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읽어주는 엄마, 철학하는 아이
제나 모어 론 지음, 강도은 옮김 / 한권의책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왜 철학 교육을 해야 할까?  
 
인문학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철학'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른 아이할 것 없이 철학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필요성이라는 것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접근하면 공부를 더 잘하기 위한, 좀더 솔직히 말하면 시험을 더 잘 봐서 합격을 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관심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현실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서 철학을 필요로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계기가 어찌되었던 간에 돈 안되는 학문이라고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철학의 위력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만이라도 다행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얼마 전 기사를 보니 어떤 대학에서는 '철학과'를 폐지한다고 해서 여전히 씁쓸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어찌 되었건 간에 '철학'이라는 심오한 학문의 이름을 근래처럼 많이 들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기껏해야 소크라테스, 아이스토텔레스를 일컬을 때 '철학자'라고 표현하면서 언급했던 것 외에는. 인문학 열풍이 불기 시작할 때에도 철학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인문학도 어려운 판국에 감히 '철학'이라니... 범접할 수 없는 영역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토론을 배우게 되었는데, 어떤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하더라도 결국에는 철학적인 관점으로 논쟁을 하게 되고, 근거가 되는 것을 경험을 하면서 1+1=2라는 확고한 답이 나올 수 없는 세상의 질문들에 대한 답은 결국 '철학적인 사고'로 찾을 수밖에 없음을 절감했었다. 토론이라는 것의 논제는 찬과 반의 주장이 거의 팽팽할 때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딱 떨어지는 답을 제시하고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더 논리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설득할 수 있는냐가 승패의 관건인 것이다. 답이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상대와 내 입장을 입체적으로 보면서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으려면 평소에 이러한 사고의 연습이 충분이 되어 있어야 하고, 그러한 질문들을 뽑아낼 수 있어야 한다. 철학적인 사고를 하고, 대화를 충분히 해 왔다면 토론에서는 더없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더구나 '철학'적인 지식이 있다면, 근거를 제시할 때 최고의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토론을 공부하면서 '철학'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이렇게 철학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고 있을 즈음 이 책 [그림책 읽어주는 엄마, 철학하는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우선 제목부터가 눈에 띄었다. 그림책을 워낙 좋아해서 강의를 들으러 다닐 정도인데, 게다가 철학이라니... 나의 두 관심사가 딱 맞아 떨어진 것이다. 보기도 전에 기대가 만발이었다. 사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자기 전에 그림책을 읽어 주기는 했지만 질문이나 토론은 많이 해보지 못했다. 독서지도사 자격증이 있을 만큼 독서지도에 관심이 많음에도 한 두 번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면 그것으로 대화는 종료되어 버리는 것이다. 내가 지식의 깊이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어찌 되었건 간에 아이들의 사고를 열어 줄 정도로 깊이 있는 대화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나가기는 쉽지 않았다. 늘 그래서 뭔가 2% 부족한 느낌. 독서 수업을 하고서도 허전한 느낌이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이 책을 보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물론 저자는 철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15년 동안 아이들의 철학 수업을 지도했으니 질문 하나도 내공이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철학적인 주제를 뽑아내어 자유자재로 주무르면서 아이들이 많이 생각하고, 사고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을 보면 부럽기 그지 없다. 더구나 그 과정이 힘겹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도 너무 즐겁고 신나한다는 것이다. 또한 일정한 기간 동안 받았던 그 수업은 스스로 자기 증식을 하면서 수업을 듣고 있지 않더라도 더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중 2때 들은 수업이 대학교 2학년 때까지 영향을 미치고, 평생의 삶의 지표를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제나 선생님께
선생님, 대학에서 처음으로 철학 강의를 들은 지 몇 주가 되었어요. 철학 강의는 이번 학기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수업 가운데 하나랍니다. (...) 선생님께서 저에게 철학을 알게 해주신 것에 감사드리고 싶어요. 특히 선생님이 제게 건네주셨던 위대한 철학자들의 20가지 질문에 관한 작은 책을 읽은 것은 정말 멋진 경험이었어요. 그 책 덕분에 많은 개념들을 알게 되었고, 처음 철학수업을 들었을 때보다 더 잘 이해하고, 깊이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답니다. 만일 제가 중고등학교 시절의 판에 박힌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살아가고 있었더라면, 그러니까 그토록 진부한 생각을 떨쳐버리도록 선생님이 저를 자극하지 않았더라면,저는 대학에 왜 진학해야 하는지 솔직히 알지 못했을 거예요. 또 깊이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을 거고요.
 
이 편지를 보낸 알렉산드라는 중학교 2학년 때 나의 철학수업을 들었던 학생이다. 세월이 흘러 대학교 2학년이 되도록 알렉산드라는 철학수업의 신선함과 재미를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알렉산드라는 자기 삶에서 철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나는 그런 옛 제자의 성숙한 모습에 뿌듯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 p. 234~235
 
철학 교육 어렵지 않을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부모가 아이들과 철학 수업이나 대화를 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저자는 정작 자신의 전문적인 철학 지식이 오히려 아이들과 대화를 할 때 종종 방해가 되기도 한다고 한다.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는 철학에 관련된 배경지식을 한쪽으로 밀어놓아야 한다고 한다.
 
"생김새나 특징이 자기 정체성에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려는 아이에게 개인의 정체성에 관한 존 로크(John Locke)의 사상이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어린아이들에게 전문적인 용어를 쓰거나 '철학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하지 않으려고 항상 주의를 기울인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한테 철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철학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p. 254
 
어쩌면 아이들의 생각을 들어 주기만 해도, 공감해주면서 그 아이가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대해 질문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철학적인 대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능력이 있다. 어른의 기준으로 재단만 하지 않으면... 저자는 부모가 '지혜의 저장고'나 '해결사'의 역할을 할 것 없이 아이들의 질문에 귀를 기울이고, 어려움을 알아차리고, 솔직하게 응답만 해주면 된다고 한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쉽지만, 사실 이 역시 실제로 해보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제까지 일상적인 대화만을 해왔다거나, 부모의 생각을 주입하는 식으로 대화가 이루어졌었다면 갑작스런 전환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그 매개를 '그림책'으로 제시하고, 책을 읽으면서 해 볼 수 있는 수 많은 질문과 주제들을 제시하고 있다. 정말 이러한 질문들을 해보지 않았던 부모라도 제시된 질문들 몇 가지만 해 보는 것으로 아이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을 정도로 내공이 들어간 질문들이다. 저자가 제시한 책이나 영화, 다큐 등(주제, 연령별로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다)을 보면서 한 두 가지 질문을 해보는 것으로 시작해보면 좋을 것이다.
또한, 저자는 아이들에게 질문을 했을 때 어떻게 반응을 하고, 답변을 했었는 지, 어떻게 유도를 해갔는는 지 실제 사례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물론 철학 수업을 계속 진행했던 아이들이라 처음 해보는 아이들과는 다르게 깊이 있는 생각을 하며 반응을 하고 있는 것어서 그렇지 않을 경우 어떻게 유도해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아이들의 가능성과 잠재성을 고려해볼 때 어른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시작이 반이다. 아이들의 성장 속도는 어른이 생각하느 것과 다르다. 처음에는 장난스럽게 대답했던 아이들도 아마 조금 지나면 금방 생각하는 연습에 익숙해질 것이고, 사고의 힘이 길러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한 발을 내딛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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