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어귀에 섬 하나
이인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10월
평점 :
품절


이인성의 소설을 대할 때마다 날카로운 의식의 고문대 위에 선 작가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문장은 난해하고 의식이 한곳에 편안하게 머물러 있는 것을 방해한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을 때마다 내 의식 세계가 마구 파괴 되어감을 느낀다. 머릿속을 부유하는 언어, 이미지, 그리고 무의식의 파편은 수많은 의식의 꼬리표를 달게 한다. 대체 왜 나를 미치게 한단 말인가. 작가에게 묻고 싶다. 어디까지 나를 낯설게 만들 것이냐고.

「강 어귀에 섬 하나」역시 나를 한없이 견딜 수 없는 낯선 시간 속으로 인도하고 독서 내내 내면의 카오스를 불러일으킨다. 언젠가 「낯선 시간 속으로」을 읽다가 거의 미치기 직전의 의식의 혼란을 맛보았는데 이번만은 조금만 내적 동요를 일으키기를 바라며 시작한 독서는 또 한 번 자아를 분리시킨다. 그의 소설을 읽노라면 책을 읽고 있는 나를 책 속의 나가 빼꼼히 들여다보는 환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난해하고 머리에 쥐가 나게 할만큼 힘들게 하는 독서의 묘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 소설집 안의 개개의 소설들은 '욕망'이라는 코드로 읽혀진다. '욕망' 하면 야한 생각부터 떠올리게 되는 것을 보면 성적 욕망이 우리의 감정의 휘몰이에 있어서 더 기승을 부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왠지 건드리면 신비한 그 무언가가 터져 나올 것 같은 베일에 가려진 욕망! 하지만 작가는 이런 기대를 여실히 배반한다. 소설집 속의 욕망은 인간의 치졸하고 잔인하며 파괴적인 온갖 난잡스런 감정들이 다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욕망이 힘들고 지루하게 펼쳐진 듯 하지만 소설을 꼼꼼히 읽어보면 다분히 독립 영화같다는 생각까지 들게 된다. 아마도 소설 곳곳에 숨바꼭질하듯 꼭꼭 숨어 있는 상징들 때문이랴. 그러한 상징들을 찾아 읽는 맛은 소설을 읽는데 있어서 하나의 재미를 불러일으켜 주지만 이 소설집에서는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며 난감함 그 자체였다. 정말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소설이지 않은가 싶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탈춤인지, 가면극인지, 혹은 어색한 악몽 같은 폭력적인 환상과 현실의 중간 지점에서 의도적인 기억 상실의 초기 증상을 보이는 것처럼 지금의 내 상태가 그러하다. 한 편의 소설 안에 이렇게 엄청난 상징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읽을수록 답은 나오지 않고 물음표만 더해진다.

1분중 0분께서 이 리뷰를 추천하셨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