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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처럼 반론하라 - 원하는 대화를 하고 싶다면
우에노 마사루 지음, 김정환 옮김 / 끌리는책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영화 '변호인'의 투박하지만 논리적이며 핵심을 찌르던 변호사의 반론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문제가 해결되는 결정적인 장면이기도 했지만, 막혀있던 것이 터져나가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해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일상 생활에서는 그렇게 통렬하게 반론할 기회가 많지는 않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말해야 하는 크고 작은 상황은 늘 존재한다. 그러한 때 상대의 의견에 제대로 반론을 하지 못하고 불이익을 당하거나 돌아서서 후회하는 경우는 누구나 한 번 정도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조직에 몸을 담고 있거나 고객을 주로 상대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까다로운 반론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는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한다. 때로는 조직 내에서, 때로는 고객과의 관계에서 ''아'다라고 '어'다르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 그대로 말 한 마디가 민감하게 반응하여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신중하지만 힘있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던 것은 이러한 환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얼마 전까지 배웠던 토론에서 '반론'이 가장 핵심적이면서도 중요한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자신들의 입장을 내세우는 입론은 미리 준비할 수 있지만 이를 반격하는 상대의 공격은 미리 준비한다고 해도 현장에서는 많이 달라질 수 밖에 없는 상당히 유동성이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냉정함과 순발력이 동시에 요구되는 반론이야말로 어찌보면 토론의 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판에서 변호사의 반론 능력과 다르지 않아 설득하는 방법을 배울 때 주로 변호사가 집필했던 책을 위주로 보기도 했었다. 지금은 잠시 접었지만 긴장감 넘치는 상황은 아니더라도 대화 혹은 설득 과정의 일부로서 여전히 '반론'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고, 배워야 할 부분이다.
[변호사처럼 반론하라] 이 책을 보자마자 읽고 싶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 책 역시 저자는 변호사이다. 앞에서도 얘기한 것처럼 변호사가 전하는 설득이나 반론의 방법을 다룬 책은 꽤 많이 나와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이 책에 주목했던 이유는 바로 '조용하고 부드럽게 내 의견을 말하는...'이라는 부제 때문이었다. 영화에서처럼 강도높고 냉철하게 말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조용하면서도 부드럽게 그러면서도 힘을 실어서 내 의견을 상대에게 피력할 수 있는 방법이 과연 무엇일까 상당히 궁금했기 때문이다. 논증의 방법을 얘기하는 책들을 꽤 본 편이지만 이 책은 그런 이론적인 내용이 아니라 사례나 상황별로 실전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53가지의 반론의 기술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책을 받자 느껴진 첫 느낌 역시 '부담감'이 없다는 것이었다. 200페이지 정도의 분량에 일본 특유의 다이제스트같은 느낌과 내용을 함축해놓은 실용적인 편집 기법이 눈에 띈다. 1장 "노"를 "예스'로 바꾸는 반론, 2장 불리할 때 사용하는 반론, 3장 약점을 드러내지 않고 이기는 반론, 4장 심리트릭을 활용한 반론, 5장 유형별 효과적인 반론까지 상황에 따라 적용해볼 수 있는 반론의 방법을 53가지 만나볼 수 있다. 설명이 늘어지지 않고, 핵심적인 부분만 집중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이해하기도 쉽고, 그때그때 찾아보기도 쉽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2장 불리할 때 사용하는 반론에서 제시한 "논점과 관계없는 오류에 일일이 반론할 필요는 없다"는 반론을 할 때 격앙되면서 혹은 핑퐁이 오가면서 범하게 쉬운 실수를 예리하게 짚어내고 있다. 흥분하다 보면 상대의 모든 말에 반박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다 보면 논점에서 벗어나면서 상대의 패에 말리게 되거나 소득없는 실랑이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게 된다. 미리 이러한 방법을 의식한다면 그러한 상황에서 놓여진다고 해도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작은 실수를 의기양양하게 바로잡는 당신을 보며 상대는 '자신의 불리한 상황을 숨기려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본래의 논쟁을 피하고 논점을 흐트러뜨리려는 의도가 있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래의 토론 대상과 관계없는 오류에는 반론하지 않는 편이 좋다.
이것은 당신을 불리한 상황으로 몰아넣으며, 결과적으로 당신 자신도 본래의 논점을 잃어버릴 우려가 있다. 상대의 말실수가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 거기에만 생각이 쏠려 무슨 토론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의 말실수를 발견해도 상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된다면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것이 성숙한 토론 자세라고 할 수 있다.
'말실수일 뿐', '조금 착각했을 뿐' 하고 흘려넘기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상대가 입시 문제처럼 틀린 부분을 찾아보라며 일부러 그렇게 말했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p.84~85
이외에도 "약점 지적에는 침묵하거나 답변을 늦춰라"에서는 "상대가 '저 사람은 그런 한심한 질문에 대답할 만큼 한가하지 않구나. 좀 더 중요한 문제를 안고 있어'라고 생각하도록 당당히 침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상대는 '내가 핵심에서 벗어난 질문을 해구나'라고 생각해 더는 추궁하지 않을 것이다"와 같은 난감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지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있다.
"경청과 침묵을 병행하라"
"먼저 부정적인 면을 언급한 후 반론하라"
"상대가 일반론으로 공격해오면 예외를 일반화하라"
"약한 '나'는 '우리'로 바꿔 말하라"
이처럼 각 장의 제목을 읽는 것만으로도 반론의 상황에 따른 적절한 대응법을 알 수 있다. 간결한 설명과 더불어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그래픽은 더 쉬운 이해를 도와준다.
이쯤되면 반론이 상대와의 토론이나 협상에서 반드시 이기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반론'은 토론을 제대로 된 곳으로 잘 정박시키기 위한 것이 목적이다. 그런 기능을 할 때 가장 빛나는 것이며, 저자가 머리말의 제목으로 쓴 '대화의 꽃'으로서의 제 기능을 다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검사 또는 변호사로서 법률에 의거해 논쟁을 벌였지만, 아무리 검사나 변호사라고 해도 똑같은 사람일 뿐이며 심문을 받거나 상담을 요청하는 상대 또한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사람이다. 법률 이전에 인간의 심리와 감정 기복을 무시해서는 올바른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 요컨대 협상이나 토론 중에 '반론'이 성공하더라도, 그것은 자신에게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고 타당한 결론을 얻음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상대의 이익으로도 연결되는 반론이어야 한다. 이것이 내 철학이다. '토론에서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서로의 오해를 풀거나 고집스러운 생각 혹은 느낌에 숨구멍을 뚫어 정보의 소통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서로에게 이익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 p.5~6
"반론은 토론에서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라는 뒷표지의 문구는 반론의 본질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일 것이다. 반론을 제대로 알고, 익히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결론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고, 이 책은 그런 도움의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