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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ㅣ 아이세움 명작스케치 7
김유정 글, 김세현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작년 가을, 춘천에 놀러갔다가 '김유정문학관'을 들른 적이 있다. 집으로 향하다가 시간이 좀 남아서 좀 둘러가긴 했지만 지금 아니면 또 언제 다시 와보랴 하는 생각에 내비를 따라 갔었다.
또 한가지 이유는 그 무렵 한국 문학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던 중이었는데 마침 고 몇 일 전 김유정에 대한 강의를 들었기에 관심이 높아졌던 이유도 있었다. 이제 중학교에 올라가게 될 큰 아이도 중학교에 가면 김유정의 문학을 배우게 될 터이니 미리 작가에 대해 알아두면 좋을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어찌 되었건 그렇게 김유정이라는 작가를 만나기 위해서 달려갔었다.
유복하게는 태어났지만 조실부모하고 가세마저 기울어 전국을 떠돌다가 나중에는 약값이 마련하기 위해 글을 팔 정도로 어렵게 살다 결국 젊은 나이에 요절한 작가. 그렇지만 그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국 단편문학의 한 획을 긋는 향토문학을 일궈낸 작가의 의지와 작품에 대한 열정에 실로 놀라움을 금치 못햇다. 어쩌면 작가는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숨을 쉬지 않으면 죽는 것처럼, 글을 쓰지 않으면 숨이 막히는 고통때문에 쓸 수밖에 없는.
인간적으로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남자로서도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산 김유정. 그에 대해 알면 알수록 안쓰러움이 느껴진다. 그의 그런 내적 고통이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나 하는 고약한 생각도 잠시 해본다.
암튼 작년의 이런 추억 때문에 김유정의 소설이 더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이들도 그런가 보다. 학교에서 국어시간에 배웠다며 와서 얘기하는 걸 보니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듯 했다.
그렇게 특별한 작가로 기억하고 있을 즈음 아이세움 명작스케치 시리즈로 [동백꽃] 출간되면서 또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책을 받았을 때 누구보다도 좋아한 것은 아이들이었다.
아이세움 명작스케치 시리즈책을 너무 좋아해서 시리즈를 모두 구입해서 이미 친숙하기도 하거니와 작품에 맞게 표현하는 그림이 압권이다. 원작이 따로 있으니 다른 책과 특별하게 다를 것이 없을 것이고, 문제는 결국 원작의 느낌과 메시지를 어떻게 최대한 그림으로 살려 내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시리즈가 출간될 때마다 기대하고 봐도 좋을 만큼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재미가 있다. 그래서 [동백꽃]이 출간되었다고 했을 때 또 어떻게 풀어 냈을까 기대를 잔뜩하고 보게 되었다. 해악과 유머가 도드라진 소설의 분위기와 더불어 주인공인 '나'와 '점순이'의 관계,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표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뒷표지는 김유정의 소설에서 풍기는 유머만큼이나 재미있고 글의 중심 내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본문 중에는 이런 그림이 없으니 뒷표지용으로 따로 그린 것 같다.
그림책의 앞뒤 페이지에는 메시지가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는 김유정의 육필원고가 인쇄되어 있다. 필체가 살아 숨쉬는 것이 금방이라도 이야기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김유정의 소설을 읽을 때 제일 어려운 점은 특유의 말투와 사투리가 있어 쉽게 이해가 안된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는 이 점 또한 고려해서 가급적이면 초등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표준어로 바꾸기도 했지만 원작의 맛을 살리기 위해 김유정만의 특이한 말과 사투리는 그대로 살렸다고 한다. 대신에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용어 해설집(?)을 별첨해서 참고해보도록 하고 있다.
소설의 첫 시작은 '오늘도 또 우리 수탉이 막 쪼이었다.' 시작한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상징적인 의미의 '닭싸움' 역시나 이 책에의 시작도 강렬하게 '닭싸움'으로 시작을 한다.
서로에 대한 오해가 사건의 발단이었다.
"느 집엔 이거 없지?"
점순이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는 주인공에게는 상처가 될 법한 말이지만, 점순이는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았기에 상처가 되는 줄 몰랐을 것이다.
"난 감자 안 먹는다. 니나 먹어라."
점순이가 감자를 챙겨주는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던 내가 내뱉은 말이 점순이에게 얼마나 심한 상처가 되었을 지 주인공인 나도 몰랐을 것이다.
전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림은 등장 인물의 감정과 순수한 마음을 최대한 부각시키기 위해서 배경이 최대한 생략시키고, 인물의 표정과 행동을 강조하고 있다. 배경의 색상도 주인공들의 감정 변화에 따라 연노랑에서 점점 짙고 강렬한 색으로 변화해간다.
나와 점순이의 갈등은 점점 깊어지고, 급기야는 약자인 내가 점순네 닭을 죽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한다. 자존심에 상처를 준 댓가를 톡톡히 치르게 한 점순은 겁에 질린 '나'에게 다시는 그렇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후 용서해주면서 갈등은 해소된다.
흐드러지게 핀 노란 동백꽃과 같이 점순의 마음에는 그리고, 내마음에도 사랑의 감정이 퍼져 나간다.
알싸하면서도 향긋한 동백꽃 내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