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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에 싸인 미술관 - 비밀스러운 작품과 미술가에 관한 36가지 이야기 ㅣ 시그마북스 미술관 시리즈
엘레아 보슈롱 외 지음, 김성희 옮김 / 시그마북스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몇년 전 즐겨봤던 프로그램 중에 KBS의 '명작스캔들'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기존에 음악과 미술을 소개하던 교과서적인 프로그램과는 달리 예술과 관련된 야사와 같은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내는 그 프로그램은 그동안 명작이 갖고 있던 품위나 경직된 시선들에서 자유로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 누구보다 자유로운 두 영혼 조영남과 김정운 교수가 들려주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이야기들은 예술적인 수다를 떠는 듯한 신선함이 느껴졌었다. 그전까지 미술작품에서 느껴졌었던 고압감은 수다스럽게 들려주는 그 이야기들을 통해서 친근하고 편하하게 바뀌었다. 물론, 그것을 만들어 낸 예술가들의 혼이야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이겠지만 말이다.
[수수께끼에 싸인 미술관]을 처음 보았을 때 그 프로그램 '명작스캔들'이 떠올랐다. 예술 작품에 대한 분석이나 교과서적인 지식이 아닌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것같은 그 이야기들을 꺼내어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순수한 의도로 그려졌든, 어떤 계기로 그려졌든 하나의 작품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 이야기는 화가에 의해서 이미 세상에 알려진 경우도 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경우도 있고, 화가가 무명이다 보니 남겨지지 않은 경우도 있다. 때로는 일부러 작가가 비밀로 한 경우도 있고, 잘못 왜곡되어 전달된 경우도 있다. 작품은 모든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단지 알듯 모를 듯한 단서만을 전해줄 뿐이다. 작품이 주는 예술적인 감성을 그대로 느끼는 것보다 사람들은 그 작품이 어떠한 뜻을 담고 있는 지, 어떠한 비밀을 품고 있는 지 진실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파헤쳐 보고 싶어 한다. 작가가 그것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비밀을 캐고 밝히고 싶어하는 것은 예술 작품에 대한 호기심도 예외일 수 없는 어쩌면 인간의 본능일 것이다. 그 작품의 비밀이 풀어지는 그날, 그 작품의 예술성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까? 아마도 조금은 다르게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모를 때 느껴졌던 아름다움과는 분명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될 지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그 작품의 모든 비밀을 낱낱이 파헤쳐 보고 싶어한다. 첨단 기기의 도움을 받고서라도. 그것이 옳은 지 그른 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 이전에 느꼈던 신비로움은 더 이상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이처럼 미술 작품의 비밀을 밝혀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책은 아니다. 단지 그러한 논란에 휩싸여 있는 작품들이 어떤 작품들이고, 어떠한 작품에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지를 소개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반대로 그 비밀까지 함께 작품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법을 배우기를 바란다. 그것이 아름다운 오해와 착각일지라도 말이다.
"이 책의 목적은 미술품들의 수수께끼에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수수께끼를 푸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작품의 의미란 남김없이 파헤쳐질 수 있는 게 아님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작품이 지닌 비밀스러운 면을 즐기는 법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 <서문> 中
이 책은 '운명의 수수께끼', '정체성의 수수께끼', '창작의 수수께끼', 의미의 수수께끼' 이렇게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스트 섬의 거대 석상인 모아이나 페루 나스카 평원에 그려진 지상화처럼 이미 불가사의로 널리 알려진 작품도 있지만, 존재하는 것 같긴 하지만 존재하지 않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앙기아리 전투>와 같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나 전문가들이 골탕을 먹고 있는 뒤샹의 사후 반전 작품 <주어진 것 1. 폭포, 2. 가스등...>, 광부에서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를 따라 화가가 되어 그 목소리를 따라 800점이나 되는 작품을 남긴 '오귀스트 르사주'까지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다양한 예술 작품의 수수께끼를 만날 수 있다.
각 작품들마다 작품에 대한 배경과 논란이 되고 있는 의문들, 현재까지 알아낸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좀더 기술이 발달한다면 어쩌면 그 작품들의 비밀이 상당 부분 풀릴 지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품은 작품 하나를 잃을 지도 모르겠다.
의도하지 않은 비밀이 풀리기 전까지 이 책에 실려 있는 36개 작품의 수수께끼를 맘껏 누려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