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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넌 최고의 고양이 ㅣ 모퉁이책방 (곰곰어린이) 20
후지노 메구미 지음, 아이노야 유키 그림, 김지연 옮김 / 책속물고기 / 2013년 1월
평점 :
초등 고학년 대상이지만 책의 두께는 의외로 얇다.
이야기 구조도 의외로 복잡하지 않고 전달하려는 메시지도 간단하다.
그러나 책을 한 번 손에 들면 끝까지 읽을 때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되고,
다 읽은 후에도 계속 머릿 속에서 생각을 거듭하게 하는 마력이 있는 책이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읽을 때의 느낌과 흡사하다.
가슴 속에서 뭔가 꿈틀대면서 그 속으로 빠져들어갔다가 나온 느낌.
그리고 계속 머릿 속으로 그 느낌을 되새기게 되는...
이야기는 주인공인 최고였던 고양이가 주인에게 버림을 받는 것으로 출발한다.
'에투알'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는...
삼각형 모양의 귀는 커다랗고, 푸른빛이 도는 회색털은 부드러웠으며, 선명한 녹색 눈동자는
보석보다 더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 p.4
'아름다운 고양이 선발대회'에서 일등상을 받을 만큼 외모가 아름다웠다.
주인은 에투알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서 약도 바르고, 매일 정성껏 빗질도 해주며 보살폈다.
그러면서 에투알에게 늘 '일등'을 강조한다.
그러나 에투알의 외모가 아름다운 것은 스스로 얻어낸 결과가 아니다.
타고난 외모와 주인의 노력 외에 에투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에투알은 '일등'에 대한 부담이 스트레스로 다가갈 수밖에 없다.
책 속에서 원인은 명시되지 않았지만 결국 에투알은 피부병에 걸려 볼품이 없어져 버리고,
더 이상 쓸모가 없다고 생각한 주인은 에투알을 길거리에 버린다.
자신이 선택했던 외모도 아니었고, 자신이 원했던 대회도 아니었지만 '일등'을 함으로써
편안하게 살았던 고양이 에투알은 이제 살아갈 길이 막막해졌다.
그렇게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바이올린을 만드는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할아버지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
할아버지는 바이올린을 갉아 먹는 쥐를 잡아 줄 것을 에투알에게 부탁했고,
할아버지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에투알은 고양이면서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쥐잡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편안하게만 살던 에투알이 쥐 잡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쥐를 잡는 것은 고양이의 본성임에도 다른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어 살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본성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발톱까지 갈며 준비한 끝에 비록 잡지는 못했지만 날쌔기만 하던 쥐꼬리를 만지게 되었다.
'쥐꼬리를 만졌어! 쥐 꼬리를 만졌어!'
쥐의 꼬리는 아주 신기했습니다. 고양이처럼 탐스러운 털은 없었지만
가느다랗고 딱딱하며 차가운 쥐의 꼬리는 움직임이 빨랐습니다.
에투알은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느껴 본 적 없는 흥분이 온몸을 감쌌습니다.
'쥐잡기! 이게 바로 고양이가 할 일이구나!' --- p.28
할아버지가 실망을 할까봐, 또 다시 버림을 받을 까봐
에투알은 열심히 쥐잡기를 연습한 끝에 하루에 스물 두마리나 잡게 되었다.
처음에는 할아버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시작했지만,
점점 쥐잡기의 매력에 빠져 들면서 자신의 숨은 재능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들고양이 '다비 아저씨'의 권유로
고양이들 사이에서 열리는 '쥐잡기 대회'에 출전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또 다시 일등을 못하면 주인에게 버림받고,
일등을 하면 다른 고양이들의 질투로 따돌림을 당했던 기억에 주저했지만,
할아버지도, 다비 아저씨도 대회 성적과는 상관없이 사랑해줄 거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면서 에투알은 쥐잡기 대회 참가를 결심하게 된 것이다.
'해 보고 싶어! 대회에 나가서 쥐를 잡고 싶어! 그리고 이왕 하는 거면......'
에투알은 마침내 자신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일등이 되고 싶다!'
마음속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일등이 되고 싶습니다. 쥐잡기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쥐를 많이 잡든 한 마리도 못 잡든 에투알이 에투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에투알은 쥐를 더 많이 잡을 수 있게 되기를 꿈꿨습니다. --- p.68
'아름다운 고양이 선발대회'나 '쥐잡기 대회'에서나 에투알은 모두 일등을 바랬다.
그러나 전자가 타인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라면, 후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최고가 되고 싶은 자기 자신을 위한 일등이다.
그렇게 대회에 참가한 에투알은 스물 다섯 마리를 잡으며 4등을 한다.
일등, 이등, 삼등 고양이는 시상대에 올라서 자랑스럽게 상을 받았지만,
사등을 한 에투알은 시상대에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만족스러웠습니다.
큰 무대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쥐잡기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 p.70
일등은 아니었지만 큰 세상을 알게 된 에투알의 가슴은 두방망이질치면서
도전할 목표가 생긴 것에 흥분을 한다.
"내년에도 또 대회에 나갈 거예요."
"그래, 내년에는 시상대에 오를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네. 살아 있는 동안 쭉 쥐를 잡을 거예요. 그리고 쥐를 더 잘 잡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계속 생각해 낼 거예요."
에투알은 여느 때처럼 쥐를 잡는 일에,
할아버지는 바이올린을 만드는 일에 열중했습니다. --- p.71
그러던 어느 날 대회에서 일등을 했던, 에투알이 선망을 하며 바라봤던 '피터' 고양이가 찾아온다.
에투알의 열정과 재능을 눈여겨 봤던 피터는 에투알을 후계자로 키우기 위해
함께 가자는 제안을 한다.
"일등은 자기 힘으로 차지하는 거야. 누군가에게 받는 게 아니다. 알겠냐?
그걸 똑똑히 기억해 두라고." --- p.75
그러나 주인에게 버림받았을 때 따뜻하게 맞아 준 할아버지를 혼자 남겨두고 떠날 수 없어
갈등을 한다.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에투알에게 할아버지는
걱정하지 말고 선택하라고 용기를 준다.
결국, 에투알을 최고의 쥐잡기 고양이가 되기 위해 피터와 함께 떠날 것을 결심한다.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등을 쓰다듬고 나서야 에투알의 몸에서 손을 뗐습니다.
"네가 어디에 있든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든, 너는 내게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고양이란다.
열심히 하고 오너라."--- p.78
'위기가 곧 기회다'라는 말이 있다.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에서는 결코 변화를 주기 어렵다.
위기의 순간에는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회와 경험을 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기도 한다.
주저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극복해나가려고 방법을 찾던 중에
생각하지도 못하는 곳에서 기회를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에투알 역시 그랬다. 만약 피부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에투알은 아마도 영원히
자신 속에 살아 꿈틀대는 쥐잡기의 본성을 찾을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외모로 일등의 영광을 누리면서도 그 세상이 전부라고 믿고,
그것이 자기자신이라고 생각하면서 끊임없이 주인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외롭게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그 위기의 순간에 스스로를 일으켜 세워서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부족한 상황에서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에투알은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게 되었다.
할아버지와 만남부터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날 때까지 스스로 결정하고, 이겨내며 만들어 낸 길이다.
우리 인생의 축소판일 수도 있고, 아이들의 성장의 과정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안주가 아니라 도전이며, 좌절이 아니라 극복이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처럼 아주 나쁜 일도, 아주 좋은 일도 없다.
문제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이것을 에투알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