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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맛보고 행복하다
장완정 지음 / 비앤씨월드 / 2013년 11월
평점 :
'파티쉐'라는 직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 전국을 강타하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에서였다. 다양하고 화려한 케이크를 보면서 흥미롭긴 했지만 밀가루 음식이나 케이크를 별로 좋아하지 않은 관계로 직업에 대한 흥미는 크게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요즘 둘째 딸아이가 제과제빵에 대한 관심을 은근히 자주 내비친다. 물론 단순한 흥미로 그칠 지 아니면 본격적인 진로로 나아갈 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그러면서 다시금 '파티쉐'에 대한 관심을 덩달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러다가 말겠지...하며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직업 흥미 검사를 해오는 것이나 관심 분야를 찾는 것을 보면 꼭 제빵이나 요리에 대한 언급을 하고 넘어간다.
처음에는 그 힘든 일을 어떻게....하면서 지나쳤는데 정말 본인이 원한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행복할 것 같아 말리지는 말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파티쉐'란 직업이 좀더 구체적으로 궁금해졌다.
[떠나고 맛보고 행복하다]를 읽게 된 이유 역시 낯선 도시의 여행이라는 의미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파티쉐'와 '베이커리'의 세계를 보고 느끼고 싶은 생각때문이었다. 이 책은 저자가 베이커리 잡지의 해외통신원으로 활동을 하며 각국의 내놓라 손꼽히는 베이커리와 까페, 그리고 쉐프를 만나 인터뷰하고, 가게를 소개한 글을 모은 것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3000일의 여행'이라는 부제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책을 엮기 위한 목적으로 취재를 한 것이 아니라 한 곳, 두 곳 여행을 하고, 글을 쓴 것이 쌓여서 한 권으로 책으로 완성된 것이다.
빵과 케이크의 뿌리가 유럽이다 보니 대부분 유럽의 나라를 찾아 소개를 하고 있는데, 그만큼 오랜 전통의 깊이가 느껴진다. 대부분 몇대에 걸쳐 기술이나 매장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자존심을 가지고, 최고의 재료와 품질로 현재에도 그 명성을 이어나가고 있다.
저자는 화려한 기술과 솜씨 뿐만 아니라 진정 장인이라고 불리는 세계적인 셰프들을 만나 그 성공의 비결을 찾는다. 인터뷰를 읽다 보면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단 번에 알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이 고집하고 있는 신념과 가치에 대해서는 결코 타협이 없다. 특히 좋은 재료에 대해서는 양보가 없으며, 맛을 위해서는 최고라는데 자만하지 않고 끊임없이 연구하며 갈고 닦는다. 그리고 이렇게 최선의 노력으로 탄생한 작품에 대해서는 최고라는 자부심이 넘친다. 그들은 경쟁자를 의식하지 않고, 결코 비교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엄청나게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고라서가 아니라 그토록 자신의 일에 행복하게 몰입하고 있는 그 모습이 진정으로 부럽다.
한국, 중국, 일본. 같은 쌀 문화권임에도 음식의 종류가 판이하게 다른 것처럼 같은 유럽의 케이크와 베이커리도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색깔을 띠고 발전했다. 유럽에서 즐겨먹는다는 마카롱 역시 나라의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다.
그 뿐만 아니라 까페나 베이커리 매장의 입구 모습도 나라마다의 특색이 있다. 실용성을 강조하는 독일의 심플한 매장과 프랑스의 화려한 매장의 차이는 맛의 차이와는 또다른 비교의 재미를 준다.
왕실에 케이크를 공급하는 최고급 기술을 가지고 있는 셰프가 있는가 하면,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오래된 맛을 이어가고 있는 장인도 있고, 천혜의 자연 환경을 이용하여 그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맛을 보여주는 평범한 촌부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과 다채로운 맛의 세계를 볼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궁금함을 결코 남기지 않을 만큼의 풍부한 사진과 자세한 글은 단지 맛을 직접 보지 못할 뿐, 마치 현장에 직접 있는 것과 같은 생생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때론 세계적인 셰프에게서 얻은 레시피를 소개해주기도 하는데 정말 같은 맛이 날까 살짝 궁금해하면서도 직접 만들어 먹을 엄두는 내지 못한다. 그럼에도 세계적인 맛을 내는 셰프가 알려주었다는 비법이니만큼 어떤 비법이 숨어있는 지 천천히 곱씹으며 읽어본다.
레시피를 두고 법정 투쟁까지가는 맛의 전쟁 이야기, 거리의 악사와의 사랑으로 인해 왕비의 신분을 내던진 사랑이야기가 담긴 케이크...등 달콤하고 고요할 것 같은 맛의 세계에서도 사람살이의 희노애락은 그대로 담겨 있다.
화려한 예술 작품 같은 케이크, 투박해보이지만 전통 방식으로 구워낸 빵... 재료도 모양도 맛도 각기 다르지만 '오랜 시간'을 거쳐 셰프의 땀과 열정에 의해서 완성되었다는 것만은 공통적이다. 최고의 셰프가 되기까지 수없이 쏟아 낸 땀방울이 지금의 이 화려한 맛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셰프를 꿈꾸는 이들에게 한결같이 이야기한다. 끊임없이 갈고 닦는 것만이 최고의 맛을 낼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빵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라"고 한 독일 '그림빵집' 제빵사의 말은 비단 빵에만 해당되는 것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8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기에 이 한 권의 책에 담긴 셰프들과의 만남은 최고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멋지고 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