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 2013.11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내가 [샘터]를 처음 본 것은 아마도 20년 전 쯤이 아닌가 싶다. 대학교 때였는지, 사회에 초년생으로 고군분투할 때였는 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아마도 그 즈음 어디께였던 것 같다. 뜨거운 청춘의 한 구석에 인생의 막막함이 느껴질 때, 샘터에 실린 이웃들의 글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하면서 마음이 훈훈해지고 따뜻해지는 경험을 하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2년 정도 정기구독을 하기도 했었고, 독자편지에 글을 보내 책을 선물 받기도 했었다. 특집 코너에도 결정적인 테마가 정해지면 글을 써서 보내 보리라 생각만 하다가 결국 행동에 옮기지는 못하고 흐지부지 되었었다.  

 

그러나 샘터가 내게 무엇보다도 의미있는 이유는 내가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작가들을 바로 이 샘터를 통해서 처음 만나게 되었고,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글을 쓴다면 이 작가처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여러 번 필사를 하기도 했던 '가족'의 '최인호' 작가를 비롯 이해인 수녀님, 법정스님, 장영희 교수님을 샘터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고, 이 분들의 글을 보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한 달을 기다리곤 했었다.

시인이지만 따뜻함이 묻어 나는 이해인 수녀님의 산문을 더 좋아했던 나는 한 달의 한 꼭지가 아쉬워 이해님의 산문집을 따로 사서 보기도 했었다. 법정스님의 글도 그랬고, 장영희 교수님의 글도 그랬다. 당시 구입한 이 작가들의 책이 20년의 세월을 넘어 아직도 책꽂이의 한 켠을 채우고 있다.

 

그렇게 다정한 언니같고, 스승같고, 친구같던 샘터는 일상의 바쁜 움직임 속에 조금씩 멀어져 갔지만, 가끔씩 힘들 때면 찾아와 쉬던 고향같은 존재였다. 그런 샘터를 오랜 만에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느낌으로 다시 만났다. 10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후 2년 간 여러 가지 다양한 경험을 하다가 지금 직장에 안착한 요즘, 푹신한 침대에서 긴 한숨을 내쉬며 펼쳐든 [샘터 11월호]는 그야말로 휴식 그 자체이다.

 

 

11월은 '눈마중달'이란다. '가을이 물고 온 편지'라는 제목의 곱게 물든 단풍 깃을 가진 비둘기가 전해주는 '첫눈'의 소식으로 꾸며진 표지는 벌써 첫눈에 대한 설렘으로 가슴이 뛴다. 11월호를 받아 들고, 어떤 내용들이 있나 죽 둘러 보았다. 예전 같으면 가장 먼저 이해인 수녀님, 법정 스님 글을 찾아 읽고, '가족'으로 옮겨 가겠지만... 세월이 흐른 만큼 샘터도 새로운 옷을 입고 있었다. 책을 읽을 때는 목차를 먼저 보면서 구성을 살피지만, 잡지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 자유롭고 좋다. 죽 둘러보다 읽고 싶은 부분을 펼쳐서 읽으면 그곳이 이야기터가 된다. 

 

오랜 만에 만나 친구의 모습을 구석구석 살피듯 조금은 더 꼼꼼하게 살펴보는데, 유독 눈을 떼기 힘든 글이 있다. 바로 얼마 전 고인이 되신 영원한 우리의 가족 최인호 작가 추모의 글이었다. 처음 글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때, 글이라는 것을 이렇게 솔직하고, 편안하게 쓸 수도 있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알려주셨던 작가. 공교롭게도 올 8월 초 휴가 기간에 오랜만에 작가의 글이 읽고 싶어서 [최인호의 인생]이라는 책을 구입했었다. 암투병이라는 무거운 상황 속에서 하느님께 응석을 부리는 작가 특유의 진솔함에 웃으며 여전하시구나 했었는데.... 이 책은 고인이 나에게 준 마지막 선물 같다는 혼자만의 착각을 하면서 아름다운 인생을 살다 가신 작가의 명복을 빌어 본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기사는 '이 달의 만난 사람'의 '마음을 훈련하는 스포츠심리학자 조수경 박사'를 취재한 '행복을 향해 달리다'였다. 삶의 무게에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많은 요즘 심리학이나 명상 등의 책이 유난히 많이 나오는 것 같다. 그 대열에 과감하게 합류하고 있는 나 역시 최근에는 마음을 컨트롤할 수 있는 책을 많이 보는 편인데 그 중에서 스포츠 심리학자의 책이 꽤 있다. 극도의 긴장 상태를 다스리는 멘탈 훈련을 많이 하기 때문일까. 그래서 조수경 박사의 글이 더 반가웠다.

조수경 박사는 현재 박태환,  손연재 등 이름만 들어도 화려한 선수들의 멘탈 코치를 맡고 있다. 힘든 여정을 이겨내야 하는 선수들의 마음과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과정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비단 선수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와 다를 바 없는 인생이라는 거친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들려주는 마지막 말은 책 한 권을 읽었을 때와 같은 깊은 울림을 주면서 내가 왜 그동안 그렇게 복잡하고 마음이 무거웠는 지 알게 되었고, 더불어 해결책도 알게 되었다. 아...이렇게 쉽고 간단한 것을!

 

"오후엔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저녁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대학생이 있어요. 그럼 공부하는 동안엔 저녁 아르바이트 걱정을 하면 안 되는 거예요. 내가 지금 해야 하는 게 분명히 있는데 마음이 딴 데 가 있으면 안 되니가요. 회사원도 마찬가지고요."

"행복은 무언가 큰 것을 이룬 다음에 오는 게 아니에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에 집중해서 행복을 느낀다면 나는 불행한 사람이 될 수 없어요. 작은 것들이 쌓이면서 행복을 느끼는 거지요." ---p.16

 

 

'옛 공부벌레들의 좌우명' 꼭지에서는 '독서의 계절'에 어울리는 책만 읽는 바보 '간서치'로 유명한 이덕무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독서가 필요한 계절이 따로 있겠는가, 책읽기의 즐거움에 빠지면 더우나 추우나 읽는 것이 즐거울 것이다. 책읽는 즐거움에 빠진 요즘,

 

'나는 무엇을 할까? 책을 읽을 뿐이다' 

 

이 말에 백배공감하며 카톡의 대문으로 살짝 빌어다 놓았다.

 

'결론이 없는 이야기'에서는 불문학자 김화영 교수가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그중에서도 가슴을 깊게 파고 드는 말.

 

"행복? 거 하는 말이지 뭐. 사실 요즘 와서 언론 매체, 특히 텔레비전에서 행복이니 웰빙이니 하느 말을 쓰는 거지, 행복이란 말은 원래 한국 사람은 안 쓰던 말이에요. '행복하니?' 그딴 소릴 누가 해요? 당시 사람들은 다 무뚝뚝한 사람들이었으니까. 무뚝뚝하다는 걸 뒤집어 얘기하면 뭔가 수줍어하는 사람들의 시대였어. 뻔뻔스러운 걸 싫어했어. '아버님 사랑합니다' 이딴 소릴 누가 합니까. 지금은 아무 데나 막 쓰지만. 그런 말이 많아진 걸 보면 사람들이 서로 덜 사랑하는 것 같아. 행복 얘기를 많이 하는 것도 덜 행복하니까 그런 것 같아."

 

덜 행복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행복을 드러내놓고 외치는 것 같다는 말이 슬픈 울림으로 다가온다.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다소 낭만적인 얘기로 시작했지만 결론은 '나' '지금'을 인식하지 못하고 다른 곳을 바라 보기에 우리는 서로 불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로 각자 다른 곳을 보면서 불행해하는 모습이 결코 낯설지 않다.

 

"나와 내가 살고 있는 삶이 서로 맞아떨어질 때. 다른 말로 바꾸면 실제 있는 그대로의 나와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나, 남들에게 보이는 나가 일치할 때 그게 진정한 행복이다, 난 그렇게 생각해요." ---p.79

 

"행복하려고 노력한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고, 다만 행복이 왔을 때 잘 맞아들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해요. 아무리 돈이 없고 근심이 많아도 행복이 오는 그 순간을 왜 안 즐겨? 얼마나 산다고. 그러니 행복이 오는 순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단 말이죠. 그게 순간적으로 온다고. 그것도 매일 와요. 길지 않을 뿐이지." ---p.78

 

"행복에게 자기를 열어 놓아라. 그리고 기뻐하고 살아라. 행복이 오는 그 순간에 자기를 거기다 열어두라고요."---p.80

 

  

[샘터]의 가장 큰 매력은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가슴 찡하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집' 이에에도 '행복일기'를 비롯 책 곳곳에 평범하지만 비범한 우리네 소박한 삶을 만나볼 수 있어 좋다.

구아바에 평생을 바친 농부, 두꺼비 서식지를 개발의 바람 앞에서 끝까지 지켜낸 주민의 힘, 시집 온 후 사십 년을 재첩과 함께 산 할머니 이야기까지, 또 축구가 너무 좋아 축구와 관련된 모든 것을 수집하는 축구 수집가까지(12월에는 특별히 샘터 독자를 집으로 초대하는 오픈하우스 이벤트를 연다고 하다^^). 모든 평범한 이웃이 샘터를 통하면 하나 하나 개성이 묻어나는 특별한 삶이 된다.

 

그중에서도 '특집'에 실린 글들은 자서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각양각색의 다양한 사연들을 만날 수 있다. 누구들 인생의 길이 녹록할까만은 힘겨운 인생의 터널을 헤치고 빠져 나온 혹은 힘차게 이겨내고 있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때로는 감동을 때로는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이번 11월호의 특집 주제는 '외로움도 힘이 된다'였다. '외로움'이라는 주제가 말해주듯 사연들은 하나도 쉽게 넘길 수 없을 만큼 슬프고 아프다. 스러지고 힘겨울 때 고통을 받아들이고, 다시 일어서는 기적을 이룬 우리네 이웃들의 이야기를 읽노라면 마음이 저절로 숙연해진다.

 

 

평범하지만 모두가 다 특별한 이슬이 방울방울 맺혀 있는 [샘터]는 그래서 더욱 특별한 듯 평범하다.

손에 닿을 듯이 가까운 사람들의 진솔하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따뜻한 이야기가 끝없이 샘솟아 나오는 [샘터]는 사람 내음이 물씬 풍기는 진정한 '샘터'다.

 

오랜 만에 만난 [샘터]는 늘 그 자리를 지키며 변하지 않는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옛 친구같은 모습이었다. 변한 듯 변하지 않은 그 모습은 '나'라는 정체성을 잘 간직하면서도 '지금' 이 순간을 유연하게 즐기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김화영 교수가, 조수경 박사가 얘기했던 그 행복의 비법을 내 오랜 친구 샘터는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샘터]를 읽으면 읽을 수록 '행복'해지는 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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