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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지킹의 후예 - 제18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이영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평점 :
소설은 항상 사실성과 허구성 사이의 경계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진짜보다도 더 진짜 같은 이야기를 통해 삶의 이면을 파헤쳐준다. 작가는 현실이라는 사실 속에서 상상을 첨가해 한편의 영화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이 책도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연상의 암환자와 그를 사랑하게 된 남성의 이야기는 아침드라마나 주말 드라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설정이다. 그런데 이들의 사랑은 너무 평탄하게 이루어진다. 보통의 드라마를 보면 암환자와 결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책에서는 쉽게 이루어지고 있다. 거기다가 여성은 이혼한 경력이 있으며 아들을 데리고 있는 상태인데말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런 결혼을 쉽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부분을 읽을 때 좀 의아했다. 개연성이 떨어진다고나 할까. 소설 속에는 의붓 아버지와 의붓 아들의 소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실패한 특촬물인 체인지킹에 관심을 갖고 반복적으로 시청하는 아들을 이해하기 위한 의붓 아버지의 노력이 담겨져 있다. 특촬물 매니아인 ‘민’을 만난 이유도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부분에서 의미있는 대사가 나온다.
우리에겐 아버지가 없어. 믿고 따를 커다란 이야기가 없어. 맞서 싸울 적도 없고, 체온을 나눌 친구도 없어. 심지어 우리에겐 우리만의 역사도, 이야기도 없어., 이야기들은 모두 박살났고, 쪼개졌고, 찢어졌어. 우리가 가진 건 그저 계속해서 반복되는 작은 이야기들뿐이야. 이젠 그런 것들을 택해 자각 없이 사는 게 편하지. (p. 281) 우리는 어디선가 있었던 이야기들의 흉내일 뿐이야. 위대한 과거의 지루한 모방이야. 비참한 소재의 처참한 패러디야.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너와 나는, 우린. 우리는 체인지킹의 후예야. (p.282)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소통하는 방법을 잃은 것 같다. 그저 적당히 소통하며 적당히 어울리며 살아가고 있다. 따뜻한 온기를 나누기보다는 무의미한 대화만을 주고 받을 뿐 진정한 의미의 소통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는 매체의 발달로 인해 더욱 심해졌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보다는 tv를 보거나 온라인 게임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가상 공간과 현실 공간을 구별하기 못하고 가상 공간의 삶을 현실 공간으로 끌어당겨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들에게는 가상 공간 속의 친구들과 소통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다른 사람과 얼굴을 마주보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소통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기계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이 주체적으로 삶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그러하듯이 적당히 파묻혀서 반복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이러한 삶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해결하기보다는 그 문제로부터 도피해버리고 만다. 이전까지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 매몰되어 버리는 것이다. 작가는 ‘민’의 대사를 통해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세상에,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집약적으로 나타내고자 한 것 같다. 소통의 진정한 의미가 사라져버린 오늘날, 의붓아버지와 의붓아들의 진정한 소통의 모습을 통해, 매몰되어 삶을 살아가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그들의 노력을 통해 우리 또한 그러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