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 - 박상 본격 뮤직 에쎄-이 슬로북 Slow Book 2
박상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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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뮤직 에쎄-이' 

이 부제를 보지 않았던들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살만큼 살았고, 사랑도 해볼만큼 해봤고...

사랑에 관한 에세이는

이제 더이상 호기심도, 공감의 대상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는 삶이 어디있겠는가마는

그 대상과 모양이 계속 바뀌어가다보니

이제는 달고 끈적한 사랑보다는

깊고 구수한 맛을 내는 사랑에 더 익숙하고 친숙하다.

 

그런데... 사랑은 그렇다치고,

'뮤직 에세이'라니?

클래식과 관련된 에세이책은 많이 봤지만

대중음악과 관련된 책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

갈증을 느끼고 있던 차에 음악에 대한 얘기를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워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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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런데...촌스러운 '에쎄-이'는 뭐지?

서문 첫 문장부터 낌새가 이상하더니

처음 에피소드를 읽는 순간 그 의미를 바로 알게 되었다.

노라조를  뺨치는 'B급' 정서라는 것을.

마치 웹툰을 읽는 것처럼 읽으면서 시종일관 낄낄거리게 된다.

유머를 목숨처럼 사수하는 작가 정신으로 인해

370페이지에 달하는 책은 눈깜짝할 사이에 읽을만큼

유쾌하게 술술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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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에세이답게 사이드A, 사이드B, 보너스트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저자는 각 꼭지마다 주제에 얽힌 음악을 추천한다. 

헤비메탈, Rock 마니아이니만큼 심심치 않게

이 장르의 음악들이 등장하지만

가요, 팝, 록, 클래식 등 정말 다양한 장르의

40곡에 달하는 음악을 만날 수 있다.

헤비메탈이나 Rock이라고 해도

대중들도 무난하게 들을 수 있는 곡들이기때문에

어쩌면 이런 장르의 음악을 잘 듣지 않았던

나에게는 새로운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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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노라조나 산울림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저자의 취향 덕분에 책만큼이나 음악을 들으면서도

미친 사람처럼 낄낄 웃곤 했다.

집에서 들을 때는 괜찮았는데

출근할 때 지하철에서는 좀... 그랬다.ㅎㅎ

 

책장이 휙휙 넘어가긴 하지만

해당 꼭지를 읽을 때 저자가 추천해준 곡을

하나하나 찾아들으며 그 느낌을 살려 읽다보니

완독을 하는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좀 걸렸다.

그럼에도 오히려 그 시간을 최대한 연장하고 싶기도 했다.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느꼈던 설렘,

절대 실망시키지 않은,

오히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던

기대 이상의 만남이었기에

한장 한장 줄어드는 것이 아까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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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가장 큰 소득이랄까?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된 '에피톤 프로젝트'의 <이화동>은

내 인생노래가 될 지경이다.

아침, 저녁 출퇴근길에 무한반복해서 듣고 있는 중이며,

급기야는 옆 동료에게까지 추천해서 중독시켜버렸다.

하늘이 나날이 높고 푸르러지는 요즘,

가을타기에 딱 좋은 곡이다.

지금은 에피톤 프로젝트의 다른 음악까지 찾아들으며  

가을앓이를 만끽하고 있는 중이다. 

 

아무도 없던 이탈리아의 베로나 플랫폼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가을의 맑고 부드러운 햇빛 속에서

신나게 불어제꼈다던 노래.

한국의 청명한 가을 날씨를 연상하며

나도 함께 이국의 하늘래 기차역에서

노래를 듣고 있는 기분이다. 

 

"그런데 갑자기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곡이 하나 떠올랐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이화동>이었다. 나지막이 그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불러보는 동안 플랫폼엔 나 혼자였다. 가을의 맑고 부드러운 날씨란, 배낭여행 중인 낯선 이방인에게도 공평하게 포근했다. 뜬금없이 이탈리아에서 서울시 종로구 이화동이 떠오른 건 어떤 조화인지 알 수 없었으나 참 잘 어울렸다. 별것 없는 기차역 플랫폼이 그 순간 무척 경이롭게 느껴졌다." ---p.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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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음악이지만

못지 않게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여행과 저자의 가난(?)이다. 

프로 여행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저자는 심심하면 떠난다. 

그렇다고 돈이 많은 것은 아니다. 

반지하, 옥탑방에 살면서 전업 작가로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가면서 하루살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돈이 생기면 떠나고, 돈이 없으면 카드빚으로 당겨서 떠난다.

계획도 없이 떠나 바가지도 많이 쓰지만

그럼에도 발동이 걸리면 또 계획없이 무작정 떠난다. 

돈 걱정에 부들부들 떠는 

럭셔리하고는 거리가 있는 여행이지만

음악과 술, 어디나 매한가지인 삶이 만들어가는 

낯선 세상에 잠시 귀를 기울이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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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놈의 나가사키는 무슨 12월 땡 시작부터 분위기를 내려는 거야. 도시 곳곳에 이미 루미나리에 장식이 잔뜩 있던데 거 너무 이른 거 아니오? 생각한 것도 잠시,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몸과 마음이 주르르 녹아버렸다. 힘주지 않고 부드럽게 발성하는 멜 토메 님의 아름다운 음색을 안주 삼자 술도 부드럽게 꿀떡꿀떡 넘어갔다. 냇 킹 콜 아저씨의 리메이크 곡이 워낙 유며해서 오리지널 넘버를 들은 건 처음이었다. 

그 음악 덕분에 여행 경비 걱정에 벌벌 떨던 심정도 릴렉스했다. 고로 술도 마음껏 마실 수 있었다. 1년 내내 했던 돈 걱정도 결국 힘만 빡 주는 것이다. 돈이 뭐라고, 그렇게 힘주어 목매었단 말인가. 

일단 쓰고 열심히 갚으면 되지, 뭐. 

 

아등바등 살아남으려고 핏대를 세우고 있으면 자기 삶도, 옆에서 보는 친구들도 힘든 거다.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무엇이든, 나로선 정말 오랜만에 여유 있는 분위기를 즐겼다. 이게 몇년 만인가 생각하니 겸연쩍었다. 낯선 여행지의 스탠드바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마음껏 힘 빼고 긴장 풀고 개릴렉스 상태로 새벽까지 신나게 웃고 떠들다 보니 마음이 양털처럼 보들보들해졌다." ---p.237~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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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빈 손이지만 저자는 '음악'이 있어 행복하다. 

거기에 여행을 하면서 얻은 여유는 

고된 삶도 웃어넘기며 즐길 수 있는 유머를 만들어낸 것 같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면 그걸로 끝.

내일은 또 내일의 다른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희망.

오늘도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저자의 재산인 것 같다. 

 

서문에서 밝힌 이름이 생소한 것으로 유명하다는 

저자의 글이 조금은 유명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금처럼 더 많은 여행을 다녀와서 쓴 

아름다운 음악과 멋진 분위기의 산통을 깨는 

유쾌한 농담이 어우러진 저자의 글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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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너무 유명해지지는 말기를.

지리리 궁상의 에피소드야말로

B급 병맛인 저자 글의 핵심중의 핵심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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