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음악...최근에 주로 읽고 있는 책의 주제다.
학교를 졸업한 후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어느 순간 점수화 되지 않는 자유로운 상황에서
본능적인 감각으로 새롭게 느껴보고 싶어졌다.
이렇게 강제적인 부담을 떨쳐낸 상태에서 만난
음악과 미술은 훨씬 재미있고 새로운 맛이 느껴진다.
물론 제대로 된 깊이있는 감상은 어렵지만
그럼에도 원시시대부터 DNA를 타고 내려온
가장 원초적인 분야인만큼
그 감각을 열어놓고 자극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그럼에도 좀더 알고 접근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관련 책을 찾아 읽곤 한다.

[서양 미술
다시 읽기]도 그런 의미로 읽고 싶었던 책이다.
이전까지는 주로 주제나 이슈별로 읽었었는데
기초부터 한 번 정리해보는 것도 흐름을 파악하고
제대로 된 감상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어쨌든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재미와 감동도 클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르네상스부터 상징주의까지
사조별로 핵심적인 시대를 정리해줌으로써
역사적인 배경은 물론
그림이 품고 있는 말못할 이야기들까지 전달해주고 있다.
학창시절 그렇게 달달 외워도 머리 속에 남질 않았던
바로크, 로코코, 낭만주의가
그림을 따라가다 보면 쉽게 이해가 되고 정리가 된다.
왜 그런 사조가 나오게 되었고
그림에는 어떻게 적용되어 표현되었고
어떻게 다른 사조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그 화가들은 또 어떻게 새로운 방식으로 재창출을 하였는지.
역사의 줄기 속에 미술이라는 장르의 흐름이
죽 이어지면서 한 눈에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어떤 내용을 그렸느냐 보다는
어떻게 표현했는지에 대한 조형적인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기능적인 부분의 이해가
더 명확하게 다가오고 해석이 명쾌해진다.
이 책은 저자가 이 주제에 매력을 느껴서 공부한 후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엮은 것이라고 한다.
처음 책에 대한 소개를 봤을 때는
대학에서 강의했던 내용이라 어렵고 딱딱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입문자들을 대상으로 미술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쓴 만큼 기초 지식이 없는 독자라도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서양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 중요한 게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때, 작품 속에서 그 의미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작품의 내용과 그 특징을 작품의 시각적인 요소들을 통해서 접근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림의 주제는 어떤 요소를 통해서, 어떤 방법으로, 왜 그렇게 적용되고, 또 작용되고 있는지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렇게 작품의 내용과
형식과의 밀접한 관계에 뿌리를 두는 것이 이 책의 주요 성격이다.
-중략-
이 책은 우선 작품의 주제를 알아보고 그 주제를 조형적 특징을 통해서
살펴본다. 주제를 이해하고 작품을 이해하면서 자연스럽게 미술의 시대적 흐름을 이해하게 된다. 조형 예술학을 전공하면서 나의 관심은 '잘
그렸는가'에서 '어떻게 표현했는가'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시각적인 면에서 내용적인 면으로 옮겨진 것이다." ---p.4~6 <머리말
中>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해설의 명쾌함이었다.
예술 작품의 해석은 주관적인 부분이 크지만
여기서 다루는 작품들은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작품들이기에
저자의 개인적인 감성적 소견은 최대한 배제하고
주로 작가의 텍스트나 작품 연구 등의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썼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과 조형에 대한 해석이 깔끔하고 명료하다.
저자의 설명을 들으며 차근차근 접근한 작품들은
처음 전체를 접했을 때와는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배경을 인식하고 접근한 작품에서는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고
더 풍부한 느낌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작품의 구석구석에 있는 요소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며 움직이고 있는 것같이 느껴진다.


역사 속에서 잠시 스쳐 지나갔던 로코코 양식.
로코코 스타일의 대표 작가인 장 오노레 프라코나르는
이미 그것을 예견하고 있었으며
<그네>라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그 불안정함을 녹여내고 있었다.
저자는 그림 속 요소들을 조목조목 분석하면서 그 근거를 제시하고
이를 통해서 화가가 추구했던 양식과 사조의 특성을 풀어낸다.
"파스텔톤의 장미색 로코코 드레스을 입고 모자를 쓴 여인은 풍경에 스며드는
부드러운 태양빛으로 환하게 표현된다. 그네를 타고 밀려 올라가면서 여인의 신발은 날아가고 다리는 앞으로 들린다. 이렇게 해서 아래 위치한 애인이
기다리던 광경이 연출된다.
-중략-
여기서 펼쳐지는 것은 벌써 절정을 상징한다. 그네는 절정에 다달았고 이제
곧 뒷쪽 어둠에 서 있는 나이든 남자가 당기는 힘에 의해서 그네는 다시 돌아갈 것이다. 남자의 당기는 힘이 아니어도 그네는 다시 떨어질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금은 잠시 동안의
에로틱한 황홀, 로코코처럼 불안정하고 달콤한 황홀 같은 것이다. 덤불 위의 애인이 느끼는 황홀감이 로코코의 시각적 효과라면 그네 뒤에서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나이든 남자의 느낌은 달콤하지만 불안정한 황홀감이 감추고 있는 로코코의 상징적 의미라고 할 수 있다.
---p.113 <3장. 고전주의에서의 해방 '로코코 미술'
中>

이성 중심의 지나치게 엄격했던 신고전주의를 뒤로하고
내면의 감정과 느낌을 중요시한 낭만파가 등장한다.
이들은 세상을 자기 느낌대로 여과해
주관적인 시각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특히 프랑스 낭만주의는 사회적 위기 상황이나
개개인에 대한 충격에서 생겨났다.
1816년 정원을 초과해 항해하던 메두사호의 좌초로
140명의 사망자를 낸 사고를 담은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은
프랑스 낭만주의를 잘 표현한 작품이다.
"제리코의 연출은 강렬하고 격정적이다. 일반적으로 대부분 누드인 신체는
조각의 효과를 내며 모두가 영웅처럼 근육질이다. 강렬한 연출과 격한 감정은 제리코의 롤모델인 미켈란젤로를 연상케하는 회화적인 공간 구성이나
인물의 조형성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뗏목이 가지는 상징적 특징에 의해서 완성된다.
-중략-
그림 왼쪽에 모든 것을 단념한듯 오른손으로는 자기 머리를 괸 채 왼손은
동료의 시체를 붙잡고 주저앉아 있는 사람은 이 모든 게 허망하고 부질없는 일이라는 표정이다. 구조선을 만난다 해도 구조되지 못할 수많은 죽은
동료의 희생을 무엇으로 정당화할 수 있겠는가? 전경에서 유일하게 얼굴을 제대로 드러내는 이 남자의 공허감이 스산하게 화면 전체를 장악한다.
죽음에 이르는 사람들의 창백한 살색은 바다의 음산한 색조와 놀라운 대비를
이루면서 그림에 드라마틱한 움직임을 부여한다.
이런 관계는 그림에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준다. 이때부터 그림은
사람의 감성을 중요시하기 시작한다. 절망, 아픔, 기쁨, 쾌락 등 인간의 감정이 그림에 반영되고 프랑스 미술이 지성보다 감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되는 것도 이때부터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제리코는 구성에서 강한 감정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감상자는
끔찍한 사건의 증인이면서 참여자다. 제리코의 메시지는 파괴적이다. 사람의 품위 따위는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사건은 인간의 모든 능력을
삼켜버렸다. 이를 위해서 예술은 모든 것을 희생했다.
---p.158~159 <5장. 감정과 느낌의 중요성 '낭만주의'
中>
이 책의 또다른 장점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원화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선명한 인쇄이다.
종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한
깨끗하고 선명한 인쇄는 작품 하나하나의 몰입도를 높여주고 있다.
시대 특성상 어두운 그림이 많음에도 뭉개지지 않고
어둠 속의 피사체들을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게 인쇄되어 있어 충분히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충분한 감상을 배려한 시원시원한 편집과
부분적인 요소들의 설명이 많은 책의 특성상
확대를 하거나 비교해주는 부분도를 많이 삽입해줌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는 것도
이 책의 돋보이는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풍부한 자료 역시 이 책의 두드러진 장점이다.
텍스트에만 그치지 않고 가능하면
많은 시각적 자료를 제시해줌으로써
신뢰는 물론이고 생생함까지 전달해주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흥미롭고 생동감 있는 강의 준비가
책으로까지 이어진 것 같다.


예를 들어, 화가가 영감을 얻은 작품을 비교해서 보여줌으로써
표현 양식이나 조형, 구조를 더욱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바로크주의 화가 루벤스의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가 대표적이다.
"마름모 형태의 구도는 일시적이며 불안정한 균형을 보여준다. 모서리 중
하나로 균형을 잡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동작은 쉽게 깨질 수 있는 사각형을 형성한다. 이는 바로 무너지려는 느낌을 강조하면서 신체를 일시적인
동작 안에 가둔다.
-중략-
눈앞에서 펼쳐지는 동작의 느낌을 어떻게 감상자에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루벤스의 해결책이다. 여기에 두껍고 강렬한 터치, 납치하는 사람의 공격적인 근육의 긴장과 비틀림 및 납치당하는 사람의 반대되는 곡선은 이런 납치
효과를 눈에 띄게 한다.
루벤스의 시각적인 영감의 원천은 잠볼로냐의 <사비나 여인의
납치>였다. 이 매너리스트 조각은 진정한 힘의 곡예로 여러 다른 관점을 동시에 한 면에 제공한다. 4미터가 넘는 대리석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사비나 여인의 살을 파고드는 납치범의 손가락에서 강한 사실감이 느껴지고 그의 근육은 납치의 의지만큼이나 굳건하다. 납치를 피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여인의 뒤틀림은 사방으로 분산될 뿐 안타깝게도 출구를 찾지 못한다.
---p.84~85 <2장. 다양성과 새로움의 시대 '바로크 미술'
中>


자크 루이 다비드는 <암살당한 마라>의 자세를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속의 그리스도 자세에서 차용했다.
이는 마라의 정치적 순교 이미지를 떠올리도록 하기 위한 의도였다.

마네는 현실을 비틀기 위해 <풀밭 위의 점심 식사>에서
고전 회화의 일부를 인용했다.
티치아노의 <전원 합주곡>의 일부를 가져와
신을 당시의 사람으로 대체하였던 것이다.
책은 이러한 원본도 함께 보여줌으로써
작품의 주제를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270페이지 정도의 분량이지만 살짝 작은 글자 크기에
텍스트와 그림을 번갈아 비교하면서 꼼꼼히 읽다보면
페이지 넘기기가 더뎌진다.
그럼에도 미술관 큐레이터가 설명을 해주는 것처럼
흥미와 깊이를 넘나드는 생생한 해설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
첫 번째 읽을 때는 텍스트 위주로 읽느라
그림을 맘껏 보지 못했다.
이제는 다시 그림 위주로 읽어 보려 한다.
그런 후에는 작가의 다른 작품이나
동 시대 다른 작가의 작품들도 찾아봐야겠다.
그렇게 시야를 조금씩 확장시켜 나가다 보면
조금은 미술을 보는 눈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어느 순간에라도 뒤적여가며 참고할 수 있는
책이 있다는 것이 든든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