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 2014.3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한 해의 시작은 1월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3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새로운 시작을 한다. 3월은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싱그러운 시작의 설렘으로 가득한 달이다. 병아리처럼 노란 색깔의 바탕에 갓돋아난 새싹을 날개삼아 힘차게 비상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 [샘터 3월호]의 표지는 힘찬 출발을 하는 사람들의 희망과 설렘, 두근거림을 그대로 전해주는 듯하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따뜻한 표지와는 달리 이번 호는 조금은 무겁고, 조금은 아픈 사연들을 유난히 많이 만나볼 수 있다. 봄이라고 해서, 출발이라고 해서 늘 힘차고 완벽한 것은 아니듯이. 어설픈 출발도, 가슴아픈 출발도, 힘겨운 출발도 있다. 어쩌면 행복과 불행, 희망과 절망은 늘 함께 공존하며 저울처럼 조금 더 무게가 실리는 쪽으로 기울어지기를 반복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화사한 마음으로 펼쳐들었다가 이내 가슴에 돌덩이리를 얹은 듯한 통증으로 숙연해진 이유는 바로
<이달의 만난 사람> 때문이다. '정신대 할머니들의 삶을 노래하는 뮤지컬 배우 강효성'과의 만남을 글로 옮긴 '꽃신 신고 먼 길을 가네'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한 대 강하게 얻어맞은 것 같은 심한 통증을 불러왔다.
얼마 전 어린이들을 위한 책소개를 하는 책을 읽다가 정신대 할머니들의 삶을 다룬 어린이 대상의 도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과연 그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가슴이 먹먹했었는데 이 글을 접하는 순간 아직도 일제강점기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구나하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진다. 사과는 커녕 점점더 망언을 일삼는 일본의 태도에 분노가 일어나면서 속시원히 해결이 되지 않는
상황이 더 아프고 고통스럽다. 시대가, 사회가 만들어낸 비극을 눈감고, 귀닫은 채 그들의 업보라고 외면하는 차가운 현실. 그들에게 반짝 관심밖에 가지지 않는 우리 모두가 역사 앞에서 그들에게 사죄를 해야하지 않을까.
 
"강효성은 <아가씨와 건들들> <돈키호테> <마리아 마리아> 등에 출연한 뮤지컬 스타이다. 그를 만나기 전날이었던 1월 26일, 황금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이 땅에 남은 정신대 할머니는 55명이 되었다.
썼다가 지웠다가, 두 시간에 걸쳐 그분을 추모하는 글을 써서 SNS에 올리면서 강효성은 그분이 가슴에 묻었을 상처를 생각했다. "우리 딸이 열일곱 살이에요. 그 어린 나이에 듣도 보도 못한 곳에서 그 많은 남자를.... 여자로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운명이었던 거죠. 배우는 경험을 끌어내고 상상을 보태 연기를 하는데, 그 어떤 경험과 상상으로도 그분들의 삶에 다가가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한 발 한 발 무대에 오늘 날을 꿈꾸며 어렵게 가고 있는 <꽃신>은 정신대에 끌려간 한 처녀가 주인공인 뮤지컬이다. 강효성이 연기할 그녀 순덕에게는 어어쁜 동생과 마음을 나누었던 정인, 가진 거라곤 맨손뿐이어서 시집갈 딸을 위해 그 맨손으로 꽃신을 만드는 아버지가 있다. 하지만 자세한 스토리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살아 계신 분들께 누가 되어선 안 되니까, 검증에 검증을 거치다 보니" 아직도 토론 중이다." --- p.17
 
아직도 토론 중이라는 말에 강한 공감이 일었다. 현실인데 상상하기가 힘들다. 상상을 넘은 고통스런 그 진실이 어떻게 쉽게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더 많은 시간이 걸려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딱 우리가 봐야 할, 알아야 할, 느껴야 할 그 진실로 제대로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그 외침이 더 많은 사람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특별히 정해진 주제는 없지만 우리 이웃들의 소소하고 행복한 삶의 모습을 전해주는 <행복일기>.
평범한 이웃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애환이 깃든 다양한 굴곡진 삶을 만날 수 있다. 이러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읽노라면 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지, 그럼에도 희망을 가꿔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저절로 존경을 표하게 된다.
이번 달에 유난히 눈에 띄는 글이 있다. 필자를 포함 70세를 넘기 노인들이 의기투합하여 장장 10박 11일의 몽골 여행에 나섰다는 이야기이다. 글을 읽고 나니 '이 나이에...'를 달고 살았던 내가 문득 부끄러워졌다. 과연 무얼하기에 늦은 나이가 있을까? 도전하지 않았으면 결코 알 수 없었을 행복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무언가를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 그래, 해보자. 오늘은 내일보다 빠르지 않은가.
 
 
2월은 감동과 흥분이 물결쳤던 한 달이었다. 차가운 얼음의 냉기도 녹일 만큼 뜨거운 땀과 눈물이
얼룩졌던 소치 올림픽. 실시간 시청을 하느라 거의 열을을 밤과 낮을 바꾸어 보냈다. 그 순간의 감동을 함께 느껴보고 싶어서. 
6월에는 또다시 밤낮을 바꾸게 만들 지구촌 행사가 기다리고 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축구를 그다지 즐기지 않지만, 국제 경기 만큼은 열혈팬을 자처한다. 반짝 관심의 근원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축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축구 수집가의 보물창고>의 주인공 이재형 씨. 매회 꺼내도 꺼내도 새로운 이야기 보따리가 마르지 않는다. 축구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반짝팬도 푹 빠져서 읽게 만든다. 이번 호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열렸던 국제대회, '제2회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당당히 우숭했던 선수들에게 예산 문제로 가짜 금메달을 수여했던 에피소드를 다루었다. 그 가짜 금메달의 저주에 걸려 이후 열 세 번의 경기가 열렸지만 그 뒤로는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다는 슬픈 사연이다. 이제라도 다시 바로 잡으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데, 과연 그 저주는 풀릴 수 있을까? 웬만한 소설보다 흥미롭다.ㅎㅎ
 
 
이 달의 특집은 가장 강렬한 출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날 '생일'을 주제로 싣고 있다. 기쁜 날인 만큼 힘들 때면 더 애닯고 서러운 날. 그러나 그 살갗을 파고 들던 고통을 품어 낸 마음은 한층 더 단단해진다. 그렇게 슬픔을 넘어 바라 본 기쁨은 더 큰 행복을 선사한다. 진정 다시 태어나는 날이요, 진짜 생일이다.
 
 
저마다의 가슴 뜨거운 사연들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글이 있다. 저자와 편집자로 만나, 저자의 분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던 날 맞이한 저자의 죽음. 그날은 하필 편집자의 생일이었다. 고 장영희 교수가 바로 그 저자였다. 그렇게 우연처럼 탄생과 죽음, 삶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필자는 생일의 축복보다 더 큰 삶의 경건함을 선물로 받게 되었다. 매년 생일날 참례하는 장영희 교수의 추모 미사에서 그녀는 해마다 그 선물을 꺼내보곤 한다고 한다. 아픈 만큼 우리는 조금씩 성숙해간다.
 
 
연약하게만 보이는 새싹도 실은 땅 속에서 엄청난 압력을 이겨내며 혼신의 힘을 다해 겨우겨우 흙을 뚫고 세상으로 고개를 내민다. 시련이 있었기에, 아픔이 있었기에 초록은 더욱 푸르게 빛난다.
3월은 그런 아픔을, 고통을 이겨내고 마침내 눈부신 성장을 향해 출발하는 그런 달이다.
[샘터 3월호]는 그렇게 조금은 묵직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그 새로운 출발을 힘차게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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