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 >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2006, 을유문화사
나는 누구인가. 희랍의 오이디푸스는 제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고심 끝에 길을 떠났었다. 그를 사로잡은 것은 자기 정체성, 자기 존재에 대한 의문이었다. 인간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떠한 이유로 영원히 살지 못하는가.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런 관념적인 문제들을 철저히 생물학적 관점에서 논증한다. 이 심오한 질문에 이치에 맞게 답을 한 사람이 바로 다윈이었다며 책의 첫머리를 연다. 자연계에 엄연히 존재하는 객관적 사실들에 대한 인식을 통해 인간 행동의 기저에 깔린 본능 작동의 메커니즘도 이해할 수 있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도킨스의 사유가 나오기 전까지 진화, 자연 선택의 단위는 개체이거나, 그룹, 아니면 종이었다. 도킨스는 자연 선택의 단위, 이기성의 단위가 유전자라고 선언한다. 그는 생물은 종이나 집단, 개체의 이익을 위하여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최근 인종차별주의나 애국심에 반대하여 동지 의식의 대상을 인류의 종 전체로 대치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처럼 이타주의의 대상을 확장하는 인도주의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결과를 알 수 있다. 즉 진화에 있어서 ‘종의 이익론’을 지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보통 종의 윤리를 가장 확신하고 있는 이 정치적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타주의를 확장하여 다른 종까지 포함시키려고 하는 사람을 매우 경멸하는 것을 자주 본다. 만약 저자가 사람들의 주택 사정을 개선하는 일보다 대형 고래류의 살육 방지에 더 관심이 갖고 있다고 말한다면 몇몇 친구들은 충격을 받을 것이다.”
“아메바보다도 인간적 감정이 없는 태아는 성숙한 침팬지보다 경의와 법적 보호를 받고 있다. 태아는 우리 종에 속하기 때문에 특혜와 특권이 부여되는 것이다”34쪽.
"어떤 수준의 이타주의가 바람직한가? 가족인가, 국가인가, 인종인가, 종인가, 아니면 전체 생물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윤리의 혼란은 진화론적인 면에서 볼 때 어느 수준에서의 이타주의를 기대할 수 있는가라는 생물학에서의 문제와 혼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35쪽.
진화의 초점은 개개의 생물체가 아닌 유전자에 맞추어져 있다. 유전자가 진화의 주체이자 주인이다.
자기 복제자, DNA 기원
40억 년 전, 원시 대양에서 태양 에너지를 받은 화학물질인 분자가 떠돌다가 우연히 자기 복제물을 만들게 되는데, 이 최초의 자기 복제자들의 자손이 현재의 DNA 분자이다. 자기 복제를 할 줄 아는 화학 물질인 DNA가 장구한 세월 동안 오류를 반복하면서 선조는 같으나 형태를 달리한 변종의 자기 복제자들이 만들어지고, 장수하는 자기 복제자가 다시 그 수를 늘리면서, 그 분자의 개체군은 점점 더 오래 살아남는 쪽으로 진화한다. 이 과정에서 다산성, 복제의 속도, 복제의 정확도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자기 복제자의 변종 사이에서도 생존 경쟁이 벌어진다. 자기 복제자끼리의 생존 경쟁 틈에서 살아남은 자기 복제자는 단백질로 벽을 만들어 자신을 방어하고, 더 잘 생존하기 위해 운반체까지 만들기 시작한다. 급기야 근육, 심장, 눈, 그리고 두뇌까지 만듦으로써 생존 기술의 명수가 된다.
자연 선택이란 각각의 실체의 생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자연 선택의 단위는 진화상으로 의미 있는 기간 동안 생존할 수 있는 잠재적인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유전자처럼 작은 단위는 이런 특성을 갖고 있지만, 개체나 집단은 수명이 짧고 하늘의 구름처럼 일시적인 집합에 불과해 안정성과 단위성이 없다. 오직 유전자만이 파괴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복제를 거듭한다. 유전자가 자연 선택의 단위가 되는 것은 잠재적인 불멸성 때문이다. 유전자는 선견 능력이 없이 그저 있을 뿐이지만, 유전자의 진정한 목적이 개체의 생존과 번식이기 때문에 자신이 타고 있는 도구인 개체가 자신의 생존에 지장을 준다 싶으면 다른 몸으로 갈아탄다. 유전자는 유전자 자체를 유지하려는 목적 때문에 이기적이며, 생물의 몸을 빌려 현재에 이르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에게 인간이란 “이기적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을 짜 넣은 로봇 기계”이다.
문화를 향유하는 인간은 생물학적인 존재이면서 문화적 존재이기도 한데, 인간이 이기적인 유전자나 운반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면, 인류가 축적한 문화를 두고는 어떤 식의 논리를 구사하여 설명할 수 있을까. 생물학적 유전자 논리를 끝까지 철두철미하게 관철시킬 것인가. 도킨스는 인간이 특수한 존재라는 것에 동의한다.
“우리가 속하는 인간이라는 종을 특이한 존재로 보는 타당한 근거가 있는 것일까? 나는 그와 같은 근거가 확실히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인간에 관한 특이성은‘문화’라고 하는 하나의 말로 요약된다. 문화적 전달은 유전적 전달과 유사하다.”304쪽
흥미롭게도 도킨스는 인간 존재의 특이성을 설명하기 위해 여기서 생물학적인 유전자, gene에 대응하여, 문화적 유전자인 밈(meme)이라는 과학 용어를 독창적으로 창조한다. 새롭게 유전자 용어를 만들어 유전자 논리를 이어간다.
“밈은 비유로서가 아닌 엄밀한 의미에서 살아 있는 구조로 간주해야 한다. 당신이 내 머리에 번식력이 있는 밈을 심어 놓는다는 것은 문자대로 당신이 내 뇌에 기생한다고 하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의 유전 기구에 기생하는 것과 유사한 방법으로 나의 뇌는 그 밈의 번식용의 운반체가 되어 버린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예컨대,‘사후에 생명이 있다는 믿음’이라는 밈은 신경계의 하나의 구조로서 수백만 번 전 세계 사람들 속에 육체적으로 실현되고 있지 않은가.“ 309쪽
문화의 진화를 뜻하는 밈. 도킨스는 인간의 정신도 유전자의 자기 복제처럼 뇌에서 뇌로 번식하고 생존을 유지한다며, 문화 또한 모방을 통해 복제와 변이와 도태를 겪는다고 설명한다. 모방은 밈의 자기 복제를 가능하게 하는 수단. 밈은 뇌에서 뇌로 모방을 학습하면서 자기 복제를 거듭하기 때문에 생물학적 유전자 진화보다 전파 속도가 빠르다. 곡조, 사상, 의복의 양식, 문화의 전승, 특정한 종교를 맹신하는 것도 밈이다. 다윈의 진화론도, 유전자가 이기적 속성을 갖고 있다는 이 책의 가설 또한 밈이다.
유전자의 보편적인 특성 중에서 이타주의는 열세이고 이기주의는 우세하다. 유전자는 유전자 풀 내에서 생존 중에 대립 유전자와 다음 세대의 자리를 놓고 경쟁한다. 도킨스는 이타주의는 이기주의가 살아남기 위해 모양만 바꾸었을 뿐, 순수하고 사욕이 없는 이타주의는 자연계에서 존재한 예가 없다고 단언한다. 경계음을 내어 동족을 보호하려는 새, 꿀을 지키기 위해 침을 쏘고 자살하는 벌의 이타적인 행위, 새끼에 대한 어미의 지극한 사랑과 헌신도 후대에 그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행동의 발로. 자식에게 50퍼센트의 유전자를 주었기 때문에 어미가 자식을 보호하려고 한다는 논리. 서로의 깃털에서 진드기를 제거하는 새들은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하고 있다. 도움을 받은 새가 도움을 준 새에게 도움을 주어야 공평하지만, 도움받은 새는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쓰지 않고 이익만 얻고 도망칠 수 있다. 양쪽이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새들은 진드기에 뒤덮혀 있게 된다.
배신과 협력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개체들. 자연이 인간에게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설정하였을 때, 가장 이익이 되는 행동은 서로 나누고 협력했을 때라는 낙관적인 결론이 도출되지만, 현실에서의 인간은 배신하고 싶은 유혹과 협력을 통한 보상의 크기를 재며, 마음씨 좋은 선택을 내리기를 주저한다. 보복은 당하면 갚는다는 전략적 행동에서 기인한다. 어쩌면 삶은 이기적인 개체에게 타인의 이기적인 행위를 어디까지 관대하게 포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선택과 결정을 내리도록 강요하고, 이기적인 개체 스스로를 끊임 없이 시험대에 올려놓는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의 연속과 같은 것인지도. 제 자신의 필요가 있을 때마다 접근해서 도움을 받아놓고는, 막상 도움을 준 개체가 비슷한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한다 싶을 때엔 언제 그랬냐는 듯 자리를 회피하는 개체들의 이기적인 속성. 조건부 전략은 이러한 이익만 얻고 도망치는 이기적인 상대를 의식해 니가 도움을 주면 나도 도움을 주겠다는 발상에서 나온다.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에서는 기대할 것이 없다고 경고하는 도킨스.
그렇다면, 인류의 역사에 분명히 존재했던, 자유와 정의를 쟁취하기 위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기꺼이 자기를 희생한 사람들의 행위는 어떤 방식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인간성의 최후의 보루라고 여겨지는, 우리가 그토록 믿고 싶은 이러한 이타적인 덕목들조차 회의적인 시각으로 배격해야 하고, 자연의 질서가 인간이 믿고 싶어 하는 가치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면, 인간은 무엇으로부터 위로를 얻어야 하는가.
도킨스는 "인간에게 진정한 이타주의의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면서 이런 사실을 강조한다.
“우리가 비록 어두운 측면으로 눈을 돌려 개개의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우리의 의식적인 선견 능력, 즉 상상력을 통해 장래의 일을 모의 실험하는 능력에는 맹목적인 자기 복제자들이 일으키는 최악의 이기적 행동에서 우리를 구출하는 능력이 있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단순한 눈앞의 이익보다 장기적인 이기적 이익을 촉진시킬 정도의 지적 능력은 있다." (중략) "우리는 유전자 기계로서 조립되어 밈 기계로서 교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 지구에서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들의 전제에 반항할 수 있다." 322쪽.
인간의 상상력을 통한 변화 가능성과 지적 능력에 신뢰를 보내는 듯한 저러한 서술들은 유전자 결정론에서 한 발 물러서는 타협의 소산이 아니라 이기적 유전자의 예속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역설적인 의미로 와닿는다. 이기적 행동들이 가져올 최악의 결과를 굳이 경험해 보지 않더라도 상상력을 발휘하면 충분히 예측해볼 수 있다는 것. 문제는 상상력이고, 상상력이 부재한 집단과 상상력 빈곤에 시달리는 사회, 눈앞의 이익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개체들에게서, 하나의 가능성인 선견 능력조차 기대할 수 없을 때, 희망은 요원하다는 것.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불멸의 코일 DNA. 이기적인 유전자의 독재에 굴복하지 않는 인간의 자유 의지. 이 둘의 대립과 갈등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이자 진화의 원동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 동물들의 사례를 통해 인간이라는 모순된 존재의 사회적 행동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되는가를 지켜보는 재미. 인간에 대한 우호적인 관점이 배제되어 있는 이 책은 도덕성과는 상관이 없이 사물이 어떻게 진화되어왔는가를 밝힐 뿐이지만, 아이러니하게 과학의 사회적 책임이 어디까지인가를 놓고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촉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