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사기를 당하다 탐 철학 소설 4
김종옥 지음 / 탐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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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오랜만에 시내에 있는 대형 서점을 찾았었다. 인문학 열풍의 뜨거운 열기는 아직도 고스란히 느껴지고 있었다. 특히나 한 켠 벽을 가득 메운 새로 출간된 청소년 대상의 철학 도서들을 보면서 이러한 관심이 한 때의 유행이 아닌 당연히 거처야 할 성장의 과정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해봤다.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책들을 둘러 보는데 반가운 책이 눈에 띄었다. 바로 [장자, 사기를 당하다]를 포함한 [탐 철학 소설] 시리즈였다. 공자, 퇴계, 루소, 장자 등 동서양의 철학자들의 사상을 소설로 읽을 수 있다고 해서 흥미를 가지고 읽고 있는 중이었는데 서점에서 시리즈 책들을 발견하니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기 그지 없었다. [공자, 지하철을 타다], [퇴계, 달중이를 만나다], [루소, 학교에 가다], [장자, 사기를 당하다], [아인슈타인, 시간 여행을 떠나다], [푸코, 감옥에 가다]와 같이 호기심을 유발하는 재미있는 제목과 표지는 딱딱하고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는 철학을 한결 친근하게 다가오게 한다.
 
그 중에서 가장 궁금증과 호기심이 드는 것이 바로 이 책 [장자, 사기를 당하다]였다. 서양 철학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동양 철학 역시 어려워 '장자'라는 인물이나 사상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전무하다시피하다. 그런데 중국의 최고 사상가라고 손꼽히는 사상가가 사기를 당하다니...참 이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궁금함을 못 참고 책을 받자 마자 읽어 내려 갔다. 이야기를 읽을 때는 술술 넘어가지만 장자가 설명하는 장자의 사상을 이야기할 때면 몇 번을 거듭 읽고, 곱씹어 봐야 겨우 이해가 될 듯 말 듯 하다. 그럼에도 이야기가 있으니 어떠한 상황 속에서 이러한 이야기가 나왔고, 그것을 장자는 어떻게 해석하고 풀어내는 지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동양 사상하면 공자와 맹자를 먼저 떠올리지만 실은 노자와 장자의 책이 더 해석하기 쉽지 않아서 더 어렵게 느껴진다고 한다. 전자가 직설적으로 쓰여서 그대로 이해가 되는 반면, 후자는 비유와 함축이 많아서 읽어도 무슨 뜻인지 알기가 어렵다고 한다. 논어와 맹자도 어려운데 하물며 학자들도 어려운 장자의 책과 사상이 내게 쉬울 리가 없다.
 
이야기 속에는 나처럼 분명 한국말임에도 외국말처럼 들리는 이해의 어려움을 느끼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들인데, 한국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 느끼는 답답한 심정과  사상의 거대한 벽 앞에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워 느껴지는 갑갑한 심정이 아마 비슷하리라 생각된다.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반복해서 보고, 읽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스며들 때가 올 것이다. 한국말도 서툰 외국인 노동자들은 장자의 이야기를 어느덧 제 입으로 옮길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이해하고 내뱉는 것이 아니라 내뱉고 곱씹다 보면 어느 순간인가 자기 것이 될 때가 올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강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고전의 힘이 아닐까 싶다.
 
최근에 청소년을 위한 철학, 고전 책을 많이 읽고 있다. 직업상 필요하기도 하지만 요즘 최대의 관심 분야이기에 기회가 닿는 대로 읽고 있는 중이다. 청소년 대상의 책이라고는 해도 얄팍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조금 힘들고 어려운 책들도 꽤 있다. 아무리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풀어 쓴다고 해도 기본적인 지식이나 개념은 어쩔 수 없이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어려운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그럼에도 최근에 읽은 철학책 중에는 가장 쉽고, 또 재미있었다. 시대적 배경이 현대이고, 주인공인 장자를 비롯해 장자의 책 속에서도 등장하는 혜시는 물론이고, 공자와 맹자, 양주, 묵적까지 동양 철학의 사상가들이 총동원되어 이야기를 펼치니 신기하고 재미있으며, 작가의 상상력에 웃음이 절로 나오게 된다. 가공한 사건 속에서 끄집어 낸 장자의 사상은 <장자>에서 주장한 원문의 내용을 훨씬 더 이해하기 쉽게 해준다. 이것이 스토리가 갖는 힘일 듯 싶다.
 
<장자> 역시 에피소드 위주로 되어 있다고는 하나 읽고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퓨전형식으로 현대의 상황 속에서 장자의 사상을 접함으로써 그의 사상이 비로서 내 상황으로 적용이 되고, 내 것이 되는 것 같다. 실제로 '죽음'에 관한 대목을 읽은 후에는 현실적인 슬픔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으며, '사랑'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에는 내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깨닫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의 삶은 소중해. 다만 백 년 미만 동안 인연을 맺는 자기 삶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더 큰 것, 더 넓은 것, 더 오랜 것, 더 영원한 것을 잊는다 이 말일세. 어느 순간도 특별하지 않은 순간이 없지만, 어느 순간만 특별한 것은 아니야. 우연한 한 순간에 맺혀 있는 것에 너무 집착하면 눈멀고, 귀먹고, 감각도 삐뚤어지고, 생각도 삐뚤어지는 법이라네. 자꾸 좁아지는 것이지." ---p. 159
 
"그러나 죽는 이의 입장에서 보자고. 죽은 다음에도 죽은 이에게 슬픔이 계속 이어지는가? 그럴리가 없지. 죽는 순간에 이미 모든 슬픔과 분노에서 해방되어 버리는 거야. 그렇다면 슬프고 분한 것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육체에 잠시 머무는 감정이라는 말이 되지. 태어나기 이전과 죽음 이후에는 슬픔도 즐거움도 없어. 그러니 우리가 슬피 우는 것은 죽은 이를 위해서가 아니라는 말일세. 단지 그와 헤어진 우리 마음이 아쉬워 우는 거지. 그러니 우리 마음은 우리가 추스르면 되는 거고, 죽은 이는 원래의 큰 흐름 속으로 다시 돌아가 쉬면 되는 거야. 이미 슬픔이 없는 사람을 위해 슬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네." ---p.160
 
"진짜로 아랫동네 순이가 좋은 돌이는 순이가 좋은 건가, 순이를 차지하고 싶은 건가? 순이가 좋다면 절대 순이를 차지하려고 하면 안 돼. 순이를 가지고, 순이를 자기 맘대로 만들고, 순이가 자기만 바라보게 하고 싶겠지. 그건 순이를 좋아하는 게 아냐. 순이를 가진 자기 자신을 좋아하는 거지. 순이가 정말 좋으면, 자기가 순이가 되어야 하는 거야. 돌이가 순이가 되어야 하는 거라고. 그게 진짜로 좋아하는 거야." ---p.176
 
가끔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할 때면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 나를 위한 것인지 헷갈리 때가 있다. 공부해라,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하는 코치나 명령은 실은 내가 좋아하는 아이들로 자라게 하기 위한 소유욕은 아닌지 고민하고 있을 때 '장자'의 사상이 나의 욕심을 확연하게 깨닫게 해주었다. '장자'는 말한다. '나'라는 경계를 허물고, '나'를 위주로 판단하는 고집을 버리면 곧 자연과 하나가 되어 편안하고 여유로워 진다고. 그게 바로 그가 주장하는 '도(道)'의 세계라고.
 
내가 '나'인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처럼 타인 역시 '타인'의 본성으로 살아가야 한다. 내가 개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 기준으로 만들 수도 없는 것이다. 문득, 그 어리석은 기준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것이 아닐까, 그로 인해 또 나 역시 무수한 상처를 받고 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쉽진 않겠지만 좀더 자유롭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 속 '장주'처럼 버리고 비워내기 위해서 훌쩍 떠날 수는 없지만, 집착을 버리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비슷한 '마음의 자유'가 느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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