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코는 없다 - 1994년 제18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최윤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199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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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을 때는 통 무슨 이야기인지 가닥이 잡히지 않아 힘든 독서를 했는데 다시 한 번 읽을 때는 새록새록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소설이 있다. 반면, 처음 독서 시에는 재미있게 술술 읽혀도 책장을 덮고 돌아서면 공허해지는 소설이 있다. 이런 소설은 손을 떠나면 다음 번엔 다시 펼쳐 보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최윤의 「하나코는 없다」는 처음에 그 맛을 느끼지 못했지만 읽을수록 맛깔스런 작품이다.

하나코는 없다!!! 호기심을 주기에 충분한 제목이다. 하지만 통 줄거리가 잡히지 않아 한 번의 독서로는 내용 파악이 곤혹스럽다.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하나코라는 여자의 캐릭터다. '여자는 감성적인 동물'이라는 말이 하나코를 통해 무색해진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남성들이 오히려 더 감성적이고 의지가 박약하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시간이 늦어지면 남자가 여자를 집 가까운 곳까지 바래다주는 게 하나의 에티켓처럼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코의 경우는 다르다. 여행지에서 하나코와 그녀의 친구가 몇 배로 두터워진 어둠 속으로 걸어나가도 아무도 따라나가지 않는다는 설정이 그러하다.

하나코는 의지 있고 강한 여자인가? 기존의 수동적인 여성에 비한다면 그렇다고 볼 수 있겠으나 단지 작품 안의 스토리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성의 눈으로 바라본 하나코! 잡힐 듯하면서 잡히지 않고, 보일 듯하면서 보이지 않는 베네치아의 겨울 안개와 신비한 미로의 이미지가 결부되어 소설이 한층 빛이 난다. 여자의 관점에서, 하나코의 관점에서 쓰여졌다면 이 소설은 아마 성공하지 못했으리라. 소재·사건 위주의 빠른 전개, 단문으로 쓰여진 소설에 익숙해진 독자들은 인내를 가지고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한 번쯤 있어도 없는 존재처럼 뿌연 안개의 시간을 겪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차분한 마음으로 베네치아의 겨울 안개를 그리며 진지한 사색에 잠기는 것도 추위를 잊기에 안성맞춤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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