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클립 한주한책 서평단
책으로여는길입니다"
아주 오래 전 유시민 작가의 <경제학 까페>라는 책을 읽은 것이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기억인데 그 책 역시 내용보다는 그렇게
복잡하고 딱딱한 경제이론을 부드럽고 유려하게 써내려간 저자의 필력에 감탄했던 것과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의 원리가 다른 톱니바퀴로 돌아가고
있었음에 놀란 정도였다.
그후에도 경제에 대한 무관심은 여전했는데 최근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경제에 대한 접근이 필요해졌었고, 즐겨듣는 팟캐스트에서 자본,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본으로 돌아가는 세상 이면의 원리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가장 진입장벽이 낮아 보이는 이 책
[알약으로 텔레비전을 만드는
경제학]을 읽게 되었다.

제목부터 독특하다. 알약으로 텔리비전을 만든다니.
무엇보다 어렵고 딱딱한 경제라는 내용을 스토리 형식으로 구성했다는 것이 이 책을 선택한 가장 큰 요소였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읽으면서
괴로우면 읽고나서도 남는 것이 크게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미국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탄탄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하튼 아주 오랜 만에 도전한 경제학 책을 읽으며 적어도 세상 돌아가는 구조에 대한 아주 작은 상식이라도 생겼으면 하는 바람으로 책을
폈다.

시작은 아주 흥미로웠다. 이 책은 등장인물이 2명 등장한다.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라는 영국의 경제학자가 이 책을 이끌어 나가는 주도적인 인물이다. 화자는 19세기 영국의
경제학자로서 각 나라들은 자원에 따라 특화되는 산업이 다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유리한 산업에 집중하고, 다른 국가와 무역을 하는 것이 양국
모두에게 유리하다는 이론인 '비교우위론'을 주장했다.
그는 1960년 7월 13일 천국 재판에서 미국이 미국 경제를 파괴할 수도 있는 보호주의 정책을 수립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 딱 하루
지상으로 내려가 도울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요청한다.

겨우 허락을 받고 찾아간 사람이 이 책의 또 한 명의 주인공 '에드 존슨(Ed
Johnson)'이다.
가상의 인물인 에드는 역시 가상의 도시인 스타 시에서 스텔라 텔레비전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이제 막 미국에 몰려오기 시작한 일제
텔레비전때문에 임금을 삭감하고 직원들을 해고해야 할 위기에 처해있다. 점점 일제 텔레비전에 잠식당하면 일자리와 임금을 유지할 수 없게 되고
회사가 문을 닫게 되면 부품을 납품하는 계열사들도 줄줄이 도산하면서 지금의 스타 시의 번영도 장담할 수 없음을 우려한 그는 지역 국회의원 프랭크
베이츠를 찾아가 일제 텔레비전 수입을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해 달라는 요청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민감한 사안이라 주저하지만 결국 프랭크 의원은 외국산 텔리비전 수입을 금지하는 무역 법안을 발의해 통과시킨다. 그는 더 나아가
당의 대통령 후보 선거에 나서며 모든 외국 생산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수입 규제로 확산시킬 것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운다.
그는 지지 연설을 요청하여 에드는 많은 곳을 다니며 보호무역주의를 옹호하게 된다. 당의 후보 지명을 받을 확률이 50%로 높아지자 프랭크
의원은 에드에게 전당대회 지명추천연설을 해줄 것을 부탁하게 되고 에드는 이를 수락한다. 로스앤젤레스의 전당대회장으로 떠나기 전날 밤, 데이비드는
그의 집으로 찾아 간다.
에드는 보호무역을 지지하는 전당대회 추천연설을 막기 위해 내려왔지만 그럼에도 '선택'은 에드가 할 수 있도록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결과를
차근차근 비교 설명해준다. 그렇다고 해도 수학공식처럼 반듯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데이비드는 마치 '크리스마스의 캐롤'의 유령처럼
미국이 외국과 자유로이 무역을 하고 있는 2005년의 미래로 에드를 데려간다.
자유무역을 유지했을 때 스타 시의 모습, 그리고 아이들의 직업과 생활 등을 보여준다. 반면 보호무역이 실행되었을 때의 미국의 경제 상황과
스타 시의 모습, 마찬 가지로 미래의 아이들의 직업과 생활을 비교해준다.
그 과정에서 미국이 왜 텔레비전을 생산하는 것보다 알약을 생산하는 것이 경제에 도움이 되는지 원리를 상세하게 설명을 해준다. 둘은 끊임없이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의미와 결과, 영향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주로 에드가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답을 데이비드가 해주는 형식이다. 저자는
실제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이 질문을 했던 내용들을 추려서 에드에게 질문하도록 구성했다고 한다.

"자기가 먹을 옥수수를 직접
키우는 일은 아주 싸게 먹히는 것처럼 보이지. 그저 씨앗만 사면 될 테니까. 하지만 실제로 옥수수를 직접 키우려면 놀라울 정도로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네. 잡초를 뽑고, 물을 주고, 비료를 주는 데 시간이 들기 때문이지. 그 시간은 공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이 비싸다네. 다른
활동을 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옥수수를 살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 것이니까. 혹은 그 시간에 여가를 즐길 기회를 잃은 것일 수도 있지. 자네
가정을 하나의 국가라고 생각하면, 자네는 옥수수를 수입하는 거네. 자네는 미국이 우회적으로 텔레비전을 생산하듯 옥수수를 생산하는 거야. ---p.47"
그렇다면
일본도 우리와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이겠군요. 그들도 직접 약품을 만들기보다는 텔레비전을 만들고 그것을 약과 교환하는 방법으로 더욱더 부유해지고
있네요.
바로 그거야. 다른 나라와 교역한다는 개념은 자기 나라 사람들과 교역한다는 개념과 같네.
이는 사람들이 가진 기술을 함께 사용하게 만드는 방법이야. 무역은 경쟁처럼 보여. 하지만 이 방법은 정말이지 협력의 형식을 띠고 있다네. 일본은
미국인들을 위해 텔레비전을 만들고, 미국인들은 답례로 일본인들을 위해 약을 만드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무역을 통해, 자신이 직접 모든
것을 다 하려고 시도한다면 결코 해내지 못할 방식으로 각자의 기술을 이용할 수 있어. 무역은 사람들의 부족한 기술과 시간에서 최대한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방법이야. 물론 거래 당사자 양측 모두에게 해당하는 얘기지."
--- p34
에드의 의문은 자연스럽게 텔레비전 생산 중단을 함으로써 잃게 되는 직원들의 일자리에 대한 염려로 이어진다. 데이비드는 일자리의 종류가
달라지는 것과 일자리의 수가 줄어드는 것과의 구별을 통해서 다른 일자리로 대체됨을 보여준다. 실제로 실직한 직원들은 다른 기술을 배워서 다른
직종으로 옮겨가기도 하고 동종업계에 재취업을 하기도 하면서 길지 않은 시간 안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이는 저자의 상상이 아니라 실제 이 책의
모델이 된 회사의 자료를 토대로 구성했기때문에 신뢰를 할 수 있다.
한편 보호무역으로 인해 앞으로 생길 수 있었으나 무산된 일자리를 보여주며 대조한다. 다름 아닌 에드의 자녀들을 통해서. 실직한 직원들은
반발이라도 할 수 있지만 에드 자녀처럼 보호무역 때문에 미래에 생길 수도 있었으나 아예 생기지도 못한 일자리에 종사하게 될 사람들은 반발은
고사하고 자신이 피해자인지조차도 모르는 것이다.

"빌 게이츠는
자유무역이 시행되는 세상에서는 억만장자가 되었을 사람이야. 하지만 자유무역이 시행되지 않은 세상에서 그는 자동차나 만지작거리면서 소박하게 살고
있네.
-중략-
하지만 진짜 심각한 것은 미국이 입은 손실이네. 자네는 한 사람의 수입이
줄어든 것만 보고 있지. 진정한 손실은 그가 변화시키는 데 기여한 사업, 즉 컴퓨터 소프트웨어 산업과 그가 시장에 내놓은 상품들일세. 그
상품들은 그를 부자로 만든 동시에 다른 수백만 명의 삶도 풍요롭게 만들었다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를 세웠지. 자유무역이
이루어졌다면, 그 회사 상품들은 미국 전역과 전 세계에서 사용되었을 거네." --- p.245~246

데이비드는 관세와 쿼터제의 비교, 미국의 무역적자와 자본 흑자, 공정무역과 자유무역 그리고,
세계화 등 무역을 통해 이익을 얻고자 하는 정치의 세력들에 의해서 왜곡된 무역의 현주소를 속속들이 보여준다.
"하지만 데이브, 만약 미국이 수입 금지로 그렇게 가난해진다면, 왜 사람들은 외국 상품
수입을 금지하는 법을 없애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자신들이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나요?
아니, 물론 알고 있지만, 겁을 먹은 거라네. 사람들은 보호무역주의 때문에 가난해졌다고
하지는 않아. 경제학자들이 미국을 세계에 다시 개방하자고 제안하면, 사람들은 자기들 일자리를 걱정하지. 외국인들에게 경쟁을 허용하면, 그들이
이미 갖고 있는 일자리는 무엇으로 대체되겠나? 자네가 루이지애나 주의 석유산업에서 일하는 기술자거나 혹은 매사추세츠 주에서 손목시계를 만들거나
캐롤라이나주의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면 어떻게 투표하겠나? 쿼터제를 없애면 자네 일자리가
없어진다는데.
하지만 그 일자리들 대신 다른 일자리가 생길 거라고
하셨잖아요.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네. 그들은 구세계가 신세계로 바뀌는 것을 두려워할 뿐 아니라 컴퓨터 칩, 휴대용 컴퓨터, 앞으로 발견될 질병 퇴치용 약품도
상상하지 못하네. 상상하려고 해도 그런 산업은 존재하지도 않지. 사람들은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지키는 데 만족한다네."
---p.260~261
이제 에드는 선택을 해야 한다. 보호무역을 옹호할 것인지, 자유무역을 선택할 것인지. 데이비드는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여행이
에드의 선택에 도움이 되길 바랄 뿐. 지상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사라진다. 에드는 깊은 고민 후에 연설장으로 입장해 연설을 시작한다.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고, 반복적으로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지만 그럼에도 흐름과 반론에 대한 다른 반론까지 이해하면서 쫓아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스토리 속에서 배경 설명을 풀어내는 방식이기에 그나마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책을 읽고 나니 트럼프의 당선과 더불어 계속 오르내리는 보호무역 선포가 왜 심각한지 선명해진다. 에드가 갔던 정지되고 우울한 나라로 가고
있는 미국의 모습도. 적어도 왜 그것이 좌충수인지 알게 된 것이 이 책을 읽은 가장 큰 보람 중에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