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가루 백년 식당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일본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 있다. 특히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속 5센티미터>, <언어의 정원>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는 또다른 섬세한 느낌의 감성의 심장부터 촉촉해지는 그 아련한 느낌을 준다. 애니메이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유일하게 봤던 작품들이 미아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들이었는데, 또 한명의 멋진 감독을 만날 수 있게 되어 한참 행복해하고 있었다. 소설 한편을 읽은 것과 같은 묵직한 무게감에 실사보다 더 실사같은 섬세한 그림은 현실적인 상상을 극대화 시킨다. 함축적이고 절제된, 상징적인 대사는 작품 속으로 한없이 파고들게 했다. 바쁜 일정 때문에 그로기 상태에서 휴식차 보기 시작했던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 어느새 그의 작품을 연달아 찾아서 볼 만큼 팬이 되어 버렸다.
 
자주 볼 수 없는 작품에 대한 아쉬움과 그 정서가 막 그리워지고 있을 무렵, [쓰가루 백년 식당]을 보게 되었다. 소설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말랑해진 그 감성의 느낌을 느끼고 싶어졌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그리고 '백년 식당'으로 미루어 볼 수 있는 아주 오래된 가게와 보일 듯 말 듯한 두 남녀가 그려져 있는 표지를 본 순간 <초속 5센티미터>의 감성이 그대로 전달이 되는 듯 했다. 아무래도 일본 작품이라는 동질성때문일까. 어쩌면 영화를 보고 느꼈던 그 아린 느낌을 또다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표지를 넘겼다.
 
약속된 일정이 있어 대충 어떤 느낌인지, 내가 생각했던 그런 책인지만 살짝 보고, 시간을 내어 읽으려고 한 두 페이지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웬걸...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결국에는 끝까지 앉은 자리에서 모두 읽고 말았다. 적지 않은 두께였지만 술술 읽혀져서 다 읽는 데는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은 후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에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이야기는 메밀국수를 파는 '오모리 식당'을 연 '오모리 겐지'부터 시작된다. 각 장마다 화자도 시대도 변한다. 현재와 과거, 다시 더 과거를 넘나들며 이야기는 하나의 주제를 향해서 달려간다. 화려한 영화를 누렸던 쓰가루 지방은 이제 허름한 시골로 전락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키며 메밀국수의 맛을 지켜내려 하고 있는 3대 '오모리 데쓰오'. 그러나 그 아들 오모리 요이치는 진정한 자신을 찾아 헤매고 갈등하고 번민한다. 선택의 여지없이 가업을 이어받은 아버지와는 달리 '선택'이 가능하다. 이을 수도, 버릴 수도 있는 그 상황에서 요이치는 고민하고 방황하고 갈등한다. 안개 속에 쌓인 것 같은 보이지 않는 소리를 듣기 위한 그의 번뇌는 책의 마지막을 향해 갈  때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자신의 꿈을 찾아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는 여자친구 쓰쓰이 나나미를 보면 한없이 초라해지기만 하다. 아르바이트로 하고 있는 풍선아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그것은 아닐까 혼란스럽기도 하다. 가슴 속에서 들리는 소리는 너무나 작고 희미하다. 그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그 소리는 자꾸 도망을 간다.
 
주인공 오모리 요이치는 우리 주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청년이다. 똑똑하지도, 뛰어나지도 않은 그가 자신의 진정 원하는 '가치'를 찾아 가는 과정을 바라보노라면 좌충우돌하고 있는 내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같다. 그리고 '꿈'이란 거창하지도, 명쾌하지도 않다는 것을 작가는 그를 통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작고 연약한 벚꽃의 꽃잎이 모여 화려한 장관을 이뤄내는 것처럼 작고, 갸날픈 하루하루가 모여, 포기하지 않는 '가치'를 지켜내려는 노력의 시간이 모여 결국 만개한 벚꽃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것을 전하는 듯하다.
 
화려하고 아름답던 시간들도 지나면 흑백의 시간으로 남는다. 눈이 시리도록 화사한 사랑의 시간도 떨어지는 벚꽃처럼 질 지도 모른다. 영원하다고 약속을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약속할 수 없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벚꽃이 진다해도 다음 해를 기약할 수 있다. 벚꽃은 또 내년 그 자리에서 화려하게 피어날 것이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굵어질 것이고, 든든하게 그 자리를 지키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랑', 그것을 지켜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 이후의 결과는 떨어지는 벚꽃처럼,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현재를, 지금을 굳건히 지키며 살아가다 보면 시간을 넘어 그 소중한 '가치'는 영원히 이어지게 될 것이다. 표지에서 보여지는 벚꽃과 '오모리 식당'은 대조적인 듯하지만 실은 한 모습으로 그 아름다움과 가치를 전해주고 있다.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느낌은 책을 덮는 순간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마치 애니메이션을 그대로 소설로 옮겨 놓은 듯한. 작가는 꽤 유명한 작가라고 하고... 이 작품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소설과 영화의 결말은 조금 다르다고는 하지만, 영화도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