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치의 부리 : The Beak of The Finch>

  

 부제: 갈라파고스에서 보내온 '생명과 진화에 대한 보고서' 

 조너던 와이너 지음, 이한음 옮김, 2006, 이끌리오.  

 

 

 

<핀치의 부리>를 느린 속도로 완독했다. 진화론자들은 어떻게 삶과 죽음을 바라볼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이 발동해 읽기 시작한 책이었다. 적도 가까이에 있는 갈라파고스 군도. 거기에 사는 핀치. 참새과에 속하는 이 새가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하게 된 것은 다윈 때문인데, 다윈은 갈라파고스에서의 핀치와의 경험을 밑천으로 삼아 진화론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다. 다윈이 진화론을 잉태한 장소가 갈라파고스 군도이다. 핀치는 이 책에 등장하는 피터와 로즈메리 그랜트 부부의 세심한 관찰과 연구 덕분에 진화론을 상징하는 새로 다시 주목받게 된다. 

 

 

 

떨어지는 사과 하나를 보고 인류의 지성사를 새롭게 썼던 뉴턴. 날아다니는 한 마리의 새에게서 진화의 흔적을 추적한 다윈을 보면, 과학적 진리의 확립이라는 인간이 이룩해낸 위대한 성취도 처음에는 사소함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순수한 무지의 최전선'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탐구하고, 인식하는 과학자들의 비범한 사고. 그 꾸준한 노력들. 글쓴이, 조너던 와이너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진화론과 생물학 전반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탐험을 하듯 펼쳐 놓는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미지로 풍요로운 과학책. 나에겐 미덕이었으나 이런 부분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겠지. 조나던 와이너는 진화론에 관한 여러 진화학자들의 시각과 자신의 사유를 독특한 문체로 드러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우리는 그토록 많은 종류의 동물이 있으며, 왜 우리가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일까? 아마 우리는 동굴에서 살던 때부터 이런 질문들을 제기해왔을 것이다. 절벽 끝에 홀로 서서 야생의 동물을 조사하고, 차이 속에서 동질성을 느끼고, 동질성 속에서 차이를 느끼며, 팔을 활짝 뻗은 채 그들의 커다란 궤도를 눈으로 지켜보던 것이 아직 우리의 공통경험이었을 때부터. 이 질문들은 우리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선회하는 무리들을 좇아 우리의 깃털 없는 어깨 위에서 고개를 돌리던 그 때 태어났다. 첫 시간의 지평 위 저 높은 곳으로 질문들을 날릴 때."  386쪽.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 군도를 항해했을 때의 나이가 22살이었다. 갈라파고스 군도가 다윈에게 얼마나 특별했는지, 그는 갈라파고스 군도를 "내 모든 생각의 기원"이라고 불렀다. 다윈은 갈라파고스 군도를 여행한 지 20년이 지나서야 <종의 기원>을 발표(1859)하는데, 다윈이 붙인 완전한 제목은 <자연선택 또는 생존 경쟁에서 선호되는 혈통의 보존에 따른 종의 기원에 관하여>였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창조물, 삼라만상의 어버이를 신이라고 알고 있던 당시의, 창조론을 신봉하는 근본주의자들에게 생명체들이 생긴 근원과 생성의 비밀을 연구하는 진화론자의 과학적 탐구 행위는 생뚱맞게 느껴졌으리라. 용납할 수도 없고, 용납되어서도 안 되는 신성모독.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며, 그 일어나는 현상을 어떻게 연구할 수 있으며, 수많은 세대 동안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인가를 밝혔을 뿐, '진화'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쓰지 않았다. 

 

진화론의 핵심은 자연선택. 
  

 

먹이는 한정되어 있고 개체의 수는 일정하지 않다. 개체마다 생식능력도 다르다. 따라서 동일한 종에 속하는 비슷한 개체들 사이에서는 먹이를 차지하기 위한 생존 경쟁이 치열해지고, 주어진 자연환경에 적응해서 살아남는 개체가 자신의 유리한 형질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게 되는데, 결국 원래의 종과는 다른 종이 나오게 된다는 것. 
  

 

자연선택은 자연을 다양화 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 과정은 개체에서 변종까지, 변종에서 종까지, 가지를 치면서 분화하여 온갖 생명 형태를 창조한다. 50억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이 지구라는 행성에 어쩌다 이렇게 다양한 동식물이 생겨난 것일까. 성 선택은 자연선택의 힘과 마찬가지로 생존 경쟁과 직결된다. 새들도 인간처럼 짝짓기를 통해 생명을 창조하고 가족을 만드는 과정을 반복한다. 새들에게 짝이 없다는 것은 유전적인 죽음. 대프니 메이저에서 가뭄이라는 선택압이 가해지자 암컷 핀치들은 가장 큰 부리를 가진 큰 새를 선택했다. 거피라는 물고기는 수컷의 몸에만 반점이 있는데, 다윈 핀치의 부리처럼 유전된다. 부모로부터 크기, 색깔 모두 물려받는다. 똑같은 거피는 없다. 포식자가 많은 하류의 거피의 반점은 수수한 반면, 포식자가 살지 않는 상류의 거피의 반점은 화려하다. 수컷 거피는 반점이 화려할수록 암컷 거피를 잘 유혹할 수 있고, 후손을 더 많이 남길 수 있다. 하류의 거피는 이중 압박에 놓인다. 자연 선택과 성 선택. 생존을 위해 일단 포식자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하고, 자손을 남기기 위해 암컷 거피에게만 보이는 반점을 선택해야 한다. 

 

 

 

다윈은 진화란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화석을 통해서야 진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으나, 피터와 로즈메리 그랜트 부부는 진화는 지금 현재,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진화. 살아 움직이는 생명에게서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진화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이의 변화라면, 그러한 변이는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며, 어떻게 구체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핀치의 부리>가 겨냥하는 지점이다. 피터와 로즈메리 그랜트 부부는 가뭄과 홍수라는 극단적인 환경변화를 겪으면서 살아남는 열세 종의 핀치가 먹는 씨앗들을 측정하고, 섬에 서식하는 핀치의 수와 그 새들의 짝짓기와 성향, 그 자손들의 수와 가계도, 계통이 다른 수컷들이 짝짓기 전에 부르는 선전 노래의 차이들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한다. 
 

  

격리되어 있는 갈파라고스 군도의 한 작은 섬, 대프니 메이저야말로 세대가 짧은 핀치 새들의 생존과 번식을 관찰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이다. 무인도에서 20년이 넘도록 핀치를 관찰하고 연구하는 외곬수 과학자들의 끝없는 탐구심과 열정과 인내,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는 학자로서의 성실한 태도, 사방이 고립된 섬에서 어둑해질 무렵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는 소박한 모습이 주는 감동.  
  

 

자연선택에서 소수의 개체가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 저지르는 짓으로 선인장 핀치의 습성이 나온다. 자연선택은 개체의 이익을 증가시킨다. 그러나 개체의 욕구가 집단의 욕구와 충돌할 때, 승리하는 것은 개체이나 자칫하다가는 집단 전체가 몰락할 수 있다. 
 

 

 

선인장 핀치들은 선인장 꽃에 의지해 산다. 선인장에 있는 꿀을 먹고 사니 선인장 꽃이 많아지면 선인장 핀치들도 많아진다. 선인장 핀치들이 꽃을 찾아 꿀을 먹을 때, 어떨 때 선인장 핀치들은 암술머리를 잘라낸다. 암술머리가 눈을 찔러 눈이 아프니 일부 선인장 핀치들이 부리로 암술머리를 잘라낸다. 그러면 꽃이 불임이 된다. 치명적이다. 선인장 핀치들이 선인장 꽃을 망쳐놓아 그랜트 부부가 범인 색출 작업에 들어갔다. 조사 결과, 암술머리를 자른 선인장 핀치는 열 마리 정도. 겨우 열 마리가 전체 선인장 핀치가 먹을 식량인 선인장 꽃을 작살냈던 것. 열 마리는 암술머리를 망치지 않고 꿀을 먹을 수 있었던 선인장 핀치의 영역을 침범하고, 그곳에 있는 선인장 꽃들마저 짓밟았다. 이 열 마리는 암술머리를 망치지 않는 선인장 핀치 보다 오래 살았지만, 가뭄이 들어 선인장 꽃들의 꿀생산량이 줄어들자 20세기 초에 종 자체가 소멸한다. 
 

  

주도권을 쥐고 있는 소수의 개체들의 탐욕스런 이익 추구에 희생당하는 나머지 개체들의 삶. 현실을 풍자한 우화를 보는 것 같지 않은가. 

 

 

비슷하지만 종이 같지 않을 때. 먹이가 한정된 섬에서 너무나 닮은 두 종은 경쟁에 내몰린다. 섬에 하나의 니치만 있다면, 한 종은 소멸하거나 다른 한 종이 승리하는데, 전문 용어로 '경쟁배타'라고 한다. 만약 섬이 새로운 니치를 마련해줄 정도로 넓고 크다면, 그 종은 경쟁에서 벗어나는 쪽으로 진화한다.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를 통해 새들이 자신들의 부리를 본능적으로 유리한 모양으로 바꾸게 되는데, 이걸 '형질대체'라고 한다. 엇비슷한 두 종이 경쟁없이 공존하려면 15퍼센트 정도가 달라야 한다. 두 종이 10퍼센트 정도만 다르다면 둘 중 하나는 소멸하거나 15퍼센트 달라질 때까지 분화한다는 것. 생존을 위해 다른 개체와의 달라짐은 불가피하다. 죽거나 혹은 달라지거나. 미래의 인간은 서로 달라지는 모습으로 진화한다. 

 

  

지구에 있는 새의 종의 수가 약 1만 종이라는데, 이렇게 다양한 새들의 종이 존재하게 된 것에 대한 힌트를 여기서 얻을 수 있다. '같은 지질 특성, 같은 높이, 기후' 등을 가진 섬에서 동식물이 왜 근본적으로 다르게 된 것일까에 대해서도. 
  

 

진화는 집에서도 일어나고 있고, 지금 내 몸에서도 일어난다. 

 

  

지구에서 인간과 경쟁하는 가장 강력한 종, 바이러스. 
  

 

병충해를 막기 위해 농부들이 농약을 치거나, 균을 억제하기 위해 항생제를 복용하면 해충이나 균들이 사라질 것 같지만, 강한 선택압에 대항하는 더 빡센 놈이 생겨난다. 농부의 수확량은 해충을 박멸하기 전보다 더 많아지지 않는다는 말씀. 약에 비교적 덜 취약한 종이 살아남아 그 형질을 자손에게 물려주고 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에 제약회사에서는 시간과 돈을 투자해 더 독한 약을 만들어 내야 한다. 살충제는 해충들에게 가뭄이나 홍수처럼 선택압을 가한다. 살충제라는 선택압이 해충을 진화하게 만드는 원인 제공. 대장균도 약이라는 선택압이 가해지면, 일부가 살아남아 자신의 성공한 유전자를 물려주고, 순식간에 항생제에 저항하는 세균들을 만들어 낸다. 독감 바이러스나 에이즈 바이러스 또한 우리 눈앞에서 보이는 진화의 생생한 사례. 바이러스는 스스로를 교정하지 않는다. 다른 바이러스와 유전자를 교환해 인간의 면역체계를 교란시키고 공격한다. 인간이 강도높은 선택앞을 가하여 통제를 하면 할수록 바이러스의 진화가 촉진된다는 아이러니. 파리는 DDT에 저항해 진화하는데 자신을 구하기 위해 유전자를 변형하기까지 한다. 요컨대 갈라파고스 군도에 있는 핀치들이 자연 선택을 한다면, 바이러스와 해충들은 인간에 의한 선택을 한다.  

 

 

모든 종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변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지구 온난화와 엘니뇨 현상으로 생태계가 파괴되었을 때, '진화의 주인이자 노예', '지구의 우점종' 인간이 감수해야 할 미래의 모습. 좀 극단적인 가정을 해보면, 강한 선택압에 놓여 있을 때 적응에 실패해서 사라져버린 공룡처럼 멸종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면 인플루엔자의 특성과 에이즈 바이러스의 특성을 무작위로 결합한 돌연변이 바이러스에 의해 공격을 받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든가. 긍정적으로 보면, 변이를 일으켜 살아남는 바이러스가 있듯이 인간의 면역체계도 강한 바이러스에 대항해 거기에 맞서 진화할 수도 있겠지. 
 

 

진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종의 다양성이다. 똑같으면 자연 선택이 일어날 수 없고, 진화 또한 가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핀치의 생존과 핀치의 생명의 역사를 통해 진화란 다양성에 기초해 있다는 것 알 수 있었다. "종의 무한한 가치는 우리의 무한한 다양성 속에 있다." 긴 시간 동안의 비행 끝에 갈라파고스 군도에 도착하여 적응을 해야했던 최초의 핀치. 바다를 가로 질러 나르는 험난한 여정을 감행했던 미지의 새. <핀치의 부리>는 생명이 창조된 근원을 찾아 핀치와 함께 떠나는 생명견문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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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南天)과 남천(南天)사이
여름이 와서
붕어가 알을 깐다
남천(南天)은 막 지고
내년 봄까지
눈이 아마 두 번은
내릴 거야 내릴 거야
                                           - 김춘수
 

 


시인이 남천을 정원에 심어두었던 것일까. 남쪽 하늘, 붕어, 봄, 눈....계절의 어김없는 순환을 노래하는 시인의 저 탁월한 언어 감각이 시와는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세속의 장삼이사에게 우주와 공명할 기회를 부여한다. 남쪽 하늘이라는 이름을 지닌, 꽃집 앞에 서 있는 남천을 오다 가다 본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이 어떤지를 잠깐 생각했다. 늙수그레한 집주인은 내가 남천을 안 사갈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관심을 드러내지 않는다. 약간은 냉담한, 그러나 적대적이지 않는 무관심. 
이 추위에 서 있는 붉게 타오르는 남천과 저 남쪽 하늘 사이.
남천과 남천 사이. 그 아득한 간극. 그 사이 사이에서 나는 쉽게 절망하지 않는, 어떤 식을 줄 모르는 생명의 붉은 기운을 본 듯하다고, 남천의 이파리에 깃든 생명의 기운에 놀라 그만 걸음을 멈추고 말았노라고, 내 조금만 관심을 포장해서 말하고 싶어하는 나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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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끼어 얼룩덜룩하게 된 옷.

내가 이해하는 인간 본성의 한 단면.

숭고한 내용으로 채워진 낭만적인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긍정적인 미적 체험에 동참하는 것을 허락받는 대신에 그 대가로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묘한 상실감이 들 때가 있다. 뭐랄까. 핵심적인 얘기를 회피한 채 화려한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그저 멋부리는 소리나 남발하는 사람의 말을 마냥 좋은 말씀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는 찜찜한 기분. 감미료를 듬뿍 쳐놓은 음식을 자연의 맛이라고 포장하는 것쯤에 반쯤 속아주면서도, 이렇게 이것 저것 쳐발라 놓고 자연산이라고 박박 우겨도 좋은 거냐며 딴지를 걸고 싶은 그런 마음. 

일반적인 상식으로 이해가 안 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생각나는 작가가 에드거 알랜 포다. 인간성에 대한 통찰이 빚어낸 그의 정밀한 글들은 인간의 가장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 볼 것을 요구하면서 윤리와 도덕이 미치는 자장이 어디까지인가를 놓고 숙고하게 만든다. 경이로운 것은 이 우울하고 예민한 정신의 소유자가 가장 첨예한 이성주의에 입각하여 글을 썼다는 점.

우리가 쓰고 있는 가면의 부실함을 신랄하게 조롱하는, 그로테스크한 글에 배어있는 슬픔과 위트. 포는 인간 내면에 깃든 악마성과 이중성을 묘사해내는 데에 머뭇거리지 않는다. 복수의 완벽한 전형을 보여주는 아몬틸라도의 술통.

지상에서는 축제가 벌어지고 있고, 어둠과 습기가 차 있는 지하에서는 생매장이 진행중이다. 이런 극적인 공간 분할 자체가 인간 내면의 모순을 드러내는 하나의 장치인지도. 한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지상과 지하, 그 쪼개어진 자아 속에 우리가 맹렬하게 감추어야만 하는 금기시된 욕망과 쾌락들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혹시 우리의 저 깊숙한 무의식으로의 하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친구를 업신여긴 죄로 영문도 모른 채 죽어야 하는 포르나토르. 자신을 모욕한 친구를 죽여버리는 몬트레소르의 강한 증오심. 최민식이 올드보이에서 지가 왜 갇힌 지 이유를 몰라 발광할 때, 유지태가 짓던 섬뜩한 표정은 차라리 인간적인 것이었다.

최민식이 제 혀를 자를 때엔 제눈을 찌른 오이디푸스처럼 운명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존재인 인간이 두려움을 무릅쓰고 진실, 혹은 진리를 안 대가로 자신을 징벌하는 대목에서는 그러니까  최소한의 양심 쪼가리가 남아 있었단 말이지. 일말의 죄의식 같은 거.

아몬틸라도의 술통에는 그것조차 없다. 

포는 인간의 무엇을 간파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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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찬 2012-10-17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읽었습니다^^ 정말 공감가고, 감동받앗습니다^^
 

머리를 텅 비우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한 1분 동안 해보자 했다. 아무 생각없이, (아무 생각없이, 하는 이런 생각조차 싹둑 자르고) 있고 싶은 게 잘 안 되는 것을 자각함과 동시에, (수행자가 아닌  주제에 잘 될 리가 있나) 무념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고행했던 구도자들의 삶이 갑자기 존경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내 속물 근성이 뿜어내는 악취의 고약함을 망각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되풀이하는 의식행사.

진정성이 결여된 같잖은 자아반성이나,  

자학근성으로 인한 부자연스러운 자기 헐뜯기는 이만 생략.

구도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과정을 사는 것인가.  

도를 터득하는 목적에 집착한다면, 그 또한 자유로움에서 이탈한 것이리라.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 중 '정결한 여신'을 듣다.   

소프라노의 이름은 안젤라 게오르규. 얼굴도 화려하고 고음에서의 음정 처리도 안정감 있고, 노래 실력은 최상급 표현을 써주어도 무방하다. 아무리 그래도 노르마하면 마리아 칼라스. 마리아 칼라스와 안젤라 게오르규. 누구를 선호하느냐 하는 것은 취향의 차이. 

마리아 칼라스의 귀기 어린 발성과 동화 속에 나오는 중세의 마녀처럼 보이는 매부리코로 인한 강한 개성. 숨만 쉬고 있어도 연기가 되는 범절할 수 없는 카리스마, 드라마틱한 표현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 안젤라 게오르규의 노르마는 고혹적이고 섬세하다. 기품있는 미성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견디어 내는 여인의 체념과 한을 노래한다. 

순결한 달의 여신이 노르마의 절규를 측은하게 여긴 것일까. 노르마를 배신했던 남자, 폴리오네는 죽음을 선택하고 노르마는 죽어서야 비로소 절대적인 안식과 평화를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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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플로이드 홈페이지에 갔더니 키보드를 담당했던 릭 라이트가 9월에 암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맨위에 있다. 현대 문명을 비판하는 가사들. 생의 허무와 결핍을 진하게 노래하는 핑크 플로이드의 묵시론적인 사운드와 보컬.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영원에 대한 무한한 동경으로 나아가고, 불멸하고 싶은 욕망으로 이어지는 것일까. 아티스트라면 자신은 죽더라도 자신이 연주한 작품만큼은 오래도록 사랑받기를 바랄 것이다. 만약 그가 배우라면 자신이 열연한 작품이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오래도록 장수하기를 욕망할 것이고. 

생명력이 긴 곡에는 좋은 음악이 갖고 있는 특성, 요컨대 보편성이란 것이 숨어 있다. 분명한 것은 대중의 값싼 정서에 무조건 영합한다고 해서 보편성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이십 대의 어느 시기에 난 'comfortably numb'에서  키보드가 따라라라 따라라라 하고 배경으로 도드라지게 들리면서 파도처럼 리드미컬하게 왔다갔다 하는 부분에 매료되었었다. 따라라라 따라라라. 따라라라 따라라라. 삶과 죽음으로부터 초월해 있는 듯이 흐르는 파도의 반복적인 움직임... 

there is no pain  you are receding 

.....

the child is grown  the dream is gone

and I have become comfortably numb

....

후반부의 독보적인 기타 연주에서는 볼륨 이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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