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페어 레이디 SE (2disc) - [할인행사]
조지 쿠커 감독, 오드리 헵번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영화의 배경이 되는 코벤트가든으로 대표되는 런던의 문화에 대한 매력을 가득 품고서,

오드리(일라이자) 특유의 쾌활,명랑,열정,사랑스러움이 가득한 표정들과 연기...

앤드 줄리어스와 연극무대에서도 히긴스 박사로 연기했던

렉스 해리스(히긴스박사)만의 연기와 립싱크를 거절하고 핀마이크를 달고 직접 노래했다는데...

캐리 그랜트에 캐스팅 제의가 왔을 때, 렉스 해리스 아니면 안된다며 정중히 거절했다는데...

잭 워너가 직접 제작을 지휘한 "마이 페이 레이디", 170분..거의 3시간인데..하나 지루하지않다

 

스페셜에디션을 보다 보다 더 감동적이다, 당시 원본필름을 디지털로 완벽하게 복원했으며,

당시 제작발표회와 시상식장면 등이 수록되어 있고

오리지널에선 오드리의 노래가 전혀 삽입되지 않고 100% 립싱크였으나

복원 DVD는 오드리의 두가지 SONG을 찾아 덧입혔으며..............

그들의 노고에 치하한다....이렇듯 아름다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오늘 다시 보니 예전과 달리 너무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로 다가 온다

 

6개월동안 매일 얼굴을 보며,

서로가 하루의 시작이 되고, 일상이 되어 버린 그들...........서로의 삶에 이미 스며들어

"당신(히긴스박사)은 남자, 나(일라이자)는 여자..............우리  지금 사랑하고 있나요?"

 

히긴스박사는 무뚝뚝하고 괘팍하기로 소문난 음성학자이며 독신주의자로,

일라이자의 섬세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교류하지 못한다

6개월간의 노력이 성공하고 왕자와 춤추며 무도회의 꽃으로 대우 받게 되지만,

그러나 히긴스박사는 무의식적으로 여자를 광장의 꽃파는 천한 여자로만 계속 취급한다

일라이자는 히긴스박사의 그러한 태도에 실망하고, 떠난다

뒤늦게 깨달은 히긴스박사는 일라이자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녀를 다시 찾게 된다

"사랑은 멀지 있지 않아요! 바로 곁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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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4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인환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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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의 왈츠곡과 더불어 뒤라스의 언어의 세계에 내영혼은 사로잡힌다

내영혼은 황량한 사막 같은 그 곳, 암연 깊은 그 곳으로 후려쳐진다

..................

세상 그 어느 곳보다 더 야성적이고 신비한 메콩강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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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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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반짝반짝 빛나는........소설 중에서 쇼코가 자주 부르던 노래였던가?

이리사와 야오스의 詩 였다네요....... 

"반짝 반짝 빛나는 -이리사와 야스오 " 

 반짝반짝 빛나는 지갑을 꺼내서 
 반짝반짝 빛나는 물고기를 샀다
 반짝반짝 빛나는 여자도 샀다
 반짝반짝 빛나는 물고기를 사서
 반짝반짝 빛나는 여자가 손에 든 
 반짝반짝 빛나는 냄비속의 물고기
 반짝반짝 빛나는 거스름 동전
 반짝반짝 빛나는 여자와 둘이서
 반짝반짝 빛나는 물고기를 가지고
 반짝반짝 빛나는 동전을 가지고
 반짝반짝 빛나는 밤길을 돌아간다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밤 하늘 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물을 흘리며
 반짝반짝 빛나는 여자는 울었다

여자는 왜 울었을까?

쇼코도 울고 있었던걸까?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중에 가장 오래 여운이 남는 소설 중 하나다. 몇년이 지나 다시 읽게 되었다. 너무나 예쁜 소설이다,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소외받는 주인공들이지만 에쿠니 가오리가 그려내고 있는 캐릭터 한명 한명이  나에겐 너무 예쁘기만 하고, 반짝반짝 빛난다. 이러한 에쿠니 가오리만의 특별한 재능에 감동한다

간결한 문체에  짧은 길이의 소설이지만, 그 감동의 깊이는 무한으로 남는다    

각 장 마다 쇼코와 무츠키의 관점으로 엇갈리며 써 나가고 있다   

쇼코는 엉뚱한 듯하지만 무츠키의 사랑과 관심을  끊임없이 갈구하고 있고 ............. 

(- 미즈호와의 통화에서 : 나는 수화기에다 대고 울음을 왕 터뜨렸다. 왜 울고 있는지 나도 몰랐다. "목욕을 하면서 위스키를 마셨어. 무츠키는 전화도 해주지 않았고. 야근할 때는 항상 전화했었는데. 도너츠 사가지고 왔는데, 그런데 내가 심술궂게 대했어.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그런데,"      

- 무츠키가 들어왔을 때 나는 얕은 잠에 빠져 있었다...무츠키가 천천히 침대로 다가온다. 나는 감각을 곤두세우고 전신으로 무츠키를 느기려 하였다. 무츠키의 발소리, 무츠키의 기척."미안해"내 눈꺼풀을 살며시 만지면서 무츠키는 들릴락말락한 소리로 말한다.내가 깨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다.몸 아래로 무츠키의 손이 미끄러져 들어왔을 때, 무츠키가 나를 안아올리는 것보다 한순간 빨리, 나는 무츠키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무츠키의 체온,무츠키의 고동소리.나는 어린애처럼 안심하였다.나와 무츠키는 단 한 번도 섹스를 한 적이 없지만, 무츠키의 몸은 내 몸에, 그야말로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스민다.주차장은 넓고, 무수한 자동차가 저녁 해를 받고 있었다.무츠키의 걸음걸이에 맞춰 나는 몸을 아래위로 움직이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눈에 익은 헌차의 모습을 찾았다.조그만 감색,무츠키가 사랑하는 차.차안에서도 나는 내내 자는 척하고 있었다.무츠키는 아무 말하지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테이프를 틀어 주었다. 우리는 연안 도로를 타고 천천히 달렸다. 나는 그리운 우리의 아파트를 생각했다,하얀 난간이 있는 베란다와 보라 아저씨,곤의 나무,어서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나는 잠든 채 창문을 연다.줄리의 달콤한 노랫소리가, 저녁 하늘에 녹아들었다.)

무츠키의 무관심한 듯 하지만 결코 감출 수 없는 자상하고 친절하기만 한 모습은 나조차도 뭉클해진다  

( - 쇼코 : "무츠키는 자상하고 친절하다.그리고 그건 때로 아주 고통스럽다."..사랑일까?) 

신기한 것은 그둘의 서로에 대한 시선은 우리의 왜곡적이고 냉소적인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오히려 더 열려 있고 더                                                       

소설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현실도피적이고 알콜의존적인 쇼코와, 일요일에 청소를 하는 것이 취미인 인텔리 게이의사 무츠키의, 알콩달콩하다기 보다는 다소 엽기적인 신혼생활이다, 합법적인 결혼을 가장하여 상호이해합의 결과로 시작하게 된 동거생활이지만...

하지만 거기에도 사랑이란게 처음부터 있었던 걸까? 

아니면 나중에라도 사랑이란게 생겨 난걸까?   사랑이란 뭘까?  

지금 난 사랑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츠키의 병원과 애인 곤, 친구의사 카카이(역시 게이)와의 관계로 확대되면서 얘기는 재밌게?  심각하게?  독특하게 펼쳐진다

( - 쇼코 : "곤이 무츠키의 아이를 낳았으면 좋았을텐데......")

급기야 곤과 무츠키의 정액을 섞어 인공수정을 하고 싶어 하던 쇼코의 무츠키에 대한 사랑?, 집착?

돌연 곤의 일주일간 사라진 사건으로 그들의 갈등은 고조된다...하지만 곤에 대한 무츠키의 마음을 회복시키고자 했던 쇼코의 깜짝쇼?.............9월 30일 맞선본날! 쇼코와 무츠키의 신혼집 바로 아래층 202호,......하얀벽,하얀천장,날개가 네개 달린 커다란 장식 선풍기.쇼코와 무츠키의 방과 똑같은 이미지로 곤의 집으로 꾸미고, 그들은 새로이 화해하고 다시 뭉치며, 파티를 계획한다. 

( - 쇼코 : "무사히 돌아론 곤 씨와, 우리 세사람의 1주년을 위하여"  

   - 곤 : "이제야 간신히 독립한 부부 두사람을 위하여" 라며 엷은 색 액체를 마시자, 라디오에서 정겨운 곡이 흘러나왔다. 빌리조엘이다.  

 - 쇼코 : "나는 왠지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불안정하고, 좌충우돌이고, 언제 다시 와장창 무너질지 모르는 생활, 서로의 애정만으로 성립되어 있는 생활.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정말 또라이들이다"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이런 류의 말이 본능적으로 바로 내뱉어 질 것이다.(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나 괴리된 또 그들(쇼코와 무츠키와 곤)만의 현실......... 하지만 왜 이리도 나의 가슴이 저며오는 걸까? 무슨 공감대를 불러 일으킨 걸까?그들만의 삶이 아닌 나의 삶에 과연 그들의 무엇이 투영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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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piano避我路 > [퍼온글] '거짓말'의 작가 노희경과 표민수 PD의 대화

<표민수PD,노희경작가와의 대화 >


" 사랑은 있죠? " " 그럼요 , 사랑은 있어요 "

“세상 사람 모두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우리도 한번쯤은 행복해지고 싶었습니다. 그게 정말 바보 같은 사랑이라 해도….”(<바보 같은 사랑>中 상우의 마지막 내레이션)

분명히 바보 같은 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허준>과 맞서기엔 그들은 너무나 바보같이 약했는지도 모르겠다. 젊은 아이들은 밀고당기는 사랑이야기도 아니고 공장구석에 피어난 질퍽한 30대의 불륜이야기가 뭐 그리 궁금할까? 잘나고 뻔쩍거리는 것 투성이 세상에 지지리도 못나 궁상맞은 사람들의 악다구니가 듣기 좋았으랴. 지난 4월24일 첫 방송된 <바보 같은 사랑>은 6월27일 그 마지막 사랑의 인사를 고했다. 첫날 애국가보다 낮은 시청률을 보고 원망하며 돌아설 수도 있었을 텐데 꾸준히 그들만의 사랑을 만들어갔던 두 사람. 첫사랑이 아님에도 언제나 첫사랑처럼 서로에게 ‘빛’ 같고 ‘소금’ 같은 존재. 그들이 만들어온 사랑이야기. 짝사랑 혹은 안쓰런 연민.

“넌 누굴 사랑하는 게 겁나지, 사랑이 널 바보로 만들까봐. 아서라. 세상은 바보같애. 바보같이 사는 게 옳아. 재호야.”(<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中)






표민수/ 정말 이번처럼 결말을 오래 고심했던 적이 없었을 거예요, 그죠? 다른 작품 할 때는 시놉시스 단계에서 이미 결론을 내고 갔었는데, 이번엔 정말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했어요. 시작할 때 노희경 작가는 옥희(배종옥), 나는 영숙이(방은진)에게 손을 들어줬는데 중반 이후부터는 우리 둘 다 옥희에게 상우(이재룡)를 보내는 식으로 이야기가 되어 나갔어요. 누구도 상처받지 않기를, 모두 ‘무사하길’ 바랐는데 결국 상처를 주게 되네요.
노희경/ 사실 상우가 영숙이에게 갈 이유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죠. 하지만 영숙이가 임신을 한 상태에서 상우가 영숙일 택한다면 다른 만 가지 이유가 ‘임신’이라는 한 가지 사실에 묻혀 보이지도 않았을 거예요. 통속적 결말을 피하려고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윤리·도덕적으로 그래야지 하는 것에 대한 반항도 아니였어요. 사실 우리 둘이 얼마나 ‘보수적’인 인간들인데요. (웃음) 그저 ‘사랑’에 손을 들어주고 싶었어요.


시작

표/ <아직은 사랑할 시간> <거짓말> <슬픈 유혹> 이번 <바보 같은 사랑>까지 4번이나 작품을 같이 했네요. <엄마는 치자꽃>에서 같이 일했던 나문희씨 소개로 처음 봤는데, 그게 언제지? 96년 6월쯤 일거예요. 우리 둘 다 술은 잘 못해서 처음 본 날 차만 마시면서 이야기 했는데 한 6시간 정도를 앉아서 줄곧 쉬지 않고 얘기만 했었죠?
노/ 처음 표 감독 볼 때 깔끔하고 왠지 반지르르한 게 별로 내 과는 아니다 싶었는데 저렇게 생긴 얼굴에 촌스런 경상도 사투리가 튀어나오니까 ‘푹’ 웃음이 나더라구요. 우린 생각하는 게 똑같지 않아요? 요모조모 따지는 말투도 똑같고 고집센 것도 같구요, 한번은 표 감독 부인이 ‘어쩜 둘이 그렇게 비슷하냐’라는 말을 하더라구요. 같이 사는 마누라가 그런 말을 한다면 그건 정말 닮은 걸 거예요. 서로 안주하지 않게 채찍이 되어주고… 표 감독이야 늘 감동이지, 뭐.
표/ 자라온 환경이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그런지 인간을 보는 눈이 비슷해요. <거짓말> 찍을 때쯤 이었나? KBS 건너편 공원에 앉아서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 작품 이야기 하다보니 어느새 동이 훤이 트더라구요. 이야기 하는 중에 다음 작품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와요. ‘주인공을 누구누구로 가자’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은 뭘까, 사랑은 뭘까’ 같은 식의 이야기다보니 끝이 있나요. 평생해도 모자랄 이야기지.


거짓말 vs 바보같은 사랑

노/ <거짓말>이 ‘수채화’ 같았다면 <바보 같은 사랑>은 ‘화투짝’ 같아요. 그래서 <바보 같은 사랑>이 더 힘들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수채화는 그대로 충분히 아름답지만 빨강 파랑 조잡한 ‘화투짝’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수채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그래도 ‘화투짝’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타당성을 부여해야 하니까.
표/ 잘 배우고 똑똑한 사람들이 아니라 어딘가 모자라고 덜렁대고 조금은 악랄한 사람들에게 애정을 갖게 만드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울까.
노/ 사실 <거짓말> 할 때는 사람들이 대사가 너무 어렵다는 그런 말을 하면 ‘알아 들을 사람만 알아 들으라 그래’ 그랬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그게 안 되요. 가령 ‘사랑은 교통사고 같은 거야’라는 말을 하면 이 사람들은 ‘뭐? 사랑이란 사람이 교통사고를 냈데?’ 하고 물을지도 모르거든요. 순간순간 사랑의 정의니 멋진 말들을 쓰려는 충동에 사로잡히곤 하지만 ‘밥 먹었니’ 같은 말에도 가슴이 아플 만큼, 어떻게 일상용어를 가지고도 짠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제일 걱정이었어요.
표/ 그래서 <바보 같은 사랑>에서는 ‘사랑한다’라는 말도 얼마나 아꼈게요. 참 이상하죠? 상황은 더 편안할 수 있는데 말 한번 꺼내는 건 더 성스러워지는 거.
노/ 대사를 최대한 아끼면서 배우와 감독을 믿었어요. 대사의 힘보다는 플롯에, 상황에 의해 이끌어 나가야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표/ <거짓말>은 그래도 여유있는 사람들이었잖아요. 하지만 <바보 같은 사랑>의 배경은 철저히 대치되죠. ‘빡빡한’ 시장과 공장에 어떤 ‘여백’을 줄 수 있을까, 그게 제일 고민이었어요. 결국 옥희네 넓은 마당이나 상우집 앞의 긴 계단 또 음악 같은 것에서 그런 여백을 살렸죠. <거짓말>에서는 고급스런 첼로나 현악기를 주로 썼는데 이번엔 단순하지만 건반과 건반 사이의 여백이 느껴지는 피아노를 주로 썼어요.
노/ <거짓말>의 주인공들은 정말 모두 똑똑했던 것 같아, ‘너 이렇게 생각하지? 난 그걸 알아’ 식으로. 은수(유호정)가 스스로에게 ‘은수야, 너는 강해’라고 읊조리는 등 끊임없이 자신을 객관화시켜야 할 만큼 우리는 너무나도 주관적이었죠. 극중 인물에 우리 스스로가 빠져 있었던 거죠. 표 감독에게서 준희(이성재)를 많이 따오기도 했고 나도 ‘내가 성우(배종옥)라면, 은수라면 어떡할까?’ 하며 끊임없이 자문하기도 했어요.
표/ 하지만 <바보 같은 사랑>은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했어요. 주변사람들조차 그들의 사랑에 개입하거나 편을 들지 않거든요. 그나마 우방인 미숙이(박원숙)조차 ‘정신 똑바로 차려’라는 말 이상의 개입이 없어요.
노/ ‘바보 같은 사랑’이란 마을에 이런 사람들이 산다고 생각하자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며 글을 썼어요. <거짓말>은 내가 다가가면서 썼는데 <바보 같은 사랑> 속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충돌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통에 그걸 쫓아가면서 쓰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불륜

표/ 그러고보니 우리가 만든 작품이 다 윤리적으로 벗어난 작품이긴 해요. <아직은 사랑할 시간>은 AIDS 환자 이야기였고, <거짓말>도 유부남과의 사랑이었고, <슬픈 유혹>은 동성애, <바보 같은 사랑>도 불륜, 사실 선정적이라는 말도, 불륜을 포장했다는 비난도 들어요. 하지만 그 윤리라는 것이 사회적인 잣대가 아닌가? 사회적 윤리는 중요하게 여기면서 개인의 마음속 윤리가 깨어지는 건, 마음의 불륜을 저지르는 건 왜 쉽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노/ 이제는 우리가 개인의 생각에 대해 읽어줘야 할 때가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하루키가 ‘당신은 왜 멜로만 쓰느냐’는 질문에 ‘한 개인이 사회를 대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는데, 전 그 말에 동의하거든요. 과거가 노동자라는 ‘집단’에 이야기의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젠 옥희나 상우 같은 한 개인의 ‘노동자’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가 아닌가요?
표/ 이 세상을 멸망시킬 방법은 원자폭탄 몇개 떨어뜨리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더 쉽게 생각하면 내가 눈을 감으면 세상은 끝나는 게 아닐까? 개인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데올로기가 끝난 시대에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개인의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윤리를 조금 흔들더라도 사람의 눈 밖에 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서 그들도 ‘행복 할’ 이유를 찾아주는 것이 좋아요.


연민과 동정

표/ <거짓말>에서 준희는 성우를 왜 사랑하게 됐는냐는 물음에 ‘선밸 보면 내마음이 참 아퍼요’라고 말하고 <바보 같은 사랑>에서 상우는 옥희의 사랑 한번 못 받고 주눅든 모습에서 감정이 싹 트죠. <슬픈 유혹>에서 준영(주진모)은 사회에서 이제 퇴물 취급 받아가는 40대 문기(김갑수)의 처진 어깨를 사랑하구요. 물론 모든 동정이 다 사랑은 아니지만 상대편을 염려하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은 사랑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노/ ‘밥 먹었는지’ ‘아프진 않는지’가 걱정되는 마음, 영숙이가 리어카를 맡기고 터벅터벅 걷는 뒷모습에서 느끼는 감정만큼 절실한 게 있을까? 그냥 바라는 것없이 해주고 싶은 마음 그게 사랑 같아요. 예전에 사귀었던 사람이 헤어지면서 ‘너한테 할 만큼 다했다’라고 하더라구요, 그순간 나는 그 사람이 너무 싫어졌어요. 아, 이 사람은 자신이 해준 것만 기억하는구나. 사랑에서 해준 것만 기억하면 함정에 빠지게 되거든요. 받은 것만 기억하면 사랑이 얼마나 행복할까.


나이

표/ 난 나이든 사람들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아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거짓말>에서 영희(윤여정)가 이런 말을 해요. ‘사람이 늙는다는 거 참 불쾌하고 서글픈 일이다…, 얼굴에 진 주름이 서글픈 게 아니라, 이왕 늙을 거면 몸따라 마음도 늙지… 마음은 청춘인데 몸만 늙는 게 서글퍼. 엄마 나이, 쉰둘이다. 그런데 오늘 그 오빨 보는 순간 내가 꼭 열몇살 같더라. 그때 그 나이에 가졌던 꿈들, 그 생기발랄했던 모습들 호기심, 설렘 작지만 내깐엔 아팠던 기억들… 왜 그리 또렸한지….’ 사실 우리 나이 들어도 똑같이 무모하고 질투하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랑할까봐서, 사랑이 또 찾아올까봐서 두려워하는 거 같아요, 우리가 만드는 드라마에서는 그게 아니란 걸 보여주고 싶어요.
노/ 요즘 <당신 때문에>라는 드라마 보면서 정말 느끼는 게 많아요. 부모에게 자식만으로 위로가 안 되는 부분이 있구나, 내 어머니가 사랑 때문에 나처럼 흔들리고 나처럼 아파할 수 있구나. 하는 것들 말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많은 드라마들이 10대, 20대의 사랑이야기만 하고 있어서 그 나이가 아니면 사랑이란 건 못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게 참 안타까워요.


공짜 글 , 공짜 TV

노/ 책 내자 하는 제안을 많이 받았었는데 시간이 없어요. 세상엔 소리내서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외치는 사람이 저렇게 많은데, 그 사람들 이야기를 쓰기도 이렇게 빠듯한데 말이죠. 그리고 텔레비전은 공짜잖아요, 전 ‘공짜글’이 좋아요. 누구에게나 공평하니까. 사실 아직까진 돈 생각해서 딴 작업하는 건 못하겠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바보 같다는 소릴 듣나?
표/ 아니, 사실 무슨 일이든 사사로운 욕심이란 게 생기면 바라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노/ 글을 쓰리라 생각한 순간부터, 드라마란 걸 쓰겠다 생각한 순간부터 이런 생각을 했어요. 끊임없이 사람을 대변해야되는구나, 우리의 관점으로 누군가를 이야기에 다룰 수 있고 없고를 선택할 권리가 없구나, 누구를 손가락질하는 입장이 아니라,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설 수 밖에 없구나. 영원한 대변자가 이 직업이 가지는 멍에인 것 같아요.
표/ 참 ‘대변자’란 말이 좋은 것 같아요. 감독이란 직업은 ‘군림’하는 것이라는 오해가 있는데 사실 끝없이 귀 기울여 줘야 하고 대신 말해줘야 하는 직업이죠.


사랑은 있다

표/ 인물과 상황에 따른 많은 변주가 있지만 결국 우리가 그려내고 싶은 건 ‘사랑’인 것 같아요. 모든 문학작품에서, 모든 인간관계에서 결국 ‘사랑’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노/ 김정수 선생님이 얼마 전에 ‘사랑은 상대를 위해 죽어 줄 수 있는 힘이다’라는 말을 하셨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사랑’이야말로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에요. 그걸 믿어요. 그런데 표 감독님, 사랑은 있죠?
표/ 그럼요, 사랑은 있어요. 이들이 구상하고 있는 다음 작품은 인간이기 때문에 저지를 수 있는 실수, 폭력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러함에도 안쓰럽게 아름다운 인간의 이야기라고 한다. <슬픈 유혹> 때 였던가, 두 사람한테 함께 공부해나가는, 사이좋은 ‘학우’ 같다는 말을 했더니 그 말이 듣기 좋다고 했다. 부디 한 작품 한 작품 인간을 배우고 사랑을 배우는 이들의 노력이 ‘짝사랑’으로 남지 않기를, 이들의 바보 같은 사랑이 기다림으로 그치지 않고 만남으로 이어지기를.

“어차피 짝사랑이란 없는 거야,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어떻게든 그 마음이 전해지기 마련이지.”(<내가 사는 이유>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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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20세기 한국시에 대하여

한 교외강좌에서 3주 연속으로 한국 현대시에 대한 강의를 맡게 됐다. 오늘이 첫날이었는데,  대략 '한국 현대시 개관'이란 제하의 강의였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강좌이기 때문에(모두 여성이고 대부분이 주부) 가급적 평이해야 한다는 게 제1원칙이고, 웬만큼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게 제2원칙이다(요즘은 대학강의에서도 이런 원칙들이 요구되는 듯해서 유감스럽지만). 모두가 경청해주신 건 아니지만 고개를 끄덕이시는 분들이 더러 계셔서 보람이 없지는 않았다(요즘은 대학에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은 드물게 만난다).

강의자료로 쓴 것 중 일부는 이미 6년전에 써두고 강의했던 것이어서 이번이 말하자면 '재탕'이었는데, 그간에 늘어난 건 시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이래저래 순발력을 발휘하는 '능청'이 아닌가 싶다. 이전에 '기형도 시에 대한 편집증적 읽기, 분열증적 읽기'에 포함돼 있었던 간략한 현대시사를 조금 보충해가며 다시 올려놓는다. 이 또한 '재탕'일 텐데, '이미지-버전'이란 핑계가 없지는 않다(능청과 핑계가 어쩌면 나의 왼팔과 오른팔인가?). 읽기에/보기에 편하면 좋은 것 아니겠는가? 대신에 군더더기말들을 더러 집어넣었다.

강의는 시 일반론에 대한 얘기로 시작해서 20세기 초반부터 최근에 이르는 한국시의 대표적 시인들을 거명하는 식이었는데, 여기서는 20세기 시사에 대한 간략한 리뷰만을 정리해둔다.

 

 

 

 

<황무지>(1922)의 시인이자, 아마도 가장 유명한 20세기 시인, T. S. 엘리엇은 시뿐만 아니라 시론에서도 정력적이었는데, 그가 유달리 강조한 것은 전통과 역사의식이었다(러시아에서 '토마스 엘리어트'의 두툼한 비평적 에세이 선집이 작년에 나왔었는데, 나는 그가 '티. 에스. 엘리엇'이란 걸 뒤늦게야 알았다. '토마스'란 이름이 너무 낯설었기에! 거기에 러시아어로 번역된 평문 '전통과 개인의 재능' 등이 포함돼 있었을 터인데, 애석하게도 책을 구입할 여유가 내겐 없었다. 참고로, 엘리엇은 우리 시단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외국 시인의 한 사람이다. 비록 요즘은 '4월은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est month)'이란 <황무지>의 시구를 읊조리는 중고생들을 만나기가 아주 힘들 뿐더러 젊은 시인들조차도 '열심히' 읽는 것 같지 않지만).

 

 

 

 

모름지기 25세 이후에도 시를 쓰려는 자는 역사에 대한 '감'을 먼저 연마해야 한다는 것. 그가 말하는 역사는 단순한 시사(詩史)를 넘어서 종교사, 종교적/상징적 상상력의 역사에 걸쳐 있지만, 하여간에 시란 것이 젊은 날의 겉멋이나 치기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줄곧 강조하였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김춘수는 (25세 이후에도?) 시론(詩論)을 갖고 있지 않은 시인은 천재이거나 아마추어라고 평했는데(<시의 위상>), 시에 대한 자신만의 주관, 혹은 관념(idea)이 없다면 일찌감치 시는 그만두는 것이 좋다는 뜻을 그의 주장은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참고로, 시작법이 아니라 작시법이 거의 부재하는 한국 현대시에서 '천재'가 나오기는 매우 힘들다. 그것이 우리의 '언어적 조건'이다. 그러니 '치기'나 '도취'로 시를 쓰는 경우가 아니라면 시론은 필수적이다. 새삼 확인해두자면, '시론'이란 시에 대한 로고스, 즉 논리를 갖추는 걸 말한다).

그런데, 시론이란 것이 모국어에 대한 감각과 시사(詩史)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없이 가능하지 않다고 할 때, 모름지기 시인이라면 시의 전통과 역사적 전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에 대한 부단한 의식 속에서, 그것과 맞서며 아주 조금씩 전진해나갈 따름이다. 시에 대한 이러한 태도를 편집증적이라 부를 수 있을까?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시인은 그 이전에 씌어진 모든 시를 다 읽고 나서야 거기에 한 문장, 혹은 한 글자 덧붙일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한 시의 역사를 재구성할 때, 20세기 한국시란 무엇이었나?(한국 현대시의 세 가지 원천으로 나는 민요, 한시, 그리고 번역시를 꼽는다. 김소월과 이육사는 각각 민요적 전통과 한시적 전통의 핵심에 놓여 있는 시인들이다. 이상은 많이 밝혀진 바이지만, '한국어'라는 자연어가 아닌 '기호'로 시를 썼던, 보다 정확하게는 문학행위를 했던 시인/작가이다) 20세기 초에 한국시의 기초를 이룬 시인들의 이름으로 김소월(혼의 시), 이육사(정신의 시), 이상(기교의 시) 등등의 계보를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김윤식의 분류이다). 

 

 

 

 

 

 

 

 

 

하지만, 20세기를 통틀어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시인을 꼽으라면, 단연 시업(詩業) 60년을 넘긴 미당 서정주를 들 것이다(물론 미당에 버금가는 시인으로 백석을 꼽을 수 있겠지만, 그의 시업은 상대적으로 너무 짧았다. 때문에 백석은 '제도로서의 문학'과는 거의 무관한 시인이다. 물론 그의 계보를 따르는 시인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가령, <외롭고 높고 쓸쓸한>의 시인 안도현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의 정치적 과오 때문에 폄하되기도 하지만 그가 우리 부족시의 족장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이 '부족시'는 상대적으로 '국가'나 '민족'과는 무관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을 자임하던 그의 시를 보라.

 

 

 

 

 

 

 

 

내 나이 80이 넘었으니/ 시를 못쓰는 날은

늙은 내 할망구의 손톱이나 깎어주자./ 발톱도 또 이쁘게 깎어주자.

훈장 여편네로 고생살이 하기에/ 거칠대로 거칠어진 아내 손발의

손톱 발톱이나 이뿌게 깎어주자.

내 시에 나오는 초승달같이/ 아내 손톱밑에 아직도 떠오르는

초사흘 달 바래보며 마음 달래자./ 마음 달래자. 마음 달래자.


 

 

 

 

 

 

 

시를 못쓰날에 할망구 손톱 발톱 깎어주며 마음 달래는 일도 '이뿌게' 시로 만드는 그의 솜씨는 대가급이다. 그러나 서정주의 시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되어 있는, 체념적 달관 혹은 달관적 체념의 세계(비평가 김현은 서정주의 정신주의에 대해서 “그의 정신주의는 그가 그의 삶을 정면에서 바라보지 않는 데서 기인하는 태도의 희극”이라고 적은 바 있다. 김윤식/김현의 <한국문학사> 참조)는 이념(idea), 혹은 형이상(形而上)을 배제한 세계이다(“西으로 가는 달 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추천사(鞦韆詞)>는 구절에는 그의 체념적 달관이 집약되어 있다(참고로, 요즘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는 '친일파' 미당의 시들이 거의 빠져 있다고 한다. 문학 교과서에서 경우 명맥을 유지할 정도라고. 대개 학생들은 교과서에 실린 시들을 '부정적으로' 인지하곤 하므로, 역설적이지만 미당 시의 독자들에겐 유감스러운 일이 아니겠다. 학생들에게 미당의 시를 안 읽히는 방법은 교과서에서 빼는 게 아니라 너무 많이 집어넣어서 '물리도록' 혹은 '신물이 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이념-이후에 그는 “가난이란 한낱 襤樓에 지나지 않는다/.../ 靑山이 그 무릎 아래 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엔 없다”(<無等을 부며>)는 사실에 만족한다. 그것이 또한 달관적 체념의 세계이다). 참고로, 한국시에 형이상학적 깊이가 결여돼 있다는 비판은 김우창 교수의 평문 '한국시와 형이상'을 참조할 수 있다(<궁핍한 시대의 시인> 혹은 <김우창 전집1> 참조. 나는 이 절판된 전집에 재출간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기이하며 유감스럽다. 더불어 유감스러운 건 김화영 교수의 <미당 서정주의 시에 대하여>(민음사, 1984)도 절판된 채로 다시 구해보기 어렵게 된 것. 본격적인 시인론이자 시분석론인데 당시로서는 드문 시도였다).


 

 

 

 

 

 

 

‘시인부락’의 동인으로 같이 활동했던('부락'은 일본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천민집단'을 뜻하는 걸로 안다) 청마 유치환은 서정주와 달리 이념적 ‘깃발’을 표나게 내세운 바 있으나, 언어적 조탁에 있어서 그에 미치지 못했고, 한자어투로 이루어진 그의 남성적 어조는 계보를 얻지 못했다(청마를 가까이 한 이에 김춘수가 있지만, 김춘수의 여성적 세계는 유치환의 남성적 세계와 대조적이다. 김춘수 자신이 시인하는 바이지만, 그의 초기시는 서정주의 계보에 속한다). 그리고 그의 시업(詩業) 또한 너무 일찍 한국시사에서 단절되었다. 그리하여 멀리는 40년대부터, 한국시단은 미당과 그 일가(一家)에 의해 접수된다(이른바, '미당스 패밀리' 되시겠다. 문단 용어로는 '미당 사관학교'라 하고).

 

 

 

 

 

 

 

 

한편으로, 한국시사에서 지나치게 과대평가된 사례인 ‘청록파’의 경우, 박두진의 몇몇 시편들을 제외하면 비이념적 정관적(靜觀的) 세계관에 침윤되어 있다. 박목월의 경우가 대표적이지만, “구름에 달가듯”한 세계엔 이념이 틈입할 여지가 없다. 그림(=풍경)만 남고 목소리가 빠진 시는 왜소하다(지난주 고종석도 자신의 연재 '시인공화국의 풍경들'에서 지적한 것이지만, 이러한 '과대평가'에 한몫한 것은 이 세 시인이 모두 훌륭한 인격으로 후배 시인들이나 학인들에게 존경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이들과 다른 경향의 시(인)들이 문학사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한 대접을 받았다).    

 

 

 

 

 

 

 

 

그리하여 여기에 유사-오디푸스 콤플렉스가 개입한다. 미당 이후의 시인은 하여간에 시인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얻기 위해서는 미당과 싸워야 했다(김현의 어투이다). 그를 넘어서거나 그와 다른 세계로 질주해야만 했던 것이다. 50년대 모더니즘 시운동이 잠시 시림(詩林)을 떠들썩하게 했지만(박인환, 김수영 등이 참여한 사화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곧 빈수레였다는 것이 들통난다. 그들은 木馬를 타고간 소녀의 옷자락 얘기만 잠시 늘어놓았을 뿐이었다. ‘언어(말부림)’를 가지고 미당에 맞서 그보다 윗길로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므로(고은 정도가 서정주의 어법을 가지고도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남은 희귀한 사례이다. 그의 시업이 60년을 넘길 수 있을는지? 한편, 미당학교의 '장학생'이었던 박재삼 등도 거명할 수 있을 것이다). 

 

 

 


 

 

미당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한 대안이라는 것은 미당의 이념적 ‘퇴행’을 걸고 넘어질 수 있는 이념이어야 했다. 60년대 김수영과 김춘수는 이 점에서 제각각의 방식이긴 하지만, 뚜렷하다. 60년대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이념적 화두가 ‘자유’였다는 점에서 김수영은 6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손색이 없다. “달나라의 장난” 같은 그의 시가 처음부터 끝까지 줄기차게 노래, 아니 절규한 것이 바로 자유였기 때문이다. 산문적인 그의 시의 어법 또한 미당과는 전혀 종류를 달리하였다. 4.19 이후에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그 방을 생각하며>)고 그는 적고 있는데, 조금 다른 맥락에서, 김수영은 미당의 그늘 아래 놓인 해방 이후 한국시사에서 자신의 ‘방’을 마련한 드문 예에 속한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김춘수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미당의 빈 자리를 물고 늘어진다. 그는 언어의 이념(이라기보다는 관념)을 자신의 탐구 대상으로 삼는다. 이 또한 의미(=역사)로부터의 도피, 혹은 퇴행이라는 혐의를 지우기 힘든 경우지만, 어쨌거나 언어의 가지 끝에 매달리는 데는 성공한다. 이념의 부재로 미당의 시를 특징지울 수 있다면, 김춘수의 시는 한술 더 떠서 의미의 부재를 지향한다. 언어적 자의식을 대표하는 그에게 시는 “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고 “얼굴을 가리운 나의 新婦”이다. 그것은 말부림의 세계가 아니라, 말 비우기의 세계, 의미의 빈 그릇의 세계이다. 그리하여 어쨌거나 김수영과 김춘수에 와서 한국시는 미당시에서 탈색된 근대성(=시대성)을 다시 획득한다. 그러나 그것은 김수영의 이른 죽음을 대가로 치른 것이었다. 그리고 맞은 70년대에도 미당시는 여전히 도전/극복의 대상이다.

 


 

 

 

 

 

 

젊은 전사들의 이름으로 평론가 김현은 황동규, 정현종, 오규원 등을 지목하고 있는데,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즐거운 편지>)의 황동규는 “물 빛 라일락의 빛과 香”을 가진 미당의 '永遠' 대신에 비극적 세계인식의 '자세'를 대립시키고, “...女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女子, 눈물 같은 女子, 슬픔 같은 女子, 병신 같은 女子, 시집 같은 女子...”(<한 잎의 女子>)의 오규원은 대상과 언어와의 관계를 의혹이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연기(緣起)론 세계인식에 딴지를 건다. 거기에 “나는 별아저씨, 바람 남편이지”의 시인 정현종의 '숨통'과 '걸음걸이'가 미당의 행보를 뒤쫓는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분명하게 70년대를 증언할 수 있는 시인은 70년대의 포문을 연 <오적(五賊)>(1970)의 김지하이다. 그는 대뜸 이렇게 시작하지 않았던가. “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이 황토(黃土)의 땅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치는 일에 비하면, 조곤조곤한 시들은 좀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가 70년대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낸 것 또한 그의 ‘대표성’을 수긍하게 한다. 시 또한 감옥에 들어가 있어야 마땅했을 시기가 아니었던가.

 

 

 

 

 

 

 

 

 

80년대 한국시는 80년 광주에서 시작된다. 그보다 조금 먼저 등단한 이성복은 이 “정든 유곽”의 땅에서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진단서를 제출한 바 있지만, 가장 명료하게 80년대를 규정한 이는 황지우이다. “여기는 초토입니다/ 그 우에서 무얼 하겠습니까”(<에프킬라를 뿌리며>) 여기서 황지우의 '초토'는 김지하의 '황토'에 견줄 만하다. 80년대는 죽음의 연대였고, 시인들은 네크로필리야(necrophilia)에 들린 파리떼처럼 몰려들어 그 죽음을 파헤치고 음미하였다. 죽음에 분노하였고, 그 부채의식에 통곡하였다. 간혹 미치기도 하였다. “아싸라비야, 도로아미타불”이나 “내가 살아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일찍이 나는>)고 한 최승자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성복의 어법을 빌리자면, “모두 죽었는데, 아무도 죽은 줄 몰랐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죽음의 기운이 조금씩 떨쳐지는 것은 87년 이후이다. 그 이후 한국사회는 개량적․형식적 민주화의 길로 접어든다. 그리고 이어진 90년대에 80년대는 이미 '과거'가 돼 버리고, '후일담'이 횡행한다(한국사회는 가끔 (나쁜 쪽으로) 정신분열증적이다. 과거-망각(청산이 아니다!)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듯하다. 정신분열증적인 포스트-모던사회에서의 선전을 기대해볼 수 있을까?). 이 '시대의 우울'을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을까? "서른, 잔치는 끝났다, 이 돼지들아!"

 


 

 

 

 

 

 

90년대적인 시(현상)으로 장정일과 유하의 경우를 들고 싶다(비록 그들이 등장한 건 80년대 말이지만). <햄버거에 대한 명상>(1987)의 장정일과 <무림일기>(1989),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의 유하는 키치적인 상상력과 패러디적인 기법으로 무장하고 “진지한 시”의 전통에 냉소를 퍼붓는다(이미지가 지원되지 않는군. 이게 언제적 유하인가?).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곱게 다졌으면,/ 이번에는 양파 1개를 곱게 다져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넣고/ 노릇노릇할 때까지 식혀놓는다/ 소리내며 튀는 기름과 기분 좋은 양파 향기는/ 가벼운 흥분으로 당신의 맥박을 빠르게 할 것이다...”; “그 무렵 하남 땅에서 민초들의 항쟁이 있었다/ 아, 이름하여 하남의 대혈겁(大血劫)/ 광두일귀는 공수무극파천장(空輸無極破天掌)을 퍼부어 무림잡배의 폭동을/ 무사히 제압했다고 공표, 무림의 안녕을 거듭 확인했다”

 

 

이들의 “가벼운 흥분”과 재미의 세계는 80년대적인 무거움과 극적이면서 단호하게 결별한다. 이는 새로운 시이면서, 시의 끝(=종말)이다. 근황? 장정일은 일찍이 시를 그만 두었고(소설을 쓰다가 급기야는 <삼국지>까지 옮기고 방송진행자까지 되었다. 오래 살고 볼일이다!), 유하는 영화계 주변을 맴돌다가 다시 시의 초심(初心)으로 되돌가겠다며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를 발표하고 욕을 먹는다. 하지만, 다시 영화를 만들고 이번엔 성공한다. 영화를 만든다는 건 생각만큼 미친짓은 아니다. 특히 요즘은.

 

 

 

 

 

 

 

 

 

그리고 기형도. 그의 시가 자리하는 건 80년대 말이다. 이 글은 전체가 사실 기형도론의 서론으로 씌어진 것이기도 했다. 물론 100년의 한국시사가 두 쪽 분량으로 요약될 리는 만무하지만, 적어도 (편집증적인 시읽기에 있어서) 시의 전사(前史)를 모르고 한 시인에 대해 말한다는 건 어불성설이기 때문에 이러한 사전공작이 필요하다고 당시엔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시에 대해선 얼마전에도 몇 자 적어둔 바 있다. 언젠가 제대로 된 규모의 글을 쓴다면, 아마도 이 전사(前史) 또한 제대로 된 규모로 재구성되어야 하리라. 제대로 읽는다는 건 제대로 사는 것만큼이나 어렵고도 힘든 일이다...   

 

05.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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