지하철에서 읽다 보면 내려야 할 역을 마구 지나치는 불상사를 누구처럼 겪을 수도 있으니 주의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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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이스마엘 베아 지음, 송은주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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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보았던 영화 중 “come and see"라는 전쟁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전쟁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데다 반쯤 졸면서 본 영화인지라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군인들이 사람들을 작은 성당 안에 가두고 불을 붙이며 웃던 장면은 좀처럼 잊혀지지가 않는다. 불타는 성당 안에서 자신의 아이를 밖으로 던지던 어머니, 군인들에게 짓밟히고 짐승처럼 울부짖던 소녀.. 영화속 장면에 불과함에도 몸에 달라붙은 벌레처럼 좀처럼 잊혀지지 않던 그 참혹한 일들이 실제 내게, 그리고 내 가족에게 일어난다면 그때의 나는 어떻게 될까? 그것을 넘어서서 내가 실제로 그런 일을 행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의 나도 내 주변 사람들도 과연 인간으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

“집으로 가는 길”은 바로 그 전쟁의 참혹함을 최전선에서 겪어야 했던 한 소년의 이야기이다. 전쟁 중 가장 잔혹하다는 내전에 휩쓸려 들어갔을 때 소년의 나이는 겨우 12살. 그는 그 나이에 가족과 친구들의 죽음을 보고 자신 역시 죽음의 문턱을 들락거렸으며 심지어는 소년병이 되어 총을 쥐고 학살의 가해자가 된다.

전쟁의 가장 끔찍한 일은 죽음이 사소해진다는 것일 것이다. 전쟁의 위협에서 안전지대에 있는 우리는 게임속에서 대량 학살을 자행하고 즐거워하며 걸프전과 이라크전 등의 전쟁을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관람하지만 어딘가에서 그것은 환상이 아닌 현실이다.

처음에는 우리를 경악케 했던 중동이나 아프리카 내전 지역의 소년병의 이야기에도 이제는 무감각해진 우리에게 이 책의 주인공인 이스마엘은 담담하게 자신의 잔혹했던 경험담을 들려준다. 너무나 어린 나이에 그는 알아버린 것이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그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주문처럼 들려주었듯이 그 모든 일이 그의 잘못이 아님을. 이 전쟁은 전쟁의 참혹함을 외면하는 모든 이들에게 책임이 있음을. 이스마엘의 이야기는 그저 먼 세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6.25라는 끔찍한 내전을 겪고 아직까지 그 휴유증에 시달리면서도 또다시 다른 나라에 군인을 파병해 국익이라는 이름 하에 전쟁을 지속시키고 있는 우리 모두가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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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그리고 지울 수 없는 사랑 - 숨어있는 세계명작 8
알랭 푸르니에 지음, 김진욱 옮김 / 생각하는백성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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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ㄷㄷㄷㄷㄷ 더 멋진 제목으로 짓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그대로 번역이나 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이책이 정말 "대장 몬느" 맞습니까? 어찌 저렇게 제목이니 표지니 촌스러울 수가.. 정체모를 책으로 탈바꿈시켜 주셔서 정말 감사. 한국땅에서 고전을 읽기란 한양에서 김서방 찾기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감합니다. 솔직히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제목의 압박에 분노를 이기지 못해 몇자 씁니다. 제목은 출판사의 횡포고 번역 자체는 훌륭하기만을 바랍니다.

책 자체는 좋습니다. 알랭 푸르니에가 이 책 한권 쓰고 27세에 요절한 걸로 아는데 냉정하게 말해서 그 점이 더 이 책의 가치를 높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름다우면서도 씁쓸하고 한마디로 기묘한 책입니다. 저도 처음 읽을 때는 별생각 없었는데 이상하게 계속 찾게 되네요. 어떻게 생각하면 "꿈은 꿈으로 남아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울러 책의 제목도 원제 그대로 둘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출판사의 센스없고 개념없는 만행이 책과 독자의 만남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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