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 다다오 일을 만들다 - 나의 이력서
안도 다다오 지음, 이진민 옮김 / 재능출판(재능교육)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에는 건축과 관련된 책을 의도적으로 찾아보게 된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건축을 하고 있는 사람 즉 '건축가'와 관련된 책이다. 건축에 대한 특별한 지식이 없는 내가 '건축'이라는 것에 자꾸 눈길이 가는 이유는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다. 사람이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공간이랄 수도 있고, 최근 아이의 관심사로 시작된 탄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또, 건축과 관련된 책을 읽다 보니 조금씩 조금씩 알고 싶은 호기심이 생겨서일 수도 있다. 정확하게 어느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결코 나는 경험할 수 없는 세계의 공간을 창출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에 빠져있다.
 
이 책을 읽기 전 같은 일본인 건축가 '구마 겐고'의 책을 읽었었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을 하고 있는 구마 겐고는 이 책의 저자 '안도 다다오'의 뒷세대라고 할 수 있다. 안도 다다오에게 영향을 받았기에 책에서는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구체적으로 그에 대해 알게 되었다. 노출 콘크리트 공법을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에도 대중화시킨 장본인이고, 그런 파격적인 기법은 그가 제도권 교육이 아닌 독학으로 공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라는 내용을 읽으면서 그에 대한 호기심이 들기 시작했다.
 
건축에 대한 지식이 없는 나이지만 십여년 전부터 눈에 띄기 시작한 노출 콘크리트 건물들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었기 때문이다. 저런 건물은 도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 왜 갑자기 저런 형태의 건물들이 많이 생기는 것을까? 당장 내가 다니고 있던 회사 역시 새로 사옥을 지어서 이전했을 때 같은 형태의 건물이었기에 의아했었다. 그리고 건물의 스타일도 유행이 있으니 유행하는 스타일인가보다 하고 넘겼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는 것을 보고 하나의 건물 양식으로 자리를 잡았나 했었다. 그 노출 콘크리트 양식을 바로 '안도 다다오'가 만들어내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한번도 대학에서 건축 공부를 하지 않은 그가. 당장 그가 궁금해졌다.
 
이 책 [안도 다다오 일을 만들다]는 그런 기대를 갖고 보게 되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 갈수록 책에서는 그의 학계에 평가나 업적은 찾기 어려웠다. 단지 그의 작품 사진에서 그 익숙한 형태의 공법을 볼 수 있었을 뿐이다. 책을 읽어 가면서 느꼈다. 그에게 외부의 평가나 공적은 중요한 것이 아님을. 그 정도 되는 위치라면 스스로 자랑스러워하고 드러내놓고 싶은 마음이 들법도한데 이 책에는 그런 느낌을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작품이나 결과가 아니라면 그저 이름없는 어떤 건축가의 소박한 독백을 듣는 것처럼 순수하고 담백하다. 그렇지만 그 밑바탕에는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건축에 대한 열망이 묵직하게 깔려있다. 그래서 담담하게 얘기하고 있지만 강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나란히 실려 있는 그의 작품들은 그가 열 마디를 하지 않아도 그 진정성과 열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책에 실려 있는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가장 먼저 직관적으로 드는 느낌은 깊은 고요함과 엄숙함이다. 콘크리트에서 느껴지는 단단함과 무게감은 깊은 심연과 같은 압박감을 주지만 그 사이를 뚫고 조용하게 내리비치는 빛은 온화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콘크리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강렬한 힘을 느끼게 해준다. 단단함에서가 아니라 부드러움에서 진정한 강함을 느낄 수 있는 역설적인 대비는 그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시도는 그의 초기 작품 (겨울에는 보러가는 것이 불안하고 꺼려진다고 하는) '스미요시 나가야 주택'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여 '빛의 교회'에서 절정을 이루고, 그 이후의 작품에서는 점점더 안정되고 발전을 이루게 된 것 같다.
 
 
빛의 교회는 예산이 부족해 겨우겨우 완공을 했다고 하는데 한쪽 벽면을 뚫어 빛으로 완성한 십자가는 사진으로 보는대도 그 엄숙함에 압도된다. 세계 어디를 가도 이런 예배당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독창적이면서도 예술적이다. 그가 아니면 결코 만들 수 없는. 건축에는 문외한이지만 분명 그만의 독특한 창작의 세계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세계적인 록그룹 U2의 보컬 보노가 이 교회를 보려고 아일랜드에서부터 직접 와서 설교 단상으로 올라가 'Amazing Grace'를 불렀다는 장면에서는 마치 그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 나 또한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 감동을 간접적이나 느끼고 싶어서 나나무스쿠리의 원곡을 찾아 들었을 정도로. 그러면서 빛이 만들어내는 십자가 속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는 장면을 상상하고 또 상상했다. 교회라는 특수한 건물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텅 비어있던 공간에 이렇게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이 바로 '건축'이 아닐까 그의 작품들을 하나 하나 볼 때마다 강하게 느껴진다.
 
 
 
퓰리처상을 제정한 퓰리처 부부가 의뢰했던 미술관 역시 빛이 말하고 있는 예술적이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다. 처음 미술관을 의뢰받을 때 초대받아 갔던 부부의 집 식당에 걸려 있었던 모네의 그림 <수련>이 무척 인상적이었다는 부분을 읽을 때는 빛을 표현하려고 화가 모네의 작품과 빛으로 표현하려고 하는 그의 작품이 오버랩이 된다. 그렇게 빛으로 그림을 그리는 듯한 미술관의 내부 모습은 한없이 인상적이다.
 
 
그렇게 자신에 대해서 한없이 낮추고, 겸손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던 그이지만 도전하지 않는 일본의 젊은이, 획일화되고 점수 위주로 흐르고 있는 교육 제도에 대해서는 강하고 힘있게 비판을 한다. 어쩌면 제도권에서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바깥의 시선으로 그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온실 속에서 한없이 안전 지향적으로만 공부하려는 성향은 대학을 들어가서도 여전하며, 건축일을 할 때 역시 연장된다고 그는 꼬집는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학교를 포기하고 독학할 수 밖에 없었지만 꿈을 포기하기 않고 끝까지 버텨내며 결국 이루어냈고, 더 큰 꿈을 위해 세계로 시야를 넓혔던 그였기에, 비난도 비판도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아 한 단계, 한 단계 올라온 그였기에, 도전도 용기도 없는 지금의 학생들이 안타깝게 보일 것이고, 일본의 미래도 불투명한 위기가 느껴졌을 것이다. 진심으로 일본의 미래를 걱정하는 그의 마음을 읽는데 그 모습에서 우리의 미래도 보인다. 흡사 우리에게도 따끔한 충고하는 것처럼 우리 모습도 다르지 않아 씁쓸하다.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은 부모의 강요에 의해 지식을 주입받은 학원에 다녀야 하고, 창조력을 기르기 위한 소중한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 본래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자연과 교감하며 자유롭게 노는 가운데 호기심을 기르고 감성을 닦으며 도전하는 용기나 책임감을 키워 가는 법이다. 그러나 지금 아이들은 부모가 깔아 놓은 레일 위를 달려가기에 급급하고, 부모의 과보호 속에서 자라나고 있다. 그래서자기 스스로 생각해 보는 경험이 절대로 부족하며, 긴장감도 판단력도 자립심도 없이 성인이 되어 사회를 지탱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중략)
점수에 의한 수험생 선발과 대학 서열화를 더욱 가중시켰다. 젊은이들의 능력을 숫자로 대치하고 본래 많은 가능성을 가진 나이의 학생들을 성적표 방식의 시험으로 단순히 우열을 가리는 입시 전쟁이 나라 전체의 활력을 앗아 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의 활력과 교육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입시 제도를 근본부터 바꾸지 않으면 이 나라에 다시 빛은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대학 교육을 받지 않았다.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다른 사람보다 더 강하게 가져왔다. 그래서 의지가 약하고 사람과 직접 부딪치려 하지 않는 심지가 여린 젊은이나 아이들을 보면 일본의 장래에 대해 강한 위기감을 느낀다.
인간성을 기르는 교육을 통해 자기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가진 '자주적인 개인'을 만들고, 가족이나 지역에 대한 애정을 가진 일본인의 국민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 p.246~247
 
책을 읽기 전에는 그가 천재인 줄 알았다. 건축과 관련된 감각과 재능을 타고나 정식 교육이 필요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을 갈 수가 없어 독학이라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독학을 하면서도, 건축을 하면서도 번민도 하고 좌절도 하고 갈등도 한다. 그도 똑같은 보통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믿고 몰두했고, 직접 부딪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한 발씩 나아가 결국 지금의 그를 만들어냈다. 그는 타고난 천재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낸 천재였던 것이다.
쇠를 달궈 모양을 만들어내듯 그는 그렇게 뜨거운 열정으로 용광로에 몸을 던져 자신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타고난 천재라고 생각했을 때보다 더 그가 천재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가 더 아름답고 숭고하게 다가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