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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지음 / 더숲 / 2017년 2월
평점 :
볼 일이 있어 들른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벌써 이 책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가 10위권 안에 들어와 진열되어
있었다. 한참을 뚫어져라 보았다. 역시 류시화 작가구나.

류시화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하늘 호수를 떠난
여행]을 읽을 때였다. 벌써 20년 전이다.
수려한 필력과 함께 인도라는 낯선 세계를 있는 그대로,
정말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 그 책을 읽고 단박에 류시화 작가의 팬이 되어버렸었다. 단순한 여행기였다면 아마 금방 잊혀졌을 것이다. 작가는
직접 겪은 에피소드에서 인도의 정신, 옳든 그르든, 낯설지만 다른 그들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려고 했었다. 때론 이해하기 어려운 그들의 일상과
관습이지만 다름이라는 관점으로 투영된 그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한 세계, 사회였다.
그후 출판된 [지구별 여행자]와 번역 출판물까지 기회가
닿는대로 작가의 책을 찾아서 읽었다.
물론 번역물의 경우 작가의 개인적인 사견이나 경험이
들어갈 수 없으니 에세이와는 분명 전달의 형식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그가 번역을 하기 위해 선택한 책이었으니 그 책 역시 그가 하고 싶고,
들려주고 싶은 말이라는 생각에 좀 어렵지만 굳이 찾아서 읽었다.
그러다가 실로 오래만에 작가의 에세이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어찌나 반가웠던지. 책을
받아들고도 정말 한장 한장을 아끼며 읽었다.
예전보다 깊이는 더 깊어지고, 사례는 더 풍부해졌다.
여전히 명상을 하면서, 여전히 자신을 찾기 위한 치열한
방황을 멈추지 않고 있는 듯 했다.
지금도 낯선 세계를 끊임없이 갈구하면서 진리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래서 더 반가웠다. 여전함, 변하지 않고 더 깊어진
모습.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오래 몸담았던 업계를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었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도피요, 안주를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여러가지 변명과 위안을 만들어가면서 그 선택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생각과 현실의 괴리에 대한 번민으로 괴로울 때, 그럼에도
애써 괜찮다고 위로하면 다독이고 있을 때
이 책을 읽게 된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눌러왔던 감정들이 하나하나 되살아나
억지로 끌고왔던 마음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온 것 같았다.
"그 어떤 길도 수많은 길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너는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하나의
길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을 걷다가 그것을 따를 수 없다고 느끼면 어떤 상황이든 그 길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마음이 그렇게 하라고 한다면 그 길을
버리는 것은 너 자신에게나 다른 이에게나 전혀 무례한 일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이 한 가지를 물어보라. '이 길에 마음이 담겨 있는가?' 마음이 담겨 있다면 그 길은
좋은 길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길은 무의미한 길이다. 마음이 담긴 길을 걷는다면 그 길은 즐거운 여행길이 되어 너는 그 길과 하나가 될
것이다. 마음이 담겨있지 않은 길을 걷는다면 그 길은 너로 하여금 삶을 저주하게 만들 것이다. 한 길은 너를 강하게 만들고, 다른 길은 너를
약하게 만든다." ---p.45

여러가지 현실적인 문제와 타협하려고 무던히도 애쓰고 있던
나는 이 문장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진작에 아닌 걸 알고 있으면서, 애써 외면하고 있던
상황에서 만난 이 문장은 예리한 칼이 되어 내 가슴속을 후벼팠다.
아닌 걸 아니라고 인정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고 생각했다.
되돌리기에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며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채워 나가고 있었다.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갈등의 싹을 잘라버리고,
현실에 맞춰나가자고 결심하면서.
결국, 이 책을 채 다 읽기도
전에 나는 항복을 선언했다.
가슴 속에서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을 더이상 외면하지
못하고 인정을 하고 만 것이다.
3개월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민과 갈등의 과정을 돌아보면
3년은 되는 듯 힘겹고 버거웠다.
정말 '나'로 살고 있는 가에 대한 길고 지루한 질문을
더이상 모르는 척할 수가 없었다.
발을 담그고 있을 때는 벗어나기 힘들다. 최대한 현실에
맞추기 위해서 수많은 변명과 준비된 답으로 가장을 한다. 그럼에도 불쑥 불쑥 생각지도 못한 시점에서 질문이 튀어나온다.
그럴 때면 아득하기만 하다. 앞으로 이런 지난한 싸움을
얼마나 더 해야할까?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치열한 싸움의 종지부를 찍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둘러본
세상은 이전에 보던 세상과 너무 달랐다.
아...끝이구나. 아니, 새로운 시작이구나. 봄내음이
갑자기 코끝에 걸린다.
그동안 내가 있었던 곳은 어디였지? 마치 꿈을 꾼
것같다.
불과 몇 일 지나지 않았는데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이제야
진짜 내가 된 것 같다.
읽다만 책을 다시 펴 들었다.
마치 지금을 기다리기라도 한듯, 아니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듯 작가는 나에게 얘기해준다.
"죽음에 임박했을 때 가장 후회스러운 일은 '스스로를 무시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가슴이 원하는
여행을 하지 않은 것만큼 큰 실수는 없다. 남의 기준에 맞추고 사회의 암묵적인 동의에 의문 없이 따름으로써,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경험했을 더
많은 기쁨들을 스스로 놓쳐 버린 것이다. ---p.263
"우리의 인생 자체가 '오디세이아'이며 삶의 묘미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나는 여행을 통해 배웠다.
내가 정한 목적지들은 사실 그곳에 이르는 여정의 경험을 위한 설정에 불과했다. 내 여행기는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겪은 일들과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모험과 도전을 피해 고속열차나 비행기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는것은 여정을 생략한 것이나 다름없다. 복잡한 시장길을 우회하고, 낯선
길들을 거부하고, 가이드를 따라다는 것은 여행이 아니다.
따라서 기도해야 한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우리여정이 가능한 한 긴 여행이 되기를. 신이 짜놓은
근사한 일정을 우리가 마치지 않기를. 그 여정에서 더 많은 모험과 시련과 근사한 일들을 겪게 되기를. 그래서 모퉁이를 돌 때마다 온갖 사건이
펼쳐져 이야기깃거리가 많아지기를. 그 이야기들이 없으면 당신의 삶은 흥미진진한 여행기가 아니라 안전한 가이드북을 따르는 것이다."
---p.271
"우리 각자의 삶은 한 편의 『오디세이아』이다. 그 대서사시의 완성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 각자의 이타가 여행이어야 한다. 그 길에서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이 우리의 순례이다. 당신의 이타카는 무엇인가? 당신은 그 이타카로
가는 길 어디쯤에 있는가? 애꾸눈 괴물의 동굴에서 고통받고 있는가, 바다의 신의 격랑에 침몰하고 있는가? 아니면 페니키아의 시장에서 호사스러운
물건들을 구입하고 있는가? 목적지가 아니라 그곳을 향해 가는 길 위가 바로 이타카임을 이미 이해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제대로 여행하고 있는
것이다." ---p.277

지금의 선택도 실패할지도 모른다. 잘못된 선택에 다시
주저앉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또다시 털고 일어나 내 안의 목소리를 따라
나의 목적지를 향해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아니, 목적지로 향하는 여정을 즐기기 위해 다시 한발
한발 서툴고 느린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새처럼 뒤돌아보지 않고...앞으로 앞으로 진짜 제대로
된 여행을 하기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