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힘
장석주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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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보다 책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택배의 도착과 동시에 표지를 살필 틈도 없이 서문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첫 페이지 넘기기가 쉽지 않다.

같은 문장 읽기를 반복하며 당최 속도가 나질 않는다.

그렇게 읽다가 쉬었다가를 반복하기를 근 한 달.

드디어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누가보면 거창한 책을 탈고라도 한 듯한 후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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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힘]을 그토록 기다리고 읽고 싶었던 이유는

저자 장석주 시인의 강의 때문이었다.

교과서에도 시가 실렸다는 시로 먹고 살고 있는 시인.

출간한 책제목을 읽는데도 몇 번을 쉬어가야 할 만큼

다작한 전업 작가.

그럼에도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어떤 인문학 강의에서였다.

한국 근대문학 100년을 짚어내려가는 그의 강의를 듣고

그의 문학과 시에 대한 열정과 통찰력,

그리고 용기에 대해서 감동을 했었고,

그동안 무심하게 바라봤던

한국근대문학에 대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었다.  

 

시는 아직 어려워서

문학을 조금씩 접해가고 있을 즈음,

저자가 시에 관한 책을 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학강의 만큼이나 재미있게 풀어내을 것 같은 책이 궁금했다.

더구나 내게 있어 시란....외계어같은 존재여서

시 속에 녹아있는 은유를 통해 시를 읽는 법을

저자 특유의 예리한 통찰로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서문조차도 이렇게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다니...

한마디로 산문으로 쓴 시같았다.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시'란 무엇인가.

'좋은 시'는 어떤 시인가에 대해

평생 시를 쓰면서 고민하고 사유한 생각과 경험들이

응축되고 농축되어 녹아 있었다.

생각보다 두껍지 않은 분량에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여지없이 빗나간

한 권의 산문시였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어려웠는데

장을 거듭할 수록 서서히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시도, 저자의 글도 모두 이해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지만

저자가 안내해주는 방향으로 설명을 듣다보니

아...시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이 어렴풋하게 들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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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알의 모랫 속에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 순간 속에 영원을 보라.

-윌리엄 블레이크, 「순수의 전조」부분

 

시인은 견자(見者)다. '본다'는 것은 지각이 시작점이다. 사물과 세계를 본다는 것은 앎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이해하면서 관조하는 행위이다. '본다'는 것은 지각의 단초가 되는 행동이다. 사물이 지각되는 바대로 존재한다면, 시인은 그 지각의 특이성과 확장성으로 주목받는다. 시인이 드러내는 지각의 특이성은 항시 다르게 보기, 낯설게 보기의 결과로 나타난다." ---p.86

 

시인이 그려낸 지각의 모습들은 다양하다.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도 시인이 그려낸 은유의 세계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시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상상의 벽에 막힌 그 정황들을 저자는 친절하게 이야기로 풀어준다.

아! 그런 상황이었구나.

책을 읽어가면서 시를 읽는 맛이 생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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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을 키우고 소리 내어 점을 친다 그리하여 당신이 모르는 일을 알게 된다 죽지 않는 법을 익히고 항상 그래왔다 믿는다 맨처음 식물이 죽던 날 이유를 몰랐다 왜 죽었을까 나 때문일까 죽어가는 식물에게 물을 주고 남은 목을 축이는 일 모자란 햇빛이 그늘을 넓히는 일 밤에는 화분을 옮기고 커튼을 친다 누군가 구둣발로 오줌을 누었다 창문을 두드리는 오줌 줄기 어떤 노래를 들으면 지린내가 나는 일 귀를 막고 숨을 참는 일 죽는다 안 죽는다 산다 못 산다 병든 잎을 떼어내면서 낮에는 화분을 들고 산책을 한다 맑고 따뜻한 날씨의 감정을 간직하려고 보드라운 구름의 생각을 따르면서 그러다 보면 그늘에서 쉬어가는 일도 그중에 좋아하는 그늘이 생기는 일도 조금 더 자라면 분갈이를 해줄게 봐둔 게 있어 그리고 나도 집을 옮기게 되겠지 발코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죽은 화분을 버리고 돌아오던 날 바로 거기서부터다 나는 당신이 모르는 일을 많이 했다

-유진목, 「식물의 방」전문

 

「식물의 방」은 반지하 방에서 살며 식물을 키우는 이의 소소한 경험을 바탕으로 씌어진다. 이때 중심을 꿰뚫고 지나가는 것은 현실과 꿈의 어긋남에서 빚어지는 슬픔이다. 시의 화자는 화분을 키우고 점을 치며 산다. 그가 거주하는 곳은 햇빛이 잘 들지 않지 않고, 그늘에 잠긴 화분의 식물들은 시든다. 반 지하 방 생활자들은 함부로 방뇨하는 자의 "창문을 두드리는 오줌 줄기" 소리와 "지린내'가 만드는 불쾌함과 악취의 고통에 방치되어 있다. 이것은 삶이 품은 모종의 비참과 수모의 작은 표상들일 테다."

---p.177~178

 

이게 무슨 소리일까.

더군다나 마침표도 제대로 찍혀있지 않은 문장들을 따라 읽다보면

집중도도 떨어지고 머리 속은 엉켜버린다.

저자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상황이 이해되고

그 지리하고 암담한 일상이 시의 형상으로 보인다.

 

학창시절, 시를 발기발기 해체해버리고,

딸딸 외우며 문제풀기의 도구로서 존재했던 시들이

조금씩 해동이 되면서 꿈틀꿈틀 살아나는 느낌이 든다.

시만큼 강렬한 섬광으로 충격을 주는 장르가 또 있을까.

저자에게도 시는 그런 존재인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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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시가 내게로 왔다. 내가 시를 찾은 게 아니었다. 시는 "내 혈관으로 돌진하는 불꽃과 에테르", 진부한 것들에 내려치는 벼락, 내 전두엽에 내리꽂히는 모든 느낌과 직관의 신호들, 수수께끼 중의 수수께끼다. 나는 시와 함께 살았다. 진짜 시를 쓴다는 건 시를 산다는 것이다. "이토록 고요한 세상을 봐/별들로 하늘이 뒤덮인 밤/자리에 일어나 시대에, 역사에, 세계에/말을 걸 시간."(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 「미완성의 시」을 살아내는 것! 시는 땅과 하늘, 시대와 역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품은 우주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테다. 나는 곧 시다! 아니다, 나는 시의 타자, 영원한 이방인, 어긋나는 반역자다!" ---p.190~191

 

어떻게 이런 표현이 있을 수 있을까.

시를 잘 모름에도 불구하고

어떤 시들은 읽을 때 전율이 느껴지기도 한다.

시가 말을 걸어올 때의 설렘.

전두엽에 내리꽂히는 충격.

어떤 느낌일 지 알 것 같다.

아직도 시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는 저자를 보면

시는 내성이 생기지 않는 중독성 강한 마약이 아닐까.

그런 시를 경험하고 싶다.

시인이 건네는 우주에게 보내는 메시지에 공감하고 싶다.

 

책을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

거친 체에 걸러진 곡식들처럼

놓쳐버린 무수한 알갱이들을 다시금 곱씹어봐야겠다.

하나둘 곱씹어 다시 읽다보면

섬광같은 시를 만날 준비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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