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눈먼 시계공 : The Blind Watchmaker >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용철 옮김, 2004, 사이언스북스.
내게는 그저 탁 트인 광대한 여백일 뿐인, 무심한 하늘을 배경으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의 우아한 비행이 펼쳐지고 있다. 느리고 완만한 곡선을 그리다가 소실점 끝으로부터 멀어지는 역동성을 갖춘 한 생물이 일으키는 대낮의 작은 소요. 생존을 건 사투로서의 비행. 차가운 대기를 뚫고 솟구쳐 날아오르다 유유히 시야 밖으로 사라져가는 새가 남긴 긴 여운은 혹독한 환경에서 삶을 영위해 가는 이 땅의 무수한 생명들의 짧은 생애에 대해 되돌아보게 한다. 중력의 법칙에서 제외라도 되는 것인 양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저 새의 도도한 날개짓.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착지 동작의 유연함과 균형. 어떤 오묘한 자연의 법칙이 있기에 새들은 저토록 가뿐하고 날쌘 동작으로 하늘과 땅을 왕래할 수 있는 것일까. 정교한 메커니즘으로 구성된 지구상의 다양한 생명체들. 그들이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까닭은 무엇이며 인간과 생명의 기원에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사고체계가 있다면, 그 세계관은 어떠한 근거를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1986년에 출판된 <눈먼 시계공>은 진화론에 대한 무지와 오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돋보이는 리처드 도킨스의 역작이다. 설명이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해내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는 도킨스는 진화론이라는 과학적 추론을 통해 생명의 본질과 기원에 관한 질문들에 답한다. 그는 인간은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며, 기적과도 같은 우연의 작용과 점진적이고 누적적인 자연 선택이 있기 때문에 인류가 오늘날까지 올 수 있었다고 명료하게 말한다. 과학적 세계관과 종교적 세계관이 격돌하는 생생한 현장, <눈먼 시계공>.
시계라는 복잡한 물건이 제 스스로 발생할 수 없듯이, 시계보다도 더 복잡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을 만든 제작자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추리했던 신학자 윌리엄 페일리. 생명의 복잡성에 천착했던 페일리는 의도와 목적을 갖고 있는 시계공인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을 창조했기 때문에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논증했지만, 도킨스는 창조론에서 말하는 시계공은 눈이 멀었다고 비꼰다. 시계공은 없다. 만약 시계공이 있다면, 그 시계공은 누적적인 자연선택을 의미한다.
맹목적인 자연선택에 의해 단세포 생물에서 인간이라는 복잡한 생명체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비행기 야적장에 흩어져 있는 비행기 부품들이 바람에 휩쓸려 날리다가 보잉 747이 만들어질 확률과 맞먹는다며 진화론을 강력하게 부정하는 반대자들에게 도킨스가 어떤 근거를 내세워 창조론을 반박하는지, 그가 어떻게 진화론을 옹호하고 자신의 이론을 공식화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내용.
도킨스는 사물이 어떻게 작동되는가를 설명하는 자신의 설명 방식을 단계적 환원주의라고 말하면서 단계적 환원주의는 무턱대고 가장 작은 부분들의 총합으로 전체를 설명하려고 들지 않는다며 (환원주의적 해석 방식이라고 치부하면서 무조건 진화론을 폄하하려 드는 시각에 몹시 짜증난다는 듯) 자신의 설명 방식인 단계적 환원주의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이유를 댄다. 환원주의를 식인종처럼 여기는 지적 풍토에 대해서 한 마디 하는 것인데, 자신을 환원주의자라고 비난하는 것을 염두에 둔 반박성 발언처럼 보인다.
“복잡한 물건이란 그것이 너무나‘있을 법하지 않는’것이기 때문에 그 존재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물건을 말한다. 그것은 일회적인 우연으로는 생겨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의 생성 과정을 우연히 생겨날 정도로 충분히 단순한 최초의 물체가 점차적으로, 누적적으로, 단계적으로 더 복잡한 물건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1단계 환원주의로는 복잡한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없고, 양파 껍질 벗기기 식의 작은 단계로 나누어진 설명만이 그 복잡성을 설명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물건이 단 한 번의 단계를 거쳐 생겨났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시간 순으로 배열된 일련의 작은 단계들로 설명해야 한다.” 41쪽.
도킨스가 말한 1단계 선택이란 순수하고 단순한 우연을 나타낸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양적으로 어마어마한 무한대에 가까운 시간이 주어지면, 그 거대한 시간의 척도 안에서 생명의 단초가 시작되는 화학 작용 같은 질적인 변화가 일어났을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는데, 사실 천문학적인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미세한 변화들은 인식 능력에 한계를 갖고 있는 인간이 상상하기엔 너무나 벅찬 경이로운 세계이다. 우리의 두뇌는 보통 크기의 물체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위치가 일정하지 않은 아주 작거나 큰 입자 같은 것들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떤 시기에 생긴 기적과도 같은 우연에 의해 생명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은 인류가 이 지구에 생존하지 않을 가능성까지 내포한다. 무질서한 혼돈에서 질서가 생겨나기까지의 그 우주적인 시간들, 무에서 단번에 실재로 건너 뛰어온 그 신비의 과정을, 신화가 아닌 진화론이라는 과학적 사고에 입각하여 설명을 시도하려는 도킨스. 지구에서만 한정되게 적용되는 과학 이론이 아니라 생명의 본질을 통찰할 수 있는 우주론적 논증으로서의 자연 법칙이 존재한다면, 수십 억 년 만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한 생명의 발생이라는 특정한 사건에 깃든 우연성의 비밀을 해독하는 자가 있다면, 그 자가 홀로 누릴 지적 희열은 얼마나 강렬할 것인가.
생물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설명하기 위해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야 하는 박쥐의 예가 나온다. 야간 비행이 생활인 박쥐는 첩보용 모형 비행기처럼 정밀한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있는데, 어둠 속에서 소리를 통해 길을 찾고 먹이를 찾아야 하는 박쥐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귀를 고도로 발달시킨 것은 우리가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과 같은 차원으로 이해할 수가 있다. 박쥐가 일그러진 얼굴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초음파를 발사하여 길을 찾아야 하기 때문. 소리를 발사하고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고도로 발달한 정밀한 기관이 있어야 한다.
"박쥐가 메아리를 이용한다는 것은 생물의 기관들이 훌륭한 설계에 따라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 택할 수 있는 수천 가지 예 중 하나에 불과하다. 동물들은 마치 이론에도 통달하고 실기에서도 천재적인 물리학자나 기술자가 설계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74쪽.
<이기적 유전자>에서 도킨스가 일관되게 주장했듯이 진화의 핵심은 자연선택이다. 이 책에서 역시 강조하는 것도 유전자이다. 자연 선택되지 않는 개체는 자신의 유전자와 함께 절멸하고 만다. 도킨스는 이 절멸하는 것을 채에 걸러지는 모래로 설명하는데, 체를 필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여러 번의 체에 걸러지면서 모래의 큰 알갱이들은 점점 더 작아지고 미세해진다. 진화는 이러한 채에 거르는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과정들의 연속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선택의 단위는 유전자이고 생명의 시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복제자이다. 유전자의 형질을 결정하는 부모의 2분의 1의 유전자만이 자식에게 전해지기 때문에 자식이 부모와 비슷하게 닮았을지라도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도킨스는 생명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특성이 자기를 복제하는 성질이기 때문에 만약 우주에 어떤 생물체가 존재하고 있다면 그 생물체는 자기 복제하는 특성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유추한다. 오늘날의 DNA가 갖고 있는 고도의 기술은 수많은 세대를 거치며 누적적인 자연선택을 받은 결과로 획득한 것.
자기 복제를 할 수 있는 분자가 기적과도 같은 우연에 의해 생겨났다거나 태초의 조상이 원시 수프에 있는 박테리아였다 할지라도 모든 진화의 역사에는 유전자 공간을 통과하는 경로가 있다. 도킨스는 진화가 일어나는 이러한 유전자 공간을 실제로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컴퓨터를 이용해서 바이오모프 시뮬레이션을 만들어 실험을 한다. 이 책이 1986년에 출판되었으니 그 이전에 이미 도킨스는 컴퓨터라는 첨단 테크놀로지를 자신의 연구에 적극적으로 활용했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 기계적인 실험의 목적은 작고 단순한 사물이 어떻게 복잡한 사물로 진화하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근거이다. 진화의 점진성을 강조하기 위한 근거이면서 또한 지구에 다양한 생물체가 생겨난 배경에는 특별한 목적이 없는 자연선택, 눈먼 시계공인 진화가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도킨스가 인위적으로 단순한 모양을 지정하면 그 모양이 무작위적으로 변화를 거듭하며 그것의 자손을 얻게 된다. 도킨스의 개입. 선택에 의해 일어나는 이러한 변화에서 유사한 모양의 바이오모프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바이오모프는 스스로를 복제해 나간다. 바이오모프의 진화는 9차원이라는 수학적 공간 안에서 진행된다. 지구에서 과거에 살았거나 현재 살고 있는 동물들은 이론적으로는 유전자 공간을 통과하는 아주 적은 수의 진화 경로에서 비롯된 산물이라고 봐야 한다. 지금과 같은 정교한 눈이 되기 위해서 아주 작은 단계에서부터 시작했음을 보여주기 위해, 완벽한 눈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조금이라도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논리를 펼치는데, 예컨대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사람의 눈과 결코 눈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을 연결하는 X의 계열에 있는 각각의 X들은 모두가 그것을 지닌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 이로운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가?”138쪽.
낮은 시력이라도 갖고 있으면, 천적의 움직임을 희미하게나마 포착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생존할 가능성도 높아지게 된다. 5퍼센트의 눈을 가진 원시 생물이 있고, 설령 그 원시 생물이 그 눈을 보는 것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사용했더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는 말이다. 그러나 진화론 반대자들은 결코 눈이라고 할 수 없는 것에서부터 완전한 인간의 눈까지 연결하는 X들에서 개개의 X가 해당 동물들의 생존과 번식을 돕기에 충분한 기능을 발휘했을까? 하는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아니다, 하고 부정한다. 진화가 작고 단순한 것에서 출발하여 점점 더 복잡한 단계로 진입한다는 걸 부인하는 것이다.
새의 날개의 경우 도킨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새의 최초의 날개가 얼마나 작고 날개답지 못한가보다는, 중요한 것은 동물들이 떨어지면 목이 부러지는 일정한 높이가 있는데, 이 임계점에서 바람을 받는 몸의 표면적을 조금이라도 늘려서 무작정 추락하는 것을 방지한다면, 비록 작은 개선에 불과할지라도 그것은 사느냐, 죽느냐의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원시적인 날개 형태를 가진 동물은 오랜 기간 동안의 자연선택을 통해 자신의 투박하고 조악한 날개를 조금씩 진화해 나갈 것이고 이 날개가 보편화되었을 때쯤이면 임계 높이는 조금 높아진다고.
“종의 기원에서 다윈은 이렇게 말했다.
작은 개조가 수없이 거듭되는 것으로도 결코 만들어질 수 없는 어떤 복잡한 기관이 있다는 것이 증명이 된다면 나의 이론은 붕괴될 것이다.
다윈 이후 150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생물에 대해 더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작은 개조가 수없이 거듭되어도 결코 만들어질 수 없는 복잡한 기관을 단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 기관이 존재한다면 나 역시 진화론을 포기할 것이다.“ 158쪽.
초자연적인 존재를 가정하는 사람들은 태초에 어떤 위대한 정신을 가진 설계자가 있다는 근거로, 눈먼 시계공 이론이 갖는 약점에 대한 지적으로 태초의 자기 복제자 또한 복잡한 과정에 의해서 누적적인 자연선택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그 최초의 자기 복제자의 복잡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냐고 이야기한다. 복잡한 구조를 갖는 생명체가 진화가 아닌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믿는 그들은 창조주가 동물들을 직접 만들지는 않았으나 태초의 자기 복제자나 DNA, 단백질을 만들어 놓았고, 그런 다음 누적적인 자연선택이 일어나 모든 진화가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얼핏 보면 과학성을 띠는 주장인 것처럼 보이나 사실 이것 역시 창조주를 인정하는 변형된 지적 설계론에 불과하다.
DNA와 자기 복제자를 만들 뿐만 아니라, 기도를 들어주고 죄를 벌하는 기능까지 수행하는 창조주가 만약 존재한다면, 그 존재 또한 당연히 단순하지 않은 고도로 복잡하고 완성된 성질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창조론자들은 시계를 제작한 그 복잡한 설계자의 기원에 대해서는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한다.
“초자연적인 설계자로 DNA, 단백질 복제 기구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은 엄밀히 밝히면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설계자의 기원에 관하여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신은 원래부터 있었다.’ 따위의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런 나태한 방식을 버리고자 한다면 단지 ‘DNA가 원래부터 있었다,’ 또는 ‘생명은 원래부터 있었다.’라고 말하면 된다.”236쪽.
바이오모프 실험에서 뿐만 아니라 원숭이가 햄릿을 타이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수학적 확률에 근거해 도출해 내는 것은 모두 진화에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변화가 갖는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었다. 도킨스는 자신의 이론에 합리성을 부여하기 위한 방법으로 생명이 발생할 가능성을 수학적 논증에 기초하여 바라봄으로써 실증성을 구축한다.
모든 생물은 분자들의 집합체이다.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원시 수프 이론을 갖고 유기 분자가 만들어진 배경을 설명했다면, <눈먼 시계공>에서는 케언스스미스의 점토설을 활용한다. 흙으로 인간을 빚었다는 프로메테우스를 신화를 연상시키는 케언스스미스의 점토설에 따르면 지구에 최초로 출현한 생물은 스스로를 복제하는 규산염 같은 무기 결정에 바탕을 둔 존재라고 한다.
케언스스미스는 최초의 자기 복제자가 진흙이나 점토에서 발견되는 무기물의 결정들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지구 어디에나 널려 있는 점토와 암석의 표면을 전자 현미경으로 확대해보면 그 결정의 표면에 흠이 있다. 이 흠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결정들에서 발견되는데, 일단 흠이 한 번 생기면 그 위에 그 형태가 새로 복사된다. CD의 표면에 음향 정보를 담는 것처럼 여기에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지구상에 최초로 출현한 광물 결정들은 오늘날과 같은 정교한 수준의 DNA가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케언스스미스는 점토 결정 복제자가 초기에 사용한 것이 단백질이나 당류,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RNA같은 핵산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광물 결정 유전자가 RNA(또는 비슷한 물질)를 더 효과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RNA가 스스로 복제되도록 만들었다. RNA의 자기 복제 능력은 RNA를 더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마침내 RNA는 자기 복제능력을 갖게 되었다. 일단 새로운 자기 복제 능력자가 탄생하자 새로운 종류의 누적적인 자연선택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자기 복제자는 찬조 출연이었지만 원래의 결정보다 더 효과적인 것으로 드러나자 역할을 넘겨받게 되었다. 그들은 진화를 계속했다. 그래서 결국 오늘날 알고 있는 DNA 암호를 완성하였다. 원래의 광물 복제자는 닮아빠진 주형처럼 버려졌다. 그리고 오늘날의 생물은 단일한 유전 체계와 단일한 생화학을 바탕으로 비교적 최근의 조상에서 진화해 나갔다.”261쪽.
지금은 고인이 된 학문적 동료이자 경쟁자인 스티븐 J 굴드와 엘드리지도 비판 대상이다. 도킨스가 굴드를 비판하는 이유는 자신의 이론과 경쟁 관계인 굴드의 단속평형설이 창조론자들에게 진화론을 공격하는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인데, 화석을 다루는 고생물학자인 굴드는 진화의 중간 단계를 증거하는 화석을 찾을 수 없었고, 진화가 잠시 주춤하는 정체되는 기간에 주목했기에 진화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캄브리아기에 화석이 급격히 변하는 것에 더 주목했다. 도킨스는 단속평형론자의 공헌은 진화가 정체되는 기간에 대한 강조였다며, 포괄적인 의미에서는 단속평형설도 점진설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도킨스는 진화가 일어나는 속도는 너무나 느리기 때문에 인간의 기준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지질학적인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스테빈스의 계산으로는 이 동물이 40그램의 평균 몸무게(쥐의 크기)에서 600만 그램의 평균 몸무게(코끼리 크기)로 진화하기까지 1만 2000세대가 걸린다. 쥐의 한 세대보다는 길고 코끼리의 세대보다는 짧은 5년을 한 세대의 길이로 잡는다면 1만 2000세대가 경과하려면 6만 년이 걸린다. 6만년이라는 시간은 화석 기록의 연대를 추정하는 통상의 지질학적 방법으로는 측정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짧은 시간이다. 스테빈스의 표현을 빌면, "어떤 동물의 새로운 종이 탄생하는 데 10만 년 정도가 걸릴 때, 고생물학자는 그것을 돌연한 발생이라든가 순간적인 발생이라고 부른다." 394쪽.
진화론이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이 생명의 기원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온갖 동식물, 생명의 다양한 현상에 대해서도 설명이 가능하다. 진화론에 입각하면 자연선택이야말로 생명의 복잡성, 다양성을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이다. 생물의 대부분이 유성생식을 하는 이유는 유성생식 하는 종이 무성 생식하는 종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식물이 처음부터 계층적인 형상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며, 진화가 내려오는 모양이 계층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종의 기원이라는 문제에 대한 다윈의 답은 한 종이 다른 종에서 유래한다는 것. 생명의 계보를 나타내는 나무는 계속 가지를 뻗어나가는데, 복수의 현생 종을 추적해 올라가면 단일한 선조 종에 가닿게 된다. 사람과 침팬지의 공통 조상은 500만 년 전쯤 하나의 같은 종이었으나 종 분화를 통해 2개의 다른 종으로 분화되었으며 인류라는 종은 진화가 이루어지는, 버려지고 선택되는, 종 분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생존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자연 선택되었을 뿐이다. 종 분화는 하나님의 섭리와 무관하게 점진적이고 불연속적으로 일어난다. 생명의 나무가 종의 경계를 넘어 한 번 가지를 뻗게 되면, 그 가지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게 된다. 침팬지와 유전자를 99퍼센트 이상을 공유하는 인류가 침팬지나 다른 원숭이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현대 분자생물학의 우수한 점은 두 동물이 어느 정도 다른가를 측정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유전자 지도가 밝혀진 오늘날, 유전자 사전은 세 개 문자로 이루어진 64개 DNA 단어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든 생물이 외관은 달라도 같은 유전자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든 생물이 하나의 공통선조로부터 유래했다는 결정적 증거로 간주된다. 인간의 유전자와 지극히 단순한 생명체들의 유전자가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것은 진화를 입증하는 구체적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도킨스는 현재까지 살아남아 있는 생물은 모두 오직 하나의 선조로부터 유래하고 있으며 그 의미는 자의적일지라도 64개의 DNA 단어 하나하나까지 거의 동일한 유전자적 사전을 그 선조로부터 물려받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유전자 사전에서 나타나는 보편성, 모든 생물이 하나의 공통 사전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들이 모두 동일한 문장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그래서 차이가 발생. 생물들은 서로 유연관계를 이루고 있는데, 단백질과 DNA 문장이 비슷하면 유연관계가 가깝고 그 문장이 다를수록 유연관계가 멀다. 생물의 유연관계를 다루는 분류학자들 중에서 조상과 진화를 배제해야 한다며 진화 개념 자체를 배격하는, 다윈 진화론에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는 창조론자들을 향해 도킨스는 그 특유의 공격적인 어투로 대응한다.
“물론 조상의 정확한 의미와 위상을 정립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고 때로는 아예 그런 일을 시도하지 않는 편이 나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조상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부추기는 그런 진술을 일삼는 것은 언어의 타락이자 진실에 대한 배반 행위이다.” 461쪽.
이를테면 바닷가에 있는 자갈들이 누군가가 설계해 놓은 것처럼 띠 모양을 이루는 것은 자연의 일부인 파도가 자갈들을 이리저리 굴려서 그런 띠 모양이 만들어진 것이지 거기에 특별한 의도가 개입된 것은 아니다. 목적이 없이 이루어지는 자연의 물리적 작용들을 보고 인류의 먼 조상들은 그 모양과 형태를 만들었을 위대한 정신을 상상했을 것이다. 밤과 낮이 바뀌고, 들판에 있는 나무와 풀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는 황량한 겨울이 매년 들이닥칠 때마다 두려움과 아름다움에 떨면서, 너그러움과 무자비함을 동시에 베푸는 초자연적인 어떤 존재를 상상하며 인류의 오래된 이야기 신화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러나 의도와 목적이 없다고 해서 자연에 아무런 법칙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윈주의적 세계관을 강력하게 옹호하는 도킨스는 이 장엄한 자연에 숨겨진 원리가 있음을 역설한다.
<눈먼 시계공>의 요지는 신의 피조물이라고 불리는 이 세계의 삼라만상들의 존재를 신을 개입시키지 않고도 설명할 수가 있는데, 진화론이 바로 그런 힘을 가진 이론이라는 것. 진화론. 자연선택만이 사람의 눈이나 그에 필적할 만한 고도의 완성도와 복잡성을 갖춘 기관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해명에 근접할 수 있다는 것. 잡다하고 난삽하게 펼쳐져 있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생물들에게 진화론이라는 과학이론으로 과학적 질서를 수립하려는 도킨스의 논증은 수학적인 계산과 물리학의 기본적인 개념의 토대 위에서 한 단계 한 단계 다양한 예들을 제시하며 전개되어 왔다. 진화론이 복잡하게 설계된 생명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이론이고, 설명하기 까다로운 자연 현상들을 과학적 근거에 의거해 설명해내야 하는 어려운 임무가 진화론자들에게 주어졌다면, 도킨스만큼 충실하게 그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학자도 없을 듯하다. 진화의 궁극적인 목표를 우리 인간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인간의 허영심일 뿐 진화는 먼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목표 따위는 없다고 말하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진화의 힘은 천문학적인 불가능성을 해소하고 믿을 수 없고 기적처럼 보이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