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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십대를 위한 철학 교과서, 나 - 청소년, 철학과 사랑에 빠지다 ㅣ 꿈결 청소년 교양서 시리즈 꿈의 비행 3
고규홍 외 지음 / 꿈결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몇 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인문학 열풍으로 철학은 적잖이 익숙한 학문이 되어 버렸다. 사실 철학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는 무지의 상태임에도 너무 이름만 많이 들었기에, 마치 보지도 않은 블록버스터급 영화를 본 것처럼 착각하는 것처럼 철학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당최 이 사람의 얘기가 저 사람이 한 것 같고, 철학자의 이름도 입 안에서만 맴돌 뿐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할 정도로 아는 것이 없다.
그렇지만 철학은 나와 무관한 것으로 몰라도 사는 데 큰 지장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 내 주위에 이 '철학'의 그림자자 자꾸 따라 다닌다. 독서 지도를 할 때도 중학교만 올라가도 이 철학적인 문제가 나오기 시작하고, 올 해부터 배우기 시작한 토론에서도 그렇다. 토론에서 철학은 꼭 들어가야 할 필수 양념과 같은 존재이다. 토론이 아무래도 우리 사회에서 활발하게 쟁점화되고 있는 문제나 가치를 다루다 보니 학문적인 근거를 제시할 때 이 철학적인 접근 만큼 든든한 배경이 없는 것이다. 나와는 별개의 세상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토론을 하면서 철학은 우리 생활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내게 있어 철학은 이제 넘어야 할 산이 되어 버렸다. 내가 넘어야 할 산은 '철학'은 어렵고, 힘들다, 내가 감히 넘볼 수 없는 분야라는 두려움이다. 지루하고 어렵고, 딱딱하다는 생각으로 그동안 멀리 했는데, 이제는 용감하게 도전을 해보려고 한다. 어디까지 도착이라는 목표보다는 그저 내가 이해하고 알 수 있는 만큼만 그 속도로 천천히 즐기면서 이해해보려고 한다. 비록 순간순간 어렵고 좌절감이 엄습을 해올지라도.
이렇게 철학에 대한 새삼스러운 각오를 불태우고 있을 때 이 책 [생각하는 십대를 위한 철학 교과서, 나]를 만나게 되었다. 일단, '십대', '청소년'이라는 제목과 부제가 마음에 들었다. 어차피 걸음마이니 폼잡고 어려운 책을 읽으며 끙끙대는 것보다는 조금은 쉽게 쓰여진 책이 더 접근하는데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철학에 대해 문외한임에도 술술 넘어갈 정도로 쉽게 읽을 수 있다. 철학에서의 개념들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이 많음에도 두 세번 곱씹거나 여러 번 생각하지 않아도 바로 이해가 될 정도로 친철하게 잘 풀어서 설명해준다. 고규홍, 김경집, 김봉규 세 공저자는 아마도 쓰면서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했을 듯 싶다. 암튼 덕분에 나같은 초보자는 철학책임에도 정말 수필책 읽듯이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고, 다 읽었을 때는 나름 뿌듯함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의 구성은 총 3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제 1장에서는 '나'에 대해 알아본다. 정체성, 시간, 자유, 행복, 죽음을 통해서 '나'를 탐색해본 후에, 2장에서는 우리로 범위가 확대된다. 윤리, 정의, 남녀, 동물, 폭력이라는 문제로 나와 우리, 우리와 우리의 관계를 살펴본다. 마지막 3장에서는 우리가 더 확대된 세계를 생각해본다. 과학, 예술, 미디어, 역사, 정보화의 관점에서 세계를 인식해본다.
이 책의 특징은 이 15가지 주제에 대한 질문과 이 주제를 잘 나타낸 책을 기반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 이외에도 광고, 그림, 영화 등등 많은 자료와 풍부한 사진을 수록하고 있어 부담없이 그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다. 또한 인용책의 저자나 사상가는 물론,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용어는 어김없이 각주를 달아서 설명을 해줌으로써 따로 찾아보는 수고를 덜어주고 있으다. 책 한 권만 차근차근 읽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자료나 설명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글 속에 인용했거나 언급했던 책들은 챕터가 끝날 때 한꺼번에 모아놓고 설명도 달아주어 차후에 참고하는데 용이하게 해준다. 그리고 '청소년이 읽어 보면 좋은 책'이라는 표시를 해두어 꼭 읽어 보면 좋을 책을 권해주고 있다.
전반적으로 읽기가 편하고 재미도 있지만 유난히 제 1장 '나'의 '정체성' 부분은 생소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여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오히려 뒤로 갈수록 우리와 특히 세계의 부분은 주제도 익숙하긴 했지만 평소에 접했던 내용이라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정체성'이라는 주제가 어려울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에 대해 생각하는데 그만큼 인색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사는데 익숙하다 보니 정작 내가 누구인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제대로 모른 채 앞으로만 달려가다 보니 '나'에 대해 인식하고 고민하는 것이 낮설고 어려워지지 않았나 싶다.
인간은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사람 사이의 존재, 다시 말해 '관계의 존재'입니다. 정체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 안에서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 안에서만 정체성은 존재합니다. 삶은 관계의 연속이며, 정체성은 모든 관계의 문을 여는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가 지속되는 동안 계속해서 서로를 관계의 존재로 인식하게 합니다. 결국 정체성이란 인간관계의 본질이자, 인생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중심점이 되는 셈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사회 안에서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늘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체성, 다시 말해 '나'는 누구인지에 대해 말입니다. (p. 26)
2장에서는 '우리' 즉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주제를 다루는 데 그 중에서도 '폭력'에 대한 정의가 인상 깊다. 우리는 흔히 '폭력'하면 난폭하게 휘두르는 힘을 떠올리는 데 책에서는 '폭력'은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특정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이것은 인간의 자율성에 침해하기 때문에 비윤리적인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예로 든 것이 '광고'이다. 광고는 허구를 전달하면서 소비자를 현혹시켜서 자기도 모르게, 즉 자율성이 상실된 채 물건을 구입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넘쳐나는 광고 속에서 느끼는 피로감, 나도 모르게 구입하게 되는 물건들,,,이런 것들이 모두 '폭력'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는 순간 정신이 번쩍났다. 나도 모르게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몰랐다는 사실에 갑자기 억울함이 밀려 온다. 그리고 우리가 철학을 왜 공부해야 해야 하는 지 그 이유를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현대 사회의 폭력 가운데 우리가 심각하게 주목해야 할 것은 오히려 폭력의 피해자들이 폭력의 가해자나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 자체에 열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제공되는 정보와 오락거리들을 흥미 위주로, 재미 위주로, 그리고 충동적으로, 결국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율성을 상실은 인간은 노예, 또는 사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자율적 주체로 살아갈 수 있을 때 우리는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킬 수 있습니다. (p.178)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머리 속으로 토론을 염두에 두고 읽었다. 토론을 준비할 때는 '행복' '윤리' 등과 같은 관념을 끌고 오게 되는데 이러한 부분들의 기본 정의와 개념에 대한 설명은 물론, 철학적인 배경, 역사 등등의 해설이 친절하게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념과 정의 사례 등을 따로 찾지 않고, 이 책에서 뽑아서 써도 될 정도로 참 친절하게 잘 정리해놓고 있다. 토론 뿐만 아니라 논술을 할 때도 마찬가지로 유용하게 사용될 듯 싶다. 그런 목표를 가지고 읽다 보니 곳곳에 보석이 널려있고, 한줄한줄이 버릴 것 없이 소중하기만 하다. 유익한 자료에 재미까지 더하니 지루할 틈 없이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을 아까워하며 읽었다. 반복해서 읽어 보는 것은 물론, 평소에 곁에 두고 계속 참고해가며 보아야 할 정말 멋진 책이다.
본 서평은 한우리 북카페에서 서평단에게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