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야구의 디테일
배우근 지음 / 넥서스BOOKS / 201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2015년처럼 프로야구 5위에 대한 관심사가 이렇게 뜨거웠던 적이 있었던가.

올해 야구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데에는 한화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것이 큰 이유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마이다스의 손을 만나 만년 꼴찌 한화팀이 얼마나 달라질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던 것이다. 그런 응원과 관심에 호응하며 한화는 역전승을 이어가는 투지를 보였고 '마리한화'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덕분에 야구에 대한 관심이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야구장으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랬다. 프로야구 출범때부터 청룡, LG의 팬이었는데 줄곧 이어지는 저조한 성적에 야구에 대한 점차 관심이 흐려졌었다. 그런데 김성근 감독이 돌아온다는 뉴스를 보고는 다시 야구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부족한 전력과 늘어난 경기수의 변수로 인해 100% 포스트 시즌 진출이라는 기록을 달성하는데는 실패했지만 한화는 수많은 드라마를 써가며 한화신드롬을 일으켰었다.

 

참 오랜만이었다. 월요일이 허전할 정도로, 내년 4월이 아득할 정도로 야구에 푹 빠져 보낸 일 년이었다. 뒤늦게 다시 시작한 공부에, 회사일, 집안일까지 이중 삼중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야구를 보면서 풀었던 한 해였다.

 

이렇게 야구와 다시 가까워지면서 많은 게임을 보다 보니 그동안 많이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야구의 룰을 의외로 많이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반적인 경기 상황에서야 이해하는데 지장은 없지만 특수하거나 희귀한 상황이 나오면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종종 생기는 것이다. 또한 해설자나 캐스터가 얘기하는 야구 용어도 생소한 경우도 많았고, 익숙하게 계속 들어왔지만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것도 꽤 있었다. 물론, 그런 것을 몰라도 야구를 보는 데 큰 지장은 없다. 그렇지만 야구를 볼수록 더 잘 알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야구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재미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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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처음 봤을 때 쾌재를 부른 이유 역시 그런 갈증때문이었다. 스포츠 일간지 기자이자 사회인 야구 선수로 활약을 하고 있는 저자인만큼 이론과 실전을 오가며 야구에 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주었을 것같은 기대감을 갖게 했다.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고 거기에 오랫동안 야구계에서 취재를 해온 덕분에 쌓인 다양한 사례와 풍부한 인터뷰를 제시해줌으로써 더욱 실감나고 생생한 내용을 전달해주고 있다.

 

책은 360페이지 정도의 두꺼둔 분량이지만 핸드북 사이즈로 소지하기 편해 곁에 두고 필요할 때 찾아보기에 부담이 없는 크기이다. 야구 잡학사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기본적인 룰부터, 원리, 역사, 소소한 에피소드까지 빼곡히 담고 있다. 이 정도의 지식만 있으면 제목처럼 어디가서 야구에 대한 대화를 하는데는 거침이 없을 듯 싶다.

 

야구에 관한 책답게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장의 이름도 이닝으로 나누어 놓았다.

투수의 볼끝이 살아있어야 좋다고 하는데 과연 볼끝이란 무엇일까, 스트라이크존은 정확하게 어디인지, 야구는 왜 하필 9이닝일까와 같은 한번쯤 궁금해 했을 법한 질문들을 주제별로 모아서 답해주고 있다. 더불어 '베이스볼 톡톡'이라는 꼭지를 두어 야구의 규칙과 원리 등을 좀더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평소 궁금해하던 질문들이 꽤 많아 슬며시 미소짓게 만든다.

몇 가지 질문들과 답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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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이딩, 전력 질주보다 빠를까

내야 안타를 치거나 도루를 할 때, 홈에서 승부를 할 때 선수들이 흔히 슬라이딩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일반인이라면 갑자기 자세를 바꾸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겠지만 야구선수는 전문 훈련을 받았으니 더 빠르지 않을까 나름 생각했었는데 과연 정말 빠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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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팅 넘치는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은 팀 사기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실익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몸을 던지는 과정에서 부상의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고, 슬라이딩보다 전력 질주로 1루 베이스를 밟고 지나가는 게 더 빠르다는 의견도 있다. 그래서 모 방송국에서 고교 야구 선수를 대상으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과 선 채로 달려 1루 베이스를 밟는 시간을 나눠서 재보았다. 양쪽이 비슷했지만, 몸을 던지는 슬라이딩보다 뛰어 들어가는 게 미세한 차이로 빠르다는 결과를 얻었다."

 

"프로야구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1루 베이스에서 다리(벤트 레그 슬라이딩)보다 손이 먼저 들어가는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이 더 빠를 거 같다. 팀 사기를 올려주는 효과가 있고, 선수들도 다리보다 손이 빠르다고 말한다."라며 모 방송국의 실험결과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고교 선수들이 실험에서 손보다 발이 빠른 결과는 "대상이 한정돼 있고 고교 선수들의 기량이 프로와 다르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 p.124~126

 

왼손 투수, 왼손 타자가 각광받는 이유

야구를 보다 보면 정말 신기한 점은 생활 속에서는 드물게 있는 왼손잡이를 정말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왼손잡이들은 다 야구를 하나 할 정도로. 그런 궁금증이 나만 있었던 것은 아닌가 보다. 저자는 이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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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완 투수가 던지는 공은 우타자의 몸 쪽으로 각도상 더 파고들어 더 빠르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몸쪽 깊숙하게 들어오는 공은 대응하는게 쉽지 않다고 한다. 또한 좌완 투수는 좌타자에게도 강점이 있는데, 우완 투수에 비해 수가 적은 좌완 투수의 공을 많이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생소하게 느껴져 치기 어렵다는 것이다.

 

좌타자 역시 유리한 것은 좌타석이 우타석보다 1루 베이스까지 1m가량 가깝다는 것이다. 간발의 차이로 결정이 나는 내야 안타의 경우 좌타자가 훨씬 유리할 수밖에 없다. 또한 타자들은 보통 당겨 치기 타법에 익숙한데, 좌타자의 경우는 1, 2루 사이로 가기가 쉽기 때문에 주자가 2루에 있을 경우 진루타를 치기도 쉽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장점으로 인해 국내 프로야구에 등록된 선수 중 왼손잡이의 비율은 20%가 훌쩍 넘는다고 한다. 보통 인구의 6~10% 정도가 왼손잡이임을 감안하면 월등하게 높은 수치이다. 4년 연속 통합 우승을 달성한 삼성은 9명의 베스트라인에 절반 이상이 좌타자였다고 한다.

야구 경기에서 심심치 않게 왼손 타자, 왼손 투수가 거론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김성근 감독이 한화 신인 선수들을 데리고 마무리캠프를 꾸렸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이번 캠프의 목표는 좌완 투수의 육성이라고 한다. 올해 권혁, 박정진 외에 특별한 좌완 투수가 없어 힘들었던 점을 토로하고, 이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 목표라는 것이다.

'왼손 강속구 투수는 지옥에서라도 데려오라'는 야구계의 명언은 진리인가 보다.

 

왜 그 쉬운 희생플라이를 못 치는 걸까

동점 혹은 1점차 승부, 1사 혹은 무사 3루의 상황. 더도 덜도 말고 딱 희생플라이만 치면 역전 또는 동점이 가능한 상황이다. 그 흔한 외야의 뜬공이 하필 그 상황에서는 번번이 침묵하기 일쑤다. 물론 투수가 외야플라이가 나오지 않도록 공을 던지겠지만 그럼에도 참 답답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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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야 플라이가 나오려면 낮은 공보다는 높게 들어오는 공을 쳐야 외야로 날아갈 확률이 높다고 한다. 실점을 할 위기에 몰린 투수가 높은 공을 줄리가 없다. 투수는 낮은 공으로 승부를 걸고, 타자는 높이 날아보내기 위해 눈높이를 높여 놓은 상태이니 낮은 공을 외야로 띄우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다.

 

"강력한 구위를 자랑하는 투수는 주자 3루에서 외야 플라이를 내주지 않기 위해 몸 쪽으로 빠른 공을 던지거나 포크볼로 유인하는데, 정상급 투수가 던지는 그런 공을 띄우기는 어렵다. 빠른 공을 노리고 있다가 슬라이더가 들어오면 배트 컨트롤로 앞에서 툭 밀어 칠 수 있다. 그러나 포크볼처럼 떨어지는 공을 상대로는 방망이 스윙 각이 잘 안 나온다." --- p.194~195

 

몸으로 하는 기도문, 루틴

타자가 타석에 섰을 때 절차가 꽤 복잡한 타자들이 있다. 한화의 김태균 선수는 타석에서 꼭 장갑을 풀었다가 다시 고쳐 맨다. 그리고 먼 곳을 한번 응시한 후 타격 준비를 마친다. 파울을 치고 다시 타석에 섰을 때 또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장갑이 그사이 헐거워졌나? 늘 경기를 보면서 궁금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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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기로 소문난 삼성의 박한이를 비롯 모든 선수들은 크고 작은 루틴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일종의 버릇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선수 스스로는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러한 동작을 루틴, 쿠세라고 별도로 지칭하는 이유는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고도로 집중하여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의식이자 몸으로 하는 기도문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야구는 왜 9회까지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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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야구는 21점을 먼저 내는 팀이 이기는 점수제였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경기 시간이 한없이 길어져서 사람들이 경기 규칙 개정을 요구하게 되었고 12진법의 영향을 받아 타순이 3회전 이상 돌아가는 9회(연장은 12회, 15회)로 정했다는 것이다. 타자가 아무도 출루를 하지 못하는 퍼펙트 경기가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9회까지 가면 1번부터 9번 타자까지 9명이 3번씩 공평하게 타격 기회를 갖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베이스볼 톡톡'에서는 야구의 기초적인 이론이나 원리를 다루고 있어 야구에 대한 깊이 있는 상식을 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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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야구를 즐겨보면서 야구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보니 거의 무지에 가까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궁금했던 것뿐만 아니라 잘못 알고 있었던 내용, 아는 줄 알았는데 모르고 있었던 것들을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한국시리즈가 한창이다.

책을 읽고 보니 그동안 놓쳤던 많은 것들이 하나하나 정지된 동작처럼 또렷이 보인다.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유희관의 느린공을 확인해보고, 투수들의 직구, 변화구의 종류도 배운대로 구별하는 연습을 해본다. 파울 타구를 잡지 않기 위해 몸개그를 하는 박석민의 동작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고, 파울인지 스윙인지 판독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미 타석을 벗어난 오재원이 아웃되는 상황도 이해가 되는 것이다. 박한이의 화려한 루틴 동작이나 코치의 복잡한 사인에 숨어있는 단순한 원리를 확인하면서 슬쩍 웃음도 지어본다.

 

끝나가는 시즌이 아쉽기만 하지만, 더 열렬히 응원할 수 있는 '프리미어 12'가 있으니 다시 한번 책을 꼼꼼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책을 옆에 끼고 내년 시즌이 어서 시작되길 기다려봐야 겠다.

 

위 서평은 넥서스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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