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내 마음을 그리 꼼짝도 못하게 붙들었던지 내려할 정류장에서 내리지 못하고 몇 정류장을 휙휙 지나쳐 종내는 버스의 종점까지 가고야 말았다. 서점에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만났을 때, 나는 화창한 날씨가 무색할 정도로 가슴에 찌든 권태와 우울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소중한 것을 잊지 않으며 열심히 잘 살고 있는가 하는 물음표를 가슴에 남기게 되었다.일이 뜻대로 되질 않아 세상이 덧없다 여겨져 조금은 상심하고 있었는데 모리 교수님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내게 사색의 시간을 던져 주었다. 죽음의 그늘 속에서도 생이 얼마나 값지고 아름다운 것인지 알려준 모리 교수님은 정말 참된 스승이구나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든다. 스스럼없이 농담과 애칭을 주고받는 스승과 제자의 모습은 사제지간을 떠나 사람과 사람의 따뜻한 교감을 느끼게 한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수업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또한 세상에 이렇게 값진 인연이 또 어디 있겠는가. 참된 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자리에 언제나 놓여 있는데 헛된 욕망이 이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책을 읽는 내내 내게 소중한 학창 시절의 추억을 주신 선생님이 생각나 가슴이 뭉클했다. 졸업식 날, 나 역시 '미치'처럼 선생님을 자주 찾아 뵙겠노라고 철석같이 약속해 놓고는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내 위치에서 좀더 자리를 잡으면 자랑스럽게 찾아뵈어야지 하며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가슴에 묻고 하루하루 지내고 있다. 선생님께선 내 안부 전화 한 통에도 환하게 웃어 주실 텐데 말이다. 오랜만에 선생님을 찾아 뵐 생각이다.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안개꽃 한 다발과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가슴에 안고서.
설 연휴를 맞아 한자리에 모인 사촌 동생들을 데리고 서점 나들이를 했다. 책을 좋아한다는 막내 작은아버지의 아이들은 벌써 아동 도서 코너에 자리를 잡고 이 책 저 책 뒤적거리고 있었다. 창작 동화는 많지만 어떤 책이 아이들에게 친한 동무가 되어줄 지 몰라 망설이다가 이제 초등학교 5학년, 3학년에 올라가는 사촌 동생들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 책장 하나 가득 책이 있어도 자기가 좋아하는 책만 골라 읽는다는 아이들이었다. 『우리나라 좋은동화 12』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너무 교훈성을 강조한 책은 아닐까 걱정도 되었다. 교훈성을 강조하면 자칫 지루해지기 십상이었기에. 하지만 아이들에 앞서 책을 읽은 나로서는 아이들에게 권해 주고 싶은 동화집이었다. 이름을 들으면 다 알만한 중장년층 작가들이 들려주는 개개의 이야기 속에서 훈훈한 인정과 성숙된 동심을 엿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해리포터'에 열광하는 아이들이 좋아할까 염려스러웠으나 다행히 아이들은 곧 독서에 몰입했다.「촌놈과 떡장수」「우리들의 대장」「깃발」같은 동화들은 자기네와 비슷하다며 공감을 표시하기도 하고,「고이댕기」「숯이 부르는 노래」같은 동화들을 읽을 때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아이들의 질문에 큰어머니, 작은어머니 할 것 없이 그네들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이들은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어른들의구수한 얘기에 헤벌쭉 웃으며 좋아했다. 좋은 책을 선물 받은 아이들은 짧은 설 연휴가 그리 아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인성의 소설을 대할 때마다 날카로운 의식의 고문대 위에 선 작가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문장은 난해하고 의식이 한곳에 편안하게 머물러 있는 것을 방해한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을 때마다 내 의식 세계가 마구 파괴 되어감을 느낀다. 머릿속을 부유하는 언어, 이미지, 그리고 무의식의 파편은 수많은 의식의 꼬리표를 달게 한다. 대체 왜 나를 미치게 한단 말인가. 작가에게 묻고 싶다. 어디까지 나를 낯설게 만들 것이냐고.「강 어귀에 섬 하나」역시 나를 한없이 견딜 수 없는 낯선 시간 속으로 인도하고 독서 내내 내면의 카오스를 불러일으킨다. 언젠가 「낯선 시간 속으로」을 읽다가 거의 미치기 직전의 의식의 혼란을 맛보았는데 이번만은 조금만 내적 동요를 일으키기를 바라며 시작한 독서는 또 한 번 자아를 분리시킨다. 그의 소설을 읽노라면 책을 읽고 있는 나를 책 속의 나가 빼꼼히 들여다보는 환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난해하고 머리에 쥐가 나게 할만큼 힘들게 하는 독서의 묘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 소설집 안의 개개의 소설들은 '욕망'이라는 코드로 읽혀진다. '욕망' 하면 야한 생각부터 떠올리게 되는 것을 보면 성적 욕망이 우리의 감정의 휘몰이에 있어서 더 기승을 부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왠지 건드리면 신비한 그 무언가가 터져 나올 것 같은 베일에 가려진 욕망! 하지만 작가는 이런 기대를 여실히 배반한다. 소설집 속의 욕망은 인간의 치졸하고 잔인하며 파괴적인 온갖 난잡스런 감정들이 다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욕망이 힘들고 지루하게 펼쳐진 듯 하지만 소설을 꼼꼼히 읽어보면 다분히 독립 영화같다는 생각까지 들게 된다. 아마도 소설 곳곳에 숨바꼭질하듯 꼭꼭 숨어 있는 상징들 때문이랴. 그러한 상징들을 찾아 읽는 맛은 소설을 읽는데 있어서 하나의 재미를 불러일으켜 주지만 이 소설집에서는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며 난감함 그 자체였다. 정말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소설이지 않은가 싶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탈춤인지, 가면극인지, 혹은 어색한 악몽 같은 폭력적인 환상과 현실의 중간 지점에서 의도적인 기억 상실의 초기 증상을 보이는 것처럼 지금의 내 상태가 그러하다. 한 편의 소설 안에 이렇게 엄청난 상징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읽을수록 답은 나오지 않고 물음표만 더해진다.1분중 0분께서 이 리뷰를 추천하셨습니다.
처음 읽을 때는 통 무슨 이야기인지 가닥이 잡히지 않아 힘든 독서를 했는데 다시 한 번 읽을 때는 새록새록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소설이 있다. 반면, 처음 독서 시에는 재미있게 술술 읽혀도 책장을 덮고 돌아서면 공허해지는 소설이 있다. 이런 소설은 손을 떠나면 다음 번엔 다시 펼쳐 보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최윤의 「하나코는 없다」는 처음에 그 맛을 느끼지 못했지만 읽을수록 맛깔스런 작품이다. 하나코는 없다!!! 호기심을 주기에 충분한 제목이다. 하지만 통 줄거리가 잡히지 않아 한 번의 독서로는 내용 파악이 곤혹스럽다.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하나코라는 여자의 캐릭터다. '여자는 감성적인 동물'이라는 말이 하나코를 통해 무색해진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남성들이 오히려 더 감성적이고 의지가 박약하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시간이 늦어지면 남자가 여자를 집 가까운 곳까지 바래다주는 게 하나의 에티켓처럼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코의 경우는 다르다. 여행지에서 하나코와 그녀의 친구가 몇 배로 두터워진 어둠 속으로 걸어나가도 아무도 따라나가지 않는다는 설정이 그러하다. 하나코는 의지 있고 강한 여자인가? 기존의 수동적인 여성에 비한다면 그렇다고 볼 수 있겠으나 단지 작품 안의 스토리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성의 눈으로 바라본 하나코! 잡힐 듯하면서 잡히지 않고, 보일 듯하면서 보이지 않는 베네치아의 겨울 안개와 신비한 미로의 이미지가 결부되어 소설이 한층 빛이 난다. 여자의 관점에서, 하나코의 관점에서 쓰여졌다면 이 소설은 아마 성공하지 못했으리라. 소재·사건 위주의 빠른 전개, 단문으로 쓰여진 소설에 익숙해진 독자들은 인내를 가지고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한 번쯤 있어도 없는 존재처럼 뿌연 안개의 시간을 겪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차분한 마음으로 베네치아의 겨울 안개를 그리며 진지한 사색에 잠기는 것도 추위를 잊기에 안성맞춤이지 않을까.
'트렁크'라는 제목에서부터 무언가 범상치 않은 흡입력을 안겨 주는 이 시집은 한마디로 쇼킹 그 자체다. 파격적인 시어는 낯설고도 야릇한 정신세계로 인도한다. 어떻게 이렇게 시를 쓸 수 있을까 하며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의 무한한 욕망을 사물에 빗대어 나타내는 그녀만의 독특한 상상력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여러모로 그간 읽어 왔던 시와는 차별화 된, 그야말로 정신세계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켜 주는 시가 아닐 수 없다. 남자가 아닌 여자의 입장에서 쓴 욕망에 관한 리얼하고 짜릿한 시어들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자신의 욕망을 바깥으로 표출하는데 있어 한치의 주저함도 없는 당당함에 찬사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자칫 폭력적이고 외설적일 수도 있을 만한 시어들의 조합은 불안정해 보이면서 잘 짜여진 옷감의 직조처럼 잘 맞물려 내 안의 욕망을 자극한다. 한 소절 한 소절 읽 때마다 내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욕망이 방향을 잃고 사방으로 분출되었다. 욕망이라는 것은 무궁무진하고 지속적이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배설의 욕구를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욕망이 생기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그 욕망을 해결하려고 하는 또 다른 욕망이 항상 우리의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다. 욕망이 해결되지 않았을 때의 파국은 엽기적이고 기괴한 양상을 보이게 된다. 그녀의 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욕망을 해결하려 할 때에는 아무 것도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감전사 같은 것은 오히려 부수적인 차원이며 오직 욕망만이 주위의 모든 공기를 감싸 안는다. 우리가 들이마시는 공기 속에 욕망이라는 알갱이가 들어 있는 게 아닐까 싶게. 생물학적으로 우리 몸의 대부분이 물로 구성되어 있다면 '욕망'은 우리의 정신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이고 절대적인 것이리라. 모든 예술 장르에서 욕망을 제외하면 인간의 행위 자체도 이해될 수 없으며 본질을 잃을 것이다. 이 시집을 읽으며 내내 실재한다 믿었던 내가, 나 자신이 아닌 상상의 존재는 아닐까 하는 물음과 동시에 실재하는 나는 어디에 있을까, 하는 혼돈을 경험하게 된다.욕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이들과 일상의 권태를 잊고자 하는 이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