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세계 문학 에세이 - 청소년의 지성과 감성을 키우는 허병두 선생님의 문학, 삶, 여행 해냄 청소년 에세이 시리즈
허병두 지음 / 해냄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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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행과 관련된 책이 그야말로 봇물처럼 출간되고 있다. 처음에는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 대한 동경처럼 읽게 되었는데 여러 책을 읽다 보니 여행과 관련된 책도 성격과 분야가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힐링의 차원에서부터 한 분야에 대한 심도깊은 탐색까지 정해진 틀이 없으니 그 종류는 어마어마하게 다양하다. 처음에는 풍광이 멋진 책을 위주로 읽기 시작했는데 권 수를 거듭할수록 사람사는 곳은 다 같은 느낌의 풍경에 식상해지기 시작했다. 직접 가본 것도 아닌데, 반복되는 사진과 감상을 반복해서 읽다 보니 책만으로도 여행의 피로가 쌓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 동안은 읽는 책의 종류를 바꾸기 시작했다가 또 몸이 들썩거리면 다시금 손을 더듬어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떠난다. 경비도 극히 절약되고, 피곤하지도 않으며, 여행지의 상세한 정보를 놓칠 염려가 없는 이 여행도 나름 매력적이다. 그렇게 여행책을 탐독하다가 최근에는 주제를 조금 한정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유명한 관광지는 아니더라도 요리, 베이커리, 미술, 디자인 등 주제를 가지고 탐색하는 여행은 여행지를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게 한다. 단순히 달라서가 아니라 그 여행지만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청소년을 위한 세계 문학 에세이]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기 시작한 책이다. '세계 문학'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작품의 주인공의 발자취나 작가의 흔적을 따라가는 그야말로 문학여행이었다. 세계문학이라야 읽은 책이 몇 권 되지 않았기에 이 참에 그 작품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과 그 작품과 작가를 태동한 그 곳을 직접 찾아가서 그 곳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해준다는 책의 성격이 여간 여간 매력적이지 않았다. 특히나 '청소년을 위한'이라는 구체적인 독자 대상의 명시는 내가 청소년이 아니어서 불편하거나 소외감을 느끼지 않은 것은 물론 그 눈높이에서 고전을 접근할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편안하고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읽기 시작하니 저자의 문학에서 있어서의 박식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깊이있는 글이었으며 그럼에도 이해하기 쉬운 담백한 문체였다. 정말 '청소년을 위한' 책이 맞나 싶을 정도로 깊고 넓은 범주를 다루고 있어 나같이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성인에게는 딱 안성맞춤의 책이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각주나 흥미를 돋우는 코믹한 일러스트만이 이 책이 청소년 대상의 책이라는 느낌을 들게 했다. 다루고 있는 작품과 작가에 대한 좀더 자세한 설명이나 함께 읽어보면 좋을 다른 책들에 대한 깔끔한 정리는 고전에 대한 관심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해준다.
 

 
여행을 꿈꾸기 시작하면서, 책에 대한 욕심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책과 관련된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하곤 했는데 저자는 내가 꿈꾸던 그런 여행을 너무도 완벽하게 하고 있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도보, 자전거 등의 여행을 수도 없이 다녔고, 이 책에서 방문한 나라도 수차례 다녀왔다고 하니 그야말로 베테랑 여행자요, 국어교사를 필두로 평생 책과 관련된 일을 하였으니 책에 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전문가다. 그 둘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그야말로 내가 꿈꾸는 지적, 감성적 여행의
모습 그대로를 담고 있었다.
 
여행과 관련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단 한 컷의 여행지 사진이 없다. 처음 책을 마주했을 때 사실 가장 황당한 부분 중에 하나였다. 여행책의 백미는 모름지기 타국의 멋진 풍경이 실린 사진인데 한 장도 실려 있지 않다니.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저절로 머릿 속에 그려지는 풍경이 그려지고, 문학작품의 그곳, 그 시절로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사진이 실렸다면 오히려 그 상상이 현실로 제한되어
버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워낙 풍부한 감성으로 정갈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낸 저자의 글솜씨 덕분에 사진보다 더 생생한 여행을 할 수 있다.
 
도보, 자전거, 자동차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종횡무진 다니는 여행의 길은 지루할 틈이 없고, 작품의 인용을 통해 원작의 맛을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작품의 의미나 작가의 배경까지 친절하게 풀어놓아 줌으로써 작품을 몰라도 작품을 이해하고, 여행의 여정에 동행하는데 전혀 어려움은 없다. 국어교사다운 섬세한 설명은 행여 거대한 고전의 벽 앞에 좌절할까 싶은 염려로 느껴진다.
 
부끄럽게도 여기에 나온 책 중 대다수는 아직 읽지 못했다. 그러나 첫 스타트를 끊은 작품 하이타니 겐지로의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는 다행히도 읽었었기에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여행을 시작했다. 이렇게 일본을 시작을 아테네, 크레타 섬, 피렌체로 지중해를 돌아본 후, 에스파냐로 넘어가서, 산티아고, 피니스테레, 포르투칼을 거치고, 아프리카, 터키, 다시 유럽으로 돌아오는 여정 속에 그 나라 혹은 그 지역의 가장 상징적인 작가와 문학작품을 만나봄으로써 그 곳 사람들의 정신적인 근간과 뿌리를 살펴본다. 이처럼 겉으로 보여지는 풍경이 아닌 내면으로의 여행에 문학작품만한 것은 없을 듯 싶다.
 
 
다름을 발견하기 위해 여행을 하지만 결국 같음 깨닫게 되는 것이 여행이라고 했던가. 세계를 누비면서 만난 문학 작품에서는 우리와 닮은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중세 지배 계급의 전유물인 라틴어를 마다하고 이탈리아어로 『신곡』을 썼던 단테. 민중을 위한 그의 이러한 행동은 강한 반발을 나았지만 그럼으로 인해 이탈리아 문학의 한 걸음 성장했다.
고위관직의 자제였지만 한문을 마다하고 최초의 한글 소설을 썼던 시대의 천재이자 혁명가였던
허균과 겹쳐지는 대목이다. 짧은 생으로 빛을 발하지 못하고 희생된 그의 재능이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다르지만. 모진 세월을 보냈어도 좀더 오래 살았다면 『신곡』을 능가하는 걸작이 나오지 않았을까.
 
그런 닮음과 다름 속에서 나를, 우리를 한 발 떨어져서 볼 수 있는 것이 여행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문학 작품은 굳이 발품을 팔지 않아도 그렇게 우리를 객관화 시켜볼 수 있는 또다른 여행 방법이다. 이 책은 그 두 가지 여행의 기쁨을 모두 느껴볼 수 있는 행운을 맛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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