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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탄생 - 건축으로 만나는 유럽 최고의 미술관
함혜리 글.사진 / 컬처그라퍼 / 2015년 8월
평점 :
어제 아이들과 함께 음악회를 다녀왔다. 음악을 좋아하는
큰딸이 최근에 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해서 마음먹고 시간을 내기로 한 것이다. 공연장에 도착했을 때 다른 때 같았으면 공연을 생각하느라 주위를
둘러볼 틈이 없었을텐데 어제는 공연을 하게 될 건물이 먼저 눈이 들어왔다. 도심 속에 자리잡은 공연장 주위로 넓게 펼쳐져 있는 자연 경관과
깔끔하게 조성된 공원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음악을 들려줄 공연장이 위치한 건물도 위풍당당한 자태로 안내하고 있는 듯했다.
여러 번 방문했었는데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주변 경관이
먼저 눈에 들어온 이유는 바로 [미술관의 탄생]이란 책의 마지막장을 막 덮은 직후였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을 품고 있는 예술작품인 미술관에 책을 읽는 내내 흠뻑 빠져 있었더니 거리를 다녀도 온통 건축물만 보이는 것이다.
[미술관의 탄생]을 읽게 된 이유는 예전에 읽었던 책 때문이었다.
유럽의 여행지를 소개하는 책이었는데 유명한 미술관, 박물관 외에도 시골의 작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소박한 이야기도 담겨 있었다. 워낙 특색있는
시설들이 많은 곳이라서 그런지 예술품 외에도 그런 작은 공간의 이야기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래서 나중에는 그런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모아 놓은
책이 있다면 읽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던 참이었다.

[미술관의
탄생]이 딱 그런 책이었다. 내 생각이 들킨
것처럼 어쩜 이렇게 꼭 맞는 주제의 책이 출간이 된 것인지. 책을 받자마자 단숨에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읽어 내려갔다고 하기에는 사진이 많긴
하지만 하나라도 더 정보를 알려 주려는 저자의 노력덕분에 빡빡한 텍스트의 양도 결코 적지 않아 읽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럼에도
편하게 앉아서 즐기는 미술관 순례는 시간이 언제 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흥미로웠다.
건축에 대해
상식이나 지식이 없어도 책을 읽는데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일간지 기자인 저자의 특기를 살려 이해하기 쉽게 풀어쓴 자세한 안내와 건축가에 대한
소개도 보기 좋게 정리해주었기 때문이다. 유럽 현대
건축의 정점인 미술관에 대한 호기심만 있다면 저자의 안내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신문사 문화부
기자인 저자는 런던에 출장을 가게 되면서 그동안 구상했던 미술관 취재를 계획하게 되었고,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건축기행>이라는
꼭지로 6개월 간 연재한 후 이를 다시 책으로 묶어 출간하게 된 것이다. 책은 모두 4개의 파트로 나눠져 있다. 영국, 스페인, 프랑스가 한 파트, 그다음이 독일, 그리고
스위스, 오스트리아가 세 번째 파트로 나뉘어져 있고, 마지막은 이탈리아로 구성이 되어 있다.

책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영국박물관'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한 세기를 풍미했던 나라의 대표 박물관. 영국을 넘어 세계 인류의 문화와 역사를 지닌
유물들을 볼 수 있는 박물관이며 800만 점 이상의 소장품을 보유한 세계에서 가장 큰 박물관.
260년동안
꾸준히 진화해온 이 박물관은 2000년 밀레니엄프로젝트로 대 변신을 시도했다. 그 변화를 이끈 주인공은 영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건축가
'노먼포스터'였다. 그는 첨단 소재와 최신 공법을 사용하면서도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했던 하이테크 건축의 거장이라고 한다. 영국박물관 뿐아니라
책의 곳곳에서도 첨단과 자연을
조합한 그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독일 파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이다. 아니, 이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 깊었던 박물관이다.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사과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데, 이렇게 작은 위로라도 받고 있는 유대인들이 부럽기도
하고, 과거의 과오를 잊지 않고, 참회를 하고 있는 독일인들도 참 용기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현재를 사느라 과거의 너무 큰 고통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반성도 하면서, 일본의 도시 한가운데 이런 박물관이 생길 날을 간곡히 바래 본다.

스위스로 넘어가면 정말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 나온다. '파울 클레 센터'
자연 속에, 자연과 하나가 된 듯 디자인된 건축물도 물론 인상 깊었지만, 1만 점의 그림을 비롯해
음악가, 작가, 교육자로서 다방면에 업적을 남긴 파울 클레와 이를 지키고 연구해 온 결과를 시에 기증한 후손들, 그리고 파울 클레의 예술을
지키고 싶어 대규모 부지와 건축비를 선뜻 내놓은 모리스 뮐러 박사 부부, 여기에 추가되는 건축비의 시 재정지원 투표에 78%의 찬성을 한
시민들까지.
한 예술가를 존경하고, 예술을 존중하는 그들의 철학이, 실천이 부럽기만 하다. 끝없이 펼쳐진
자연과 하나된 미술관을 거닐며 삶 속으로 예술은 자연스럽게 스며들 것 같다.
"결정권을 가지 누군가가 원한다고 괴상한 건물을 시내 한복판에 들여놓는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모두가 사랑하고 공감하는 공간은 개인의 열정과 철학, 돈만으로는 만들 수 없으며 사회적 합의를 거쳐 모두의 뜻을 모아 만들어진다.
미술관 이상의 예술 공간 파울 클레 센터는 이렇게 태어났다." ---p.195

이탈리아로 가면 또 한 명의 예술을 진정 사랑하고 지켜냈던 예술의 전사를 만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총알이 달아드는 상황에서도 예술품을 구하기 위해 뛰어다닌 그녀 덕분에 지금은
가치를 따질 수도 없을 정도의 작품들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전쟁 중 헐값에 샀다는 이유로 큰아버지 솔로몬 R. 구겐하임 재단이 운영하는
비구상회화 미술관으로부터 거부 당한 그녀는 스스로 베네치아에 전시장을 마련해 자신의 컬렉션을 전시한다. 그곳에서 행복한 여생을 보내다가 생을 마감하기 10년 전
뉴욕의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이 페기의 컬렉션 초대전을 열었고, 그녀는 평생 수집한 컬렉션과 베네치아 저택을 구겐하임 재단에 기증하기로 한다.
세법 때문에 미국으로 가져갈 수 없게 되자 재단은 팔라초 미술관을 개조해 구겐하임 미술관 베네치아 분관 문을 열게
되었다.
평생을 예술 작품을 모으고 구하는데 바쳤던 페기의 무덤은 박물관 한 켠에 소박하게 자리잡고
있다. 입구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미술관 정원에는 수많은 걸작들이 전시되어 관람객들을 자연스럽게 맞이하고 있다고 한다. 목숨을
걸만큼 중요한 것이 예술이지만, 앞마당의 정원처럼 가까이 있는 또한 예술이라는 것을 한때 이 집의 주인장은 얘기해주고 있는 듯 하다.

처음에는 유럽으로만 봐도 좋다고 했는데 책을 읽노라니 유럽만 보는 것도 아쉽고, 미술관만 보는
것도 아쉽다. 건축가들의 작품들에 대한 설명을 듣다보면 다른 작품도 궁금해지고, 유럽 외의 지역의 미술관과 건축물은 어떨 지 궁금해져만 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건축과 건축가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도 찾아보고, 강의도 들어보면서 나름 최대한
이해해보려고 노력을 했다. 지식이 짧으니 모두 이해하는데는 한계가 있지만, 사실 거대한 실용성을 갖춘 예술품이라는 것만은 배우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사람,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예술로서의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건축가들의 고뇌가 그대로 다가온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고, 치유가 되고 휴식이 된다면 몰라도 좋지 않은가. 그런 건축물이 우리 곁에도 더 많아지기를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