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테라피 - 심리학, 상처입은 마음을 어루만지다 정신과 전문의 최명기 원장의 테라피 시리즈 2
최명기 지음 / 좋은책만들기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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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누구나 살다보면 마음의 상처가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 쫓기어 자신이 가진 마음의 상처를 돌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바쁜 일상은 핑계이고, 정신과를 찾아가는 것이 무서워서인지도 모른다. 아직은 정신 상담에 대한 인식이 서구에 비해 좋지 못해서 사람들은 정신과를 찾아가는 것을 꺼려한다. 그리고 정신 상담을 받고 온 사람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다행히 최근 들어 마음치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이전에 비해 정신과에 대한 인식이 나아졌으며, 마음치유와 관련된 여러 교양 서적이 시중에 나와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마음 속 상처를 무시한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상처는 점점 곪게 되고 결국에는 더욱더 커지게 되어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어린 시절 다친 상처에 연고를 바르지 않아 평생을 흉터를 가진 채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더 이상 괴로워하지 말고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오는 자유로움을 느끼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정신과를 찾아간다든가 임상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는다든가 하는 것만큼은 아니지만은 트라우마 테라피에서는 분명 우리의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던 상처들에 연고를 바르고 새살이 돋아나도록 도와주고 있다.

 

굴욕감을 안고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다면 굴욕에 따르는 분노는 마음을 움직이는 강한 엔진 역할을 할 수 있다.

 

시간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는 말이 있다. 굴욕감을 겪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자신이 투자한 시간만큼의 결과를 우리에게 제공해줄 것이다. 굴욕감을 준 상대는 자만에 빠져 더 이상 노력하려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굴욕감을 느낀 사람은 노력을 통해 성장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굴욕감을 준 상대를 당당하게 앞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모두 잠깐의 굴욕감에 좌절하지 않고, 시간에 대한 믿음을 가진 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버리지 않은 사람에게 해당되는 성취일 것이다.

 

자신을 받아줄 다른 집단을 찾아라.

 

요즘 청소년 자살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어서인지 더욱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었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학교 내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들의 모습은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 문화의 영향을 받았니 등의 말들이 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따돌림으로 인해 상처받고 고통 받는 학생들이 늘어난다는 점이 중요할 뿐이다.

어린 시절 따돌림을 받아서 힘들어했던 사람들은 성인이 된 후 그 때의 시절을 떠올리며 내가 왜 그랬을까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자신을 따돌리는 그들에게서 조금만 눈을 돌려 본다면 자신과 함께 해 줄 다른 친구들이 있는데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된다. 따돌림을 당하는 자신을 비하하여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지 말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믿고 살아간다면 따돌림으로 인한 고통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주위에 따돌림으로 고통받는 친구들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자신을 받아줄 다른 집단을 찾아보라고. 너를 따돌리고 있는 그들이 이 세상 사람들의 전부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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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원리 - 개정증보판
차동엽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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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 온 뒤 맑은 하늘에서 무지개를 종종 발견한다. 무지개와 비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상관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해와 그림자처럼 말이다. 고난·시련도 우리 인생에서 비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장마철에는 그칠 것 같지 않은 비가 끊임없이 내리지만 결국에는 비가 그치고 맑은 날씨가 온다. 우리의 인생 또한 고난과 시련이 있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무지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지개 원리의 책에서는 우리에게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밝은 내일로 향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운명이라 말하지 말라, 그들은 달랐다. 방법이 아니라 원리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지혜의 씨앗을 뿌리라, 꿈을 품으라, 성취를 믿으라, 말을 다스리라, 습관을 길들이라.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치유. 악순환의 고리 끊기, 지금을 잡는다, 생의 윤활류. 감사로 구성되어진 이 책은 하나 같이 주옥같은 글귀들로 이루어져 있다. 책을 펼치고 얼마되지 않아 이러한 글귀를 볼 수 있다.

 

운명도 내 허락을 받아야 운명이다

절망도 내 허락을 받아야 절망이다

 

이 글귀는 나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다. ‘난 왜이렇게 잘 안될까. 나는 왜 이렇게 시련을 겪어야 할까, 이게 나의 삶에서 정해진 운명인가......’등의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이 글귀를 생각하며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겠지. ‘난 이런 삶을 허락하지 않아. 이 또한 극복하면 되는 거야. 나의 운명은 내가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지’....

우리 주변에서는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들이 우리들의 박수갈채를 받는 것은 우리도 겪고 있는. 또는 겪을 수 있는 절망들에서 우리는 쉽게 좌절하지만 그들은 이에 좌절하지 않고 또다른 인생으로 나아가고자 노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인생에 내리는 비가 영원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지개가 뜨는 그날을 꿈꾸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절망은 결론이 아니다. 아무리 끝을 모르는 어둠의 터널 속에서도 우리의 결론은 희망이다. 절망은 우리의 마지막 언어가 아니다. 아무리 먹장 구름이 하늘을 뒤덮어도 우리의 마지막 언어는 무지개다.

 

심리학을 보면 피그말리온 효과와 낙인 효과라는 용어가 나온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긍정적으로 기대하면 상대방은 기대에 부응하는 행동을 하면서 기대에 충족되는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며, 낙인 이론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부정적인 낙인을 찍힘으로써 실제 그렇게 되는 현상낙인효과는 사회제도 등을 근거로 하여 특정인을 범죄자로 인식하게 되면 결국 그 사람이 범죄자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 시험을 망친 아이에게 넌 더 잘할 수 있어. 선생님은 널 믿어라고 말하는 것과 넌 머리가 나쁘구나. 넌 공부를 못하는 구나라고 낙인을 찍어 버리는 것은 이후 학생의 성적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인생 또한 그런 것 같다. 자신이 겪고 있는 시련과 고난에 대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지, 나는 원래 이런 운명이지라고 낙인을 찍어버린다면 그 사람에게는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계속 나는 잘 될 거야라고 끊임없이 말한다면 국민MC 유재석의 노래처럼 말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맑은 하늘의 찬란한 무지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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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 - 세계적인 뇌과학자가 우울한 현대인에게 보내는 감동과 희열의 메시지
게랄트 휘터 지음, 이상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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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떤 영화를 본 것이 기억이 난다.

배경은 머나먼 우주. 그 너머 어느 별에서 온 외계인을 한 남자가 만나게 된다.

그 외계인은 너무나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성이었다.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외계인은 우주로 다시 돌아가야 될 시간이 되어 돌아가게 되고, 혼자 남은 남자는 돌아온다는 그 외계인의 말을 믿고 기다리게 된다.

많은 시간이 흘러 우주에서 그 외계인이 지구를 찾아오게 된다. 너무 기쁘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 남자는 그 여자 외계인을 반기러 나가지만 눈 앞에는 여자 외계인이 아닌 남자 외계인이 서 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녀는 어디로 가버렸단 말인가?

좌절하고 있는 그에게 그 남자 외계인이 말을 건다.

'나 돌아왔어'

둘이서 같이 나눴던 이야기, 추억들을 그 남자 외계인이 기억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진짜 외계인은 머리 속안에 있었고, 아름답던 여자 형체는 껍데기에 불과 했던 것이다. 그래서 껍질에 문제가 생겨 남자의 형체로 바꿔타고(?) 지구를 찾은 것이다.

 

남자는 혼란스러웠다. 내가 사랑했던 것은 그녀의 몸인가? 그녀의 의식(머리)인가? 몸은 바뀌었으나 의식(머리)은 그 여자 였기에 사랑하는 이었다고 인정해야 되는 것일까? 아니면 육체가 그 여자가 아니기에 인정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 영화를 보고 많이 고민을 했던 적이 있다. 나의 뇌가, 의식이 나 자신일까? 아니면 눈에 보이는 나의 겉모습이 내 자신일까? 이것은 예부터 많은 철학자들이 고민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아직 그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아니 내리지를 못하겠다. 어찌 되었든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에 한 곳이라 생각 드는 곳이 바로 이 뇌라는 곳이다. 이 뇌라는 것이 어떻게 구성되고 형성되어서 지금의 나를 만드는 것인지 너무나도 많은 궁금증을 가지게 하는 아직도 밝혀야 할 것이 많은 비밀 많은 곳이 바로 뇌이다.

 

이 책은 뇌 과학자가 때론 객관적으로 때론 주관적으로 우리들에게 건내는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실들로 가득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접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주관적이고, 철학적인 내용들로 가득했다. 가장 객관적이어야 하는 과학자가 주관적이고, 자기해석적인 내용들로 책을 쓰다니.. 너무나 신기하고 호기심을 가득안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다른 동물의 뇌와 구별되는 뇌 부위는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경험들이 쌓이면서 형성되고 구조를 갖추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뇌는 사회적 산물이며,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뇌는 사회적 기관이다. -P54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좌우하는 것은 풍부한 지식이나 달달 외운 명제들, 닳도록 읽은 안내 책자며 교과서 따위가 아니라 각자가 품고 다니는 표상, 내적 확신, 세계 및 인간상이다. -P89

 

과학자로서 어쩌면 위험한 발언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돌려 생각해 보면 과학이 전부라고 맹신하는 다른 과학자들보다 오히려 더 믿음이 가고, 설득력을 갖추었다고 생각이 든다. 인간이 어떻게 유전만으로 만들어 지겠는가? 많은 경험과 지식 등등 모든 환경적인 요소들과 같이 결합했을 때 우리라는 모습이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왜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경쟁의 압력에 짓눌린 이들은 계속해서 발전하거나 잠재력을 발휘해 나갈 수 없으며, 오히려 경쟁을 부추긴 결과는 심화되는 전문화에 불과하다는 점을 말이다. 경쟁으로는 자기 분야밖에 모르는 바보와 운동 선수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양한 교양을 쌓고, 다방면에 유능하며, 사려깊고, 멀리 생각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 안정되고 침착하면서, 강인하고 사교성 좋은 사람을 배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경쟁의 압력이 짓누르는 환경에서 그런 인간으로 자라기란 힘들거나 아예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P102

 

이 책에서는 간단히 뇌라는 분야에 대한 객관적 사실만 다루고 있지만은 않다. 사회적인 의식, 삶, 가치 등등 철학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접근을 하고 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폭력이라든지 우울증, 자살 등 정신적인 문제들은 어쩌면 우리 자신들이 초래한 결과 들일 지도 모른다. 과도한 경쟁의 불구덩이 속으로 우리들 스스로를 밀어 넣었기에 살이 타는 아픔을 지금 겪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 '어떻게 경쟁을 안하고 사니?' 맞는 말이다. 경쟁은 필요하다. 하지만 너무도 과도한 경쟁과 경쟁만이 답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이 든다. NO.1 만이 살아남는 구조가 아니라 ONLY.1 이 많아 지는 사회 그래서서 , EVERY ONE이 행복해지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나혼자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살아 갈 수 있는 방법을 간구해야 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우리 몸속에서 폐와 간이, 창자와 췌장이, 혹은 뇌와 심장이 경쟁을 벌이며 누가 더 뛰어난 성과를 낼지 다툰다면 하나의 온전한 유기체로서 당신과 나는 과연 얼마나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P104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본다면 유기체 몸속의 기관인 우리들은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귀중한 존재인 것이다. 각자만의 특징적인 기능이 있고 그 기능을 다른 기관들은 대체하지 못하는 즉 각자가 각자만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창의적이라는 것은 1차적으로 새로운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지만 서로 분리되어 있던 지식을 새로운 방식으로 서로 연결함을 뜻한다. -P228

 

이제 인간의 뇌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 즉 측정 가능한 뉴런 활성 패턴을 해석할 때에는 개인의 주관적 판단, 정신적 소화 과정, 당사자의 주관적 경험 등이 가지는 의미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P236

 

이 책에서 계속 이야기 하고 있는 점이지만 주관적, 객관적 이분법 적으로 때어 내어서 누가 옳고 그르다가 아니라 서로 연결하고, 통합하고, 다루어야 우리의 문제 혹은 인간, 사회, 뇌 등등의 문제들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무언가 과학적이고 사실적인 지식을 바라고 읽었던 책이었으나 왠지모르게 헛점을 찔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될 내용들을 읽어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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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놀이 -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일곱 가지 심리치유 프로젝트
비수민 지음, 조성웅 옮김 / 이랑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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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너무나도 슬픈 소식들이 요즘 뉴스를 통해 자주 들려온다. 학교 폭력으로 인한 피해자, 그리고 미래의 불안으로 인해 목숨을 끊는 명문대생..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야! 그냥 버티면 되 못버티고 힘들어 하는 건 정신력이 약하고, 의지가 약해서 그런 거야. 그런 애들은 ......어쩌고 저쩌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주변 사람들을 많이 만나왔다. 하지만 누군가의 아픔, 슬픔, 고통을 자기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한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당사자한테는 너무나도 어렵고 힘든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음'이라는 것에 관련된 책을 읽다보면 가장 중요하고,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을 알기' 이다. 나 자신에 대한 성찰로부터 마음공부는 시작이 된다. 나를 먼저 알아야 다른 사람의 마음도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마음놀이] 이 책의 표지에는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일곱가지 심리치유 프로젝트'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중국에서 심리상담을 하는 작가여서 그런지 좀 더 신뢰감이 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일곱가지의 놀이가 나온다. 책을 읽으며 따라 해보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놀이를 순서대로 해갈 수록 '이것이 놀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하는 의문점이 들기는 하였지만 이것 하나 만큼은 명확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에 대해서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 이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나에게 중요한 타인은 누구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의 친구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내가 부모님에게 느꼈던 것. 원했던 것은 무엇인지, 죽었을 때 나의 묘비명은 무엇으로 할 것인지 등등 놀이를 하면서 다시 한번 나를 돌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마음이 건강하니까 특별히 보호받거나 보살핌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말도 일리는 있지만 호언장담할 일은 아니다. 천부적으로 몸이 건강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마음이 건강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건강은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한번 고생했다고 영원히 좋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P 18

 

 

만약 위에서 말했던 친구들이 힘든 상황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서 이 놀이를 해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지금 힘든 것, 이 상황은 수용하고 받아들였다면 아마 지금은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지금의 청년들은 점점 더 삶의 무게에 짓눌려 힘들어 하고 있다. 이럴 때일 수록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자기를 한번 돌아 보았으면 한다.

 

 

몽테뉴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나 자신을 아는 것이다" P 15

 

 

인도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너 자신을 알라. 그러면 전 세계를 알 수 있으리니". 중국의 노자도 이렇게 말했다. "남을 아는 자는 지혜롭고, 자신을 아는 자는 현명하다" P 28

 

 

위대한 인물들도 자기 스스로를 알고자 수많은 노력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 역시도 이런말을 하지 않았는가? "너 자신을 알라" 그렇다면 위인들도 그러한데 범인인 나 역시도 한번 해봐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지금 얼마 만큼 자신에 대해 알고 있나요? 나에게 질문을 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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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연습 - 서른이 넘으면 자기 마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
황상민 지음 / 생각연구소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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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몸에 옷을 맞춘 게 아니라 옷에 몸을 맞춰 성장한 셈이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은 나의 옷인가? 아니면 남에 의해 입혀진 옷일까?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들은 누구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 또한 그러하다. 이 책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여러 개의 가면 속에서 살아 왔던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착하게 사는 것을 남의 뜻에 순종하는 것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착하게 사는 것은 제몫의 일을 해내면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학교에서나, 가정에서 ‘착하게 살아라,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살아라, 서로 도와가며 살아라’ 라는 말을 쉴새없이 들어왔다. 그리고 어느새 세뇌가 되어 남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남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으로 여겨졌다. 이것이 심화되면 착한아이 콤플렉스에 빠지고 만다. 착한아이 콤플렉스 혹은 착한 아이 증후군은 어린이가 ‘착한 아니’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혹은 스스로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서 스스로 내면의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뜻한다. 이에 따라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타인의 눈치를 보며 타인이 자신에게 하는 말에 집중하여 갈등 상황을 피하고 타인의 요구에 순종적으로 행동한다. 몇년전부터 심화되고 있는 학교 폭력의 경우, 한 자살 피해자의 부모님의 인터뷰에서 ‘이럴 줄 알았으면 착하게 살아라는 말을 하지 말걸’이라며 후회를 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친구와 친하게 지내야 한다며, 친구에게 항상 져줘야 한다며 늘 당부하시던 부모님 말씀에 지나치게 따르다가 너무 착하여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게 되고, 그 상황에서도 친구들에게 반항 한번 하지 않고 꾹 참고 지내다가 결국 자살이라는 길을 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위 문구처럼 남의 부탁을 모두 들어주면서, 남의 뜻에 순종하면서만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남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남을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누구나 외롭고 불안하다. 문제는 누가 정면으로 맞서는가에 있다

 

불안을 피하면 피할수록 그것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뭉크의 그림 「절규」는 화가 자신의 무의식에 억압된 유년기 상처와 불안이 나타난다. 알려진 자료에 따르면 뭉크는 다섯 살에 엄마가 사망한 후 극도로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지내왔다. 그리고 몇 년 후 뭉크를 돌보던 이모와 누나마저 사망하였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유년기의 상처들은 그림이라는 매체를 통해 반복함으로써 상징적으로 분출하게 되고 이를 통해 불안은 점점 완화되게 된다. 이처럼 우리 역시 불안을 가지게 됐을 때 두려움에 떨면서 물러서지 말고 거기에 맞설 필요가 있다.

 

나는 네가 아니고, 너도 내가 아니다

 

이 문구를 보니 강신주의「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를 읽으며 공부했던 내용들이 생각난다. 사랑의 감정은 두 사람이 자유를 가진 것에 비례해 커지는 법이다. 어떻게 하면 사랑의 열정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연애시절보다 더 강하게 자신과 상대방의 자유를 긍정할 수 있어야만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 꿈꾸어 온 ‘하나’라는 이상은 사실 사랑의 종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말은 결국 사람들이 모두 혹은 두 사람 중 한 명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해야만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전제를 함축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랑이란 그 사람을 나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는 나대로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의 자유를 인정하며 ‘하나’가 아닌 ‘둘’로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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