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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평점 :
'어떻게 살 것 인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 들이 더 많다고 느끼기 시작하면서 점점 인생의 화두로 생각하게 되는 질문이다. 최근 몇 년 간 많은 변화와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 질문은 더 절실하게 다가왔다.
과연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가? 수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도 아직 내 삶의 연륜은 그에 대한 해답을 주기에 미숙한가 보다.
그러다가 우연히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의 일화를 듣게 되었다. 일생을 숙제처럼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질문. 피커 드러커 교수가 10살 무렵 피터 드러커를 포함한 같은 반 급우들에게 던진 신부님의 질문은 그 자리에 있던 학생들 모두에게 평생 살아갈 수 있는 지표가 되었다고 한다. 그 질문이 바로 '너는 죽은 후에 어떤 사람을 기억되고 싶으냐?'였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한 어린 소년들에게 벌써 죽음을 얘기했던 신부님의 그 질문은 소년들에게는 보이지도 않는 끝을 생각하게 해줌으로써 지금 이 순간을 바르게 살 수 있는 지표가 되었다.
그렇다, 인생은 유한하다. 그러나 우리는 무한한 것처럼 살아간다. 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이 필요 없다. 무한하고, 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이 흐트러지는 것처럼. 시험일이 아주 많이 남은 아이들이 긴장감있게 시험 공부를 하기 어려운 것처럼, 우리에게 죽음은 아직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방향을 잡지 못해서 묻는 질문인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어떻게 살 것인가'는 '어떻게 죽음을 맞을 것인가'의 다른 질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접하고 너무도 반가웠던 것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여서는 아니었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부터 독자로서의 팬이었고, 소셜미디어 정치의 선구자였던 그의 새로운 시도들, 세상을 옳고 진실되게 바꾸고자 했던 그의 진심이 느껴져서 정치인으로서도 지지를 했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일이 성공과 실패 이분법적으로 나눈다면 그는 실패에 가까울 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지금의 실패처럼 보이지만 멀리 보았을 때는 성공의 기반이 되었을 수 있고, 이 실패 덕분에 나중에는 더 큰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그것을 '새옹지마'라고 하지 않던가. 암튼 유난히 기대감 넘쳤던 지난 선거 이후 국민의 절반은 좌절감을 맛봐야했고, 분노하고, 체념하고, 무관심으로 돌아섰다. 저자는 누구보다 아픔을 더 많이 느끼고, 힘들어 했을 사람 중에 하나일텐데 책을 들고 돌아온 것이다. 이제는 정치와 연을 끊고, 그의 전매 특허 '지식 소매상'으로 살아갈 것을 선언하고서 내민 첫번째 책에 팬으로서 관심이 쏠린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아니 어쩌면 그간 그가 쓴 책들은 엄청나게 겸손하게 표현하면서 쓰긴 했지만 그래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전문 분야의 책이 아니니 접근하기 쉬울 것 같다는 기대감도 살짝 들면서 하루 빨리 읽어볼 수 있기를 소망했었다.

저자 역시 다른 책과는 달리 지식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써야 하는 책이기에 자신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에 고민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치에서 글로 자신의 길을 다시 바꾸는 시점에서 한 번은 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고 하여 책을 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책들에 비해서 너무 힘들었고, 수정의 수정을 거듭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실제로 읽으면서 그의 다른 책들보다는 내용은 쉬운데 비해 고민과 고민을 거듭한 흔적이 느껴진다. 어떤 부분은 쉽게 쓰여졌는지 잘 읽힌다. 그러나 어느 부분에 가면 내용과는 상관없이 읽는게 힘들다. 아마도 그 부분이 생각과 내용을 조합하느라 고민을 거듭했던 부분이 아닐까 내마음대로 추측해본다. 300쪽이 훌쩍 넘는 분량을 볼 때 탈고후에는 온 몸의 진이 다 빠져나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과정이 징글징글해도 휴식기가 지나면 다시 글을 쓰게 되는 것이 도 글쟁이의 운명이듯이 아마도 유시민 전 대표는 새로운 책을 구상하고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내내 앞에서 말한 피터 드러커가 받았던 그 질문과 일맥 상통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얘기하고 싶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결국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며, 죽음을 생각하면 삶 자체도 의미가 있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책에서 끝없이 '죽음'을 얘기한다. 내세가 있건 없건, 중요한 것은 생물학적, 철학적인 '나'가 없어지는 '죽음'이다. 이름을 남기려는 허망한 욕심에 대한 질책도 한다. 결국,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을 의식하면서 산다면 지나친 욕심도, 지나친 방탕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피터 드러커가 90 평생을 끝없이 연구하고 책을 쓰며 왕성하게 활동한 것처럼. 그가 10살 때 90살까지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순간순간을 그렇게 치열하게 살 수 있었을까? 늘 죽음을 의식하면서 살았기에 지치지 않고, 그렇게 많은 족적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나이 이제 쉰 다섯. 적지 않은 나이다. 보통 평범한 인생을 꿈꿨던 어린 시절에 비해 그의 인생은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 없다. 시대가 그렇게 만들었고, 그가 가진 능력이 또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구비구비 살아온 후 이제 그는 진정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로 선언한다. 해야만 했던 시대의 과제를 벗고, 이제 진짜 잘 할 수 있는 글쟁이로서의 자유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 '자유'를 선택하기까지 과정을 삶이라는 것과 연결시켜 정리해나가고 있다.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만큼 그가 걸어온 과정 자체가 철학적인 질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겪은 일,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 인물, 그리고 정치가에 있었던 알려지지 않은 얘기들까지. 사회, 정치, 경제, 철학에 이르는 그의 방대한 지식과 경험들은 바른 삶의 방향과 가치가 어떤 것인가에 대한 뒷받침 근거가 되고 있다. 역사적 지식이나 상식이 없어도 수필을 쓰듯 쉽고 편안하게 전달해주기 때문에 술술 읽힌다. 그냥 내가 겪었던 경험과 감상이 아니란 인문학적 근거가 확실하므로 꽤나 설득력이 있게 들린다. 역시 전문 글쟁이로서의 역량이 느껴진다. 얼마 전 서점에 들었을 때 베스트셀러 수필 분야에 이 책이 없는 것을 보고 의아했었다. 많이 안 팔렸나 하는 생각에 이상해서 다시 보니 '인문' 분야로 분류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책을 읽이 전이라 고개를 갸웃했는데 읽고 나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삶'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이 주 가지이고, 이를 풀어나가는 방식인 저자의 경험과 생각들은 부가 장치였기 때문이었다. 암튼 잘 읽히지만, 생각을 되뇌이며 고민을 해야 하는 책이기도 한 것이다.
인생을 잘 살아가는 방법.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
그래서 그는 잘 놀 것이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신나게 할 것이며, 가족과 주변의 사람을 더 많이 사랑을 할 것이며, 세상을 향한 더 큰 사랑 '연대'를 하며 살 것이라고 선언한다.
무엇보다 먼저 내가 즐거운 일을 하고 싶다. 어머니와 형제자매들, 삶과 세상에 대해 깊은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적은 수의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
세상과 민중에 대한 추상적 사랑보다는 눈을 마주치고 손을 잡고 몸으로 껴안는 실체적인 사랑을 더 많이 나누고 싶다. 놀고 싶다. 다시 그림을 그리고, 요가를 배우고 싶다. 북한산 둘레길을 걷고, 추자도에서 감성돔을 낚고, 남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주말 저녁 축구장과 야구장에서 소리를 지르고 싶다. 내면에서 솟아나는 욕망을 긍정적으로 표출하면서 살고 싶다. 사실 누가 그걸 하지 못하게 막은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할 수 없도록 내 스스로를 가두어버려서 그렇게 되었다.
나는 또한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더 넓게 연대하면서 살고 싶다. 사명감과 의무감에 이끌려서가 아니라 내가 기꺼이 하고 싶고 내가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하고 싶다.---p63
왜 그래야 하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논리 이전에 마음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너무 불편한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 비용이 들고 고생이 되는데도 그렇게 하면 마음이 편하고 당당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은 문명과 교육의 산물만은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의 발현이다. 나와 유전적으로 무관한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능력, 그들의 복지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자기의 사적 자원을 기꺼이 내놓으려는 자발성, 이 모두가 자연이 인간에게 준 재능이며 본능이다. 이런 이타적 본성, 공감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나는 연대라고 부른다. 연대는 일, 놀이, 사랑과 더불어 삶을 의미 있고 존엄하고 품격 있게 만드는 제 4원소이다. 나는 이렇게 외치고 싶다. "연대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지금 이곳의 행복이 그들의 것이리라!" ---p.264
'연대'가 보편화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그는 정치에 뛰어들었고, 수없는 시도를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 개개인이, 사회가 준비가 덜 되어서 가시적인 결실은 맺지 못했다. 그러나 아직도 연대를 꿈꾸는 사람들은 (그의 말을 빌면 인간의 본성이기에) 언젠가 그것이 사회의 보편적인 시스템이 될 것이라고 강하고 믿고 있다. 조금 천천히 올 뿐. 이미 그 변화가 시작되었을 지 모른다.
얼마 전 본 다큐멘터리에서 '개개인은 하나의 문화다'라는 표현이 나왔었다. 얼마나 적절한 표현인가. 개개인의 쌓아가는 역사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화'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의미와 방향은 다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보편적인 진리라는 것이 있다. 정답은 아닐 지라도, 나와는 경우가 다를 지라도 이 책은 이러한 삶과 죽음이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각종 인문학적 증거를 들이대며 주장한 보편적인 진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의 주장에 동의 한다.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