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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우주의 탄생의 비밀을 알면 혹시 시간의 비밀도 알 수 있지 않을까? 과학자들은 이 우주가 빅뱅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말하지만, 그렇다면 빅뱅은 어떻게 일어난 것인가. <시간의 역사>에서 스티븐 호킹이 말하길 빅뱅이 일어난 지 100초 후에 우주의 온도가 가장 뜨거운 별의 내부 온도인 10억 도로 낮아졌을 것이라고 한다. 10억도. 온도가 10억 도가 되면 어느 상태가 되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지만, 충분히 높은 온도에서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큰 운동에너지를 가지기 때문에 충돌 후에도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튕겨져 나올 수 있다고 한다. 이론상으로야 10억 도라는 게 있을 수 있겠다만 하, 10억도라니. 그럼 100억 도에서는? 100억 도에서는 양성자와 중성자의 에너지가 강한 핵력의 인력을 극복할 만큼 어쩌고 저쩌고...어쨌든 스티븐 호킹은 나에게 우주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온도가 10억 도, 100억 도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준 물리학자인데, <시간의 역사> 에서 특별했던 것은 마지막 장이었다. 왜냐하면 빅뱅이 일어난 이유를 추론하면서 유신론자들의 입에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할 정도로 신적인 존재의 개입 가능성을 열어두었었기 때문. 그런데 이 물리학계의 수퍼스타께서 최근 새 저서에서 우주가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을 하셨다고.   

<시간의 역사> 중에서 12장 p.200~203
이 책은 특히 중력을 지배하는 법칙들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왜냐하면 중력은 힘의 네 가지 범주 중에서 가장 약함에도 불구하고 우주의 거시 규모 구조를 형성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중력법칙들은 우주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는 비교적 최근까지 믿어왔던 견해와 양립할 수 없었다. 중력이 항상 인력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은 우주가 팽창하거나 수축해야 함을 의미한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과거에 무한대의 밀도 상태, 즉 빅뱅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빅뱅은 사실상 시간의 출발점이었다. 마찬가지로 우주 전체가 재수축한다면, 우주의 미래에 또 하나의 무한대의 밀도 상태, 즉 빅크런치(big crunch)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시간의 끝이 될 것이다. 설사 우주 전체가 재수축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붕괴하여 블랙홀을 형성하는 국부영역들에는 특이점들이 존재할 것이다. 블랙홀로 떨어지는 사람에게는 그 특이점들이 시간의 끝이 될 것이다. 빅뱅을 비롯하여 그 밖의 특이점들에서 모든 법칙들은 무력해질 것이다. 따라서 신은 여전히 우주의 시작과 사건들의 발생을 선택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가질 것이다.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합하면, 과거에는 없었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즉 시간과 공간이 함께 특이점이나 경계가 없는 유한한 4차원 공간을 형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그것이다. 그 공간은 차원이 더 많을 뿐, 지구의 표면과 유사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우주의 거시 규모의 균질성은 물론 은하계와 별, 심지어 인간과 같은 더 작은 규모에서 나타나는 비균질성과 같은 우주의 많은 관찰된 모습들을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자기충족적이고 특이점과 경계가 없는 우주가 통일이론으로 완전하게 기술된다면, 그것은 창조자로서의 신의 역할과 관련해서 근본적인 의미를 가질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물었다. “우주를 창조할 때 신은 얼마나 많은 것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우주에 경계가 없다는 제안이 참이라면, 신은 초기 조건을 선택할 자유를 전혀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신은 우주가 따라야 할 법칙들을 선택할 자유를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상 그렇게 중요한 선택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우주의 법칙들을 탐구하고 신의 본질에 대해서 질문할 수 있는 인간처럼 복잡한 생명체의 존재를 허락하는, 끈이론과 같은 완전한 통일이론은 아마도 오직 하나이거나 소수일 것이다.

오직 하나의 통일이론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그 이론은 규칙들과 방정식들의 집합일 뿐이다. 방정식들에 생기를 불어넣어 방정식들이 기술하는 우주를 만든 것은 무엇일까? 수학적 모형을 구성하는 통상적인 과학의 접근 방법으로는 그러한 모형이 기술하는 우주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우주가 굳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통일이론은 자신의 존재를 관철시킬 만큼 강력한 이론일까? 혹은 통일이론은 창조자를 필요로 할까? 만일 그렇다면 창조자는 우주에 다른 영향도 미칠까? 그리고 창조자는 누가 창조했을까?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우주가 무엇인가를 기술하는 새로운 이론들을 발견하는 데에 몰두한 나머지 우주가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지 못했다. 다른 한편 왜 라고 묻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철학자들은 과학이론들의 발전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18세기에 철학자들은 과학을 포함한 인류의 모든 지식을 자신들의 연구분야라고 생각했고, 우주에 시작이 있었을까 하는 따위의 문제들을 논했다. 그러나 19세기와 20세기에 과학은 극소수의 전문가들을 제외하고는 철학자들이나 그 밖의 모든 사람들에게 너무나 전문적이고 수학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철학자들은 연구 영역을 크게 줄였다.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철학에 남겨진 유일한 과제는 언어분석이다.” 그들의 연구 분야는 이 정도로 축소되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칸트에 이르는 위대한 철학의 전통을 생각하면, 이 얼마나 치명적인 몰락인가!

그러나 우리가 완전한 이론을 발견한다면, 머지않아 모든 사람들이 그 이론의 대략적인 원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철학자들과 과학자들과 일반인들 모두가 우리와 우주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토론에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 질문에 답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인간 지성의 승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는 신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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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먼 시계공 : The Blind Watchmaker >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용철 옮김, 2004, 사이언스북스.  

 

 

 

내게는 그저 탁 트인 광대한 여백일 뿐인, 무심한 하늘을 배경으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의 우아한 비행이 펼쳐지고 있다. 느리고 완만한 곡선을 그리다가 소실점 끝으로부터 멀어지는 역동성을 갖춘 한 생물이 일으키는 대낮의 작은 소요. 생존을 건 사투로서의 비행. 차가운 대기를 뚫고 솟구쳐 날아오르다 유유히 시야 밖으로 사라져가는 새가 남긴 긴 여운은 혹독한 환경에서 삶을 영위해 가는 이 땅의 무수한 생명들의 짧은 생애에 대해 되돌아보게 한다. 중력의 법칙에서 제외라도 되는 것인 양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저 새의 도도한 날개짓.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착지 동작의 유연함과 균형. 어떤 오묘한 자연의 법칙이 있기에 새들은 저토록 가뿐하고 날쌘 동작으로 하늘과 땅을 왕래할 수 있는 것일까. 정교한 메커니즘으로 구성된 지구상의 다양한 생명체들. 그들이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까닭은 무엇이며 인간과 생명의 기원에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사고체계가 있다면, 그 세계관은 어떠한 근거를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1986년에 출판된 <눈먼 시계공>은 진화론에 대한 무지와 오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돋보이는 리처드 도킨스의 역작이다. 설명이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해내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는 도킨스는 진화론이라는 과학적 추론을 통해 생명의 본질과 기원에 관한 질문들에 답한다. 그는 인간은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며, 기적과도 같은 우연의 작용과 점진적이고 누적적인 자연 선택이 있기 때문에 인류가 오늘날까지 올 수 있었다고 명료하게 말한다. 과학적 세계관과 종교적 세계관이 격돌하는 생생한 현장, <눈먼 시계공>.


 

시계라는 복잡한 물건이 제 스스로 발생할 수 없듯이, 시계보다도 더 복잡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을 만든 제작자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추리했던 신학자 윌리엄 페일리. 생명의 복잡성에 천착했던 페일리는 의도와 목적을 갖고 있는 시계공인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을 창조했기 때문에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논증했지만, 도킨스는 창조론에서 말하는 시계공은 눈이 멀었다고 비꼰다. 시계공은 없다. 만약 시계공이 있다면, 그 시계공은 누적적인 자연선택을 의미한다.  


 

맹목적인 자연선택에 의해 단세포 생물에서 인간이라는 복잡한 생명체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비행기 야적장에 흩어져 있는 비행기 부품들이 바람에 휩쓸려 날리다가 보잉 747이 만들어질 확률과 맞먹는다며 진화론을 강력하게 부정하는 반대자들에게 도킨스가 어떤 근거를 내세워 창조론을 반박하는지, 그가 어떻게 진화론을 옹호하고 자신의 이론을 공식화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내용.

 

도킨스는 사물이 어떻게 작동되는가를 설명하는 자신의 설명 방식을 단계적 환원주의라고 말하면서 단계적 환원주의는 무턱대고 가장 작은 부분들의 총합으로 전체를 설명하려고 들지 않는다며 (환원주의적 해석 방식이라고 치부하면서 무조건 진화론을 폄하하려 드는 시각에 몹시 짜증난다는 듯) 자신의 설명 방식인 단계적 환원주의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이유를 댄다. 환원주의를 식인종처럼 여기는 지적 풍토에 대해서 한 마디 하는 것인데, 자신을 환원주의자라고 비난하는 것을 염두에 둔 반박성 발언처럼 보인다.  

 


“복잡한 물건이란 그것이 너무나‘있을 법하지 않는’것이기 때문에 그 존재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물건을 말한다. 그것은 일회적인 우연으로는 생겨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의 생성 과정을 우연히 생겨날 정도로 충분히 단순한 최초의 물체가 점차적으로, 누적적으로, 단계적으로 더 복잡한 물건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1단계 환원주의로는 복잡한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없고, 양파 껍질 벗기기 식의 작은 단계로 나누어진 설명만이 그 복잡성을 설명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물건이 단 한 번의 단계를 거쳐 생겨났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시간 순으로 배열된 일련의 작은 단계들로 설명해야 한다.” 41쪽. 
 

 

도킨스가 말한 1단계 선택이란 순수하고 단순한 우연을 나타낸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양적으로 어마어마한 무한대에 가까운 시간이 주어지면, 그 거대한 시간의 척도 안에서 생명의 단초가 시작되는 화학 작용 같은 질적인 변화가 일어났을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는데, 사실 천문학적인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미세한 변화들은 인식 능력에 한계를 갖고 있는 인간이 상상하기엔 너무나 벅찬 경이로운 세계이다. 우리의 두뇌는 보통 크기의 물체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위치가 일정하지 않은 아주 작거나 큰 입자 같은 것들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떤 시기에 생긴 기적과도 같은 우연에 의해 생명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은 인류가 이 지구에 생존하지 않을 가능성까지 내포한다. 무질서한 혼돈에서 질서가 생겨나기까지의 그 우주적인 시간들, 무에서 단번에 실재로 건너 뛰어온 그 신비의 과정을, 신화가 아닌 진화론이라는 과학적 사고에 입각하여 설명을 시도하려는 도킨스. 지구에서만 한정되게 적용되는 과학 이론이 아니라 생명의 본질을 통찰할 수 있는 우주론적 논증으로서의 자연 법칙이 존재한다면, 수십 억 년 만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한 생명의 발생이라는 특정한 사건에 깃든 우연성의 비밀을 해독하는 자가 있다면, 그 자가 홀로 누릴 지적 희열은 얼마나 강렬할 것인가.


생물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설명하기 위해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야 하는 박쥐의 예가 나온다. 야간 비행이 생활인 박쥐는 첩보용 모형 비행기처럼 정밀한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있는데, 어둠 속에서 소리를 통해 길을 찾고 먹이를 찾아야 하는 박쥐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귀를 고도로 발달시킨 것은 우리가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과 같은 차원으로 이해할 수가 있다. 박쥐가 일그러진 얼굴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초음파를 발사하여 길을 찾아야 하기 때문. 소리를 발사하고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고도로 발달한 정밀한 기관이 있어야 한다.

"박쥐가 메아리를 이용한다는 것은 생물의 기관들이 훌륭한 설계에 따라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 택할 수 있는 수천 가지 예 중 하나에 불과하다. 동물들은 마치 이론에도 통달하고 실기에서도 천재적인 물리학자나 기술자가 설계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74쪽.


<이기적 유전자>에서 도킨스가 일관되게 주장했듯이 진화의 핵심은 자연선택이다. 이 책에서 역시 강조하는 것도 유전자이다. 자연 선택되지 않는 개체는 자신의 유전자와 함께 절멸하고 만다. 도킨스는 이 절멸하는 것을 채에 걸러지는 모래로 설명하는데, 체를 필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여러 번의 체에 걸러지면서 모래의 큰 알갱이들은 점점 더 작아지고 미세해진다. 진화는 이러한 채에 거르는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과정들의 연속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선택의 단위는 유전자이고 생명의 시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복제자이다. 유전자의 형질을 결정하는 부모의 2분의 1의 유전자만이 자식에게 전해지기 때문에 자식이 부모와 비슷하게 닮았을지라도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도킨스는 생명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특성이 자기를 복제하는 성질이기 때문에 만약 우주에 어떤 생물체가 존재하고 있다면 그 생물체는 자기 복제하는 특성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유추한다. 오늘날의 DNA가 갖고 있는 고도의 기술은 수많은 세대를 거치며 누적적인 자연선택을 받은 결과로 획득한 것.


자기 복제를 할 수 있는 분자가 기적과도 같은 우연에 의해 생겨났다거나 태초의 조상이 원시 수프에 있는 박테리아였다 할지라도 모든 진화의 역사에는 유전자 공간을 통과하는 경로가 있다. 도킨스는 진화가 일어나는 이러한 유전자 공간을 실제로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컴퓨터를 이용해서 바이오모프 시뮬레이션을 만들어 실험을 한다. 이 책이 1986년에 출판되었으니 그 이전에 이미 도킨스는 컴퓨터라는 첨단 테크놀로지를 자신의 연구에 적극적으로 활용했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 기계적인 실험의 목적은 작고 단순한 사물이 어떻게 복잡한 사물로 진화하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근거이다. 진화의 점진성을 강조하기 위한 근거이면서 또한 지구에 다양한 생물체가 생겨난 배경에는 특별한 목적이 없는 자연선택, 눈먼 시계공인 진화가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도킨스가 인위적으로 단순한 모양을 지정하면 그 모양이 무작위적으로 변화를 거듭하며 그것의 자손을 얻게 된다. 도킨스의 개입. 선택에 의해 일어나는 이러한 변화에서 유사한 모양의 바이오모프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바이오모프는 스스로를 복제해 나간다. 바이오모프의 진화는 9차원이라는 수학적 공간 안에서 진행된다. 지구에서 과거에 살았거나 현재 살고 있는 동물들은 이론적으로는 유전자 공간을 통과하는 아주 적은 수의 진화 경로에서 비롯된 산물이라고 봐야 한다. 지금과 같은 정교한 눈이 되기 위해서 아주 작은 단계에서부터 시작했음을 보여주기 위해, 완벽한 눈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조금이라도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논리를 펼치는데, 예컨대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사람의 눈과 결코 눈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을 연결하는 X의 계열에 있는 각각의 X들은 모두가 그것을 지닌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 이로운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가?”138쪽. 

낮은 시력이라도 갖고 있으면, 천적의 움직임을 희미하게나마 포착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생존할 가능성도 높아지게 된다. 5퍼센트의 눈을 가진 원시 생물이 있고, 설령 그 원시 생물이 그 눈을 보는 것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사용했더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는 말이다. 그러나 진화론 반대자들은 결코 눈이라고 할 수 없는 것에서부터 완전한 인간의 눈까지 연결하는 X들에서 개개의 X가 해당 동물들의 생존과 번식을 돕기에 충분한 기능을 발휘했을까? 하는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아니다, 하고 부정한다. 진화가 작고 단순한 것에서 출발하여 점점 더 복잡한 단계로 진입한다는 걸 부인하는 것이다.

 

새의 날개의 경우 도킨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새의 최초의 날개가 얼마나 작고 날개답지 못한가보다는, 중요한 것은 동물들이 떨어지면 목이 부러지는 일정한 높이가 있는데, 이 임계점에서 바람을 받는 몸의 표면적을 조금이라도 늘려서 무작정 추락하는 것을 방지한다면, 비록 작은 개선에 불과할지라도 그것은 사느냐, 죽느냐의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원시적인 날개 형태를 가진 동물은 오랜 기간 동안의 자연선택을 통해 자신의 투박하고 조악한 날개를 조금씩 진화해 나갈 것이고 이 날개가 보편화되었을 때쯤이면 임계 높이는 조금 높아진다고.

 

“종의 기원에서 다윈은 이렇게 말했다.
작은 개조가 수없이 거듭되는 것으로도 결코 만들어질 수 없는 어떤 복잡한 기관이 있다는 것이 증명이 된다면 나의 이론은 붕괴될 것이다.


다윈 이후 150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생물에 대해 더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작은 개조가 수없이 거듭되어도 결코 만들어질 수 없는 복잡한 기관을 단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 기관이 존재한다면 나 역시 진화론을 포기할 것이다.“ 158쪽.

 

 

초자연적인 존재를 가정하는 사람들은 태초에 어떤 위대한 정신을 가진 설계자가 있다는 근거로, 눈먼 시계공 이론이 갖는 약점에 대한 지적으로 태초의 자기 복제자 또한 복잡한 과정에 의해서 누적적인 자연선택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그 최초의 자기 복제자의 복잡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냐고 이야기한다. 복잡한 구조를 갖는 생명체가 진화가 아닌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믿는 그들은 창조주가 동물들을 직접 만들지는 않았으나 태초의 자기 복제자나 DNA, 단백질을 만들어 놓았고, 그런 다음 누적적인 자연선택이 일어나 모든 진화가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얼핏 보면 과학성을 띠는 주장인 것처럼 보이나 사실 이것 역시 창조주를 인정하는 변형된 지적 설계론에 불과하다. 
 

 

DNA와 자기 복제자를 만들 뿐만 아니라, 기도를 들어주고 죄를 벌하는 기능까지 수행하는 창조주가 만약 존재한다면, 그 존재 또한 당연히 단순하지 않은 고도로 복잡하고 완성된 성질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창조론자들은 시계를 제작한 그 복잡한 설계자의 기원에 대해서는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한다.  


“초자연적인 설계자로 DNA, 단백질 복제 기구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은 엄밀히 밝히면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설계자의 기원에 관하여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신은 원래부터 있었다.’ 따위의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런 나태한 방식을 버리고자 한다면 단지 ‘DNA가 원래부터 있었다,’ 또는 ‘생명은 원래부터 있었다.’라고 말하면 된다.”236쪽.


바이오모프 실험에서 뿐만 아니라 원숭이가 햄릿을 타이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수학적 확률에 근거해 도출해 내는 것은 모두 진화에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변화가 갖는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었다. 도킨스는 자신의 이론에 합리성을 부여하기 위한 방법으로 생명이 발생할 가능성을 수학적 논증에 기초하여 바라봄으로써 실증성을 구축한다.


모든 생물은 분자들의 집합체이다.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원시 수프 이론을 갖고 유기 분자가 만들어진 배경을 설명했다면, <눈먼 시계공>에서는 케언스스미스의 점토설을 활용한다. 흙으로 인간을 빚었다는 프로메테우스를 신화를 연상시키는 케언스스미스의 점토설에 따르면 지구에 최초로 출현한 생물은 스스로를 복제하는 규산염 같은 무기 결정에 바탕을 둔 존재라고 한다. 

 

케언스스미스는 최초의 자기 복제자가 진흙이나 점토에서 발견되는 무기물의 결정들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지구 어디에나 널려 있는 점토와 암석의 표면을 전자 현미경으로 확대해보면 그 결정의 표면에 흠이 있다. 이 흠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결정들에서 발견되는데, 일단 흠이 한 번 생기면 그 위에 그 형태가 새로 복사된다. CD의 표면에 음향 정보를 담는 것처럼 여기에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지구상에 최초로 출현한 광물 결정들은 오늘날과 같은 정교한 수준의 DNA가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케언스스미스는 점토 결정 복제자가 초기에 사용한 것이 단백질이나 당류,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RNA같은 핵산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광물 결정 유전자가 RNA(또는 비슷한 물질)를 더 효과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RNA가 스스로 복제되도록 만들었다. RNA의 자기 복제 능력은 RNA를 더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마침내 RNA는 자기 복제능력을 갖게 되었다. 일단 새로운 자기 복제 능력자가 탄생하자 새로운 종류의 누적적인 자연선택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자기 복제자는 찬조 출연이었지만 원래의 결정보다 더 효과적인 것으로 드러나자 역할을 넘겨받게 되었다. 그들은 진화를 계속했다. 그래서 결국 오늘날 알고 있는 DNA 암호를 완성하였다. 원래의 광물 복제자는 닮아빠진 주형처럼 버려졌다. 그리고 오늘날의 생물은 단일한 유전 체계와 단일한 생화학을 바탕으로 비교적 최근의 조상에서 진화해 나갔다.”261쪽.

 

 

지금은 고인이 된 학문적 동료이자 경쟁자인 스티븐 J 굴드와 엘드리지도 비판 대상이다. 도킨스가 굴드를 비판하는 이유는 자신의 이론과 경쟁 관계인 굴드의 단속평형설이 창조론자들에게 진화론을 공격하는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인데, 화석을 다루는 고생물학자인 굴드는 진화의 중간 단계를 증거하는 화석을 찾을 수 없었고, 진화가 잠시 주춤하는 정체되는 기간에 주목했기에 진화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캄브리아기에 화석이 급격히 변하는 것에 더 주목했다. 도킨스는 단속평형론자의 공헌은 진화가 정체되는 기간에 대한 강조였다며, 포괄적인 의미에서는 단속평형설도 점진설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도킨스는 진화가 일어나는 속도는 너무나 느리기 때문에 인간의 기준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지질학적인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스테빈스의 계산으로는 이 동물이 40그램의 평균 몸무게(쥐의 크기)에서 600만 그램의 평균 몸무게(코끼리 크기)로 진화하기까지 1만 2000세대가 걸린다. 쥐의 한 세대보다는 길고 코끼리의 세대보다는 짧은 5년을 한 세대의 길이로 잡는다면 1만 2000세대가 경과하려면 6만 년이 걸린다. 6만년이라는 시간은 화석 기록의 연대를 추정하는 통상의 지질학적 방법으로는 측정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짧은 시간이다. 스테빈스의 표현을 빌면, "어떤 동물의 새로운 종이 탄생하는 데 10만 년 정도가 걸릴 때, 고생물학자는 그것을 돌연한 발생이라든가 순간적인 발생이라고 부른다." 394쪽.     

 

진화론이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이 생명의 기원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온갖 동식물, 생명의 다양한 현상에 대해서도 설명이 가능하다. 진화론에 입각하면 자연선택이야말로 생명의 복잡성, 다양성을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이다. 생물의 대부분이 유성생식을 하는 이유는 유성생식 하는 종이 무성 생식하는 종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식물이 처음부터 계층적인 형상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며, 진화가 내려오는 모양이 계층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종의 기원이라는 문제에 대한 다윈의 답은 한 종이 다른 종에서 유래한다는 것. 생명의 계보를 나타내는 나무는 계속 가지를 뻗어나가는데, 복수의 현생 종을 추적해 올라가면 단일한 선조 종에 가닿게 된다. 사람과 침팬지의 공통 조상은 500만 년 전쯤 하나의 같은 종이었으나 종 분화를 통해 2개의 다른 종으로 분화되었으며 인류라는 종은 진화가 이루어지는, 버려지고 선택되는, 종 분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생존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자연 선택되었을 뿐이다.  종 분화는 하나님의 섭리와 무관하게 점진적이고 불연속적으로 일어난다. 생명의 나무가 종의 경계를 넘어 한 번 가지를 뻗게 되면, 그 가지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게 된다. 침팬지와 유전자를 99퍼센트 이상을 공유하는 인류가 침팬지나 다른 원숭이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현대 분자생물학의 우수한 점은 두 동물이 어느 정도 다른가를 측정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유전자 지도가 밝혀진 오늘날, 유전자 사전은 세 개 문자로 이루어진 64개 DNA 단어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든 생물이 외관은 달라도 같은 유전자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든 생물이 하나의 공통선조로부터 유래했다는 결정적 증거로 간주된다. 인간의 유전자와 지극히 단순한 생명체들의 유전자가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것은 진화를 입증하는 구체적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도킨스는 현재까지 살아남아 있는 생물은 모두 오직 하나의 선조로부터 유래하고 있으며 그 의미는 자의적일지라도 64개의 DNA 단어 하나하나까지 거의 동일한 유전자적 사전을 그 선조로부터 물려받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유전자 사전에서 나타나는 보편성, 모든 생물이 하나의 공통 사전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들이 모두 동일한 문장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그래서 차이가 발생. 생물들은 서로 유연관계를 이루고 있는데, 단백질과 DNA 문장이 비슷하면 유연관계가 가깝고 그 문장이 다를수록 유연관계가 멀다. 생물의 유연관계를 다루는 분류학자들 중에서 조상과 진화를 배제해야 한다며 진화 개념 자체를 배격하는, 다윈 진화론에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는 창조론자들을 향해 도킨스는 그 특유의 공격적인 어투로 대응한다.


“물론 조상의 정확한 의미와 위상을 정립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고 때로는 아예 그런 일을 시도하지 않는 편이 나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조상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부추기는 그런 진술을 일삼는 것은 언어의 타락이자 진실에 대한 배반 행위이다.” 461쪽.

 

이를테면 바닷가에 있는 자갈들이 누군가가 설계해 놓은 것처럼 띠 모양을 이루는 것은 자연의 일부인 파도가 자갈들을 이리저리 굴려서 그런 띠 모양이 만들어진 것이지 거기에 특별한 의도가 개입된 것은 아니다. 목적이 없이 이루어지는 자연의 물리적 작용들을 보고 인류의 먼 조상들은 그 모양과 형태를 만들었을 위대한 정신을 상상했을 것이다. 밤과 낮이 바뀌고, 들판에 있는 나무와 풀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는 황량한 겨울이 매년 들이닥칠 때마다 두려움과 아름다움에 떨면서, 너그러움과 무자비함을 동시에 베푸는 초자연적인 어떤 존재를 상상하며 인류의 오래된 이야기 신화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러나 의도와 목적이 없다고 해서 자연에 아무런 법칙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윈주의적 세계관을 강력하게 옹호하는 도킨스는 이 장엄한 자연에 숨겨진 원리가 있음을 역설한다. 

 

<눈먼 시계공>의 요지는 신의 피조물이라고 불리는 이 세계의 삼라만상들의 존재를 신을 개입시키지 않고도 설명할 수가 있는데, 진화론이 바로 그런 힘을 가진 이론이라는 것. 진화론. 자연선택만이 사람의 눈이나 그에 필적할 만한 고도의 완성도와 복잡성을 갖춘 기관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해명에 근접할 수 있다는 것. 잡다하고 난삽하게 펼쳐져 있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생물들에게 진화론이라는 과학이론으로 과학적 질서를 수립하려는 도킨스의 논증은 수학적인 계산과 물리학의 기본적인 개념의 토대 위에서 한 단계 한 단계 다양한 예들을 제시하며 전개되어 왔다. 진화론이 복잡하게 설계된 생명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이론이고, 설명하기 까다로운 자연 현상들을 과학적 근거에 의거해 설명해내야 하는 어려운 임무가 진화론자들에게 주어졌다면, 도킨스만큼 충실하게 그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학자도 없을 듯하다. 진화의 궁극적인 목표를 우리 인간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인간의 허영심일 뿐 진화는 먼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목표 따위는 없다고 말하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진화의 힘은 천문학적인 불가능성을 해소하고 믿을 수 없고 기적처럼 보이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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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은 봄철날 따디기의 누굿하니 푹석한 밤이다
거리에는 사람두 많이 나서 흥성흥성 할 것이다 
어쩐지 이 사람들과 친하니 싸단니고 싶은 밤이다


그렇것만 나는 하이얀 자리 우에서 마른 팔뚝의
샛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것과 내가 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살틀하든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


또 내가 아는 그 몸이 성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
즐거이 술을 먹으려 단닐 것과
내 손에는 신간서 하나도 없는 것과
그리고 그 <아서라 세상사>라도 들을
류성기도 없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내눈가를 내 가슴가를
뜨겁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                                   

                                                                               - 백석


 

가난하고 버림받은 시인이  
제 설움에 겨워 부르는  자조의 노래는
내가 뜨겁게 외면하고 싶은 것이니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는 어디에 있는가 
삶의 어느 갈피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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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사도: A DEVIL'S CHAPLAIN>

부제: 도킨스가 들려주는 종교, 철학 그리고 과학이야기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2005년, 바다출판사.

 

 

 

진리의 애호자를 자처하는 리처드 도킨스의 사유의 궤적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는 책, <악마의 사도>. 리처드 도킨스가 25년 동안 여러 매체에 기고하면서 논쟁을 불러온 글들의 모음집으로서 지적 에세이의 정수라고 할 만하다. 자서전적인 성격이 강한 이 책에서 도킨스는 정곡을 찌르는 신랄한 유머로 에세이스트로서의 진면목을, 까댐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의 세계관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더라도, 책을 읽고 있다 보면 시니컬한 문체와 견고한 사유의 힘으로 구축된 논리적 사고가 주는 명쾌한 매력에 빠져 부화뇌동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악마의 사도>에는 잘 제어된 분노와 절망으로 치닫지 않는 슬픔과 활력 넘치는 기쁨의 원천인 과학이 있다. 그 글들 속에 인간 리처드 도킨스가 있다. 그리고 그가 어떤 것들을 못 견뎌하는지가 좀 보인다. 진리를 가장하는 온갖 거짓 담론들이 그의 공격 대상이다. 공정한 진리를 옹호하는 이 전투적인 과학자에게 참과 거짓을 가르는 이런 싸움은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도 보인다. 미온적이고 어정쩡한 태도를 정당화하는 이중기준은 있을 수 없다.

 

 

도킨스는 절대적인 과학적 진리는 없으며, 단지 각자 자기 신념에 따라 자기 나름의 진리를 옹호할 뿐이라는 문화 상대주의자들을 겨냥해 지적 횡설수설을 일삼는 현학자들이라고 비난하는데, 예컨대 태양이 지구보다 뜨겁다는 것은 진리의 근사치도 아니고, 가설로서 반증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다른 사회로 갔을 때 부인될 수 있는 국지적인 진리도 아니라고 말한다. 설령 눈으로 볼 수 없어도 DNA가 이중나선을 이루고 있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며, 인간과 침팬지의 조상을 추적해가다보면 공통 조상과 만나게 된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배심원단의 재판, 뉴에이지 신비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사이비 과학자들, 믿음으로 진리를 내세우는 종교인들. 종교를 거론하지 않는 것은 거의 불문율에 가까운데, 도킨스는 유독 종교의 해악에 민감하다. <이기적 유전자>에서도 밈을 설명할 때, 도킨스는 맹신을 영속화하는 종교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인간은 아프리카 유인원이다. 긴팔 원숭이,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과 같은 분류군이다. 도킨스는 인간의 아이 한 명의 생명이 전 세계에 있는 모든 고릴라들의 생명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생명을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중간 존재가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먼 친척 관계인 침팬지와 인간 사이에도 중간 존재가 있어야 하지만, 어느 시기에 이 중간 존재가 우연히 사라져 버렸다. 중간 존재, 고리 종(ring species)을 잃어버린 것에 불과한데, 많은 인간들은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도킨스는 인간이 침팬지에 비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면서, 현대 사회의 도덕적 토대가 거의 불연속적인 정신이 지배하는 종 중심주의적인 가치관에 있기 때문에, 어딘가에서 중간 존재인, 우연히 잃어버린 고리 종이 나타나기만 한다면 지금껏 우리가 떠받든 온갖 규범과 도덕 체계는 무너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인간이라는 종에게 특권을 주는 우리의 이중 기준이, 인간 중심적인 사고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다. 인간과 침팬지는 단절되어 있지 않고 진화라는 연속적인 사슬로 연결되어 있다.

 

 

과학과 윤리학의 관계에 대한 도킨스의 입장. 도킨스는 개인과 사회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라고 잘라 말한다. 구체적인 사실들을 나열하며 이렇게 꾸역꾸역 적어보자.

 

 

“과학은 무엇이 윤리적인지 판단할 방법을 전혀 지니고 있지 않다. 그것은 개인과 사회가 판단할 문제이다. 하지만 과학이 제기되는 질문들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으며, 판단을 흐리는 오해들을 말끔히 제거할 수 있다. 이것은 ‘당신은 양쪽을 다 택할 수는 없다’같은 유용한 논리와 거의 같다. ‘과학과 윤리학이라는 말을 더 독특하게 해석해보기로 하자. 과학은 낙태가 잘못된 것인지 여부를 말할 수 없지만, 지각 능력이 없는 태아와 지각 능력이 있는 어른을 단절 없이 하나로 잇는 (발생학적) 연속성이 인간과 다른 종을 하나로 잇는 (진화적) 연속성과 비슷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는 있다. 발생학적 연속성이 더 단절이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면, 그것은 오로지 진화적 연속성이 멸종 사건들 때문에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윤리학의 근본 원리들은 우발적인 멸종 사건들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서 과학은 낙태가 살인인지 여부를 말할 수 없지만, 낙태를 살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침팬지를 죽이는 것은 살생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당신에게 일관성이 없다고 경고할 수는 있다. 당신은 양쪽을 다 택할 수는 없다. 과학은 인간을 통째로 복제하는 것이 잘못인지 여부를 말해줄 수 없다. 하지만 복제 양 돌리 같은 클론이 비록 나이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일란성 쌍둥이나 다름없다고 말해줄 수는 있다. 과학은 당신이 인간 복제에 반대하고 싶다면,‘클론은 완전한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다’라거나 ‘클론은 영혼을 지니지 않을 것이다’같은 주장들에 호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 줄 수 있다. 과학은 누군가가 영혼을 지니고 있는지 여부를 말할 수 없지만 평범한 일란성 쌍둥이가 영혼을 갖고 있다면 돌리 같은 클론도 마찬가지라고 말해 줄 수는 있다. 당신은 양쪽을 다 택할 수는 없다. 과학은 '여분의 장기'를 위해 줄기세포를 복제하는 것이 잘못된 일인지 여부를 말해줄 수 없다. 하지만 과학은 줄기세포 복제가 오랫동안 받아들여져온 조직 배양과 도덕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보라고 당신에게 도전장을 던질 수는 있다. 조직배양은 수십 년 동안 암 연구의 버팀목이 되어왔다.(중략) 나는 아주 색다른 접근법을 통해 과학과 윤리학의 문제를 결론 내리고 싶다. 과학적 진리 자체를 윤리적으로 다루는 방법이다. 나는 때로는 객관적인 진리가 현재 명예 훼손에 대처하는 법규들이 개인에게 부여하는 것과 똑같은 종류의 보호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중략) 나는 명예 훼손이라는 개념을 특정한 개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지라도 진리 자체에 해를 끼치는 거짓말까지 포함되도록 확장하고 싶었다.“ pp 71-77.

 

 

과학과 종교의 수렴 가능성에 대하여.

 

 

과학은 사실의 언어를, 종교는 가치의 언어를 쓴다. 이 경계는 명확한 것이라고 도킨스가 말할까? 도킨스는 종교가 과학이 누려야 할 영예를 가로챈다고 욕한다. 
 

  

“체계를 갖춘 종교가 노골적인 적대감의 대상이 되어 마땅한 이유는 러셀의 찻주전자를 믿는 것과 달리, 종교가 강력하고, 영향력을 발휘하고, 세금을 공제받으며, 아직 어려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체계적으로 주입된다는 점 때문이다.”p.220 

 

 

“현대의 유신론자들은 바알과 금송아지, 토르와 우탄, 포세이돈과 아폴로, 미트라와 아몬 라 이야기가 나오면 자신들이 사실상 무신론자가 된다는 것을 인정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류가 지금까지 믿었던 신들 중에서 대다수에 대해서 모두 무신론자이다. 몇몇은 더 나아가 하나의 신에 대해서만 유신론자이기도 하다. 아무튼 종교와 과학이 각각 교도권을 지닌다는 믿음은 부정직한 것이다. 그것은 분석하면 과학적 주장이 드러나는 세계에 관한 주장들을 종교가 여전히 펼치고 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앞에서 무너진다. 게다가 종교 변증론자들은 꿩 먹고 알 먹는 식으로 양쪽을 다 가지려 한다. 그들은 지식인들에게 이야기할 때에는 과학이라는 잔디밭에  발을 딛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피해서 별도의 난공불락의 종교적 교도권 속에 안전하게 머문다. 하지만 지식인이 아닌 대중에게 이야기를 할때는 기적 이야기를 마음껏 활용한다. 그 이야기들은 과학의 영역을 주제넘게 침입한다.(중략)훌륭한 전도사가 둘 다 갖겠다는 욕망을 품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놀라운 점은 자유주의 불가지론자들이 거기에 쉽게 영합해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아주 단순하고 둔감한 극단주의자로 간주해 비난하는 만용을 쉽게 부리게 된다는 것이다.(중략) 정직한 재판관이 볼 때, 이른바 종교와 과학의 수렴이라는 것은 얕고, 공허하며, 겉치레이며, 그럴듯한 옹호로만 늘어놓는 사기이다.”pp 280-282.

 

 

 

"우리는 과학이 발견하고 있듯이 우주에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양자 불확정성, 블랙홀, 빅뱅, 팽창 우주, 지질학적 시간에 걸친 대단히 느린 움직임, 이 모든 것들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이 과학을 두려워하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과학은 이런 것들이 왜 이해하기 어려운지, 왜 그 노력이 우리를 두렵게 하는지까지도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벼락 출세한 유인원이며, 우리의 뇌는 석기 시대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살아남는 법을 세세하게 이해하도록 설계되어 있을 뿐이다.” p.93. 
 

 

 

도킨스와 유전자 결정론

 

 

도킨스는 ‘유전자는 우리가 아니다’라는 장에서“유전자 결정론이라는 도깨비는 매장시킬 필요가 있다, 소위 ‘게이 유전자’의 발견은 그것을 매장하기에 딱 좋은 기회를 준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자신은 유전자 결정론자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는 셈이고, 도킨스에게 유전자 결정론자라고 말하는 것은 욕을 하는 것과 같다. DNA의 성립 메커니즘을 청사진과 요리법이라는 쉬운 비유를 통해 풀이하는데, 유전자의 행동은 일대응 대응이 가능한 청사진 같기도 하고, 일대일 대응 관계가 성립이 안 되는 요리법 같기도 하다고. 예컨대 DNA가 형성되는 초기의 어떤 단계까지는 청사진처럼 일대일 대응 관계가 있어 결정론적으로 보이나, 몸과 심리적 성향이 발달하는 단계에서부터는 일대일 대응 관계가 거의 없기 때문에 몸과 행동에 미치는 최종 영향은 규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종교를 주입받는 것과 같은 외부적 환경에서 더 되돌리기가 어려운 결정론적 요인들이 많다고 한다. 

 

 

”당신이 동성애자를 싫어하거나 사랑한다면, 당신이 그들을 감금하거나 ‘치료하고’싶다면, 유전자와 아무 관련이 없는 이유를 대는 편이 더 낫다.“ “유전자는 결코 결정론을 독점하고 있지 않다” 도킨스에게 유전자 결정론자라는 낙인을 찍는 것은 스스로의 무지를 들추어내는 행위가 된다.  <이기적 유전자> 달랑 하나 읽고 도킨스를 유전자 결정론자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 부분에서 소스라치게 놀라는 척을 하며 급수정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나는 과학자로서 다윈주의를 지지하지만, 다윈주의를 정치나 인간사를 처리하는 문제에 접목시키려 할 때에는 열렬한 반다윈주의자가 된다.”다윈의 이론을 정치적으로 악용했던 나치즘, 다윈주의를 사회 이론으로 적용하는 학자들과 종차별주의자들, 인종차별주의 정책을 펴는 정치 세력들에 대해 진화론자로서 열렬히 반대한다는 뜻일 게다.

 

  

교육자로서의 도킨스

 

 

'위험을 무릅쓰며 사는 삶의 기쁨을 살라고 촉구'했던 교육자 샌더슨을 추모하는 글은 안락한 삶을 욕망하는 소심한 현대인들에게 자극이 된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애쓰는 것보다는 협력을 더 중요한 삶의 가치로 여기고, 성적이 좋은 학생들에게 치중해서 명성을 얻으려는 생각 따위는 없었으며, 교육의 동기가 경쟁과 소유욕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 교육자, 샌더슨. 진리를 추구하는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을 강조한 그의 목표는 학생들에게 자아를 실현할 자유를 주는 것이었다. 평생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아온 도킨스는 교육에 헌신한 샌더슨의 삶과 이야기를 회고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사리분별이 정확한 이성주의자의 감상, 그리고 이어지는 도킨스의 선동적인 외침.

 

 

“성적 순위 통계 자료, 단편적인 사실로만 가득 채워진 학습 요강, 끝없이 이어지는 시험을 타도하라.”

 

 

"...무정부적, 혁명적, 정력적, 악마적, 디오니소스적, 열정의 타오르는 불꽃으로 가득하고, 창조하려는 엄청난 충동으로 넘치는 삶, 그것이 바로 성장과 행복을 위해 안전과 행복의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의 삶이다.  

 


안전과 행복은 따뜻하고 편안한 상태에서 살면서 쉬운 해답과 값싼 위안에 만족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내 성숙한 악마의 사도가 충동질하는 악마적인 삶은 위험한 것이다. 당신은 위안을 주는 환상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 당신은 영원한 생명이라는 믿음의 고무젖꼭지를 더 이상 빨고 있을 수 없다. 그 위험에 맞서려면 ‘성장과 행복’을 얻을 각오를 해야 한다. 당신이 성장해서, 존재가 무슨 의미인지 대면함으로써, 그것이 덧없는 것이며 그렇기에 더더욱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면함으로써 알게 되는 기쁨과 말이다." p.32-33. 
 

 

믿음과 전통과 권위에 의존하지 않는 대담한 발상, 증거를 토대로 한 과학적 탐구 행위에 대한 깊은 신뢰가 이 책 전체를 관통해서 깔려 있다. 과학적 사고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는 과학자의 견고한 사유가 주는 아름다움. 그러나 이 지성과 의사소통의 완벽한 일치에서 오는 희열을 만끽했다고 하면 과장이겠다. 인간에게 드리워져 있는 일체의 신비와 환상을 제거하고 무화시켜버리는 도킨스의 과학적 사고에 감탄을 하면서도, 그 냉소적 우월감이 드러난 문장들을 유쾌하게 즐기다가도 내 변덕스러운 기질에서 기인한 어떤 이중적인 감정의 기제가 작동되는 바람에 반발심 또한 함께 들었다고 표현해야 맞을 거다. 그래서 하는 말. Mr.도킨스, 과학적 증거에 입각한 논증만이 진리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이던가요?  
 

  

이건 좀 다른 맥락. 

 

 

어떤 개인의 특정한 주장을 담은 과학적인 가설이 과학적 진리로 판명되기까지의 과정에는 엄격한 학문적인 기준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 기준을 가지고 있는 주류 담론을 생산하는 학자나 집단에서 한 개인의 가설을 과학적 진리로 수용하는 단계에서 가치있는 평가를 내리지 않았을 때, 그리하여 그 가설이 과학적 진리의 목록들에서 제외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면, 새로운 과학적 진리의 발견이란 것도 시간차를 두고 뒤늦게 서서히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되는 것일까,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게 마련이라는 말처럼. 진실에 관한 이 낡고 진부한 수사의 진실성은 별 의심없이 고스란히 믿어도 좋을 만큼 진실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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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 >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2006, 을유문화사 

 

 

나는 누구인가. 희랍의 오이디푸스는 제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고심 끝에 길을 떠났었다. 그를 사로잡은 것은 자기 정체성, 자기 존재에 대한 의문이었다. 인간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떠한 이유로 영원히 살지 못하는가.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런 관념적인 문제들을 철저히 생물학적 관점에서 논증한다. 이 심오한 질문에 이치에 맞게 답을 한 사람이 바로 다윈이었다며 책의 첫머리를 연다. 자연계에 엄연히 존재하는 객관적 사실들에 대한 인식을 통해 인간 행동의 기저에 깔린 본능 작동의 메커니즘도 이해할 수 있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도킨스의 사유가 나오기 전까지 진화, 자연 선택의 단위는 개체이거나, 그룹, 아니면 종이었다. 도킨스는 자연 선택의 단위, 이기성의 단위가 유전자라고 선언한다. 그는 생물은 종이나 집단, 개체의 이익을 위하여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최근 인종차별주의나 애국심에 반대하여 동지 의식의 대상을 인류의 종 전체로 대치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처럼 이타주의의 대상을 확장하는 인도주의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결과를 알 수 있다. 즉 진화에 있어서 ‘종의 이익론’을 지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보통 종의 윤리를 가장 확신하고 있는 이 정치적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타주의를 확장하여 다른 종까지 포함시키려고 하는 사람을 매우 경멸하는 것을 자주 본다. 만약 저자가 사람들의 주택 사정을 개선하는 일보다 대형 고래류의 살육 방지에 더 관심이 갖고 있다고 말한다면 몇몇 친구들은 충격을 받을 것이다.” 

 

“아메바보다도 인간적 감정이 없는 태아는 성숙한 침팬지보다 경의와 법적 보호를 받고 있다. 태아는 우리 종에 속하기 때문에 특혜와 특권이 부여되는 것이다”34쪽. 
 


"어떤 수준의 이타주의가 바람직한가? 가족인가, 국가인가, 인종인가, 종인가, 아니면 전체 생물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윤리의 혼란은 진화론적인 면에서 볼 때 어느 수준에서의 이타주의를 기대할 수 있는가라는 생물학에서의 문제와 혼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35쪽.

 

 

진화의 초점은 개개의 생물체가 아닌 유전자에 맞추어져 있다. 유전자가 진화의 주체이자 주인이다.  

 

 

자기 복제자, DNA 기원 

 

 

40억 년 전, 원시 대양에서 태양 에너지를 받은 화학물질인 분자가 떠돌다가 우연히 자기 복제물을 만들게 되는데, 이 최초의 자기 복제자들의 자손이 현재의 DNA 분자이다. 자기 복제를 할 줄 아는 화학 물질인 DNA가 장구한 세월 동안 오류를 반복하면서 선조는 같으나 형태를 달리한 변종의 자기 복제자들이 만들어지고, 장수하는 자기 복제자가 다시 그 수를 늘리면서, 그 분자의 개체군은 점점 더 오래 살아남는 쪽으로 진화한다. 이 과정에서 다산성, 복제의 속도, 복제의 정확도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자기 복제자의 변종 사이에서도 생존 경쟁이 벌어진다. 자기 복제자끼리의 생존 경쟁 틈에서 살아남은 자기 복제자는 단백질로 벽을 만들어 자신을 방어하고, 더 잘 생존하기 위해 운반체까지 만들기 시작한다. 급기야 근육, 심장, 눈, 그리고 두뇌까지 만듦으로써 생존 기술의 명수가 된다. 

 

 

자연 선택이란 각각의 실체의 생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자연 선택의 단위는 진화상으로 의미 있는 기간 동안 생존할 수 있는 잠재적인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유전자처럼 작은 단위는 이런 특성을 갖고 있지만, 개체나 집단은 수명이 짧고 하늘의 구름처럼 일시적인 집합에 불과해 안정성과 단위성이 없다. 오직 유전자만이 파괴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복제를 거듭한다. 유전자가 자연 선택의 단위가 되는 것은 잠재적인 불멸성 때문이다. 유전자는 선견 능력이 없이 그저 있을 뿐이지만, 유전자의 진정한 목적이 개체의 생존과 번식이기 때문에 자신이 타고 있는 도구인 개체가 자신의 생존에 지장을 준다 싶으면 다른 몸으로 갈아탄다. 유전자는 유전자 자체를 유지하려는 목적 때문에 이기적이며, 생물의 몸을 빌려 현재에 이르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에게 인간이란 “이기적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을 짜 넣은 로봇 기계”이다. 

 

 

문화를 향유하는 인간은 생물학적인 존재이면서 문화적 존재이기도 한데, 인간이 이기적인 유전자나 운반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면, 인류가 축적한 문화를 두고는 어떤 식의 논리를 구사하여 설명할 수 있을까. 생물학적 유전자 논리를 끝까지 철두철미하게 관철시킬 것인가. 도킨스는 인간이 특수한 존재라는 것에 동의한다.

 

 

“우리가 속하는 인간이라는 종을 특이한 존재로 보는 타당한 근거가 있는 것일까? 나는 그와 같은 근거가 확실히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인간에 관한 특이성은‘문화’라고 하는 하나의 말로 요약된다. 문화적 전달은 유전적 전달과 유사하다.”304쪽 

 

 

흥미롭게도 도킨스는 인간 존재의 특이성을 설명하기 위해 여기서 생물학적인 유전자, gene에 대응하여, 문화적 유전자인 밈(meme)이라는 과학 용어를 독창적으로 창조한다. 새롭게 유전자 용어를 만들어 유전자 논리를 이어간다. 

 

 

“밈은 비유로서가 아닌 엄밀한 의미에서 살아 있는 구조로 간주해야 한다. 당신이 내 머리에 번식력이 있는 밈을 심어 놓는다는 것은 문자대로 당신이 내 뇌에 기생한다고 하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의 유전 기구에 기생하는 것과 유사한 방법으로 나의 뇌는 그 밈의 번식용의 운반체가 되어 버린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예컨대,‘사후에 생명이 있다는 믿음’이라는 밈은 신경계의 하나의 구조로서 수백만 번 전 세계 사람들 속에 육체적으로 실현되고 있지 않은가.“ 309쪽

 

 

문화의 진화를 뜻하는 밈. 도킨스는 인간의 정신도 유전자의 자기 복제처럼 뇌에서 뇌로 번식하고 생존을 유지한다며, 문화 또한 모방을 통해 복제와 변이와 도태를 겪는다고 설명한다. 모방은 밈의 자기 복제를 가능하게 하는 수단. 밈은 뇌에서 뇌로 모방을 학습하면서 자기 복제를 거듭하기 때문에 생물학적 유전자 진화보다 전파 속도가 빠르다. 곡조, 사상, 의복의 양식, 문화의 전승, 특정한 종교를 맹신하는 것도 밈이다. 다윈의 진화론도, 유전자가 이기적 속성을 갖고 있다는 이 책의 가설 또한 밈이다. 

 

 

유전자의 보편적인 특성 중에서 이타주의는 열세이고 이기주의는 우세하다. 유전자는 유전자 풀 내에서 생존 중에 대립 유전자와 다음 세대의 자리를 놓고 경쟁한다. 도킨스는 이타주의는 이기주의가 살아남기 위해 모양만 바꾸었을 뿐, 순수하고 사욕이 없는 이타주의는 자연계에서 존재한 예가 없다고 단언한다. 경계음을 내어 동족을 보호하려는 새, 꿀을 지키기 위해 침을 쏘고 자살하는 벌의 이타적인 행위, 새끼에 대한 어미의 지극한 사랑과 헌신도 후대에 그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행동의 발로. 자식에게 50퍼센트의 유전자를 주었기 때문에 어미가 자식을 보호하려고 한다는 논리. 서로의 깃털에서 진드기를 제거하는 새들은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하고 있다. 도움을 받은 새가 도움을 준 새에게 도움을 주어야 공평하지만, 도움받은 새는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쓰지 않고 이익만 얻고 도망칠 수 있다. 양쪽이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새들은 진드기에 뒤덮혀 있게 된다. 

 

 

배신과 협력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개체들. 자연이 인간에게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설정하였을 때, 가장 이익이 되는 행동은 서로 나누고 협력했을 때라는 낙관적인 결론이 도출되지만, 현실에서의 인간은 배신하고 싶은 유혹과 협력을 통한 보상의 크기를 재며, 마음씨 좋은 선택을 내리기를 주저한다. 보복은 당하면 갚는다는 전략적 행동에서 기인한다. 어쩌면 삶은 이기적인 개체에게 타인의 이기적인 행위를 어디까지 관대하게 포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선택과 결정을 내리도록 강요하고, 이기적인 개체 스스로를 끊임 없이 시험대에 올려놓는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의 연속과 같은 것인지도. 제 자신의 필요가 있을 때마다 접근해서 도움을 받아놓고는, 막상 도움을 준 개체가 비슷한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한다 싶을 때엔 언제 그랬냐는 듯 자리를 회피하는 개체들의 이기적인 속성. 건부 전략은 이러한 이익만 얻고 도망치는 이기적인 상대를 의식해 니가 도움을 주면 나도 도움을 주겠다는 발상에서 나온다.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에서는 기대할 것이 없다고 경고하는 도킨스. 
 

 

 

그렇다면, 인류의 역사에 분명히 존재했던, 자유와 정의를 쟁취하기 위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기꺼이 자기를 희생한 사람들의 행위는 어떤 방식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인간성의 최후의 보루라고 여겨지는, 우리가 그토록 믿고 싶은 이러한 이타적인 덕목들조차 회의적인 시각으로 배격해야 하고, 자연의 질서가 인간이 믿고 싶어 하는 가치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면, 인간은 무엇으로부터 위로를 얻어야 하는가. 

 

 

도킨스는 "인간에게 진정한 이타주의의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면서 이런 사실을 강조한다. 

 

 

“우리가 비록 어두운 측면으로 눈을 돌려 개개의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우리의 의식적인 선견 능력, 즉 상상력을 통해 장래의 일을 모의 실험하는 능력에는 맹목적인 자기 복제자들이 일으키는 최악의 이기적 행동에서 우리를 구출하는 능력이 있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단순한 눈앞의 이익보다 장기적인 이기적 이익을 촉진시킬 정도의 지적 능력은 있다." (중략)  "우리는 유전자 기계로서 조립되어 밈 기계로서 교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 지구에서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들의 전제에 반항할 수 있다." 322쪽. 
 

 

인간의 상상력을 통한 변화 가능성과 지적 능력에 신뢰를 보내는 듯한 저러한 서술들은 유전자 결정론에서 한 발 물러서는 타협의 소산이 아니라 이기적 유전자의 예속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역설적인 의미로 와닿는다. 이기적 행동들이 가져올 최악의 결과를 굳이 경험해 보지 않더라도 상상력을 발휘하면 충분히 예측해볼 수 있다는 것. 문제는 상상력이고, 상상력이 부재한 집단과 상상력 빈곤에 시달리는 사회, 눈앞의 이익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개체들에게서, 하나의 가능성인 선견 능력조차 기대할 수 없을 때, 희망은 요원하다는 것.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불멸의 코일 DNA. 이기적인 유전자의 독재에 굴복하지 않는 인간의 자유 의지. 이 둘의 대립과 갈등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이자 진화의 원동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 동물들의 사례를 통해 인간이라는 모순된 존재의 사회적 행동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되는가를 지켜보는 재미. 인간에 대한 우호적인 관점이 배제되어 있는 이 책은 도덕성과는 상관이 없이 사물이 어떻게 진화되어왔는가를 밝힐 뿐이지만, 아이러니하게 과학의 사회적 책임이 어디까지인가를 놓고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촉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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