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반지성주의
리처드 호프스태터 지음, 유강은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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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반지성주의 #반지성주의 #교유서가 #리처드호프스태터 #지식인 #책스타그램

책을 손에 쥐면서부터 이유모를 겸연쩍음이 계속됐다. 반지성주의란 단어가 활자화되어 다뤄진 자체가 워낙 강렬하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우르르 몰려다니는 대중 따위 반지성적이라며 냉소했던 나 자신은 정작 뭔가 싶은 혼란스러움 때문일까. 그러고 보니 이 책은 대학 새내기시절 읽었던 '지식인을 위한 변명' 같은 책이 던졌던 오래된 질문을 환기시킨다. 지성은 뭐고 지식인은 누구이며 뭘 하는 존재들인가. 관료나 작가가 지식인인가, 월급노예는 그럼 뭐지. 나이와 위치에 맞게 좀더 현실화된 고민이다. 그리고 왠지 낯간지럽고 겸연쩍은 고민.

지성과 지식인의 특별함을 말하는 건 이제 그런 간지러운 느낌인 시대다. 혹자는 X선비질하지 말라고 화를 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민주주의와 평등이 보편가치가 되었고, 지식과 정보는 네이버 지식인에 물어보면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는 데다가 교수와 철학자의 이야기는 온라인 상에서 댓글과 과히 다를 것 없는 무게감을 갖는다. 정치와 역사와 사회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특허나 자격증이 필요한 것도 아닐진대 대체 저 '척'하는 먹물들은 왜 그걸 독점하려 드는가 말이다. 그리고 쉽고 짧게 말하면 될 걸 왜 괜히 어렵고 복잡하게 말이 길어지냐 말이다. 그냥 실용적이고 돈되는 이야기나 하지, 구름잡는 이야기 따위 일자리 한개라도 만드는데 보탬이 되나 말이다.

저자는 미국의 건국과 대서부시대 이래 1950년대 매카시 광풍이 지나간 시점까지 지식인들의 역할과 지식인사회-대중간의 긴장을 국면국면의 스냅샷처럼 찍어 세밀히 묘사한다. 미국의 특유한 '반지성주의'가 형성된 곳을 크게 종교와 정치, 사업과 교육에서 찾고 있다. 엄밀한 의례와 교의를 갖춘 종교와 대척하여 개인의 신비체험을 강조한 복음주의교파들, 지성보다 인성을 강조하며 귀족계급의 리더십을 타파한 평등주의적 정치이념, 고급문화의 정신적 가치 대신 실용성을 최우선으로 삼은 교육과 사업에서의 실용주의자들. 미국 역사의 굵직한 사건들과 흐름을 '지성 vs 반지성'의 오랜 갈등사로 재구성한 스토리는 굉장히 설득력있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적실한 프레임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그가 유지하고 있는 지식인상이 정치와 문화, 체제에 대한 비판정신으로 표상되는 점이 여전히 난 맘에 든다.

그렇지만 몇가지 떠오르는 질문들을 남겨놓자면.
1.이게 정말 미국만의 상황이었을까. 유럽 이외의 모든 국가에 보편적인 양상은 아니고? 어쩌면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과정에서 유럽의 '지성주의'가 예외적인 건 아닐까 싶어서 하는 이야기다.
2.2000년대를 경과한 미국도 같은 프레임으로 읽을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 같은 표피적인 사건말고 예컨대 서부 IT기업들의 기업문화는 반지성주의와 어떻게 엮일까. 실용성과 기술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역시 반지성주의의 흐름에 있다고 봐야 할지.
3.AI 등의 논의는 인간과 지성이란 테마에 어떤 자극을 줄까. AI를 둘러싼 논의가 온통 지식과 정보처리에 집중되어 있어 지성 따위 잊혀진 건 아닐까 싶은데 그럼 안되는 거 아닌가..
4.한국의 반지성주의를 따져본다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미국의 그것과 별반 차이없이 종교와 정치, 비즈니스와 교육이 큰 요소인 건 변함없을 것 같기도 하고. 그치만 한국이 타파해야 할 귀족적/특권계급적인 지적공동체, 앙시앙레짐이 애초 있었던가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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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 육군 - 제2차 세계대전을 주도한 일본 제국주의의 몸통
호사카 마사야스 지음, 정선태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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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육군 #글항아리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일본 #전쟁 #쇼와 #육군 #위안부 #박유하 #제국

저명한 르포르타주 작가이자 '자성사관'의 주창자인 저자는 일본 제국주의시대, 그중에서도 1931년 만주사변 이후 '태평양전쟁' 패전에 이르기까지 일본을 견인한 세력이 누구이며 어떤 관점과 목적을 갖고 있었는지에 천착한다. 그저 '일본이 나빴다'거나 도조히데키 개새기,라는 두루뭉술한 선언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으며, 여전히 피가 흐르는 동시대사를 갈무리된 역사로 넘기기 위해서도 구체적이고 자세한 검증이 필요하단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는 일본의 정치와 전쟁을 줄곧 주도해온 세력을 육군, 그중에서도 대본영 육군부(참모본부)의 엘리트 군관료집단이라 본다. 군대에 대한 통수권이 국민에 대한 통치권보다 우위를 점한 채 전혀 간섭받거나 통제되지 않던 시대. 육군은 오로지 천황의 재가에 따라 움직이는 황군이라지만, 천황이 허울뿐인 총괄을 했다는 판단을 뒷받침하는 정변과 사건들이 풍부하게 등장한다.

이렇게 통제되지 않은 육군 엘리트들은 군대조직의 본능에 따라 계속해서 자존 자위를 말하며, 그에 따른 안보선은 넓어지기만 할 뿐이다. 내지를 보전하기 위한 중국 침략, 중국을 보전하기 위한 러시아 견제 혹은 동남아 침략, 급기야 미국에 대한 침략으로. 그렇지만 빈약한 정보와 준비되지 않은 병참, 무엇보다 국가총동원체제로 치뤄지는 전쟁에서의 절대적 열세를 극복하기엔 정신력과 충성심만으로는 중과부적.

책을 덮으며, 그간 우리는 승자의 기록에 손쉽게 편승하고 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해방이라는 혜택을 입은 이해당사자로서(얼마나 다행인가, 일본이 폭주하여 스스로 자멸했단 건!), 엄밀하고 냉정한 분석을 필요로 한 적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41년말 진주만폭격으로 시작된 미일전쟁, 그리고 그전의 독이일 삼국동맹과 연합국간 다툼을 두고 단순히 파시즘과 반파시즘의 대결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일본을 변호하는 것은 아니나 제국주의 시대였고, 일본은 뒤늦게 시장쟁탈전쟁에 가담한 국가 중의 하나였을 뿐. 미국이 주창한 민족자결과 자유민주의 원칙들은 기실 타국의 대외정책을 견제하고 자국의 통상이익을 수호하는 국익을 위한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정의가 승리한다는 증거로 뒤늦게 제출되었지 않나.

책의 한계 하나, 저자는 대동아공영권이란 이데올로기가 허위적이고 가식적으로 쓰였음을 날카롭게 비판하지만, 그 가치 자체에 대해서는 중립적이거나 혹은 호의적인 것처럼 보인다. 아시아와 서양을 대비시키며, 식민지 지배자와 해방자를 대비시키는 구도는 너무 단순하고 나이브하지 않나. 게다가 동남아 전선에 버려진 수천의 무명용사들이 각국의 해방전쟁에 자의로 가담했음을 근거로 대동아공영권의 가치가 살아있음을 말하는 건 비약이다. 그들의 의도와 맥락에 대한 분석없는 점프의 결과는 보편적인 인류애나 가치관이 아닌, 인종과 지역을 근거로 한 대동아공영권 아이디어 자체가 복권될 여지를 남긴다.

그리고 두번째 한계를 굳이 더하자면, 천백페이지에 이르는 이 책은 월간지에 연재된 원고를 근간으로 쓰여지다보니 압축적이지 못하다. 관련자에 대한 심층취재의 생생함을 더하려 했다 해도 겹치는 내용과 장면이 많아, 예컨대 위안부나 전후배상 문제에 대해 짧게 언급하고 넘어간 부분이 아쉽다. 전시는 평시와는 다른 가치관과 결정을 필요로 하며 또 당대는 지금과 다른 감각으로 위안부 정책 등이 수행되었다, 는 다소 논쟁적일 수 있는 부분들이 뭉뚱그려졌다. 저자 말대로 이는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철저한 연구조사가 선행되어야 그에 따른 진정한 반성과 사죄가 가능한 부분일 텐데, 1991년에 씌여진 이 책의 문제의식은 이후 그다지 계승되지 못한 듯 하다.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를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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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푼짜리 오페라 - 베르톨트 브레히트 희곡선집 열린책들 세계문학 200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이은희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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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푼짜리오페라 #브레히트 #희곡 #책스타그램

브레히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저 공산당에 가입한 적 없는 자칭 맑시스트란 점, 그리고 극에 대한 관객의 몰입을 끊임없이 방해하며 고전적인 카타르시스에 도달하는 것을 막는 '낯설게 하기'의 선구자란 점 정도. 희곡을 텍스트 자체로 읽는 건 상상하며 읽을 여지를 남기기 마련이지만, 합창과 대사와 방백이 뒤섞인 그의 희곡은 곳곳에서 제동을 걸어왔다.

서푼짜리오페라에서 그는 등장인물로 하여금 계속해서 초기 자본주의시기, 아마도 19세기 초반쯤을 냉소하는 대사를 내뱉도록 한다. 거지 왕초와 갱 두목간의 이야기는 그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고, 또 누구와 대척하며 누가 자신들을 억압하는지에 대한 명료한 메시지를 품고 있다. 그들의 얽히고설킨 관계는 그게 무엇이든, 우정이던 애정이던 전부 돈으로 환전되는 모습도 적나라하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갱 두목이 교수형에 처해지면서 끝나나 했던 이야기는 그야말로 우왁스럽게 방향을 틀어버린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할 수 밖에, 맥락없고 뜬금없는 사면령에 더해 귀족 작위라니. 피첨 부인과 피첨이 관객에게 직접 던지는 마지막 대사는 씁쓸하고 당황스러운 울림을 남긴다. "왕의 말탄 사신이 항상 온다면 우리네 인생도 이렇게 손쉽고 평화로울 텐데." "하지만 현실에서 그들의 끝은 비참하네..."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 말라는 주문이자 집요한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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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영향력 - 대중은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
조나 버거 지음, 김보미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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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않는영향력 #책스타그램 #마케팅 #조나버거 #와튼스쿨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가진 편견일 거다. 통계학적 방법론 혹은 실험론을 인간과 사회에 적용하는 경영학 관련서적들, 대체로 그것들은 해석 방향이 열려 있는 모호한 증거들이 널린 상태에서 저자가 가진 신념과 선입견에 근거해 어떤 내러티브를 짜는지가 정작 가장 중요해지는 역설을 보여준다. (그리고 대체로 경영학자들은 주류적 상식과 지배적 신념에 편승한 채 실험을 짜거나 결론을 도출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요지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며 차별화 내지 모방을 하려 한다. 그런데 그 방향이 어디로 갈지는 그때그때 다름, 데헷."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듯.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도 때로는 도움이 되지만 때로는 도움이 안된다."는 이야기까지. 결국 사람이 스스로 결정하고 있다 믿었던 것들이 대체로 타인간의 관계에서 영향을 받는단 뻔한 이야기에 여러 버전의 사회적-혹은 경영학적-실험을 뒷받침했을 뿐이다.

그와중에 스놉 효과니 골디락스라느니 진부한 단어들을 끌어들여 몇장을 할애하고, 실험 컨셉과 내용을 장황하게 설명하는데 또 몇장을 할애한다. '개인주의와 차별화를 긍정하는' 미국과 그렇지 않은 동아시아에 대한 편견에 손쉽게 기댄 설명은 나이브하고, 사람들은 정책이 아닌 정당을 보고 찬반 입장을 정한다는 시니컬한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실험 설계와 엄밀한 검증은 생략된다.

게다가 중간 챕터에 뜬금없이 들어간 도발적인 전제, 제대로 해명하지도 않은 떡밥 하나. 노동자 계층은 차별화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도발적인 주장..정말?? 중산층과 소방관 집단에 각기 친구가 BMW를 샀을 때의 기분을 물었더니 기분나빠하던 중산층과 달리 소방관들은 자동차 동호회를 만들겠다며 좋아하더란다. 그에 더해 몇몇 소소한 관찰에 기댄 결과, 중산층 이하의 저소득층은 차별화를 원치 않는다라.

아. 이런 책은 안 보는 게 내 정신건강엔 좋을 듯. 첫 챕터에서 찍어둔 부분 정도까지는 나름 '집단지성 만세' 운운하는 이야기에 대한 유효한 비판이자 근거를 좀 찾아볼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가 있었으나..역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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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3
알베르 카뮈 지음, 유호식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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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알베르까뮈 #까뮈 #책스타그램

페스트가 침습해온 성벽도시, 그 안에 갇힌 채 절망하고 분노하는 사람들. 성벽 밖의 사람들과 생이별한 채 옆집과 앞집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에 익숙해져야 할 때 여러가지 태도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드러내는 모습을 정밀하게 따라간다. 절망이 일상이 될 때의 삶이란 건 죽음을 베겟머리에 두고 사는 삶과 과히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작은 인간 실험장에 대한 다층적인 관찰 보고서와도 같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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