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달의 무르무르 Nobless Club 13
탁목조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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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이아의 생명들이 모르는 일곱 번째 달의 무르무르.

잊혀진 달, 일곱 번째 달에는 그들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들이 있다.




그림자, 아니무스, 아니마, 페르소나, 집단 무의식 등 융의 원형적 상징들이 살아 숨 쉬는 이야기?

책의 뒤표지에 나온 이 문구를 보고 처음에 드는 생각은

‘헉, 어떻게 하지? 이런 걸 모르면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을 못 느끼는 건가?’ 였다. 이왕 책을 읽는다면 그 작품의 진정한 매력을 느끼고픈 것은 독자로서의 욕심이니까.

하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그쪽으로는 문외한인 내게 이 소설은 멋진 판타지 소설로서, 노블레스 클럽의 명작의 대열에 선 작품으로서 전혀 손색 없는 모습이었다. 다시 말해서 내 지식의 한계가 이 작품을 읽는 데 큰 장애가 안 된다는 것이다. 세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르면 정확히 작품을 이해하기가 힘든 경우가 많다(이 사실도 제대로 번역된 작품과 해설을 보고서야 내가 왜 세익스피어의 작품에 매료되지 않았는가를 알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번역자의 능력에 따라 세익스피어의 작품이 시대를 넘나들며 아직까지 그 명성이 이어지고 있는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독자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 시절의 사회적 상황을 무시한 번역과 더불어 세익스피어의 명작들을 제대로 감상하는 데 가장 큰 문제점은 그리스 로마 신화와 같은 사전 지식의 부재에 있다. 그러나 일곱 번째 달의 무르무르는 다행스럽게도 융의 이름만 알고 있으며 그림자, 아니무스, 아니마, 페르소나, 집단 무의식 등 많은 부분에 빈틈이 많은 나 같은 사람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판타지 소설이다.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등 다양한 영화 등을 통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만큼 우리들의 상상력도 나날이 발전함으로써 조금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양한 인종 종족들과 사령들, 괴수들이 판치는 이 소설은 충분히 각자의 상상 속에서 멋진 신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아마도 필명인 듯한 저자의 이름, 탁목조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느낌은 작품 전반에도 나타난다. 하나의 신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에도 멈추지 않으려는 가이아와 일곱 개의 달을 만들어냈고, 저자가 후기에서 밝혔듯이 첫 번째 세계, 잊혀진 달의 존재들의 이야기를 이 책에서 풀어놓았으며 결론인 듯 아닌 듯한, 결말에선 다른 세계로 향한 그들의 이야기를 남겨놓았다.




나머지 다른 달들과 가이아에서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그것은 저자의 다음 번 작품에서 이어질까?

아니면 끝까지 독자들 개개인에게 맡길까?




저자의 후기로 봐서는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면 나머지 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해결될 듯도 하지만 돌연변이를 비롯한 다양한 인종 종족들이 함께 떠난 여행의 결말이 못내 궁금해 오늘 밤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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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에 달 뜨면
백동호 지음 / 밝은세상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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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문둥이.

어릴 적 전설의 고향에서 어린 아이들을 잡아가 인육을 먹는 사람으로 비춰졌던 사람들.

온 몸의 피부가 내려 앉아 붕대를 칭칭 감은 모습으로 나타난 그들에게 제대로 된 손과 발의 모습은 없었다.




얼마 전 소록도의 모습을 TV프로그램에서 보았다. 그 곳이 한센인(문둥병환자를 한센인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들을 격리했던 곳이라는 것을 소개하며 우리들의 잘못된 편견에 일침을 가하면서 지금의 소록도, 너무나 평온하고 아름다운 소록도를 소개하고 있었다. 중간에 5분 정도 본 것이 고작이었지만 대충 내용이 짐작되는지라 채널을 돌렸다.

그렇기에 <보리밭에 달 뜨면>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었다. 생체실험이라고 하면 중국에 있었던 731부대가 생각나건만, 소록도라니…. 한반도 내에서 벌어진 인간을 상대로 한 실험단지 소록도 이야기는 믿을 수 없었다. 몇 해 전 보았던 그 아름다운 섬에서 자행되었다니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독일은 세계 대전을 치르는 중 유태인 학살에 앞서 인종을 가리지 않고 장애인들을 가스실에 들여보냈다. 사회적 약자, 우리와 다른 이들을 대하는 인간의 악랄함이 극에 달한 모습이다. 소록도는 물론 이와 조금 다른 이유로 실행된 이야기다. 소설에 의하면 당시 전염병으로 인식된(전 세계적으로는 전염이 안 된다고 인지하고 있었지만 유독 일본만은 자국 내에서도 한센 인들을 감금관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나병환자들을 쉽게 관리하기 위해 소록도로 모두 보내 관리하는데 편리성을 위함이었고, 나중에는 생체실험의 대상자로 사회적 기피대상자로 낙인이 찍힌 그들을 이용함으로서 사회적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유복한 집안의 독자로 태어나 꽃길만이 펼쳐질 것 같았던 한 소년(상혁, 이 소설의 주인공)에게 어느 날 갑자기 나병이 찾아온다. 할아버지와 부모님의 사랑으로도 고칠 수 없는 병을 지녔던 그 소년은 결국 집을 나와 한센 인들의 낙원이라 일컫는 소록도로 향한다.

장터 싸움꾼으로 시장에 나타나는 문둥이들을 내모는 일을 담당했던 한 사내가 있다. 장터 상인들에게 문둥이들을 내쫓는 덕에 얼마만큼의 보상을 받는 그는 평소에도 싫어했던 문둥이들이 장터에 나타날 때면 죽을 만큼 손을 봐줬다(때론 죽이기도 했다). 그랬던 그에게 하늘의 노함이 온 것일까, 나병이 찾아왔다.

꽃다운 나이에 시집을 가서 나름의 행복을 찾고자 노력했던 한 여인이 있다. 그러나 그녀에게 찾아든 나병을 알게 되는 순간 그녀의 가족은 그녀를 버렸다.




책에서도 말했듯이 문둥이, 나병환자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각자 나름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한 아름씩 있다. 그런 사람들이 각각의 이유로 소록도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모였다. 몸도 성치 못한 그들에 의해 그들을 생체 실험할 건물들이 빠른 속도로 지어졌고 많은 이들이 한 줌의 뼛가루로 바다에 뿌려졌다. 우여곡절 끝에 소록도를 탈출했다 해도, 독립을 맞이했다 해도 문둥이, 나병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좋지 못했다. 산 속에 숨어 살며 나쁜 일들이 벌어지면 모든 죄를 뒤집어써야했던 그들은 사회적 약자였다. 그리고 그들을 품지 못했던 우리의 무지는 많은 이들의 죽음을 방관하는 죄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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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은 2009-06-28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서평 잘 보고갑니다. 책을 읽기전까지는 모르고 있었던 소록도의 안타까운 역사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 만에 다시 접한 에세이.

한동안 집착하듯이 읽어가다 한동안 멀어졌던 장르가 바로 에세이다.

남 다른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인생을 엿보는 즐거움과 나도 그들과 함께 멋지게 꿈을 이루어 내리라는 결의를 다지며 읽어나갔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의 말이, 그들의 삶이 진실한가? 라는 의구심과 같은 말이 반복되는 노래처럼 들리기 시작하자 한동안 멀리했다. 그렇게 어쩌면 내 손에 닿지 않을 운명이었던 책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가식을 버린 진실성으로 나의 눈과 마음을 매료시켰다.




다시 시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이가 들어 ‘좋은 사람’의 의미를 하루하루 깨우치고, 무엇보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남들의 생각에 치우치지 않은 채 진솔함과 솔직함으로 무장한 그녀의 이야기는 한 마디로 ‘멋지다!’ 라고 표현하고 싶었다. 남 다른 운명으로 화려한 업적을 쌓아 올린 이들에게 바치는 찬사가 아닌, 순도 100%의 ‘평범함’ 으로 무장한 인간 장 영희에게 바치는 ‘나의 감탄사’이다.

혹자는 두 발로 걷지 못하고, 1급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그녀가 어떻게 평범하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작가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교수로 재직하며 해외여행을 다니는 그녀가 어떻게 순도 100% 평범할 수 있냐고 따질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도리어 묻고 싶다.

화려한 선물 포장 박스에 담긴 모나미 볼펜 한 자루와 내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모나미 볼펜 한 자루가 무엇이 다르냐고? 손 떼가 가득 묻었든, 이빨 자국이 가득하든, 색색이 끈으로 온 몸을 휘감든, 그 안에 든 것은 50원 짜리 볼펜심일 뿐이다.




이 책은 작가 장 영희님이 샘터에 연재한 것들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작가 장 영희, 인간 장 영희를 소개하는 안내문이다. 처음에는 예쁜 그림에 먼저 눈이 간다. 아름답다고 해야 할까? 평온하다고 해야 할까? 약간의 신비로움까지 곁들여진 그림들은 이 책의 가치를 한 층 더 높여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 가득 담긴 이야기들은 그녀를 좀 더 일찍 보지(알지) 못한 아쉬움으로 나를 채운 책이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1분이 걸리고 그와 사귀는 것은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것은 일생이 걸린다.”(P120) 고 했던가!




제목을 고르는 고충을 토로하는 그녀를 알게 되는데 1분이 걸렸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도 아닌 이 책 한 권으로 충분했지만 그녀를 잊어버리는 것은 가능할까?




멋진 여자, 장 영희!

평범한 사람, 장 영희!




그녀의 진솔함이 내 손에 온 것도 기적이요, 그녀의 글이 내 마음을 움직인 것도 기적이다.

그녀를 이제라도 알게 된 것은 은총이요, 그녀의 죽음을 안타깝게 느낄 수 있는 심장을 내가 가진 것도 축복이다.




그렇기에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존재 그 자체로 내게 기적이요, 축복이요, 은총인 셈이다. 한 사람을 알게 되었고, 좋은 책을 또 한 권 가슴에 새기게 되었고 내 마음을 다스리는 소중한 양식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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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6-09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제게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을 보라색 볼드체로 인용하셨네요.
평범함이 보석같은 빛을 발하는, 그저 평범함이 아닌 그런 책이었어요.
 
바다에 뜬 거울
최학 지음 / 문예사조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나는 독서를 할 때 편식을 하는 편이었다.

한동안 로빈쿡의 의학소설에 미쳐 있다가, 추리소설에 푹 빠졌다. 한 장르의 소설만을 독식하다보니 금방 지루해졌고, 나의 관심은 에세이로 이동했다. 연예인들이나 남다른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드라마 같은 인생 역경이 가득한 이야기들은 소설과는 남 다른 매력으로 날 매료했다. 그러나 그것도 풋사랑처럼 지나가고 다시 나는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서점을 돌아다녔다. 그때 나의 시선을 잡은 것은 바로 시였다. 이십 대 초반이었던 내게 시라는 것은 그렇게 찾아왔고, 한동안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 흐르고 바쁜 일상에 쫓겨 책과 거리를 두었다가 다시 책을 읽게 되면서,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은 책을 접하다보니 시는 잠깐잠깐, 틈나는 대로, 자투리 시간에 읽게 되는 천덕꾸러기가 되어갔다. 작가가, 시인이 아이를 낳듯 정성들여 쓴 작품들이기에 이런 대접을 받게 하는 것이 죄스러워 한동안 시집은 나에게서 멀어졌다.

만남…이별…만남…그리고 이별…다시 만남.

이렇게 멀고 먼 여정을 통해 다시 시의 세계로 초대한 시집은 최 학님의 바다에 뜬 거울이다. 작가님의 친필 사인과 더불어 정성들여 쓴 시 한 수 한 수는 머언 길을 돌아서 온 님을 기다리는 여인네처럼 설레임으로 다가왔다. 그렇기에 잠깐이 아닌, 자투리 시간이 아닌, 오로지 시를 읽기 위해 원두커피를 내리고, 실내공기를 환기시키고, 여유롭게 소파에 앉아 한 자 한 자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갔다. 평소가 쓰지 않는 어휘들, 생소한 어휘들이 눈에 보이기라도 하면 다시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갔다.

경기가 안 좋은 요즘, 공연이나 문학이나 가벼움이 판을 치게 된다. 어려운 세상, 공연을 보면서라도, 문학을 대하면서라도 어려운 것을 대하기는 싫은 사람들의 심리 때문이다. 그렇기에 장르를 불문하고 가벼움이 대세인 것처럼 세상은 가볍게 돌아가고 있다. 시라고 별 수 있을까? 가벼움과 흥미, 사랑과 이별 타령이 난무하는 시들은 한 번은 읽고 감동할지 모르지만 두 권이 되고, 세 권이 되면 금세 싫증이 나기 마련이다. 그런 가운데 최 학님의 시들은 마치 태고적을 기억하듯, 엄마의 자궁에서 태어나던 그 시절을 그리듯 나의 감성의 밑바닥을 돌아보게 했다.

요요함, 심상에 일으킨 파문, 피안의 목마름, 하얀 뼈가 되도록 기다리는 마음.

망부석은 기다림의 상징으로 이미 많이 쓰여진 소재이지만 최 학님만의 어휘로 다시 태어났다. 꽃 향으로 피어나리(P24)는 망부석과 또 다른 사랑을 말한다.

이 시집은 십 대의 상큼함도 젊은 이삼십 대의 열정이 없다. 그렇다고 인생을 다 산 사람의 인생철학도 없다. 인간이란 종족이 지구에서 태어나 처음부터 가졌던 본성의 밑바닥에 있는 감정을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가득할 뿐이다.

작가의 시선으로, 시인의 손으로 쓰여진 시들은 옛 선조들의 시를 읽는 듯, 우리의 일상을 보는 듯하다. 달빛보다 맑은 얼로 천년을 산다(P80 ‘나’ 중에서)는 시인의 말처럼, 시인의 시들은 내 가슴 속에 달빛보다 맑은 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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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가지 얼굴의 이슬람, 그리고 나의 이슬람
율리아 수리야쿠수마 지음, 구정은 옮김 / 아시아네트워크(asia network)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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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가지 얼굴의 이슬람, 그리고 나의 이슬람.




천 가지 얼굴의 이슬람이라고?

나는 이슬람의 얼굴 중 몇 가지를 알고 있을까?

이슬람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서양 기자들이 쓰거나 만든 뉴스나 프로그램을 통해서이다. 테러리스트들이니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을 보며 이슬람은 곧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내가 우연한 기회에 접했던 이슬람 문화에 대한 다큐 프로그램(한국에서 제작했던 프로그램이었다)을 통해 한국에 살고 있는 이슬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프로그램을 보기 전까지 한국에 이슬람 사람들이 터전을 잡고 살아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이슬람 행사를 하고 신전에 절을 올리고 그들만의 문화 행사를 하는 모습을 보며 이슬람 문화에 대해 한국인들 속의 이슬람,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이슬람에 대해 그 프로그램은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슬람에 대한 지식이 서양 언론에 의해 많이 왜곡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럼으로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편견을 지나 이슬람 문화에 대한 궁금증으로 선택한 책이 바로 <나의 이슬람>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 책은 객관적인 이슬람 문화에 대한 책이 아니다. 중동에 대한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인도네시아, 그리고 중동의 이슬람들보다 더 많은 무슬림들이 사는 나라 인도네시아 속 이슬람을 말하는 책이다.




이 책은 이슬람을 말하지만, 세계에 퍼져 있는 이슬람을 말하기보다는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을 말하고 있다. 또한 이슬람을 말하고 있지만, 결국 국가 인도네시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인도네시아라는 나라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중동 국가로 대표되는 이슬람 종교가 인도네시아라는 나라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종교 이슬람을 믿고, 생활법규 이슬람을 따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듯한 나라 인도네시아가 책 <나의 이슬람>에 소개되어 있다. 이슬람을 말하지만 저자 율리아 수리아쿠수마는 인도네시아를 말하고 있다. 세계인들에게 이슬람을 말하는 형식을 빌었지만 마치 자국민들에게 인도네시아의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각성의 목소리, 자각의 부르짖음을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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