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0년도 전에 방영되었던
MBC 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에서 였다.
여자 주인공 김삼순이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충격에 실어증이 걸린
남자 주인공의 조카에게 '모모'에 대한 들려주는 장면에서
처음 '모모'를 알게 되었다.
드라마는 로맨틱 코미디로 유쾌한 내용이었지만
중간중간 마음을 울리는 대사나 상황들이 결코 가볍지 않아서 좋아했었다.
아마 시청률도 상당히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중에서도 아마도 PPL이었을테지만
드라마와 너무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던 신선하고 독특한 내용의
'모모'라는 책이 한참 아니,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과연 '모모'는 누구인지, 이야기는 어떤 내용인지...

"마을 사람들은 이 모모를 다 사랑한다.
왜냐면 모모는 귀기울여서 들어줄줄 알거든.
모모는 말을 안해.
말을 못해서가 아니라 듣는 걸 아주 좋아해.
마을 사람들한테 고민거리가 있으면 다 들어주는 거야.
그게 중요한거야.
귀 기울이는 거.
그럼 마을 사람들은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도
다 풀린 것처럼 기분 좋게 돌아가.
이 아줌마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
근데 내 말만 하는 어른이 돼버렸어. 지금처럼."

<출처 : MBC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 5회 中>
이제는 스테디셀러로 마음만 먹으면 찾아서 읽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또 잊고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블랙에디션으로 다시 재출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그 궁금증을 꼭 풀어보리라 결심을 하고
드디어 [모모]를 읽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책을 읽을 때보다 훨씬 느낌이 각별했다.
옛 친구를 아주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처음 책을 받았을 때 재출간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번 에디션 표지에는 모모에게 길을 안내해주는 거북이 친구
'카시오페이아'가 전면을 장식하고 있다.
말을 하지 않고 등껍질에 갑골문자와 같은 불빛 글자로
대화를 하는데 그 특징을 그대로 살렸다.
또한 회색인들이 만들어가는 음습한 냉기가 가득한 분위기를
짙은 회색 바탕이 그대로 표현해주는 것 같다.

출퇴근길에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읽었는데
잡동사니들과 부딪히면서 표지가 상하는 것이 맘에 걸려
겉표지를 벗겼는데 생각지도 못한 그림이 나타났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인 '시간'의 이미지가
겉표지 속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모모가 자신의 '시간의 꽃'을 보면서 느꼈던
놀라움과 황홀감이 그대로 전달되는 듯 했다.
"하지만
별의 추가 다시 방향을 돌리자 그 아름다운 꽃은 시들고 떨어져,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연못 저 깊은 곳으로 한 잎 한 잎 가라앚아 버렸다.
추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맞은편에 이르렀다. 추는 처음과 같은 곳이 아니라 조금 더 앞쪽까지 나아갔다. 그러자 첫 번째 지점에서 한 발 떨어진
곳에서 또다시 꽃봉오리 하나가 솟아나 서서히 피어나기 시작했다.
모모의
눈에는 이 꽃이 가장 아름다운 것 같았다. 꽃 중의 꽃,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신기한 꽃이었다!
-중략-
추는 맞은
편에서도 한 걸음 더 멀찍이 나갔고, 그러자 새로운 꽃이 어두운 물속에서 떠올랐다.
점차
모모는 새로 피는 꽃은 번번이 먼젓번 꽃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 그리고 갓 피어난 꽃이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p.253~254
'시간'이라는 소재도 신선했지만
이를 표현해내는 작가의 상상력과 표현력에 감탄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일률적이지도 않고, 멈춰있지도 않고, 심지어 형태도 없는 것을.
작가는 정말 멋지게 시각적으로 구현해낸 것이다.

작가는 '시간의 소중함'이라는 정말 뻔한 주제를
가르치려 들지도 섯불리 조언하려고 들지도 않는다.
현실의 회색인들을 거부하지 못하고 받아 들이며
숨막히게 시간을 끊임없이 줄여나가 삶마저 피폐해지고 있는
'우리들'을 비난하지도 않는다.
단지 '시간'의 속성을 모모의 눈으로 보여줄 뿐이다.
누구에게나 가슴 속에 가지고 있는 '시간의 꽃'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냐에 따라 달라지는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아이들의 시간마저도 빼앗겨버린 적나라한 현실을.
"죽은
것으로 목숨을 이어 가기 때문이지. 너도 알다시피 그들은 인간의 일생을 먹고 살아 간단다. 허나 진짜 주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시간은 말 그대로
죽은 시간이 되는 게야.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시간을 갖고 있거든. 시간은 진짜 주인의 시간일 때만 살아 있지."
"그들은 사람들이 생겨날 기회를 주면 생겨난단다. 기회만 주어지면, 금세 생겨나는 게야.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그들에게 자기들을 좌지우지할 기회까지 주고 있어. 그런 기회가 주어지기만 하면, 그들은 벌써 사람들을
좌지우지한단다." ---
p.240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의 얼굴은 점차 시간을 아끼는 꼬마어른처럼 되어 갔다. 아이들은 짜증스럽게, 지루해하며, 적의를 품고서 어른들이 요구하는 것을
했다. 하지만 막상 혼자 있게 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모든
일을 겪은 후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소란을 떠는 것뿐이었다. 물론 그것은 즐거운 소란이 아니라 미쳐 날뛰는 듯한 고약한 것이었다."
--- p.288
함께 즐거움을 나눴던 친구들과 멀어지면서 모모는 외로워졌고,
결국 친구들을 그 회색인들의 손아귀에서 구해내기 위해 용기를 낸다.
그러나 시간이 영원히 멈출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에서
일분 일초를 아껴야 하는 다급한 상황에서도
모모는 베포 할아버지를 본 순간 기쁨과 반가움, 슬픔에 지체를
한다.
결국 회색인들을 놓치고 마는 상황까지 만들어버렸다.
순간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
얼마든지 일을 끝낸 후에 만나러가도 될 것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베포 할아버지를 살피고 걱정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회색인간의 창고를 찾을 기회를 놓치다니.

그 순간 나도 시간을 담보 잡혀가며
더더더 줄여가고 있는 어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급박하지만 모모는 사람과 사랑이 먼저였고,
소중한 시간을 느끼는 가슴이 뛰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정작 가슴으로는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이 작은 소녀의 아주 자연스러운 행동을 보면서 느끼게 된 것이다.
400페이지가 넘는 이 두꺼운 책을 읽는 내내
남의 일처럼 한심하게 바라보며 읽다가
20페이지 남짓 남겨놓은 상태에서야 비로서
나를, 내 진짜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이 책이 왜 47개국의 언어로 번역이 되었는지,
국내에서만 10년이 넘는 긴 시간 사랑받으며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는지 알 것 같았다.
심지어 쓰여진 시기는 1970년이다.
무려 반 백년 가까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이 왜 47개국의 언어로 번역이 되었는지,
국내에서만 10년이 넘는 긴 시간 사랑받으며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는지 알 것 같았다.
심지어 쓰여진 시기는 1970년이다.
무려 반 백년 가까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작가가 던진 메시지가
시공간을 뛰어넘는 공감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그 메시지는 더 크게 다가갈 것이다.
가끔 정신없이 살아갈 때,
회색인간들에게 내 시간을 뺏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때쯤 다시 모모를 찾아가야 겠다.
그리고 한숨을 돌리며 여유를 찾는 방법을 다시금 배워야겠다.
한 애가 끝나가는 12월 말,
정말 좋은 친구를 만난 것 같아 행복하고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