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그림]
표지부터 강렬했다.
제목도 도발적이다.
대체 무슨 책일까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미술이나 그림에 대해서 관심과 호기심은 있지만
정작 아는 것은 별로 없는 문외한이다 보니
표지의 그림마저 처음보는 그림이라
궁금증이 더 일었던 것이다.

책을 받아본 후에는 다시 한번 놀랐다.
표지의 감촉때문이었다.
마치 그림의 표면을 터치하는 듯한
고급스러우면서도 부드러운 무게감이 느껴지는 재질이었다.
악마의 유혹은 화려하면서도 달콤하기 때문일까?
"여기 소개하는 그림은 일상생활에서 섣불리 말하지 못하는 사실 혹은 진실에 관한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숨김과 드러냄, 감춤과 폭로 사이에 있다. 그림이라는 예술이 진실 혹은 진리하는 것을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볼 때, 그것은 은폐와
탈은폐의 변주로 나타난다. 그러다 보니 그림들은 섹슈얼하고, 에로틱하고, 폭력적이고, 관음적이고, 탈주적이다." ---p.5~6 <서문
中>
'그림 속 속살에 매혹되다'라는 이 책의 부제처럼
이 책은 인간의 가장 깊은 곳 민낯의 모습을
드러낸 그림들을 추적한다.
은근한 호기심으로 고개를 돌린 채 곁눈질로 슬금슬금 옅봤던
그림들을 정면으로 당당하게 마주하며 소개한다.
고급스러운 표지에 둘러싸여 정갈하게 놓여있는 그림들은
낯설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하고
빨려들어갈 것같이 강렬하기도 하다.
그렇게 솔직하게 밖으로 드러내니
오히려 군더더기들이 걷히고
순수하고 담백하게 핵심이 분명해진다.
그림을 보는 눈은 없지만
그럼에도 온 몸의 감각으로 그림이 느껴진다.
예술을 받아들이는데 꼭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마치 바디랭귀지로도 낯선 언어가 의사소통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솔직한 감정으로 만나게 되는 그림은
선명하고 감각적으로 메시지가 전달된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면을 건드리는 이러한 그림은
그만큼 전달력이 큰듯 하다.

책은 총 3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차마 드러내어 말하지 못한 것들
탐닉, 복수심, 고혹, 죽음, 욕망, 자살, 호기심, 레즈비언,
동경, 천박함, 집착.
그야말로 차마 말하지 못하는 주제들이다.
첫 장, 첫 작품부터 강렬하다.
영주의 폭정으로부터 백성을 구하기 위해
나체로 말을 타고 동네를 도는 것도 불사했던
영주의 부인 '고디바'의 이야기.
일제히 그 광경을 보지 않기로 약속하며
영주 부인의 희생에 감동했던 백성들.
그럼에도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몰래 그 광경을 훔쳐보았던
재단사 '톰'은 결국 눈이 멀게 되었고,
관음증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장본인이 되었다.
이를 그림으로 옮긴 다양한 화가들의 작품들을
바라보노라면 고디바의 희생정신이
가슴 저리도록 생생하게 다가온다.
관음의 음흉한 시선이 있기에 더더욱.


이렇듯 주제를 가지고 여러 작품을 만나니
그 주제가 더더욱 분명하게 부각된다.
'레즈비언'이라는 주제의 그림 역시 쉽게
보기 어려운 그림이다.
남성 간의 동성애가 일반적인 시대를 지나
철저하게 금지되었던 시대가 되었을 때까지도
여성의 동성애는 한 켠으로 밀려나
허용도 탄압도 받지 않은 채 존재했다고 한다.
자연스러움에서 욕망으로, 위로로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 그림을 보노라면
인생의 복잡함을 여기서도 그대로 느껴지게 된다.


2장 당신도 모르게 눈이 가는 그림들
추문, 무지, 공포, 노출 위험, 불경함, 음탕함, 불길함,
자기애.
3장 욕망할수록 가질 수 없는 삶
매혹, 완벽, 도발, 희열, 숭배, 은폐, 색욕, 독립.

2장과 3장 역시 잠자고 있는 인간 밑바닥의 본능을
흔들어 깨운다.
모든 인간에게는 이런 욕구와 욕망,
이런 모습이 있음을 깨닫게해주는 것 같다.
처음에는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치게 되지만
이런 직설적인 솔직한 감정과 마주하다보면
어느 순간 긴장이 풀리고, 여유가 생기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가식적이었던 모습을 잠시 내려놓고
솔직한 인간인 나와 마주하게 된다.
무슨 척하는 나가 아닌
체면과 형식을 벗어던진,
그렇게 풀어헤쳐진 인간, 나를 만나게 된다.
이렇게 솔직한 자기와 만나고 나면
마치 목욕을 하고 나온 듯
시원한 해방감이 느껴진다.

세상만사 걱정일랑 내려놓고
잠시 쉬어가라고 책속의 그림들은 유혹한다.
그 유혹에 잠시 빠져 보는 것도 좋을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