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잘 찍고 싶다 - 생각하며 찍는 사진
남규한 지음 / 혜지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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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던 것 같다. 우리가 자주 가던 대중 목욕탕 로비에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나는 흑백 사진 한 장이 걸려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프린트된 액자였겠지만 나름의 인테리어를 위해 걸어두었던 것 같다. 여러 개가 걸려있는 지 기억이 확실치는 않으나 늘 나의 시선을 잡아끄는 사진이 있었다. 바닷가인지 돌다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물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아이들 손을 흔들며 서로를 향해서 뛰어가는 장면이었다. 멀리 있었고, 역광이기에 사진 주인공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고 배경과 검은 실루엣이 사진의 스토리를 말해주는 그런 사진이었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목욕탕을 갈 때마다 그 사진 앞에서 많은 생각을 하곤 했었다. 저 곳은 어딜까부터 시작해서 저 아이들은 왜 저렇게 반갑게 뛰어갈까? 먼저 놀러간 친구들과 뒤늦게 쫓아 온 친구가 만나는 장면일까?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은 무수한 스토리를 갈 때마다 새롭게 상상하며 그 자리에 서서 사진 속으로 빠져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때 그 사진이 도대체 어떤 사진인지 너무 궁금해서 어른이 된 다음에도 찾아봤는데 사진에 대한 지식이 없다보니 찾기가 어려웠다. 아니면 그 사진이 그렇게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 아니거나.
암튼 사진은 기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종종 지금도 궁금한 것이 있었다. 도대체 내가 왜 그 사진을 그토록 열심히 보았는가 하는 것이다. 왜 다른 사진은 두고, 유독 그 사진만 그렇게 열심히 보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이 책 [사진, 잘 찍고 싶다]를 읽으면서 내내 어릴 적 보았던 그 사진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에게 강렬한 인상과 많은 이야기를 남겨주었던 그 사진의 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파헤치고 싶은 마음으로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나는 '사진, 잘 찍고 싶다'가 아니라 '사진, 잘 보고 싶다'로 읽은 셈이다. 그렇지만 사실, 잘 찍으려면 좋은 사진을 많이 봐야 하고,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사진을 잘 알아야 하는 것이니 맥락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찍는 것보다 잘 보는 것에 포인트를 맞춰 책을 읽어 나가고 있었는데(그래서 사실 기술적인 부분은 어렵기도 하고, 조작하기 전까지 이론적으로는 감이 잘 오지 않기에 나중에 다시 볼 것을 기약하며 한번 훑고 지나갔었다) 책의 마지막을 덮으면서는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고 싶다는 욕구가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진에서 그림자의 역할이 그렇게 중요한 지 몰랐고, 구도에 그렇게 깊은 메시지를 담길 수 있는 지 처음 알았다. 무엇보다도 사진이 주어진 사물을 그저 카메라 앵글에 담아 내면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과 빛, 자연 또는 사물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현실이 아닌 자신 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작가의 의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 하지만 그림처럼 작가의 의도만으로 완성할 수 없는 것이기에 사진 작가는 끝없는 인내심으로 기다리기도 해야 하며, 순간을 포착해내는 민첩성과 순발력도 갖춰야 하고, 적합한 소재를 찾아낼 수 있는 혜안과 상상력을 갖춰야 한다. 물론 사진에 대한 기술적인 지식과 숙련은 말할 것도 없다.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지면서 한 장의 사진이 잉태되어 나오는 것이다. 아마도 내가 어릴 적 보았던 그 사진도 그런 작가의 치열한 노력의 과정을 거치며 세상에 나온 사진일 것이다. 작가는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여러 가지 장치로 표현해 놓았을 것이고, 그 장치들을 통해서 나는 그 사진 속으로 빨려들어 갔었을 것이다. 비록 작가가 하고픈 얘기와 내가 생각한 이야기가 다를 지라도. 그 느낌은 서로 공유했으리라고 본다.
 
이 책의 저자는 가장 먼저 첫번째 장에서 '사진을 찍는 마음 준비'를 다룬다. 처음부터 딱딱한 방법론이 어울리지도 않겠지만 사진을 찍기에 앞서 무엇이 담겨야 하는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주제를 보는 눈', '이야기를 넣는 방법', '소재를 찾는 방법', '좋은 사진을 위한 준비'를 통해서 좋은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시작한다. 그래서 나같은 초보자는 더없이 편한하게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좋은 사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맛을 볼 수 있었다.
 
 
글의 형식은 주제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 후에 예가 되는 사진을 한 장 한 장 보면서 주제 이외에 사진이 나오게 된 배경이나 과정, 결과 등을 상세하게 설명해줌으로써 내용에 대한 이해를 훨씬 더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설명 역시 딱딱한 것이 아니라 에세이를 쓰듯 에피소드나 실수담 등을 섞어서 편안하게 전달해줌으로써 마치 전시회에서 도슨트의 설명을 듣는 것과 같은 재미가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다 보면 사진 잘 찍는 법을 배운다기 보다는 사진 에세이를 읽는 듯한 착각이 들곤 한다.
 
 
다음 사진은 '계산 먼저'라는 작품인데 상당히 재미있다. 사진의 주인공은 바로 저자 자신인데, 사진의 장치가 말해주는 메시지를 읽는 방법을 알게 해준 작품이다. 과연, 어떤 메시지가 숨어 있는 것일까?
 
 
"백화점 탈의실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허름한 옷을 입고 백화점에 구경을 왔던 저는 탈의실에서 옷을 입어보다가 그냥 입고 나가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장난스러운 의도를 드러내기 위해서 입고 있는 옷이 제 옷이 아니란 것을 알려줄 단서가 필요합니다. 청바지의 뒷주머니에 붙어있는 태그가 아직 계산하지 않은 옷이란 것을 말해줍니다. 그냥 나가고 싶어하는 제 표정과 프레임의 왼쪽 상단에 보이는 CCTV가 대비되어 흥미롭습니다. 영화에서 사용되는 미장센(화면구성)처럼 사진 안에서 태그와 CCTV가 이야기를 만들어 줍니다. 프레임을 구성할 때 의도적으로 이런 단서들을 넣을 수 있습니다. 물론 작가가 의도한 이런 디테일을 발견하려면 한 장의 사진을 감상할 때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여 자세히 감상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p.28
 
이렇게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한 후에 2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좋은 사진 만들기'를 위한 각 요소들에 대해 살펴 본다. 노출, 빛, 그림자, 구도, 단순화, 대비, 초점 등 사진에서 들어봤음직한 요소들이 사진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 지 그리고 사진을 찍을 때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 지 역시 수많은 예들과 함께 살펴 본다. 조금 딱딱할 수도, 어려울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이 역시 사진을 통해서 배우기 때문에 부담이 상당히 줄어든다.
 
 
 
아래 작품은 '액자 속의 여자'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프레임에 따라 주위에 널려 있는 쓰레기도 작가의 시선에 따라서는 새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 책에는 이러한 작품들이 꽤 있다. 그러다 보니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건너편 집 창문에 흘러 내린 녹물도 새로운 의미 부여를 하게 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흑백사진'에 대한 작가의 단상이다. 컬러가 보편화 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작가들이 흑백사진으로 작품을 찍고 있는데, 이는 흑백사진 만이 가지고 있는 힘 때문일 것이다. 주제에 좀더 집중할 수 있고,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매력에 여전히 흑백사진은 사랑받고 있다. 나 역시 컬러 사진을 볼 때보다 흑백사진에서 더 많은 상상과 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어 좋아하는데 이 장에서는 전문가적인 관점에서의 흑백 사진에 대한 설명을 들어 볼 수 있다.
 
 
마지막 부록에서는 사진을 찍은 후에 '후보정' 하는 법과 보정 전후를 비교함으로써 후보정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후보정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에 대해서 저자는 논리적으로 반박을 한다. 직접 사진을 찍는 작가가 아니니 뭐라고 할 수 없지만 시대와 방법에 따라 기준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옛 기준에 모순점이 있다면 더더욱이 말이다.
 
 
어렸을 때 목욕탕에서 보았던 사진 외에도, 당시 집에는 아버지가 보시던 사진집이 몇 권 있었다. 지금 기억을 떠올려보면 사진대전 같은 곳에서 수상한 작품들을 모아놓았던 것 같은데 그 사진집을 무심히 꺼내볼 때마다 강렬한 인상을 받곤 했었다. 대부분이 흑백사진이었는데 음영의 강한 대비가 쏟아내는 알 수 없는 메시지들을 보면서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지 참 궁금했었다.
아마도 그러한 궁금증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해갈되지 않은 갈증으로 남아 있었나 보다. 사진에 관한 책을 한 두 권 읽어 보긴 했으나 여전히 어렵고 답답했었다. 그렇게 또 잊고 있다가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사진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좋은 사진이 말하는 법을 사진의 기본 형식에 맞게 조금씩 따라가면서 보다 보니 어디에 포인트를 두고 봐야 하는지 조금은 그 갑갑함을 해소할 수 있었다.  
 
더불어 나를 감싸고 있는 수많은 오브젝트에 대해 민감해졌다는 것도 부정할 수가 없다. 요즘처럼 언제 어디서나 셔터만 누르면 되는 환경에서 그간 의식없이 스쳐갔던 것들이 이제는 하나의 이야기로, 의미있는 메시지로 보이면서 프레이밍하게 될 것 같다. 벌써 끝없이 펼쳐지는 골목이 수직 분할되는 창밖의 풍경 한 컷, 그리고 빛이 마루바닥에 그려놓은 그림자 또 한 컷을 나도 모르게 찍고 있다. 비록 너무 많은 선으로 복잡해지기도 하고,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심심한 작품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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